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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16일 10시 32분 등록
뉴트롤스와 퀴담, 그리고 마그리트를 통해 미래의 거친 파도를 타고 넘는 방법을 생각해봅니다.



#1. 뉴트롤스(New Trolls) – ‘새로운 물결’에 몸을 맡기다!

2007년 4월 5일, 뉴트롤스의 내한 공연을 보기 위해 LG 아트센터를 찾았습니다. 뉴트롤스는 ‘아다지오(Adagio)’란 곡으로 한국팬들에게는 익숙한 이탈리아의 아트록 그룹입니다. 고등학교 때, 전영혁 아저씨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콘체르토 그로소 No. 1(Concerto Grosso Per.1)’을 처음 들었을 때의 놀라움과 시내 레코드 가게에서 테이프를 찾아 헤매던 기억들까지 새록새록 떠올라서 저를 더욱 기대에 부풀게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고, 비록 전성기 때의 모든 멤버가 참가하진 못했지만, 리더인 스칼지 의 머리는 하얗게 새고, 키보드를 연주하는 팔로 아저씨의 다리는 조금 불편했지만, 기타와 첼로가 만나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고, 록과 오케스트라가 한데 어우러지는 그들의 공연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70년대, 록과 클래식을 결합해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던 청년들의 전설은 약 3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되어 눈 앞에서 울려 펴졌습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콘체르토 그로소 No. 3(Concerto Grosso Per.3)’의 초연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듣는 곡들 임에도 불구하고, 선율 하나 하나, 리듬 하나 하나가 몸 속으로 파고들어 제 영혼을 흔들었습니다. 어딘가 딱딱하게 뭉쳐 있던 것을 부드럽게 풀어주었습니다. 열정적인 감동의 파도가 객석에서 넘실거렸습니다.

어쩌면 젊은 날, 그들이 만들었던 유명한 노래처럼 ‘인생은 죽는 것이거나, 자는 것이거나, 꿈꾸는 것(to die, to sleep, maybe to dream)’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런 젊은 날의 허무주의를 뛰어 넘고, 잿빛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새롭고 감동적인 무언가을 창조해 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다른 곡들을 계속 발표하긴 했지만, ‘콘체르토 그로소 No. 2’가 1975년에 녹음되었으니 거의 30년 만에 이뤄낸 당당한 쾌거입니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삶을 긍정하는 기쁜 마음이 필요합니다. 자신과 미래에 대한 강한 믿음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끝없이 부딪히고 깨질 수 있는 실험 정신입니다. 뉴트롤스의 리더, 비토리오 데 스칼지의 말처럼 ‘실험은 우리의 힘’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뉴트롤스의 콘체르토 삼부작은 완성되었습니다. 새로운 물결(New Trolls)의 감성적인 실험의 풍요로운 결실이 유유하고 장중하게 온 공연장에 차고 넘쳤습니다.



#2. 퀴담 (Quidam) – ‘영혼’으로 서커스를 느끼다!

‘퀴담’은 ‘블루오션’에 소개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의 공연 중 하나입니다. 올해 3월 29일부터 내한 공연을 진행하는 ‘퀴담(Quidam)’은 익명의 행인을 의미합니다. 거리의 한구석에서 서성이는 외로운 존재이자 스쳐 지나가는 사람, 익명성의 사회에서 군중 속에 묻혀 갈 곳을 잃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소외된 세상에서 희망이 넘치는 따뜻한 곳으로 변화해가는 여정을 그린 것이 바로 이 ‘퀴담’의 이야기입니다.

4월 12일, 퀴담의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잠실 주경기장 앞에 설치된 빅탑 무대는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그렇지만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내 안의 어린 아이가 되살아났습니다. 그 곳엔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보았던 어릿광대가 있고, 무서운 가면이 있고, 놀라운 환타지가 있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 안에는 불가능한 게 없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마구 날아다니고, 음악은 심장을 두드려댔고, 화려한 무대 장치와 섬세한 조명의 색감은 마치 어린 날 환상 속의 풍경 같았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즐거웠습니다. 슬펐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놀라웠습니다. 한 편의 서커스 안에서 온갖 감정, 온갖 예술, 온갖 감각과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날실과 씨실로 정교하게 엮어져, 영혼을 뒤흔드는 마법의 춤을 연출했습니다.

앨빈 토플러의 딱딱한 ‘부의 미래’에서는 미처 듣지 못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그 곳에서 들었습니다. 서커스의 광대들과 배우들은 몸으로 말했습니다. ‘온 몸의 감각을 일깨워라. 자신의 영혼을 일깨워라. 새로운 것은 바로 그 곳에서 나온다. 겉으로 보이는 선량해보이는 형식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매끈한 일상에 생채기를 내어라. 미치도록 사랑해라. 진실은 그 곳에 존재한다. 허공에 새로운 한 걸음을 내 디뎌라. 그 곳에서 새로운 미래는 시작된다. 미래는 창조하는 자의 것이다.’

하늘로 솟았다, 땅으로 내동댕이쳤다, 마구 웃다가, 코 끝이 찡해 눈물이 나는 2시간 동안의 공연이었습니다. 아직 ‘퀴담’을 안보신 분은,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보러 가세요. 아이가 있다면 데리고 가세요. 그 곳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목이 없는 우리들의 영혼, 퀴담을 한번 만나보세요. 당신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린 영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보세요.



#3. 마그리트 – 현실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

작년 말부터 올해 4월 1일까지 시립 미술관에서 마그리트의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결국 가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전시였습니다. 그의 그림 중에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얼굴 없는 신사가 있죠. 그리고 우산도 자주 등장하는 그림의 소재 중 하나죠. 우산을 든 목 없는 ‘퀴담’을 보고 나니 자연스레 그의 그림이 떠오르더군요.

그의 그림 중에 ‘빛의 제국’이란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낮과 밤이 한 군데에 존재하는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이죠. 저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가 그의 그림 속 풍경 같은 곳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어렴풋이 보이기는 하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모호한 풍경이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진짜 이야기는 바로 그 곳에서 시작됩니다. 현실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 잘 이해되지 않고, 말로 풀어내기 힘든 변방에서 시작됩니다. 드러나지 않는 당신 마음 속의 비밀스러운 그 곳에서 시작됩니다.

두꺼운 책으로 당신의 지성을 자극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책 속에만 오래 갇혀 있진 마세요. 온 몸의 감각을 자극하는 춤을 춰보세요. 신나는 노래를 들어보세요. 당신의 감성을 일깨우는 공연을 한 편 보러 가세요. 막 피어 오르는 봄의 향기를 느끼고, 또 즐겨보세요.

새로운 것은 서로 반대되는 것 사이의 충돌에서 나옵니다. 이성과 감성이 만나는 곳에서 나옵니다. 크리슈나무티는 말합니다. ‘감정과 정신이 합쳐지면 정신은 전혀 다른 성질을 갖게 된다. 그때부터… 한계가 사라진다.’

한계가 사라진 그 곳에서 당신 앞에 놓인 길을 한 번 바라보세요. 그러면 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개울에 놓여 있는 징검다리처럼, 오래 전부터 마치 그 곳에 있었다는 듯이, 당신이 걸어가야 할 미래가 자연스럽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올 봄엔 그 놀라운 순간을 몸으로 한 번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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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4.16 10:36:34 *.227.22.57
아~ 이런 멋진!!!

이제 갓 돌 지난 우리 아가 데리고 '퀴담' 보러가는건 힘들겠지? 아~ 애를 맡기고 함 가볼까? 딱딱한 '부의 미래'를 훌쩍 넘어버린 '3' 시리즈 칼럼에 깜빡 넘어가네. 수고했네. 나도 숨 좀 고르고, 어디 좀 나서봐야겠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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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4.16 10:54:58 *.145.79.182
時田선생이 굿판에 어울려 새로운 영상을 찾는 모습이 보임니다. 이런 점도 있었네요. 얌전하여 별발도 없는 사람이...ㅎㅎㅎ

난 간혹 깊은 산에가서 산신제를 지내고 또 "산중명상"을 해봅니다. 그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보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주역의 새로운 영역을 깨닿고 집필을 한 것입니다. 난 요즘 그대들의 젊은 글을 읽고 얼마나 많이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지 모릅니다. 특히 지금같은 컬럼속에서...

* 靜적인 성품속에서 강렬한 에너지, 강렬한 외침을 잘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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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16 10:55:44 *.70.72.121
윤트리오 너무 튄다 그자? 언제나 깔끔하고 성실하고..

우울한데 영화나 보러갈까 생각하면 귀찮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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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2007.04.16 12:30:58 *.103.132.133
와우.. 저는 13일날 퀴담을 보았지요.
칼럼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그 감동은 칼럼을 쓰지 않고는 못견디게 하는 공연이었나 봅니다.
도윤님 칼럼이 공연하나 본듯해요.
기립박수!!!(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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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4.16 14:35:51 *.249.167.156
밤새 모니터를 들여다봤더니, 눈이 따가워서 오늘 하루만은 컴퓨터를 멀리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있네요^^ 이것도 일종의 중독인가 봅니다..

초아 선생님의 기운찬 격려를 들으니 졸음이 달아나고, 힘이 절로 납니다! 종윤이형, 퀴담 재밌으니까 꼭 보시고, 써니 누나~ 귀찮아도 영화 한편 보세요^^ 그리고 소라 누나도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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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4.16 16:06:04 *.218.205.128
'문화와 미래' 라는 짧은 옴니버스 다큐멘타리를 본 것 같아요.
통영에는 예술인이 많지. 역시 형도 그쪽 신경을 가졌구나?
근데 나는 왜 없을까? ㅎㅎ 형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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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7.04.16 19:31:54 *.226.107.53
첫 눈에 범생이로 보이는 맑은 인상 속에 불이 들어있나 보군요.
문화예술비 지출깨나 있겠네요 ^^
감성을 두드리는 상큼한 글,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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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4.16 22:26:10 *.60.237.51
한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께서 보내신 연구원 메일 보고는 한참을 웃었답니다. 한선생님께서 춤추시는 걸 생각하니^^ 죄송합니다! 생각난 김에 답장을 보내야지, 안부라도 여쭤야지 했는데... 또 미루고 말았습니다.

제게 불이 들어있다는 말씀을 들으니.. 어머니께서 예전에 저한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넌 연구원 같은 건 안 어울린다. 너한테는 불이 있어서 어디에 갇혀 있으면 큰일난다.’ 그 때는 왜 그런 얘기를 내게 하는지 이해가 안됐는데, 아마 저보다 저를 좀 더 잘 아셔서 하신 말씀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변.경.연 연구원도 연구원이긴 한데, 이 일은 제 적성에 맞는 연구원인 것 같습니다. 뭐, 딱히 정해진 연구실도 없고, 갇혀 있을 일도 없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제때 과제만 내면 별 탈 없고^^ 괜히 반가워서 얘기가 길어졌는데, 제 얘기만 하고 말았네요~

한선생님, 좋은 글 많이 쓰시고, 나중에 혹 기회 되면 춤 솜씨도 꼭 한번 보여주세요^^ 그럼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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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4.17 05:50:37 *.72.153.12
그대 남해 사진 찍은 거 보고, '조용한 예술혼'이라 말한 거, 그거 이번 칼럼보니 틀린 말 같지 않은데...??? 그치?
좋은 공연 있음 같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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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신
2007.04.17 09:25:39 *.27.82.71
‘온 몸의 감각을 일깨워라. 자신의 영혼을 일깨워라. 새로운 것은 바로 그 곳에서 나온다. 겉으로 보이는 선량해보이는 형식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매끈한 일상에 생채기를 내어라. 미치도록 사랑해라. 진실은 그 곳에 존재한다. 허공에 새로운 한 걸음을 내 디뎌라. 그 곳에서 새로운 미래는 시작된다. 미래는 창조하는 자의 것이다.’

"한계가 사라진 그 곳에서 당신 앞에 놓인 길을 한 번 바라보세요. 그러면 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개울에 놓여 있는 징검다리처럼, 오래 전부터 마치 그 곳에 있었다는 듯이, 당신이 걸어가야 할 미래가 자연스럽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와우~ 멋지세요. 연구원활동을 하시면서 공연까지.. 마음의 풍요가 느껴지십니다. 도윤님의 글을 읽으며 이성과 감성이 혼연일체되어 날아 오르는 날이 오리라는 굳은 믿음이 생깁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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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4.17 11:27:29 *.249.167.156
지난번에 같이 치열한 시험을 치룬 효신님을 몰라뵌 거,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기찬이 형한테 '저도 서포터 만들어 주세요!'하고 졸랐는데, 혹시 억지로 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너무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부끄럽네요.. 감사합니다!

정화누나가 나에게서 계속 '조용한 예술혼'을 본다면, 이제부터 그게 어디 숨어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승오야, 너는 모든 걸 다 녹여버릴 수 있는 뜨거운 마음이 있으니깐, 신경 따윈 없어도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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