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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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이형, 안녕?
형에게 쓰는 편지로 칼럼을 대신하려니 아주 쑥스럽다. 이틀전에도 만났는데.. 그런데 언젠가는 형에게 꼭 해주어야겠다 싶은 말이 있었기에, 그리고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인 것 같아 여기에 적어요.
"나는 사부님을 사랑하는 제자이지, 사부님의 뒤를 이을 제자는 못된다"
얼마전 연구원 번개에서 형이 한 말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돈다.
요한 형의 북세미나 후에 가졌던 뒷풀이에서, 몰래 밖으로 나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울고 있던 형의 모습, 가끔 담배를 태우러 함께 나와 고개 숙이며 말이 없는 형의 모습에 전에 없던 형의 슬픔을 보게 되었어..
이제 겨우 여섯 달.
돌이켜보니 내가 형을 안 지가 얼마 안된다. 그 6개월동안 나에겐 시간이 참 진하게 흘렀어. 꿈결 같은 시간들.. 아침 햇살 같은 눈부신 장면들! 이번 발표한 내 장례식에서 후회되지 않았던 시간은 이 순간들이었지. 그래서 요즘 나는 참 행복하다.
형의 글을 읽기 시작한 지는 그래도 꽤 됐구나. 그게 벌써 2년 반 전 일이야. ‘5천만의 역사, 5천만의 꿈'에 올려놓은 형의 꿈과 10대 풍광을 보고 밤새 두근거렸었지.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며 남까지 두근거리게 만드는 꿈을 꾸며 사는 사람이 있구나! 덕분에 2년간 나도 참 부지런히 살았다. 언젠가는 이 사람을 만나겠지. 만나서 나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 꼭 보여주어야지. 다짐했었다. 옹박, 참 순진했지?
사부님의 빛을 좆아 결국 형을 만나게 됐지. 내겐 작은 기적같은 일이었다. 사부님과 더불어, 글을 통해 늘 동경하던 사람을 만났으니 얼마나 기뻤겠어.
밤새 잠설치고 나간 소개팅의 그녀처럼,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말이 없는 과묵한 사람일줄 알았다.
그런데 누구보다 쾌할하고 장난기 많은 활동적인 사람이었지.
아주 논리적이고 차가운 사람일 줄 알았어.
그런데 내 장례식에서 나보다 더 울만큼 눈물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믿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지.
그런데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
형, 나는 형이 자신을 더 좋아하고 믿었으면 좋겠다.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인데 형은 아직도 스스로가 의심스럽나봐. 나의 작은 영웅인데, 내 삶에 의미를 더해준 사람인데! 에머슨은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그것이 성공이다”라고 했다. 나는 형 때문에 행복해졌다. 형은 벌써 성공했다. 그걸 알아야 한다. 제3의 물결이 나랑 무슨 관련이 있냐고 물었지? 이런 구절이 있더라. 글을 읽는 순간 나보다도 형이 먼저 생각났다.
"제2의 물결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문제를 분해해서 요소로 풀게 하는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이 조각들을 다시 묶어 통합하는 능력은 별 중요성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보다 분석적이었지 통합적이지는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통합의 세대 입구에 서 있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학문, 특히 경제학에서도 거시적인 사고 방식과 일반론이 점차로 득세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지 않고 모든 문제를 아주 자세하게 수량화 한다면, 또 자꾸 세분화만을 시도한다면 우리의 지식은 갈수록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썼던 첫 칼럼에 법정 스님의 ‘분별지와 무분별지’ 인용을 기억해? 그건 정말 사실이다. 학교는 쪼개고 나누는 분별지를 다룬다. 그것은 지나간 제2물결의 지식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어. 미국 공교육의 기초가 다져진 때가 19세기 말이었으니, 당시 공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산업화에 걸맞은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이었지. 아이들을 ‘공장형 인간’으로 교육시키는 게 가장 큰 현안이었다. 그런데 이미 시대는 바뀌었다.
좋은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잘 사는 법을. 잘 배우는 법을. 어제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해가 거듭할수록 과목은 쪼개지고, 개념은 오히려 복잡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곤 길을 잃지. ‘데체 전체에서 내가 어디쯤 와있는 거야?’ 그 땐 이미 늦었다. 빠져 나가기엔 너무 깊이 와버렸다는 느낌과 함께.. 그게 현실이다.
형이 자신없어 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부담임을 안다. 근데 형,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칭찬을 바라는 가장된 겸손이나, 가진자의 여유 따위가 아니다. 정말 아니야. 그리고 형 뿐만이 아니다. 늘 자신없어하는 써니누나도. 모모누나도. 희석이까지. 어쩌면 이건 시대적인 변화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창조적 부적응자’이고, 아직 새로운 시대는 완전히 열리지 않았으니까.
형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친구가 있어. 광영이라는 친구야.
나는 학교에서 늘 주눅들어 있었다. 다들 천재같았고 나는 노력파 같았지. 그래서 무척 외로웠다. 그 때 광영이라는 친구가 도서관에서 말했다. “승오는 천재구나” 속으로 미친놈이라 생각하고 무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신경이 쓰였다. 조금 성적이 올랐다. 그 친구가 또 말했다. “역시 넌 머리가 좋아” 자꾸 반복되는 메세지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그런가?’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날때쯤 나는 정말로 그 말을 조금 믿게 되었다. 나아가 나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그 친구가 아직까지 고마운 것은, 내 장례식의 첫 등장인 이유는 나를 믿는 방법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었기 때문이야.
이제야 나는 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재능을 타고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재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재능은 나를 믿은 후의 결과로서만 판단할 수 있으며, 완전히 몰입하여 해보기 전 약간의 시도만으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를 참 잘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을.
내가 아는 형은 분별의 지식에 목을 매지 않는다. 형은 사람에 목을 맨다. 머리를 넘어 가슴으로 통합된 글을 전하는 사람이다. 3기 연구원 북리뷰의 인용 부분까지 꼼꼼히 읽고, 한명한명에게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다. 커뮤니티에서 잘 하고 있는 사람보다는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장문의 댓글을 달 줄 아는 사람이고, 한 사람 앞에서 겉으로 칭찬하기 보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 남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그를 칭찬 하는 사람이다. 민선이 누나를 객관적 애정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 아직도 한참 남은 사부의 환갑 때 사부님 평전을 출간하기 위해 벌써부터 글을 쓰는 사람. 요한형과 병곤형의 책을 형들 몰래 스무권씩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사람. 그게 홍승완이라는 따스한 사람이다.
그래, 형은 햇살이다.
해에게서 나와 뜨겁게 안착하는 햇살이다. 사부의 따뜻한 마음의 통로, 뜨거운 사랑의 메신저, 해의 포근함을 안겨주는 햇살이다. 허나 그 빛은 약하지 않다. 봄햇살이 아니라 8월 한여름의 뜨거운 뙤약볕이다. 자신을 눈부시게 달구어 다른 이를 밝히는 뜨거운 햇살이다. 뜨겁게 세상을 사랑하다 안고 스러지는 아름다운 햇살이다. 스스로 환하게 스러져 타인의 어둠속으로 꿰뚫고 들어가 한줄기 빛을 비추는 영혼의 햇살이다.
얼마전에 귀자에게서 사량도에서 사부님이 하신 말을 전해 들었다.
“살아보니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이 별로 없다. 자신을 믿기만 하면 된다.”
자신을 믿어도 된다. 형은 햇살이다. 나를 비추는 뜨거운 햇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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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나 지금 급히 외근을 나가야 하는데 이 넘의 옹박 글 때문에 늦게 생겼다. 옹박은 울리고 승완이는 울고 나는 가슴이 타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자탄풍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었지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조그맣던 너의 하얀 손위에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의 약속이 되어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음~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 주기를'
그래 우리 서로에게 눈부신 햇살이 되고 진한 추억이 되자.
그래 한판 신나게 살아가자. 이 넘들아.
이로써 박병완옹 완성되는구나. ㅎㅎ
주)박병완옹(박노진-오병곤-홍승완-옹박)
내가 좋아하는 자탄풍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었지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조그맣던 너의 하얀 손위에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의 약속이 되어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음~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 주기를'
그래 우리 서로에게 눈부신 햇살이 되고 진한 추억이 되자.
그래 한판 신나게 살아가자. 이 넘들아.
이로써 박병완옹 완성되는구나. ㅎㅎ
주)박병완옹(박노진-오병곤-홍승완-옹박)

써니
박이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완이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나도 그렇게 10년 동안 살아봤다. 그냥 그렇게 살은 거다.
잘산 것도 없고 못산 것도 없다. 단지 억울함이 남았다면 뒤집어 버릴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다시 해 보던가 콱 뒤져 버리든가 둘 다 못하면 늘 이모양 이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건 인정이 아니다. 이건 박이용이다. 완이용은 아니다. 완은 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싸워 이기던가 굴복하던가 단지 둘 중의 하나밖에는 없다. 완이 완인 이유다.
리뷰를 올리고 짜증이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꾸만 그 놈의 걱정들이 스멀스멀 기어왔다.
물론 리뷰와 상관없는, 내가 나를 넘지 못하는 벽들이다. 와장창 하루에도 골백번 깨는데 안 되는 이유, 분명히 안다.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안이란 자기 한계에 대한 암시다. 운명을 선택하지 못한다면 운명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그 초라한...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계속해서 시달리고 말 것이다. 믿지면 본전이 아니다. 믿지면 도루아미타불이고 쪼다다. 눈물은 소용없다. 5만부 부럽잖은 쉼없는 5천 5백 5십 5권 아니 단 5줄에 대한 부끄러운 도전이다.썅!(?)
달리다 굼! 달리자 꿈! 부러움이 있어야 희망을 품는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바른 길을 가려고, 이 아까운 시간을 머무는 것이다. 요한선배를 부러워하자. 노진선배도 병곤선배도 그들을 품은 사부님도, 혼자 오륙도에 떨어져 늘 잠겼다 말았다 들락날락하는 초아선생님도 부러워하자. 이토록 눈이 부신 사월아닌가. 이 토록 무서운 우리가 아닌가. 달리자 꿈!
나도 그렇게 10년 동안 살아봤다. 그냥 그렇게 살은 거다.
잘산 것도 없고 못산 것도 없다. 단지 억울함이 남았다면 뒤집어 버릴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다시 해 보던가 콱 뒤져 버리든가 둘 다 못하면 늘 이모양 이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건 인정이 아니다. 이건 박이용이다. 완이용은 아니다. 완은 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싸워 이기던가 굴복하던가 단지 둘 중의 하나밖에는 없다. 완이 완인 이유다.
리뷰를 올리고 짜증이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꾸만 그 놈의 걱정들이 스멀스멀 기어왔다.
물론 리뷰와 상관없는, 내가 나를 넘지 못하는 벽들이다. 와장창 하루에도 골백번 깨는데 안 되는 이유, 분명히 안다.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안이란 자기 한계에 대한 암시다. 운명을 선택하지 못한다면 운명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그 초라한...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계속해서 시달리고 말 것이다. 믿지면 본전이 아니다. 믿지면 도루아미타불이고 쪼다다. 눈물은 소용없다. 5만부 부럽잖은 쉼없는 5천 5백 5십 5권 아니 단 5줄에 대한 부끄러운 도전이다.썅!(?)
달리다 굼! 달리자 꿈! 부러움이 있어야 희망을 품는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바른 길을 가려고, 이 아까운 시간을 머무는 것이다. 요한선배를 부러워하자. 노진선배도 병곤선배도 그들을 품은 사부님도, 혼자 오륙도에 떨어져 늘 잠겼다 말았다 들락날락하는 초아선생님도 부러워하자. 이토록 눈이 부신 사월아닌가. 이 토록 무서운 우리가 아닌가. 달리자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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