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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9일 11시 42분 등록
빅 브라더라는 인물의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이라는 장치를 이용한다.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행하여 어떠한 소리나 동작도 낱낱이 포착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다. 사상경찰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개개인을 감시하며, 사람들은 오랜 세월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런 삶에 익숙해져 보린다. 작품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도 하루 종일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한다.

조지오웰은 그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라고 불리는 독재자 혹은 국가권력에 의해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철저히 감시되고 통제되는 미래를 예언했다. 다행히 1984년은 물론이고 2007년, 현재까지도 그의 상상력이 완전히 현실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가까운 미래에 조지오웰의 예언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에도 우리 주변에서 조지 오웰이 예언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그러나 그 의도만큼은 결코 다르지 않은 감시와 통제를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06년 4월 한 방송사에서는 서울 시민이 하루 동안 140회나 방범용 감시 카메라에 노출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계속되는 사생활 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이나 지하철역 등 공공장소에 설치된 CCTV의 수는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CCTV에 노출되지 않고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각종 통신사에서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위치 추적 서비스는 어린이나 노약자 혹은 애완동물의 보호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악용의 가능성을 외면할 수 없다.

이런 물리적, 지리적 위치에 기반한 감시가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시키고 부정적인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달리, 밝은 미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선 것은 바로 유비쿼터스(ubiquitous) 열풍이다. 유비쿼터스는 21세기 IT 강국 대한민국의 화두다. 유비쿼터스란 말은 라틴어로 '편재하다'는 뜻인데, 개인용 컴퓨터, 휴대전화, 텔레비전, 게임기, 자동차 내비게이션 등 모든 기기들이 서로 연결되어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그의 저서,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에서 다루었던 '접속'의 문제가 채 10년도 되지 않아 훨씬 더 구체적이고 강화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냉장고는 남은 음식물을 체크하고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자동으로 식료품을 주문한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모든 기록은 자동으로 기록되고 모든 병력은 통합된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관리된다. 이제 개인은 냉장고 속의 썩은 김치를 숨기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며, 얼마 전 받은 치질 수술을 맹장수술이라고 속이는 것도 힘들어졌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유비쿼터스 세상의 편리함에 압도되어 개인의 사생활을 헌납하기도 한다.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은 돌아다닌 시간과 장소를 정확하게 카드업체에 알려주는 셈이다. 언제 어디서나 통화할 수 있는 휴대전화는 통화 상대와 시간은 물론 자신의 위치까지도 고스란히 전화업체의 데이터베이스에 알려주는 격이다. 신용카드 사용은 말할 것도 없다. 신용카드의 보편화로 인해 이제 기업들은 우리의 소비 패턴까지도 낱낱이 까발리고 분석해서 더 나은 서비스 제공이란 거창한 이름 하에 각종 스팸 메일의 형태로 소비를 독려하고 조작하려 덤벼든다.

사이버스페이스의 관문을 장악하는 사람이 대중의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p. 263)

유비쿼터스 시대에 접속의 인프라를 소유한 자의 권력은 국가의 그것을 능가할 만큼 강력하다.

'내 아이를 위한 일생의 독서 계획'

얼마 전 한 인터넷 서점에서 배달된 광고 이메일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의 제목이다. 평소부터 아이의 독서습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내 아이를 위한 독서계획'이라는 말이 꽤나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한두 달이나 일이 년도 아니고 '일생의 독서 계획'이라니, 여간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순간 상업화되고 계산된 정보제공자의 의도에 따라 소비자의 눈은 가려지고 선택은 왜곡될 수도 있다는데 까지 생각이 이르자 당황스러웠다. 그 선택이 아이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것이라면 더더욱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나친 비약일까? 그저 내 자신의 편집증을 의심해봐야 하는 걸까? 간단히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조지 오웰이 이러한 유비쿼터스 열풍을 보게 된다면 뭐라고 할까? 빅 브라더에 의한 감시 대신 첨단 기술의 발전이 모든 사람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순순히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까? 아니면 그저 형태만 다른 시스템으로 모든 사람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며 자신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주장할까?

자꾸만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것만 같아 뒤통수가 가려운 느낌이다.
IP *.227.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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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09 13:32:34 *.70.72.121
우리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통해 얻은 많은 시장화된 상품 속에 도리어 갇히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지금도 보면 주민번호만 알면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 문 밖에만 나가도 질서를 위한다는 CCTV 등에 상시 노출되고 결국 언젠가 상품이 인간을 지배하고야 말 것이라는 우려를 하게 되지요.

그래서 내가 읽은 책 자크 아탈리의 <인간적인 길>에서는 삶이 시장에 예속되어 상품화 되는 현상의 시장사회 혹은 시장 민주주의가 되는 것을 막고,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간이 주도하여 살아갈 수 있고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나아가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로 유토피아에 이르자고 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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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4.09 18:26:54 *.167.160.202
풍부한 문장 구사력, 많은 독서량, 그리고 타고난 샤프한 창작적인 두뇌, 정말이지 나무랄 것이 없다. 그런데 왜 나는 무었인지 모르는 불만이 향산의 글을 읽을 때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니, 그게 언제 없어 질련지. 나는 지독한 "아나로그" 라면 아마 그댄 슈퍼 "디지탈"인 모양이다. 난 동양학만 아는 놈이라면 자넨 너무나 너무나 미국적이라서 그런가?
우리 둘이 살 풀이라도 해야 겠구먼...
자네가 사부님 곁에 공부가 마쳐 질 때 쯤 그것이 없어져야 할 터인데, 그래야 나 같은 독자를 한명쯤 확보 할 것인데 말이야.

내혼자 하는 짝사랑이라 생각하시게, 너무 매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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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4.10 11:53:02 *.39.179.237
매트릭스에 나오는 휴대 전화를 이용한 공간이동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개인정보 자동 인식 기능이 머지않아 현실로 이루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업체의 파워도 날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음을 볼 때 시의적절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다만 결론이 조금 미약하다. 사생활 침해를 넘어서 써니누나가 말한 것처럼 수동적 인간으로의 변화라는 폐해를 조금 더 부연했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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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2007.04.10 14:18:01 *.111.247.32
얼마전 성폭력범죄자를 위한 전자팔지 법안이 통과되었지요.
그리고 앞으로 DNA감식 프로그램도 이야기 되어지고 있습니다.
인권연대에서는 난리가 났고.. ..
전 절대 반대지만,
성폭력운동권에서는 찬성도 반대도 못하고 있는 입장이죠.
음... 암튼
종윤님 글 읽으니 현재의 저의 고민과 접속이 되네요.

우리는 이미 '트르먼쇼'의 주인공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다음에 이 영화와 연결지어서 글 쓰시면 또하나의 재밌는
종윤님만의 이야기가 나올거같다는 생각이..
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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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7.04.10 19:04:11 *.122.138.93
종윤님의 글을 읽다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초아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풍부한 독서량이며 유연한 문체, 시공을 초월하는 적절한 예시 등등 대단하단 말 밖에 할 수가 없네요. 다만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건 1년이란 장기 레이스에서 너무 많은 기력을 소진하여 탈진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건강 항상 챙기시고 계속하여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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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山 신종윤
2007.04.11 10:11:22 *.227.22.4
써니님~ 기술의 진화에 대한 우려와 견제의 목소리가 그나마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세상이 아주 막가지는 않을거라고 조심스레 믿어봅니다. 자크 아탈리의 <인간적인 길>이 기대되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초아 선생님~ ㅎㅎ 제가 '슈퍼 디지털'은 아니구요. 전 멋스러운 감성이 쬐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풍부한 문장 구사력, 많은 독서량, 그리고 타고난 샤프한 창작적인 두뇌" <-- 이런 칭찬은 아무래도 좀 사실과 달라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ㅡㅡ;

선생님이 한마디 해주실텐데, 왜 말씀이 없으실까 궁금하다가 댓글 올려주신 것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계속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뱅곤형~ (자랑이 아니지만) 시간이 좀 부족해서 임팩트 있는 마무리를 못했네요. 글 쓰려고 했던 자료를 좀 전에 보니까, '포털의 검색어 순위 조작 가능성', '첨단 문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겪는 소외와 불이익' 그리고 각종 관련 영화들 리스트를 빼곡히 적어놓았는데... 못써먹었습니다. ㅡㅡ; 다시 잘! 해보겠습니다. 조만간 동네서 한판?

소라님~ 전자팔찌에 반대시군요. 전, 7:3 정도로 찬성에 한표를~ 어릴 적 내내 고민하고 두려워 하던 상상이, 영화 '트루먼쇼'에서 저 혼자 만의 것은 아니었음으로 확인되었을 때, 참! 많이 놀라고 반가웠었네요. 글을 쓰다가 생각해보니, '매트릭스', '아일랜드', '이퀼리브리엄',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등 굳이 고전이 아니더라도 미래를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대체로 어둡고 침울하네요. 그에 비하면 '트루먼쇼'는 희망이 보인다는... 영화 이야기를 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저번에 써먹어서 이번엔 참았답니다. 그러나 소재 떨어지면 다시 영화로 돌아올지도... 감사합니다~

양재우님~ 우선 감사하구요. 너무 좋은 말씀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요즘 좀 무리하고 있다고 광고를 하고 다닌 모양입니다.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좀 계시네요. 전체적인 분위기도 약간 과열양상을 보이는 것 같고 말이죠. 해주신 말씀 꼭! 기억하고 오~~래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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