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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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산에 자주 가지는 않았다. 그저 산이 주는 이미지가 좋았고, 가끔 가서 느끼는 편안함이 좋았다. 산에 있으면 나는 착해졌다. 담배를 그렇게 좋아하는 나이건만 산에서만은 담배는 내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언젠가는 산 밖에 없는 사진집을 5만원을 주고 사면서 좋아 어쩔줄몰라하기도 했다. 지금도 산을 좋아한다. 허나, 나는 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산은 크다. 무겁다. 나는 작다. 가볍다.
바다를 좋아 한다. 언젠가 부산 해운대에서 혼자 앉아 바다를 마주했던 기억이 있다. 밤이었고 어두웠다. 바다는 어둠 속에 고요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그 때, 그 자리, 눈을 감고 들은 파도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바다는 온갖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 그 여유와 장중함과 깊음이 부러웠다. 허나, 나는 바다가 될 수 없다. 바다는 넓다. 수용한다. 나는 좁다. 표현한다.
강은 내게 매력적인 존재이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그 흐름이 좋다. 얼마 전만 해도 사랑하는 이와 한강을 종종 찾았다. 한강변에 위치한 까페에 앉아 칵테일 한 잔하며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강의 물결, 그 부드러움, 끊이지 않는 흐름이 나를 편안케 했다. 허나, 나는 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은 매순간 흐른다. 나는 종종 멈춘다.
나는 매일 흐르고 싶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강이 어렵다면 작은 시냇물이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적도 있었다. 언젠가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매일 더하고 매일 흐르는’ 작은 시냇물이 될 것이다. 수심은 깊지 못할 것이고 좁은 길목을 만나면 쉽게 요동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흐를 것이다.”, 내 마음은 바뀌었다. 작은 시냇물은 답답해 보였다. 시냇물은 내게 긴 매력을 주지 못했다.
나무는 어떤가?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좋아한다. 나무의 거친 피부를 만질 때마다 생명의 힘에 매료된다. 계절에 맞춰 나설 때와 준비할 때를 분별하고 변신을 거르지 않는 근면함을 존경한다. 겨울에도 자라는 강인함을 배우고 싶다. 땅 속 씨앗에서 작은 것으로, 그리고 이내 큰 나무가 된다는 것은 말 없는 가르침이다. 작은 새들의 놀이터가 되고,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베어져서는 앉을 자리가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허나, 나는 나무가 될 수 없다. 나무는 단단하다. 조용하다. 난 약하다. 시끄럽다.
나는 나에 대한 상징 하나 찾고 싶었다. 갖고 싶었다. 허나 잘 보이지 않았다. 상징은 함축이고 압축이고 비약이고 도약이다. ‘나를 관통하는 상징은 무엇일까?’, 오랜 시간 품어왔다. 그리고 어느 날 불현 듯 상징 하나가 나를 찾아왔다. 손짓하며 밝은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고 거의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것이었다. 어려운 것도 비싼 것도 복잡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햇살'이었다. 누군가 내게 "당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한 단어이다. 바로 '햇살'이다. 나는 햇살이 좋다. 나는 어둠보다 밝음이 좋다. 나이 들며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달보다 여전히 해를 좋아한다. 허나, 해보다 밝음보다 나를 들뜨게 하고 에너지를 주는 것은 햇살이다.
내 앞에 펼쳐질 아름다운 장면을 그릴 때마다, 붓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은 햇살이었다. 거리, 창문 틈, 어디에서 만나든 햇살은 나를 따뜻하게 했다. 쉽게 피곤하고 민감해지는 내 눈의 가장 좋은 친구는 햇살이었다.
그래, 나는 햇살이 좋다. 그 눈부심이 좋고, 햇살이 때로 보여주는 은은함이 좋으며 내 볼에 와 닿는 그 감촉이 좋다.
그래, 나는 햇살이 좋다. 산의 색을 바꾸고, 바다를 반짝이게 하고, 나무 잎 사이로 스며들며, 시냇물을 더 투명하게 해주는 햇살이 좋다.
그래, 나는 햇살이다. 가늘어서 가볍게 안착하는 햇살이다. 나는 따뜻하다. 햇살이다. 약하지만 돋보기를 갖다 되면 뭔가를 태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는 햇살이 바로 나다. 햇살은 풍광을 바꾼다. 늘 밝게 만든다. 나는 햇살이다. 한 줄기 햇살처럼 작지만, 어둠을 꿰뚫어버리는 햇살이 바로 나다.
나는 햇살이다.
IP *.147.17.231
바다를 좋아 한다. 언젠가 부산 해운대에서 혼자 앉아 바다를 마주했던 기억이 있다. 밤이었고 어두웠다. 바다는 어둠 속에 고요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그 때, 그 자리, 눈을 감고 들은 파도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바다는 온갖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 그 여유와 장중함과 깊음이 부러웠다. 허나, 나는 바다가 될 수 없다. 바다는 넓다. 수용한다. 나는 좁다. 표현한다.
강은 내게 매력적인 존재이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그 흐름이 좋다. 얼마 전만 해도 사랑하는 이와 한강을 종종 찾았다. 한강변에 위치한 까페에 앉아 칵테일 한 잔하며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강의 물결, 그 부드러움, 끊이지 않는 흐름이 나를 편안케 했다. 허나, 나는 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은 매순간 흐른다. 나는 종종 멈춘다.
나는 매일 흐르고 싶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강이 어렵다면 작은 시냇물이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적도 있었다. 언젠가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매일 더하고 매일 흐르는’ 작은 시냇물이 될 것이다. 수심은 깊지 못할 것이고 좁은 길목을 만나면 쉽게 요동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흐를 것이다.”, 내 마음은 바뀌었다. 작은 시냇물은 답답해 보였다. 시냇물은 내게 긴 매력을 주지 못했다.
나무는 어떤가?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좋아한다. 나무의 거친 피부를 만질 때마다 생명의 힘에 매료된다. 계절에 맞춰 나설 때와 준비할 때를 분별하고 변신을 거르지 않는 근면함을 존경한다. 겨울에도 자라는 강인함을 배우고 싶다. 땅 속 씨앗에서 작은 것으로, 그리고 이내 큰 나무가 된다는 것은 말 없는 가르침이다. 작은 새들의 놀이터가 되고,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베어져서는 앉을 자리가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허나, 나는 나무가 될 수 없다. 나무는 단단하다. 조용하다. 난 약하다. 시끄럽다.
나는 나에 대한 상징 하나 찾고 싶었다. 갖고 싶었다. 허나 잘 보이지 않았다. 상징은 함축이고 압축이고 비약이고 도약이다. ‘나를 관통하는 상징은 무엇일까?’, 오랜 시간 품어왔다. 그리고 어느 날 불현 듯 상징 하나가 나를 찾아왔다. 손짓하며 밝은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고 거의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것이었다. 어려운 것도 비싼 것도 복잡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햇살'이었다. 누군가 내게 "당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한 단어이다. 바로 '햇살'이다. 나는 햇살이 좋다. 나는 어둠보다 밝음이 좋다. 나이 들며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달보다 여전히 해를 좋아한다. 허나, 해보다 밝음보다 나를 들뜨게 하고 에너지를 주는 것은 햇살이다.
내 앞에 펼쳐질 아름다운 장면을 그릴 때마다, 붓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은 햇살이었다. 거리, 창문 틈, 어디에서 만나든 햇살은 나를 따뜻하게 했다. 쉽게 피곤하고 민감해지는 내 눈의 가장 좋은 친구는 햇살이었다.
그래, 나는 햇살이 좋다. 그 눈부심이 좋고, 햇살이 때로 보여주는 은은함이 좋으며 내 볼에 와 닿는 그 감촉이 좋다.
그래, 나는 햇살이 좋다. 산의 색을 바꾸고, 바다를 반짝이게 하고, 나무 잎 사이로 스며들며, 시냇물을 더 투명하게 해주는 햇살이 좋다.
그래, 나는 햇살이다. 가늘어서 가볍게 안착하는 햇살이다. 나는 따뜻하다. 햇살이다. 약하지만 돋보기를 갖다 되면 뭔가를 태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는 햇살이 바로 나다. 햇살은 풍광을 바꾼다. 늘 밝게 만든다. 나는 햇살이다. 한 줄기 햇살처럼 작지만, 어둠을 꿰뚫어버리는 햇살이 바로 나다.
나는 햇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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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산은 크고 무겁지만 승완선배 마음은 산보다 크고 산보다 더 진중하다 .
바다는 넓게 포용하지만 승완선배 마음은 깊고 넓은 망망대해보다 더 넓고 깊게 사람을 포용하고 사랑하며 그래서 표현도 잘 한다.
강은 매 순간 흐르기만 하지만 승완선배 마음은 강처럼 흐르고 또 멈출 줄도 안다.
시냇물도 좋지만 어쩐지 승완선배 마음을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승완선배 마음은 시냇물보다 깊고 넓게 흐르고 속도를 조절할 줄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거세게 더러 유유히...
나무는 멈추어 서서 단단히 박혀있지만 승완선배는 살아서 여기 저기 이동네 저 나라 다 넘나들며 배우고 경험하며 확장하고 커나간다. 어떻게? 사나이 대장부로. 얼마나? 무진장하게 무주공산을 뛰논다. 승완선배는 천년 바위보다 강하고 침묵할 줄도 알며 그의 밝고 상냥함은 우리의 생기의 원천이다. 글 잘쓰는 그가 지금 나이에 무게잡으면 거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 잘하는 승완선배가 무척 조우타.
아닌 척 하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해의 눈부신 햇살 마저 자기꺼 아니 햇살이 자기라고 우긴다. 기가막히지만 그렇다고 해두자.
해는 저 혼자서 온 세상을 다 비춘다. 그토록 강인하게 밝고 지칠 줄 모른다. 승완선배는 자신이 그토록 강인하고 멋진 해의 강렬한 햇살이란걸 은근히 자랑하나? 어떻게 그것을 작다고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순전히 욕심꾸러기 선배 같으니라구! 그래도 봐주자 하나밖에 없는 승완선배인데.
남자는 외향으로 살지 않는다. 남자는 현재에만 살지 않는다. 남자의 마음은 태평양보다도 킬리만자로 산맥보다 힘차다. 남자의 키와 뭄무게와 사랑은 헤아릴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볼 수 없는 지구를 희롱한는 마음이다.
나는 보았다. 스승님이 달과 노니는 것을. 달하고 이야기하고 달하고 꿈을 꾸며 달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신 것은 그 큰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그와도 같이 새끼스승 승완선배의 마음은 해라는 거지? 해로만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햇살가득한 따스함이라는 거죠?
우린 다 알고 있다. 너무 큰 마음과 불덩이가 꿈틀 거리는 승완선배 마음을 ... 누가 이 사람을 약하고 작다고 하는가. 누구든 나오라.
바다는 넓게 포용하지만 승완선배 마음은 깊고 넓은 망망대해보다 더 넓고 깊게 사람을 포용하고 사랑하며 그래서 표현도 잘 한다.
강은 매 순간 흐르기만 하지만 승완선배 마음은 강처럼 흐르고 또 멈출 줄도 안다.
시냇물도 좋지만 어쩐지 승완선배 마음을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승완선배 마음은 시냇물보다 깊고 넓게 흐르고 속도를 조절할 줄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거세게 더러 유유히...
나무는 멈추어 서서 단단히 박혀있지만 승완선배는 살아서 여기 저기 이동네 저 나라 다 넘나들며 배우고 경험하며 확장하고 커나간다. 어떻게? 사나이 대장부로. 얼마나? 무진장하게 무주공산을 뛰논다. 승완선배는 천년 바위보다 강하고 침묵할 줄도 알며 그의 밝고 상냥함은 우리의 생기의 원천이다. 글 잘쓰는 그가 지금 나이에 무게잡으면 거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 잘하는 승완선배가 무척 조우타.
아닌 척 하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해의 눈부신 햇살 마저 자기꺼 아니 햇살이 자기라고 우긴다. 기가막히지만 그렇다고 해두자.
해는 저 혼자서 온 세상을 다 비춘다. 그토록 강인하게 밝고 지칠 줄 모른다. 승완선배는 자신이 그토록 강인하고 멋진 해의 강렬한 햇살이란걸 은근히 자랑하나? 어떻게 그것을 작다고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순전히 욕심꾸러기 선배 같으니라구! 그래도 봐주자 하나밖에 없는 승완선배인데.
남자는 외향으로 살지 않는다. 남자는 현재에만 살지 않는다. 남자의 마음은 태평양보다도 킬리만자로 산맥보다 힘차다. 남자의 키와 뭄무게와 사랑은 헤아릴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볼 수 없는 지구를 희롱한는 마음이다.
나는 보았다. 스승님이 달과 노니는 것을. 달하고 이야기하고 달하고 꿈을 꾸며 달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신 것은 그 큰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그와도 같이 새끼스승 승완선배의 마음은 해라는 거지? 해로만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햇살가득한 따스함이라는 거죠?
우린 다 알고 있다. 너무 큰 마음과 불덩이가 꿈틀 거리는 승완선배 마음을 ... 누가 이 사람을 약하고 작다고 하는가. 누구든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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