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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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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12일 23시 12분 등록
산을 좋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산에 자주 가지는 않았다. 그저 산이 주는 이미지가 좋았고, 가끔 가서 느끼는 편안함이 좋았다. 산에 있으면 나는 착해졌다. 담배를 그렇게 좋아하는 나이건만 산에서만은 담배는 내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언젠가는 산 밖에 없는 사진집을 5만원을 주고 사면서 좋아 어쩔줄몰라하기도 했다. 지금도 산을 좋아한다. 허나, 나는 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산은 크다. 무겁다. 나는 작다. 가볍다.

바다를 좋아 한다. 언젠가 부산 해운대에서 혼자 앉아 바다를 마주했던 기억이 있다. 밤이었고 어두웠다. 바다는 어둠 속에 고요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그 때, 그 자리, 눈을 감고 들은 파도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바다는 온갖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 그 여유와 장중함과 깊음이 부러웠다. 허나, 나는 바다가 될 수 없다. 바다는 넓다. 수용한다. 나는 좁다. 표현한다.

강은 내게 매력적인 존재이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그 흐름이 좋다. 얼마 전만 해도 사랑하는 이와 한강을 종종 찾았다. 한강변에 위치한 까페에 앉아 칵테일 한 잔하며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강의 물결, 그 부드러움, 끊이지 않는 흐름이 나를 편안케 했다. 허나, 나는 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은 매순간 흐른다. 나는 종종 멈춘다.

나는 매일 흐르고 싶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강이 어렵다면 작은 시냇물이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적도 있었다. 언젠가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매일 더하고 매일 흐르는’ 작은 시냇물이 될 것이다. 수심은 깊지 못할 것이고 좁은 길목을 만나면 쉽게 요동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흐를 것이다.”, 내 마음은 바뀌었다. 작은 시냇물은 답답해 보였다. 시냇물은 내게 긴 매력을 주지 못했다.

나무는 어떤가?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좋아한다. 나무의 거친 피부를 만질 때마다 생명의 힘에 매료된다. 계절에 맞춰 나설 때와 준비할 때를 분별하고 변신을 거르지 않는 근면함을 존경한다. 겨울에도 자라는 강인함을 배우고 싶다. 땅 속 씨앗에서 작은 것으로, 그리고 이내 큰 나무가 된다는 것은 말 없는 가르침이다. 작은 새들의 놀이터가 되고,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베어져서는 앉을 자리가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허나, 나는 나무가 될 수 없다. 나무는 단단하다. 조용하다. 난 약하다. 시끄럽다.

나는 나에 대한 상징 하나 찾고 싶었다. 갖고 싶었다. 허나 잘 보이지 않았다. 상징은 함축이고 압축이고 비약이고 도약이다. ‘나를 관통하는 상징은 무엇일까?’, 오랜 시간 품어왔다. 그리고 어느 날 불현 듯 상징 하나가 나를 찾아왔다. 손짓하며 밝은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고 거의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것이었다. 어려운 것도 비싼 것도 복잡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햇살'이었다. 누군가 내게 "당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한 단어이다. 바로 '햇살'이다. 나는 햇살이 좋다. 나는 어둠보다 밝음이 좋다. 나이 들며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달보다 여전히 해를 좋아한다. 허나, 해보다 밝음보다 나를 들뜨게 하고 에너지를 주는 것은 햇살이다.

내 앞에 펼쳐질 아름다운 장면을 그릴 때마다, 붓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은 햇살이었다. 거리, 창문 틈, 어디에서 만나든 햇살은 나를 따뜻하게 했다. 쉽게 피곤하고 민감해지는 내 눈의 가장 좋은 친구는 햇살이었다.

그래, 나는 햇살이 좋다. 그 눈부심이 좋고, 햇살이 때로 보여주는 은은함이 좋으며 내 볼에 와 닿는 그 감촉이 좋다.

그래, 나는 햇살이 좋다. 산의 색을 바꾸고, 바다를 반짝이게 하고, 나무 잎 사이로 스며들며, 시냇물을 더 투명하게 해주는 햇살이 좋다.

그래, 나는 햇살이다. 가늘어서 가볍게 안착하는 햇살이다. 나는 따뜻하다. 햇살이다. 약하지만 돋보기를 갖다 되면 뭔가를 태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는 햇살이 바로 나다. 햇살은 풍광을 바꾼다. 늘 밝게 만든다. 나는 햇살이다. 한 줄기 햇살처럼 작지만, 어둠을 꿰뚫어버리는 햇살이 바로 나다.

나는 햇살이다.
IP *.147.17.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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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동
2007.04.13 00:44:11 *.142.163.4
이제 좀 살아난 건가? ㅎㅎ
꼬이고 또 꼬여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의외로 쉽게 풀리는 날이 오리라 믿음.. 빈말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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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13 03:42:20 *.70.72.121
산은 크고 무겁지만 승완선배 마음은 산보다 크고 산보다 더 진중하다 .
바다는 넓게 포용하지만 승완선배 마음은 깊고 넓은 망망대해보다 더 넓고 깊게 사람을 포용하고 사랑하며 그래서 표현도 잘 한다.

강은 매 순간 흐르기만 하지만 승완선배 마음은 강처럼 흐르고 또 멈출 줄도 안다.

시냇물도 좋지만 어쩐지 승완선배 마음을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승완선배 마음은 시냇물보다 깊고 넓게 흐르고 속도를 조절할 줄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거세게 더러 유유히...

나무는 멈추어 서서 단단히 박혀있지만 승완선배는 살아서 여기 저기 이동네 저 나라 다 넘나들며 배우고 경험하며 확장하고 커나간다. 어떻게? 사나이 대장부로. 얼마나? 무진장하게 무주공산을 뛰논다. 승완선배는 천년 바위보다 강하고 침묵할 줄도 알며 그의 밝고 상냥함은 우리의 생기의 원천이다. 글 잘쓰는 그가 지금 나이에 무게잡으면 거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 잘하는 승완선배가 무척 조우타.

아닌 척 하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해의 눈부신 햇살 마저 자기꺼 아니 햇살이 자기라고 우긴다. 기가막히지만 그렇다고 해두자.

해는 저 혼자서 온 세상을 다 비춘다. 그토록 강인하게 밝고 지칠 줄 모른다. 승완선배는 자신이 그토록 강인하고 멋진 해의 강렬한 햇살이란걸 은근히 자랑하나? 어떻게 그것을 작다고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순전히 욕심꾸러기 선배 같으니라구! 그래도 봐주자 하나밖에 없는 승완선배인데.

남자는 외향으로 살지 않는다. 남자는 현재에만 살지 않는다. 남자의 마음은 태평양보다도 킬리만자로 산맥보다 힘차다. 남자의 키와 뭄무게와 사랑은 헤아릴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볼 수 없는 지구를 희롱한는 마음이다.

나는 보았다. 스승님이 달과 노니는 것을. 달하고 이야기하고 달하고 꿈을 꾸며 달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신 것은 그 큰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그와도 같이 새끼스승 승완선배의 마음은 해라는 거지? 해로만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햇살가득한 따스함이라는 거죠?

우린 다 알고 있다. 너무 큰 마음과 불덩이가 꿈틀 거리는 승완선배 마음을 ... 누가 이 사람을 약하고 작다고 하는가. 누구든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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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4.13 06:08:46 *.72.153.12
좋다.
승완씨 햇살 좋다. 세상을 밝게 반짝거리게 하는 것 나도 좋아요.

날 좋을 때 산에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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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2007.04.13 17:22:09 *.254.127.22
승완님 글이 농도가 진해지고있어요.
햇살은 언제나 그냥 자연일뿐인데...
승완님의 행복이 그대로 묻어나고있습니다.
지금처럼 행복하기를 기원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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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4.15 13:57:55 *.112.72.193
형 햇살이 뱃살이 되지 않도록
매일매일 조금씩 흐르자.
형은 정말 햇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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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즐짱
2007.04.17 11:42:07 *.47.119.17
누구나 평소에 조금씩 생각은 해보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글을 승완 님이 아주 멋지게 표현해 주셨네요.

너무 부럽습니다!!

글을 읽으며 그럼 나를 상징하는 것은 뭔가, 하고
한참을 고민해보다 스르르 사라집니다.

맘에 꼭 드는 수필집 한 권을 읽은 느낌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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