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2007년 4월 9일 15시 01분 등록
 1989년 부산세관으로 첫 발령을 받으면서 공무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후 10여년의 부산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일하는 어색함이 서서히 사라질 무렵 내가 맡은 업무가 수출업무로 해외로 수출하기 위한 마지막 절차를 거치는 곳이었다. 부산항은 우리나라 무역의 전진기지로 부두에서 배에 선적되는 물량만 보아도 우리나라 경제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부두의 방대함과 무수히 싣고 내리는 컨테이너를 보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일선에 서있는 자부심도 들었다. 그 당시 부산의 주요수출품목은 신발이었다. 신발을 떠난 부산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1990년 현황을 살펴보면 신발을 제조하는 업체가 1,100여개 업체로 전국의 60%가 부산에 있었고, 약 14만8천명의 종업원들이 우리나라 물량의 80%를 생산하였다. 90년에 전체 생산액이 4조 2천억 원이었고, 그 중 80%인 3조 5천억 원 정도를 부산에서 생산하였다. 이러한 부산경제의 버팀목이던 신발산업은 90년애 이후 쇠퇴를 하다가, 내가 부산을 떠난 2000년에는 800여개의 업체에 2만명의 종업원들만 남았다. 특히 500명 이상을 종업원을 거느린 회사는 한곳도 없다. 그 많던 부산의 신발공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선 신발산업이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스스로 세계화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꼽고 있다. 임금의 상승이 거세어지는 현실에서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눈을 돌려 현지 생산을 하고 부산에서는 디자인, 마케팅을 하는 이중구조를 가지지 못하였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발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80년대에는 복권 같은 열풍이 불어서 신발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공장을 설립하여 업체들이 난립하다 보니 스스로 안주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독자적인 상품이나 브랜드를 개발하고 생산기지를 임금이 저렴한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동하여 경쟁력을 확보하는 대신 외국의 대형업체의 OEM(주문자부착상표방식)으로 적당한 이익만 추구하였다.

 값싼 노동력으로 무장한 중국산의 저가 신발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오자 해외시장에서 국산 신발의 설자리가 점점 없어지게 되었다. 사태가 점점 악화되자 그제서야 세계 유명 브랜드를 OEM 생산하던 국내 대형 생산 메이커들이 생산원가의 절감을 목적으로 생산기지를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이전하면서 부산에는 커다란 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산업구조의 악화 속에서 한 가지 더 악재가 생겨났다. 당시 부산에서는 신발기술자들이 일본으로부터 그 기술을 약 20여년에 걸쳐 전수를 받았다. 우수한 신발기술자들이 대량 해고가 되었다. 해고된 기술자들은 버려졌다는 배신감에 우리나라 기업이 아닌 더 좋은 조건의 중국이나 동남아 기업에 채용되었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습득한 기술을 고스란히 넘어가게 되었다. 값싼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에 기술력이 더해져서 한국산 신발은 더욱 더 설자리를 잃어버렸다.

 노동의 종말에서 제러미 리프킨은 “우리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있어서 기계가 점차 인간을 노동력을 대체하는 역사상 새로운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비록 일정표를 예측하기는 곤란하지만, 우리는 자동화된 미래의 확실한 코스에 놓여있고 21세기의 중반 경에는 거의 자동화된 상태로 근접할 것이다. 출현하고 있는 지식 부문은 대체된 노동력의 약간 부분을 흡수할 것이지만 실업증대의 대세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수억의 노동자들은 자동화와 세계화라는 쌍두마차로 인하여 영구실업자로 전락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신발공장은 기계의 자동화가 일정 부분 필요하기는 해도 전통적인 노동집약 산업이다. 부산의 신발산업이 얼핏 보면 자동생산화와 세계화와는 거리가 멀게 경영자들의 방심과 위기의식의 부족으로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신발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약간 사정이 달랐다. 우선 90년대 이후부터 소비재의 가격결정권이 제조회사에서 대단위 유통회사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월마트 등 세계적인 대형 할인매장을 가진 유통업체들이 물품 주문을 내면서 가격을 결정하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던 우리나라의 거래처를 저 임금의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이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세계화의 영향으로 일감이 끊겨 10만 명이 넘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부산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부산신발 산업이 사라졌다고 하였으나, 다행히 좋은 소식도 들린다. 세계화의 험난한 파고 속에서 살아남은 업체들은 정부의 지원, 자체 브랜드 개발, 그리고 차별화된 디자인과 기능성 신발로 내수와 수출 등이 살아난다고 한다. 등산화 및 골프화 등 특수화에 대한 독보적인 품질로 세계 정상급의 회사도 생겨났다고 한다. 하지만 자동화 및 생산 공장의 해외이전으로 예전만큼의 많은 고용을 창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노동의 종말이 사람 사는 곳의 종말이 될 수는 없다. 뛰어난 기술과 디자인으로 무장한 새로운 부산신발산업의 부활을 기대해본다.
IP *.99.241.60

프로필 이미지
송창용
2007.04.09 13:05:32 *.99.120.184
소전님도 저와 같이 사회에 관심이 많군요.
칼럼 주제를 정하다보면 항상 사회와 연관짓게 되네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세상이 되려나?
프로필 이미지
최영훈
2007.04.09 13:12:35 *.99.241.60
여해 형님.
그게 다 직업병인 것 같습니다.

전우익 선생님의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라는
책이 생각이 납니다.
우직한 농부의 이야기로 공동체로 산다는 것과 배려.
방송이나 매체에는 잘 나오지는 않지만
이런 분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 행동으로는 어렵지만 그래도 글과 마음만은
계속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뱅곤
2007.04.10 12:06:57 *.39.179.237
처제가 부산에서 신발로 먹고사는 일을 하고 있는 마당에 공감이 가는 글이다. 다만 이번 글은 좀 밋밋하다. 영훈이다운 반짝거림이 부족하다. 북리뷰에 너무 열정을 소진했나?
프로필 이미지
최정희
2007.04.12 08:39:04 *.114.56.245
우리의 일상은 항상 스페셜 한 것이 아닌 것처럼, 평범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어 읽는 즐거움 또한 달콤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7.04.14 22:59:09 *.152.91.156
영훈, 공무원의 구태의연한 이미지를 께게 해준 멋있는 사람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