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好瀞 김민선
- 조회 수 2218
- 댓글 수 6
- 추천 수 0
최근 쇠고기 구이를 저녁으로 먹을 일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제레미 리프킨의 책 <육식의 종말>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한 입 크기로 썰어진 쇠고기 토막들이 접시에 담겨 나왔다. 벌건 근육질 사이로 틈틈이 실모양으로 박혀있는 하얀 지방질이 보였다. 불 위에 올려지자 그 토막들은 점점 오그라들었다. 적갈색의 육즙이 흘러나왔다.
나는 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그 조각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들어갔을 테지만, 그 날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많은 질문들이 흘러갔다. 여기에는 무슨 사연이 담겨있을까? 이 쇠고기의 산지는 어디인지, 이 소는 무엇을 먹으며 사육되었는지, 비만으로 인한 질병은 없었는지, 도축장의 환경은 어땠는지, 어떤 방법으로 운반이 되었는지? 이 안에 있는 호르몬제, 항생제, 살충제, 제초제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러고 나니 선뜻 먹게 되지가 않았다.
대형 마트를 가니, 정육 코너에 환한 불빛 아래 각종 포장육들이 보기 좋게 늘어서 있다. 흰 색 스티로폼 포장재와 대비되어 더욱 붉어 보인다. 서로 자기를 고르라고 잘 보이려는 듯한 이 수많은 팩킹들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는 미국산 쇠고기 허벅다리 부분입니다. 어려서는 목초를 먹고 자랐는데, 도살되기 얼마 전부터는 사료가 옥수수로 바뀌더라구요. 금방 살이 더 붙었죠. 하지만 그로 인한 관절염과 혹위 농양으로 고생 좀 했어요. 근데 제가 이랬던 건 쇠고기 등급 판정에 별 영향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난 송아지 때부터 호르몬 정제를 귀에 달고 살았어요. 빨리 자라야 했다는군요. 당연히 여기에는 호르몬 성분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리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요. 90년대 후반에 푸에르토리코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죠. 생후7개월 된 아기의 젖가슴이 부풀고 3~6세의 여아가 월경을 하는 등 비정상적 조숙 현상을 보이는 어린이가 2천 명 가량 보고되었다고요. 에스트로젠이 투여된 플로리다산 닭고기를 먹었다는 것이 이유로 밝혀졌었죠.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에요. 훨씬 미치지 못하죠.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되요.’
‘이 안에는 다이옥신이 1만큼 들어있어요. 용케 검사에서 걸리지 않았죠. 치사량이 100이니 1쯤은 별거 아니지 않겠어요? 난 어때요?’
‘난 트럭에 실려 오만 먼지를 뒤집어쓰고 도축장에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도살된 후 제대로 씻겨지지도 않고 그대로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지더라고요. 그리고 빠른 속도로 해체되었죠. 머리카락 등 각종 이물들이 널려 있는 걸 봤어요. 난 부패 직전의 다른 소의 부위들과 함께 갈은 고기로 이곳에 왔습니다. 어차피 갈린 고기인데 그 전이 어땠는지 무슨 상관이겠어요?’
‘난 라틴 아메리카에서 왔어요. 내가 있던 목초지는 원래 산림지대였다고 합니다. 나와 동족의 먹이감을 위해서 수십 종의 식물, 백 여 종의 곤충, 수십 종의 조류, 포유류, 양서류가 몰살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있던 곳이 목초지로 된 지 몇 해가 되었는데, 이젠 거기서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한대요. 땅이 너무 척박해졌다네요.’
‘여기 돼지고기 코너를 보세요. 같은 양의 쇠고기와 비교해서, 돼지고기에 드는 사료량은 절반 정도라구요. 빈민국에서 굶어죽는 아이들 좀 더 살리는 셈 치고 날 사는 건 어때요?’
약간의 과장과 장난기를 섞어 몇 자 적어보았다. 여태 별다른 생각 없이 음식 재료를 선택하였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나오는 음식을 그저 주어진 대로 먹었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식재료와 식당의 모든 음식이 다 먹거리로 부적합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무시무시한 사연이 담겨있을 수 있다. 나는 <육식의 종말>을 읽고 상품으로 진열된 고기들 이면에 있을 위와 같은 사연들을 충분히 예상하여 볼 수 있었다. 고기가 아닌 농수산물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제는 먹거리가 깨끗한 것이냐에 대한 선택보다는, 어느 것이 덜 오염되었는가에 대한 선택이 강요되고 있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당분간 나는 고기라는 먹거리를 앞에 두고 지구 온난화, 물 부족, 사막화과 같은 문제들이 머리를 스칠 것 같다.
이제 저녁 밥 먹을 시간이다. 무엇을 골라서 먹을까.
IP *.204.85.225
한 입 크기로 썰어진 쇠고기 토막들이 접시에 담겨 나왔다. 벌건 근육질 사이로 틈틈이 실모양으로 박혀있는 하얀 지방질이 보였다. 불 위에 올려지자 그 토막들은 점점 오그라들었다. 적갈색의 육즙이 흘러나왔다.
나는 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그 조각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들어갔을 테지만, 그 날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많은 질문들이 흘러갔다. 여기에는 무슨 사연이 담겨있을까? 이 쇠고기의 산지는 어디인지, 이 소는 무엇을 먹으며 사육되었는지, 비만으로 인한 질병은 없었는지, 도축장의 환경은 어땠는지, 어떤 방법으로 운반이 되었는지? 이 안에 있는 호르몬제, 항생제, 살충제, 제초제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러고 나니 선뜻 먹게 되지가 않았다.
대형 마트를 가니, 정육 코너에 환한 불빛 아래 각종 포장육들이 보기 좋게 늘어서 있다. 흰 색 스티로폼 포장재와 대비되어 더욱 붉어 보인다. 서로 자기를 고르라고 잘 보이려는 듯한 이 수많은 팩킹들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는 미국산 쇠고기 허벅다리 부분입니다. 어려서는 목초를 먹고 자랐는데, 도살되기 얼마 전부터는 사료가 옥수수로 바뀌더라구요. 금방 살이 더 붙었죠. 하지만 그로 인한 관절염과 혹위 농양으로 고생 좀 했어요. 근데 제가 이랬던 건 쇠고기 등급 판정에 별 영향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난 송아지 때부터 호르몬 정제를 귀에 달고 살았어요. 빨리 자라야 했다는군요. 당연히 여기에는 호르몬 성분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리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요. 90년대 후반에 푸에르토리코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죠. 생후7개월 된 아기의 젖가슴이 부풀고 3~6세의 여아가 월경을 하는 등 비정상적 조숙 현상을 보이는 어린이가 2천 명 가량 보고되었다고요. 에스트로젠이 투여된 플로리다산 닭고기를 먹었다는 것이 이유로 밝혀졌었죠.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에요. 훨씬 미치지 못하죠.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되요.’
‘이 안에는 다이옥신이 1만큼 들어있어요. 용케 검사에서 걸리지 않았죠. 치사량이 100이니 1쯤은 별거 아니지 않겠어요? 난 어때요?’
‘난 트럭에 실려 오만 먼지를 뒤집어쓰고 도축장에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도살된 후 제대로 씻겨지지도 않고 그대로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지더라고요. 그리고 빠른 속도로 해체되었죠. 머리카락 등 각종 이물들이 널려 있는 걸 봤어요. 난 부패 직전의 다른 소의 부위들과 함께 갈은 고기로 이곳에 왔습니다. 어차피 갈린 고기인데 그 전이 어땠는지 무슨 상관이겠어요?’
‘난 라틴 아메리카에서 왔어요. 내가 있던 목초지는 원래 산림지대였다고 합니다. 나와 동족의 먹이감을 위해서 수십 종의 식물, 백 여 종의 곤충, 수십 종의 조류, 포유류, 양서류가 몰살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있던 곳이 목초지로 된 지 몇 해가 되었는데, 이젠 거기서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한대요. 땅이 너무 척박해졌다네요.’
‘여기 돼지고기 코너를 보세요. 같은 양의 쇠고기와 비교해서, 돼지고기에 드는 사료량은 절반 정도라구요. 빈민국에서 굶어죽는 아이들 좀 더 살리는 셈 치고 날 사는 건 어때요?’
약간의 과장과 장난기를 섞어 몇 자 적어보았다. 여태 별다른 생각 없이 음식 재료를 선택하였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나오는 음식을 그저 주어진 대로 먹었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식재료와 식당의 모든 음식이 다 먹거리로 부적합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무시무시한 사연이 담겨있을 수 있다. 나는 <육식의 종말>을 읽고 상품으로 진열된 고기들 이면에 있을 위와 같은 사연들을 충분히 예상하여 볼 수 있었다. 고기가 아닌 농수산물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제는 먹거리가 깨끗한 것이냐에 대한 선택보다는, 어느 것이 덜 오염되었는가에 대한 선택이 강요되고 있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당분간 나는 고기라는 먹거리를 앞에 두고 지구 온난화, 물 부족, 사막화과 같은 문제들이 머리를 스칠 것 같다.
이제 저녁 밥 먹을 시간이다. 무엇을 골라서 먹을까.
댓글
6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109 | 노력하는 자체가 성공이다 | 빈잔 | 2024.11.14 | 624 |
4108 | 인생을 조각하다. | 빈잔 | 2024.10.26 | 644 |
4107 | 얻는것과 잃어가는 것. | 빈잔 | 2024.11.09 | 661 |
4106 | 눈을 감으면 편하다. [1] | 빈잔 | 2024.10.21 | 685 |
4105 | 돈 없이 오래 사는 것. 병가지고 오래 사는것. 외롭게 오래 사는 것. | 빈잔 | 2024.10.22 | 717 |
4104 | 늙음은 처음 경험하는거다. | 빈잔 | 2024.11.18 | 729 |
4103 | 상선벌악(賞善罰惡) | 빈잔 | 2024.10.21 | 734 |
4102 | 길어진 우리의 삶. | 빈잔 | 2024.08.13 | 741 |
4101 | 문화생활의 기본. [1] | 빈잔 | 2024.06.14 | 933 |
4100 | 선배 노인. (선배 시민) | 빈잔 | 2024.07.17 | 937 |
4099 | 꿈을 향해 간다. [2] | 빈잔 | 2024.06.25 | 1073 |
4098 | 신(新) 노년과 구(舊) 노년의 다름. | 빈잔 | 2023.03.30 | 1511 |
4097 | 가장 자유로운 시간. | 빈잔 | 2023.03.30 | 1513 |
4096 | 편안함의 유혹은 게으름. | 빈잔 | 2023.04.28 | 1544 |
4095 | 나이는 잘못이 없다. | 빈잔 | 2023.01.08 | 1545 |
4094 | 원하는 것(Wants) 과 필요한 것(Needs) | 빈잔 | 2023.04.19 | 1591 |
4093 | 내 삶을 지키기 위한 배움. | 빈잔 | 2022.12.27 | 1647 |
4092 | 변화는 불편하다. | 빈잔 | 2022.10.30 | 1668 |
4091 | 1 % [2] | 백산 | 2007.08.01 | 1707 |
4090 | 정서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 | 빈잔 | 2023.03.08 | 1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