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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7일 21시 36분 등록
맏형이 술 먹고 운전하다 집을 들이 받는 바람에 벽이 무너져 내렸다. 막내는 아버지 몰래 친구들과 지붕에서 놀다가 그만 지붕이 반쯤 꺼져 내렸다. 중간 놈은 수도물가지고 장난하다 마루바닥을 물바다로 만들어 보일러가 고장 나 추운 데 덜덜 떨고 있다. 누나는 부엌에서 요리하다 휴대전화를 받느라 가스 불이 인화돼 부엌 한 쪽을 태웠다. 형제가 많은 집에 살다 보면 이렇게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곤 한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할까?

일을 벌린 녀석에게 호통이 돌아가고 아버지가 다혈질 성격이면 주먹으로 얻어터지기도 하겠지만 결국 가족 모두가 그 집을 수리하는데 힘을 쏟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안 그랬는데..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건 그들이 살아가야 할 집을 고치는 게 급선무가 된다. 이것은 가족이라는 일원으로서의 의무이며 병약한 어머니와 갓 태어난 조카를 생각해서라도 복구에 동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신문에는 “온난화, 한반도 100년 뒤 산림생물 멸종”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바로 얼마 전에는 북극해의 얼음이 녹는 바람에 바다 표범들이 죽어가는 사진과 생태계 이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나라는 적도 주변에 위치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라는 지구환경에 관한 보도가 하루에도 몇 건씩 앞다투어 올라오고 있다. 서울에는 황사까지 불어와 따듯한 봄날을 맘 놓고 즐기기도 힘들어 진 봄이다. 앞으로 또 어떤 기사를 접하게 될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리 희망적인 내용은 기대하기 힘들 듯하다.

오늘날의 지구 온난화의 책임을 묻자면 명백하게 산업화 시대를 이끌어 온 선진 산업국들이 그 주범일 것이다. 그리고 산업국 수위에 들어가는 나라들이 크건 작건 그에 일조를 하였으며 그런 면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기후 변화 협약 회의에서 소극적인 입장을 주지하는 그들의 태도는 집 벽을 무너뜨리고 수리하자는데도 요령을 피우며 요리조리 피하는 맏형을 보는 듯 하여 개운치가 않다.

현재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약 만 팔 천년 동안 지구의 기온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산업시대의 시작으로부터 삼 백년 동안 온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어 가까운 시일 내에 생태계가 자기조절 기능을 잃어버리고 전 지구적인 재앙을 초래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 시점은 길어야 백 년이고 그 이전에 기온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군부터 차례로 멸종되리라 보고되고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서 한 가지, 매스컴의 시선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지만 지구 온난화 주범으로 또 하나의 제공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거대한 자본의 베일에 가리워져 있었던 진실이다. 요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리라는 기사로 논쟁이 활발해 지면서 미국산 소들의 실태가 많이 밝혀지긴 하고 있지만 온난화의 또 다른 주범은 다름아닌 바로 “소”다.
기실 소라는 짐승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나도 소띠인지라 소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좋은 이미지밖에 없는데 이 소가 현대에서 이런 위치로 전락해버린 것에 대해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소가 문제가 될까? 그것은 바로 소 사육방식의 심각성에 있다. 혹시 저 푸른 언덕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오늘날 그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목축산업은 세계 거대 자본과 권력자들의 이해(利害), 그리고 근대의 실용적인 이론에 힘입어 미국을 비롯해 전 지구 대륙으로 전파되어 소리 없이 지구 온난화를 부추켜 왔다.

현재 미국의 4대 산업에 꼽히는 목축산업의 문제는 그 추악한 뒷모습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기아로 죽는 사람들, 열대 우림 훼손, 메탄가스와 그 외 유해가스 방출…
이러한 것들이 늘 있어온 것은 아닌가 하고 그리 심각하게 들리지 않을 지 모르겠다.
13억마리 이상이나 되는 소들은 목초만 먹는 게 아니라 곡물로 만든 사료를 먹는다. 그 이유는 선진국에서 선호하는 마블링이 좋은 육질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디오피아 같은 나라에서 기아로 죽었다는 이야기의 배경에는 그들이 식량을 지을 땅에 소를 위한 목초지나 사료를 재배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기른 소나 곡물은 잘 사는 나라의 10억 인구를 위해 수출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이와 같은 이유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한다.
목축산업에 의해 생겨나는 유해가스 비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근 삼백년 동안 지구상의 메탄가스 비율은 두 배로 증가했고 그 중 12%가 13억 마리의 소에서 나온다.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농담처럼 했던 소의 방귀이야기는 일리 있는 말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한 점 먹는 쇠고기의 뒷면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한때 미국 농무부 직원의 양심선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전수 검사가 불가능한 도축 공정과정과 그 불결함에 대한 보고, 또 광우병의 위험과 미국인의 4%가 돼지고기로 인한 선모충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등이다. 또 얼마 전 미국 축산공장에 다녀온 기자가 그 실태에 대해 충격이었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미국 쇠고기 산업은 마피아에서 정부 꼭대기까지 연결되어 있다. 거대한 권력이 그 뒤의 자본에 탐닉해 있는 것이다.

FTA협정으로 상당히 의심스러운 음식이 이제 도처에 깔리게 되었다. 먹느냐 마느냐의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겠지만 이쯤에서 한 번쯤 우리가 먹는 고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의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구 온난화는 예상보다 더 빨리 우리 곁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자연의 변화를 과학자들의 예측만 믿고 안이하게 있기엔 그것은 너무나 변화무쌍하며 거대한 존재이다.
한국의 여름도 언제부터인가 아열대성 기후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

가족이 힘을 합해 무너진 집을 수리하듯 각 나라들이 심사숙고하여 지구를 살려야 한다. 니 탓이니 내 탓이니 할 시간이 없다. 지구라는 집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이다. 운명공동체라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IP *.48.4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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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
2007.04.07 23:37:46 *.102.142.177
대가족 비유가 재밌네요..
잠시 우리가족을 떠올렸어요.
저희가 진짜 그랬거든요. 애들이 많아서~
그나저나..걱정이네요.
우리지구...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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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7.04.08 08:03:48 *.233.202.213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지키고 살려야하는 것, 절대절명의 과제이자 숙명입니다.
미국 목축산업의 이면에 대한 얘기는, 세계평화를 표방하면서도 군수산업의 증강에 사력을 다하는 미국의 또 다른 모습이라 여겨져 씁쓸해집니다.
모두의 지혜와 실행력이 한 데로 모여 多者相生의 길이 열리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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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4.09 15:40:01 *.153.35.106
仁자매님. 나도 애들 많은집에서 복작거리면서 자랐다우.귀자씨나 귀선씨 보니까 형제많은 집에 자란 사람들 분위기가 물씬.ㅎㅎ반갑다는.

한희주님. 반갑습니다. 좋은 답글 감사합니다. 자주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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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4.10 13:00:42 *.39.179.237
누나 글은 특유의 맛깔스러움이 느껴져. 재밌어. 금방 단편영화를 하나 본 느낌. 다만 고민의 결과가 조금 언급되었으면 금상첨화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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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2007.04.11 00:15:47 *.103.178.228
지구의 암울한 미래를 예언하고 있지만, 힘을 합하여 집을 수리하는 가족의 힘에 희망이 있다는 것 같아 섬뜩하다가도 안심이 됩니다.
천장에서 바라본 거인의 생각도 지구의 수리 가능성을 믿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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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4.11 17:49:11 *.153.35.106
지난번 달자씨가 흔들리기 전에 나가서 지대로 카드 긁어주었네요. 선배가 좋군요. 앞으로도 종종 부탁...
천장님 안녕..요즘 새로운 글쓰기 연습중이라 좀 딱딱했는데 읽어주시고 답글 남겨주시니 힘이 납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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