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2007년 4월 6일 13시 57분 등록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한다.


우리 집에는 조그마한 수족관이 하나 있다. 열대어를 기르고 싶다는 둘째아들 태규의 성화에 못 이겨 2년 전에 장만하였다. 태규는 곤충이나 물고기 등 동물에 대한 관심이 참 많다. 그래서 지금은 거북이도 두 마리나 키운다. 이제는 수족관을 관리하는 요령이 생겼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길러야 할지 몰라 물고기가 죽는 등 한동안 애를 많이 먹었다.

네모난 상자 모양의 유리로 된 수족관에 인공돌, 인공풀, 정수기, 온도조절기 그리고 조명 등 열대어를 키우는데 필요한 몇 가지 장비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각자 좋아하는 열대어를 사서 수족관에 넣었다. 아내는 화려한 빨간 색깔을 가진 골드 미키마우스 플래티, 큰아들 태훈이는 푸른빛이 도는 네온테트라, 태규는 순한 수마트라 그리고 나는 이끼를 먹고 사는 배도라스 팬더를 선택하였다. 크기는 작지만 제법 수조관다운 모습을 갖추니 보기가 좋았다. 태규는 너무 좋아서 아예 수족관에 코를 박고 살았다. 아내와 큰 아들도 만족스러워 하였고 내 자신도 ‘진작 할 걸’ 하는 마음에 뿌듯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열대어가 노는 모습도 보고 먹이도 때맞추어 주면서 열대어를 키우는 재미가 솔솔 하였다. 열대어들도 권력 서열이 정해져서 조그마한 수족관의 공간을 나누어 생활한다. 힘센 놈은 수족관 중앙에 넓게 활동하고 작은 놈들은 돌 뒤나 수풀 뒤 구석진 곳에서 활동한다. 먹이를 줄 때마다 더 많은 먹이를 먹기 위해,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힘센 놈이 약한 놈들을 입으로 쪼아대며 쫓아다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 마리씩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

‘먹이가 모자라서 먹이 쟁탈전에서 밀린 녀석들이 죽어가나.’ 하는 생각에 먹이를 더 많이 주었더니 오히려 더 빨리 죽었다.
‘물이 깨끗하지 못해서 그런가?’ 하고 수족관을 2주일에 한번 씩 깨끗하게 청소해주었다.
그런데도 큰 변화가 없었다.
살려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끝내 모두 죽고 말았다.
그 때 태규는 ‘왜 죽었어요?’ 라고 매달리면서 펑펑 울었다.
‘아마 나이를 많이 먹어서 하늘나라로 갔을 거야’ 라고 설명해 보았지만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날은 어린애의 상처를 달래주느라고 쩔쩔 매며 우울하게 하루를 보내야 했다.
‘수족관을 괜히 사가지고 이런 고생을 한담.’ 하고 자조 섞인 푸념도 해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러 가지 이유가 얽혀있었다. 일단 수족관에 물고기가 너무 많았고, 그만큼 먹이를 많이 주다 보니 물고기들이 다 먹지 못한 먹이찌꺼기가 남게 되고, 먹이를 먹은 물고기는 먹은 만큼 배설물을 배출해서 먹이찌꺼기와 같이 쓰레기로 쌓였다. 이렇게 쌓인 쓰레기가 수족관의 물을 오염시킨 것이다. 또한 수족관 내의 환경도 인공적으로 만든 것들이라 정화작용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오염이 더욱 심해졌다. 즉 열대어를 위해 먹이를 많이 준 것이 오히려 해가 되었다.

“우리는 점점 심해져가는 혼란의 와중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존재로 전락했다. 생물학자들이 옛날부터 자신이 쏟아놓은 진실을 우리는 매일 실감한다. 어떤 생물이든지 자신이 쏟아 놓은 쓰레기더미 속에서는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p266)

최근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설치하는 문제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이천에 공장 증설을 하겠다고 정부에 신청하였지만 정부는 수도권 2천3백만 주민들의 상수원인 남한강 지역이 공업용수와 유해물질로 오염된다는 이유로 불허하였다. 이에 이천지역 주민들은 지역경제를 살려달라고 삭발까지 하며 농성을 벌였다. 반도체 공장은 특성상 100여 가지 이상의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데다 수송, 저장, 공정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떻게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위험을 항상 안고 있다. 터졌다 하면 팔당댐으로 흘러들어 많은 수도권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 더구나 하이닉스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기사회생한 기업이다.

최종적으로 청주에 공장을 짓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었지만 이 과정을 보면서 씁쓸하게 우리 집 수족관이 연상된 것은 왜일까. 말은 못하지만 밥을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수족관 속의 열대어처럼 자신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도 모르고 개발이 살길 인양 일반 서민들은 외친다. 현실을 넓게 그리고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서민들을 깨우치고 이끌어야 할 사람들도 돈과 권력에만 눈을 팔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계관은 우리의 현실인식과정에 너무나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있음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다.” (p20)

우리나라를 넘어 지구의 운명도 마찬가지이다. 물고기가 물을 보지 못하듯이 인류도 지구가 지구인줄 모른다. 신자유주의 경제로 인류 전체가 치열한 경쟁에 갇혀 개발과 성장에만 몰두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비평가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라는 책을 통해

“인류라는 종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희망은 지구에 대한 공격행위를 중지하고 자연의 질서와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p329)

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지구의 자원이 무한한 것처럼 그리고 과학과 기술이 인류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수십 년 안에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로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우리 집 수족관처럼 지구도 멸망으로 갈지 모른다. 더군다나 영화 <괴물>에서 본 내용처럼 지구의 운명도 일반 시민들이 나서서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한 인간이 왜소함에 마음이 우울해진다. 우리 자식들이 ‘지구는 왜 죽었어요?’라고 매달리면서 펑펑 울지 않기를 바란다.
IP *.211.61.168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7.04.06 14:23:41 *.128.229.88
글 맛이 있다. 생선이 입 속으로 들어와 비로소 맛이 혀끝에 느껴진다. 머리와 가슴이 함께 가고 따라가는 사람이 눈길을 놓치지 않는다.
프로필 이미지
초아
2007.04.06 14:24:58 *.167.144.172
주역에서 가르치길, 창조, 진행, 완성,소멸의 단계를 계속해서 이어가면서 우린 살고 있다. 복잡해지면 자연이라는 무서운 소멸의 신이 우릴 겨냥하여 회호리를 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창조한다.(그건 성경에서 나오는 멸망의 시점과는 다르다.) 지금도 그런 과정속에 있다. 지구라는 거대한 자연이 숨을 쉬기가 거북해지면 스스로 정화하고 요동을 칠 때, 인간은 그걸 자연의 공포라한다.

우린 인도를 거지가 우글거리는 비문명국가로 생각한다. 그러나 "박쉬쉬"하고 손을 내미는 거지가 신사복을 쪽 빼입은 부자 외국인을 오히려 불쌍하게 여긴다. 어디가 옮은 것인가? 누가 불쌍한 사람인가?

여해의 글이 너무 간결하여 단숨에 읽고,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 덧글을 보낸다. 우리의 세대는 그냥 넘길지는 몰라도 인간이 저지런 일로 인하여 한꺼번에 수천만 이 몰사하는 불행이 눈에 보인다. 그걸 막아야 한다. 그걸 막아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송창용
2007.04.06 16:09:44 *.211.61.168
사부님, 초아선생님, 글을 맛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난 뒷맛이 왠지 씁쓸합니다. 너무 무거운 주제를 다루어 그런지 마음이 흐리네요. 그래도 요즈음 글을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삽니다.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7.04.06 22:53:13 *.112.72.193
와.. 마지막 구절 - '지구는 왜 죽었어요?'라는 아이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네요. (제목으로 써도 괜찮겠어요)
환경문제는 정말 '불편한 진실'인 것 같아요.. 엔트로피도 언제 한번 봐야겠다..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04.06 23:14:39 *.70.72.121
역시 잘 쓰셨네요. 내내 따라해 봐야할 텐데..
프로필 이미지
다인
2007.04.07 05:38:31 *.102.142.177
송창용님글을 읽으니 갑자기 시 한편 생각나네요...

<나 요즈음>
쬐끄만 창문을 열고 넘어가는
저녁 해의 등허리나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배가 고파야 물고기 두어 마리 사오면서
풍문을 통해서 간신히 세상 맥박을 감지하면서
매일 10리터 짜리 종량제 비닐봉지에
쓰레기나 가득 만들어내면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기여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이 사회와 어떤 상관이 있다고 벅벅 우기면서

- 박혜경

쓰레기나 가득 만들어낸다는 말이 참...찔리게 와 닿네요.
프로필 이미지
자산 오병곤
2007.04.07 11:47:09 *.178.220.196
엔트로피를 대학다닐 때 읽었는데, 연구원하면서 읽은 '소유의 종말'이 같은 저자라는 걸 알고 놀란 기억이 납니다. 전 엔트로피하면 담배연기가 생각납니다.

수족관이라는 아주 작은 소품에서 출발하여 지구의 운명으로 저희의 의식을 팽창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칼럼을 함께 고민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좋은 태도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78 하루 - 04/07 [5] 신재동 2007.04.08 1570
1577 오늘 저녁에는 무얼 먹을까. [6] 好瀞 김민선 2007.04.08 1888
1576 자원 봉사에 대한 그림자 임금 [5] 한정화 2007.04.08 2421
1575 [5]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새로운 인식의 틀) [5] 써니 2007.04.08 1571
1574 내 아내 김사라씨의 연봉 계산해 보기 [5] 최정희 2007.04.08 1871
1573 우리 모두 예외일 수 없다. [6] 香仁 이은남 2007.04.07 1560
1572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방법 [13] &#37793;山 오병곤 2007.04.07 6171
1571 친구이자 스승으로 뜨겁게 [8] 옹박 2007.04.06 1691
»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한다. [7] 余海 송창용 2007.04.06 2883
1569 텃밭에 모종심기....기적의 흙마당 [3] 김나경 2007.04.05 2179
1568 [26] 빠꾸 도! (사량도와 중년의 그녀가 빚은 솔잎막걸리) [4] 써니 2007.04.05 2469
1567 재능찾기 도구 - 갤럽의 StrengthsFinder [6] 이기찬 2007.04.05 3316
1566 &lt;01&gt;마음엽서..풍경이 바라 본 마음 [8] 이은미 2007.04.04 1559
1565 풍류를 아는 것 [11] 김귀자 2007.04.04 1877
1564 어제 책을 받고 [5] 초심 2007.04.04 1877
1563 서른살, 죽음 앞에서 [8] 옹박 2007.04.03 1881
1562 장례식 연설 [3] 香仁 이은남 2007.04.03 3006
1561 Retreat [3] 우제 최정희 2007.04.03 1755
1560 어느 청년, 죽음을 갈망하다~! [3] 賢雲 이희석 2007.04.03 1813
1559 전략탐색 &amp; 전술운영 [2] 백산 2007.04.03 1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