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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2007년 4월 16일 15시 08분 등록
비 내리는 날... 오랜만에 들어온 이 곳.
특별한 주제없이 그냥 글을 쓰고 싶어서 몇자 끄적 끄적. 이해해주세요 ^^;


나의 어린 시절은 선택의 폭이 지극히 제한된 시기였다. 내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렸고, 가까운 타인들이 내 진로를 위해 고민하는 것의 바탕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큰 변수였을 것이다. 결국 갈림길을 만날 때 마다 내 능력과 상관없는 선택이 반복되어왔다.

문제는 스스로 결정을 내릴만한 나이에 이르러서도 선택의 폭을 제한하는 실수를 여전히 저지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는 데 있다. 학습의 효과 때문일까? 능력을 뛰어넘는 혹은 최고치에 도달하는 도전을 피하고 있는 나를 느낀다. 업무 외적인 면에서는 그런 한계를 쉽게 뛰어 넘어서 익스트림 하게 살기도 하지만, 생계의 문제와 결부되면 늘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는 지하철 승객의 모습이 되고 만다. OTL

40이 넘도록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크게 불만은 없지만 근원이 분명치 않은 불안은 이 시대의 평범한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웬만큼 파헤쳐보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MBTI 심리유형 검사를 수행하고 상담을 해 줄 수 있을 수준으로 공부도 해 보았다. 원래 그런 것이긴 하지만 타인을 상담해주는 와중에도 나 자신을 위한 탐색 작업은 평생을 두고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요 근래 들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경우가 많다. 직업과는 별개의 일로 주말이면 초등학생, 고등학생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다. 일종의 상담역할이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우리 시대와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여전한 것도 있다.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내심의)희망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그 것이다. 사실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름대로 주관이 잡혀있음을 느낀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아이들은 부쩍 자라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진로정체성이 뚜렷한 아이들은 예외 없이 부모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결국 우리의 미래가 될 아이들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가장 가까운 타인인 부모(혹은 선생님)인 셈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각자 좋아하면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늘 권한다. 남들이(그 타인이 부모라 할지라도) 좋다 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기준으로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그 재능을 빨리 찾아내서 집중하라고 얘기한다. 단순한 호기심과 진로적성을 혼돈하기 쉬운 나이이기 때문에 그 차이점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고 설명해 준다. 진지한 아이들도 있고 도대체 듣고나 있는 건지 모를 아이들도 있지만, 나는 항상 그리한다. 내가 겪었던 과정을 반복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하길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내게도 아이 둘이 있다. 이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고 무엇보다 자주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물론 아직도 수십 가지 꿈(?)을 오가고 있지만 건전한 선택을 하리라 기대한다. ‘공부를 더 잘했으면, 예술적 재능이 더 있었으면, 이런 일을 했으면’ 하는 온갖 종류의 ‘평범한 부모 소원’이 내게도 있지만 아이들 인생을 내가 살아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아이들 인생의 선장은 자신들이다. 내가 곁에서 조언은 할 수 있을지언정 항로를 결정하는 것 까지 간섭하는 것은 반칙성 태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소를 찾는 모든 분들 행복하세요~
오랜만에 와 보는데, 저 같은 눈팅족들이 서포터즈로 화려하게 수면으로 부상한 걸 보니 억수로(?) 반갑네요. ^^;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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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16 19:16:38 *.70.72.121
파란바다님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느낌이 듭니다. 상쾌한 봄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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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즐짱
2007.04.16 21:49:41 *.47.119.17
파란바다 님의 두 아이들은 좋은 부모님을 만난 것 같네요. 현실이라는 미명하에 ‘교육이 아닌 공부’만을 중시여기는 현재의 우리나라와 같은 교육 여건 하에서는 쉽지 않을 모습이지요.

하지만!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세상을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그들의 배를 스스로 항해할 수 있도록 키를 일찌감치 넘겨주는 것은 자립성이나 창조성, 나다움을 일찍이 개발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아 보이네요.

그리고 며칠 전 동아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지요. 제목은 “[21세기 新천재론]재능이 지능이다”이고, 메인 카피는 “옛날 천재는 공부에 미치고… 요즘 천재는 좋아하는 것에 미치고…”라고. 현실이란 이름의 사회상과 사람들의 의식을 볼 때 아직은 소수의 분야만 통하는 얘기일 수도 있겠네요.

파란바다 님의 아이들도 ‘스스로 좋아하는 걸’ 빨리 발견해서 재미와 즐거움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만끽했으면 좋겠어요. 님의 글을 읽다가 요즘 저의 관심사와 통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댓글이 길어졌네요. 파란바다 님두 행복한 일상이 되길 바래요. ^^


님의 글을 읽다보니 예전에 읽고 메모해둔 신문기사가 하나 생각나서 덧붙여 봐요. 김어준이라고 딴지일보 총수인데 그 분이 ‘한국의 10대’들에게 전하는 말이거든요. 10대를 훨씬~ 지난, 20대 후반인 저도 이 글을 읽고 저를 많이 되돌아보게 된 글이거든요. (그렇다면 아직까지 내 정신적인 연령은 10대밖에 안된다는 것일까? -_-)

“말 나온 김에 딴 것도 고백하자. 공부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 된다. 거짓말이다. 우리나라 공교육 열심히 따라가면 시험 잘 치는 사람 된다. 시험 잘 치면 훌륭한 사람 되나. 아니다. 시험 잘 치면 점수 잘 나온다. 점수와 훌륭한 사람과의 상관관계. 없다. 그럼 판검사나 의사들은 다 훌륭하시게. 그 양반들 중 안 훌륭한 분들도 무척 많으셔. 단, 점수 높으면 연봉 높을 확률, 상대적으로 높다. 그건 맞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또 아니다. 돈 버는 능력과 공부 능력, 별개다. 그럼 왜 어른들이 공부공부 하나. 불안해서. 공부 외에 어떻게 훌륭한 사람 되는 건지 어른들도 모르니까.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지, 어른들 모른다. 물론 공부 잘 하면 좋다. 유용하다. 하지만 공부와 훌륭한 사람, 관계없다.”

“될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한 우물을 파라. 아니다. 떡잎만 봐선 모른다. 떡잎은커녕 나이 서른 넘어도 몰라. 우리 공교육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재능은 무엇인지, 자신이 원하는 건 뭔지 사유하고 각성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공교육 바로 그거 하라고 있는 건데. 하여 우리나라엔 대학졸업하고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원하는 게 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 우물을 파. 그러니 호기심 가고 궁금한 건 뭐든 닥치는 대로 덤벼들 보시라. 인생 790년 못 산다. 하고 싶은 건 겁먹지 말고 다 해봐.”

- 한겨레 신문, 세설 “10대들에게 고백함/김어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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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2007.04.16 23:03:31 *.187.231.216
참 훌륭한 부모이시군요.
저도 교육에 관심이 참 많아서
내가 나중에 아이를 키우면 어떤 엄마가 될까를 상상해보는데..
파란바다님이 하시는 것처럼
아이들을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잘 들어주고 싶습니다.
막상 부모가 되고 나면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제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움이 크겠죠.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른이어서 세상 경험이 좀더 많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조종하려고 하는 건,
부모의 월권행위라고 굳게 믿습니다.
아이들이 재능을 발견하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파란바다님과 같은
성숙한 부모가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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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바다
2007.04.17 09:04:59 *.19.204.188
와~ 댓글이 너무 엄청나서 감동입니다 ^^; 님들이 저보다 나은 분이지요. 써니 님, 재즐짱 님, 지혜 님 모두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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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4.17 10:24:48 *.114.56.245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제가 항상 고민하는 부분을 잘 짚어주셨네요.
나비 효과를 생각하며 저부터 출발해 보겠습니다.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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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4.18 09:07:24 *.99.241.60
저도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유치원 딸래미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주말부부라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붙어다닙니다.
파란바다님의 아이들 키우는 방향이 많은 공감이 갑니다.
저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할수록 방향을 잡아주고 싶은데,
현실에서 발생하는 많은 유혹들을 벗어나기가
쉽지많은 않더라구요.

늘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여러가지 길을 알려주고
다양한 시냇물가에 데려다 주는 경험과
제 스스로 좋은 부모가 되어
제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좋은 가정을 꾸미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이다..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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