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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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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5일 19시 11분 등록
사월이 되었다.
아이들의 숲에서 지낸지 한달이 지난 셈이다.
오늘은 텃밭에 가서 아이들과 모종을 심고 왔다.
우리 텃밭은 금정산 자락에 있다. 텃밭 옆 에는 작은 흙마당도 있어서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 수 있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참으로 진정으로 “오래된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내가 저 아이들만 할 때 부산 변두리였던 우리동네에서 우리는 어른들 없이 날마다 나가서 저렇게 뛰어놀았는데.... 싶어진다.
그리 깊지 않은 도시 변두리 산에서 우리는 날마다 뛰어 다녔다.
우리 아이들의 숲 텃밭이 그렇다. 아이들은 이제 그곳에 가는 길에 익숙해졌다.
많이 자유로와졌다.
내 역할은 무언가... 저렇게 자유로와진 아이들의 옆에서 내가 하는 일.

내가 있는 방과후교실은 근처가 모두 상가들이다.
대학 후문 근처라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문을 나서면 끝없이 이어지는 차량들.... 그 속에 우리 아이들의 숲이 있다.

우리 텃밭은 기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방과후에 오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다니는 초등학교 앞은 또 한편의 드라마다.
작년 가을부터 철거가 시작되어 지금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철거현장.... 휑한 너른 벌판이다.
멀쩡한 동네, 멀쩡한 집들을 부셔서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선것이다.
학교와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텃밭 가는 길을 그 학교앞 철거현장을 옆으로 해서 오분만 걸어올라가면 감나무집을 만나게 된다. 오늘은 그 길가에서 한창 벚꽃이 기다리고 있었다.
감나무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소나무숲에 들어서기전에 상수리나무들이 서 있다. 작년 가을에 떨어진 이파리들이 기분좋게 누워있다. 작은 고갯길을 기분좋게 해준다.

고갯길을 넘어서면 바로 텃밭이 있다.
대나무숲이 양쪽에 있고 작은 약수물 받는 곳이 있고 작은 개울도 있고 무엇보다 좋은 건 흙마당이 있다는 거다.
마을 어르신들이 가꾸시는 밭들이 줄지어 있다.
탁 트인 곳에서 내려다 보면 도시의 빌딩들이 멀지 않아 보인다.
오늘은 그곳에 고추와 가지와 방울토마토를 심고 왔다.
조금 높은 곳이라 아직 모종하기에는 이르다고들 하셨다.
그래도 무사히 자라기를 기원하면서 심고 돌아왔다.
다음 주에는 남은 자리에 상추, 쑥갓, 열무... 이런 것들을 심을 작정이다.

아이들은 열심히 물을 길어와서 물을 주고 또 어떤 녀석들은 흙마당에서 훌라후프를 하기도 한다. 어떤 녀석은 물 양동이에서 발견한 올챙이들을 집에 데려가서 키우겠다고 종종거리곤 한다.
약수물 받는 자리옆의 흙마당은 어르신들께서 운동하는 곳이다. 운동기구는 훌라후프가 전부다. 낡은 의자 서넛이 있다.
우리 방과후 교실은 상가건물이라 아이들이 마음껏 뛸 수가 없다.
집에서도 늘 아파트 아래층 눈치 보느라 전전긍긍 이곳에서도 그렇다.
그러니 그 흙마당이 얼마나 소중한지....

작은 개울도 있다. 얕게 흐르는 물을 따라 아래쪽 위쪽으로 바위를 타고 오르내린다.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서 더 많은 걸 배운다.
나는 내 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나를 붙잡는다.
나는 그저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
가능하면 그들의 눈에 띠이지 않기를 바란다.
IP *.255.152.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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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05 20:20:17 *.70.72.121
아니요, 잘 가르치려 애쓰셔야 해요. 늘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 줘야 하고 행여 부족함이 없도록 살피셔야 하며 언제든 회초리를 들고 그릇됨을 일러줘야 하고 항상 건강하게 지켜줘야 해요.

사부님과 잠깐의 모임을 가져도 짧은 여행을 해도 안 보시는 척 다 꽤뚫고 마음이며 몸이며 다 살피셔요. 이 나이가 되도록 말이지요.

남쪽에 가게 되면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었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네요.
벌써 한 달이나 되었다니 장하시고 또 즐거움과 행복이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나경님 곁을 파고 드는 것 같아 참 보기 좋으네요. 그나저나 매일 매일 물을 주고 항상 바라봐 줘야할 텐데 언제 다 하실려는지 조금 걱정이 되어요. 여름엔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줘야 할 거에요. 잘하셔요. 가능하면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도울 수 있도록 많이들 참여 시켜보시고요. 지금처럼 계속 하신다면 분점도 내야 할 거에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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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tour
2007.04.06 07:51:48 *.55.214.10
참 행복한 모습이시네요.
저번에 읽은 글도 좋았는데 이번의 글은 더 좋은 것 같아요.
아직 사월의 초반이라 채소들이 자라기에는 무리입니다.
가능한 사월말이나 오월초에 심는 것이 좋은데요.
참고로 튼튼한 녀석들로 키우시려면
상가근처에 한약방이 있으면 한약 내린 후 남은 찌꺼기를 먼저
거름으로 주시는 것이 좋아요.
그냥 심은 것보다 많이 더 좋거든요.
저희가 해본 경험입니다.
그럼 행복한 글들 앞으로도 쭈~~욱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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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2007.04.06 20:04:32 *.255.152.165
써니님, 언제 남쪽에 오시면 꼭 들르세요~ 반갑게 맞아드릴께요^^
엊그제 거름을 하긴했는데 ... 지구온난화땜에 좀 일찍 심긴했는데 ㅎㅎ 날마다 들러서 열심히 돌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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