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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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연구원 여러분
4월 5일 목요일. 새벽 1시 24분.. 25분.
스피커에서는 이루마의 'Beloved'가 잔잔히 흘러나오고, 책상 앞 창문 사이로 관악산의 봄 향기가 묻어 납니다. 저는 지금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고르신 분들이 몇 계시지요? 방금 글 한 꼭지를 써보려고 노트북을 켰습니다. 가슴을 일렁이게 만든 구절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사람들이 염두에 두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익을 좇아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니 필연적으로, 사회에도 가장 유리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고 했다…(중략)…
애덤 스미스가 생각하는 세계에서는 남을 배제하고 어떻게 해서든 재산을 끌어 모아 가진 사람이 시장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 집단의 함을 이상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마련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호 관계의 네트워크 안에 자기 회사를 단단히 박아두어야만 각 기업은 그만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업계에서 말하는 win-win 전략이다.”
이 글을 읽다가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기억할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가슴 아픈 대학원 시절의 모습입니다.
당시 저는 몇몇 친구들과 유한요소해석(FEM)이라는 빡빡한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혼자 하거나 또는 4명까지 팀을 짜서 기말 발표를 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혼자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학기 말 최종 발표가 있던 날, 옆 연구실의 민종이라는 친구가 발표 전날 컴퓨터 문제로 데이터를 다 날린 모양입니다.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어쩔 줄 몰 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함께 수업을 수강중인 다른 친구가 제게 와서 이야기했습니다.
"민종이가 데이터가 다 날아갔다는데, 그냥 너 발표할 때 같이 이름 넣어서 올려줘라.."
이런! 저에게 그런 부담을 떠 넘기는 게 무척 화가 났습니다. 한 학기 동안 혼자 끙끙대며 했던 노력들을 반으로 나누라니! 저는 그 친구에게 ‘민종이가 그렇게 불쌍하면 너네 팀에나 넣지 그래!’라고 버럭 화를 내버렸습니다.
친구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민종이는 옆에서 우리들 이야기를 들은 모양입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요. 화를 내자마자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민종이의 이름을 자신의 팀에 올려 발표했습니다.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그 찝찝했던 감정, 왠지 모를… 제가 참 불쌍하다는 느낌을…
졸업할 때쯤 기숙사를 정리하다 그 날 수업의 발표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더 뒤적거리다 보니 노란 종이봉투에 든 저의 뒤틀린 척추 MRI 사진도 찾아내었습니다. 제게 토목과 대학원 2년 동안 남은 것이었고, 희생한 것들이었습니다. 처참했습니다.
저는 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았습니다. 수재였던 형에 대한 열등감을 떨쳐버리려고, 별로 재능은 없었기에 독기 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타고난 오기 때문에 형을 따라 과학고에서 과학원 석사까지 우라질 경쟁의 과정을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처럼 선천적인 천재가 아니었기에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3시간 내내 시험을 보다 지쳐 화장실에서 토한 적도 있었습니다. 밤새서 공부하다가 건강을 잃어버린 적도 있었지요.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저를 가슴 아프게 한 것은 그렇게 친구를 잃어버린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민종이라는 친구에게 연락을 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에 방송국 PD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미안한 마음에 전화 한 번 하지 못하고 멀리서 마음으로만 응원해주어야 했습니다. 과거의 잘못은 적어도 스스로에게 쉽게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경쟁 속에서 돋보이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경쟁에서 초연해지는 것입니다. 뼈아픈 경험을 통해 저는 그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창조적으로 경쟁해야 합니다. 타인이 아닌 어제의 나와 경쟁해야 합니다. 그리고 힘겹게 스스로와 경쟁하는 친구를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식이 머리에서만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니체는 말했습니다.
“책을 통해서만 사상을 더듬는 일당들.
책을 짓눌러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일당들.
머리를 종이 위에 처박고 있는 일당들.
부디,
문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하여 ‘진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혜의 친구’가 되어라”
리프킨의 통찰이 우리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연구원 커뮤니티에서 꽃을 피우길 희망합니다. 우리가 진정 ‘친구이자 스승’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스승이 될 능력은 충분합니다. 이제 친구만 되면 됩니다. 사람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첫 번째는 어울림입니다. 그것도 막된 어울림입니다. 선배가 형이 되고, 그 분이 그 녀석이 될 때까지, 좋든 싫든 무조건 가서 안기고 부대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겉으로만 미소 짓지 맙시다. 만나서 피터지게 싸우고 뒹굴지언정, 부대끼고 화해하고 깔깔댑시다. 사람과 사람으로, 친구와 친구로, 인간과 인간으로 뜨겁게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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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나의 친구 승오에게.
세상은 그렇게 험란한 것만 아니다.
그렇게 서로를 죽이고 자신만이 살아 남으려는 생존의 전쟁만이 있는건 아니다.
승오같이 자신을 비우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자네의 친구는 벌써 자넬 용서하고 승오가 오길 기다릴 것이다.
이제 자넨 용기를 가지고 친구에게 손을 내 밀어 보아라.
이렇게 만난이가 진정한 친구이며, 그것이 우정의 향기이다.
글쓰는 이가 진정 아름다운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잘 쓸려는 욕심을 버려야, 버리려는 맘까지 없는 무아를 만들어야 비로소 조화(造花)속에서 향기가 일어난다.
승오는 점진적으로 자아의 발견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멋을 발한다.
친구여!
그런 마음의 등불을 꺼지마라. 꺼려고 해도 이미 여의주같은 진리는 영원히 빛을 발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험란한 것만 아니다.
그렇게 서로를 죽이고 자신만이 살아 남으려는 생존의 전쟁만이 있는건 아니다.
승오같이 자신을 비우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자네의 친구는 벌써 자넬 용서하고 승오가 오길 기다릴 것이다.
이제 자넨 용기를 가지고 친구에게 손을 내 밀어 보아라.
이렇게 만난이가 진정한 친구이며, 그것이 우정의 향기이다.
글쓰는 이가 진정 아름다운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잘 쓸려는 욕심을 버려야, 버리려는 맘까지 없는 무아를 만들어야 비로소 조화(造花)속에서 향기가 일어난다.
승오는 점진적으로 자아의 발견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멋을 발한다.
친구여!
그런 마음의 등불을 꺼지마라. 꺼려고 해도 이미 여의주같은 진리는 영원히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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