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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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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일 11시 38분 등록

정확히 말하자.. 몇년간 수없는 시련과 좌절, 그리고 오명으로 점철된 코리안 빅리거 1호 박찬호의 우여곡절끝에 만들어진 9개월만의 선발기회에 누구보다 큰 응원을 보냈던 평범한 야구팬 원잭이 흘린 눈물이다. 아마도 그도 울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가 그러하겠지만 야구야말로 공 한개, 결정적인 실책 하나, 단 한번의 방심 등이 승부를 좌우하는 종목이다(아웃이라는 개념이 이러한 야구만의 오묘함을 만들지 않나 싶다).

하필 최고의 컨디션으로 폭포수같은 커브와 구석구석을 파고 들어가는 직구 배합으로 슬로우스타터 찬호로서는 보기 힘든 초반 8타자 연속범타 행진을 이어가는 그 순간 악령들이 그의 발목을 붙잡기 시작했다.

5할대 타율을 자랑하는 투수라지만 최초의 밋밋한 변화구가 화근이었고 결국 첫번째 안타를 허용하자 좋은 리듬을 타던 찬호는 9개 연속 볼을 던지며 크게 흔들린다. 10구째만에 스트라이크가 들어오자 메츠 홈팬들의 박수소리가 터졌고 박찬호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긴장감에서 다소 풀려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 위기를 넘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미구엘 카브레라가 2루수쪽으로 타구를 날린다. '올커니'하고 생각하는 순간 호세 발렌틴의 부상으로 그 자리를 지키던 플로리다 출신 이즐리의 실책성 플레이가 나온다. 졸지에 2실점.

담담하게 다음 타자 마이크 제이콥스를 상대로 타자 스스로도 아웃으로 생각할 정도의 플라이 볼을 유도했지만 유격수 레이에스와 중견수 벨트란과의 수비호흡 미스로 또 1실점. 재앙은 베테랑 박찬호를 기어코 무너뜨리겠다는듯 계속됐다. 다음타자 조쉬 윌링햄과의 풀카운트 승부에서 다시 바가지성 안타가 터져나오자 재앙은 5점을 얄밉게 먹어치우고 배를 두드리고 물러났다.

최근 코리언 빅리거 선발경기에는 이상한 징크스가 나타나고 있다. 타자들이 득점지원이 있으면 스스로가 무너지고 쉽지 않은 호투를 이어가면 답답할 정도로 공격이 되지 않는다. 뒤늦게 신바람을 내면서 터지는 얄미운 타선을 지켜보는 것도 그들의 부진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실력으로 넘어야 할 것들이지만 말이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메츠 타선도 1회에는 선취득점, 3회에는 추격하는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찬스를 잡았지만 이를 살리지 못했고 이번 시즌 극도로 부진한 델가도가 그 중심에 있었다. 타선 역시 박찬호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메츠는 2점을 더 잃었지만 6점을 뽑아내고 있다..ㅜㅜ)

3회와 똑같은 타순을 맞이한 박찬호는 이미 기력을 잃고 있었다. 첫 타자를 잘 처리했지만 전형적인 단거리 타자 아메자가에게 시즌 첫 홈런을 선물하고야 만다. 박찬호의 실투성 직구와 타자 아메자가의 완벽한 타격 타이밍이 만들어 낸 홈런이었고 1번타자 같지 않은 라미레즈의 괴력이 박찬호의 마지막 실투를 좌중월로 날려버린다. (사실 4회는 심리적으로 이미 무너진 박찬호가 어쩔 수 없이 올라왔다가 피지컬로도 이를 확인한 셈이 되어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랜돌프 감독을 원망했겠지만 오늘 경기에서만큼은 조기에 박찬호를 내린 그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는 이것이 선발투수의 공백을 메우러 올라온 임시선발 박찬호의 현재 위상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초반에 보여준 그의 호투와 야수들의 실책성 플레이에서 비롯된 불운을 감독이 감안해 준다면 한번 더 선발등판 기회를 잡을 수 있겠지만 한순간에 무너지는 선발투수로는 치명적인 모습과 또 다른 임시선발 후보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전히 그의 입지는 불안하다. 언제 다시 마이너리그로 강등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야말로 박찬호가 넘어야 할 첫번째 장애물인 셈이다.

하나 따지고 넘어 가야할 것이 있다. 기록원은 3회에 허용한 얄궂은 타구 모두를 안타로 기록했고 박찬호의 방어율은 15.75가 되었다. 카브레라의 타구는 안타성, 조쉬 윌링행은 텍사스성 안타라고 인정을 하겠지만 두번째 타구는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에러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했다. 아마도 이 타구 역시 텍사스성 위치에 공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가정을 해보자.. 이 타구가 에러로 기록되었다면 박찬호의 자책점은 4회에 허용한 두개의 홈런을 포함해서 4점이 되고 방어율은 9.0이 된다. 앞으로 시즌이 많이 남아있는 선발투수 박찬호를 생각하면 첫번째 경기에서의 자책점 3점 차이는 결코 작게 볼 수 없지 않을까.

끝으로 한번 더 고백을 해보자. 한때 나는 박찬호의 경기결과에 따라 그날 전체의 컨디션이 좌우될만큼 찬호중독자였다. 서재응도, 김병현도 좋아하고 응원했지만 그들은 내 컨디션을 좌우하지 못했다. 오늘 박찬호를 집어삼킨 재앙이 거의 완치되었던 씁쓸한 중독증을 재발시키려나 보다. 이렇게 글이라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견딜수 있겠냐 이 말이다..ㅜㅜ

찬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즐리가 타구를 놓친 그 전까지의 투구를 먼저 가슴에 새기라고. 그리고 앞으로 오늘 경기의 재앙과 같은 위기에도 베테랑 투수다운 여유와 집중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마음을 더 가다듬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나는 여전히 돌아온 박찬호가 10승 투수로 거듭날 것을 믿는다. 그때 신나는 마음으로 포스팅을 하는 모습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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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2007.05.01 14:51:44 *.99.189.70
스포츠엔 별 관심이 없어서..
단장님이 쓰신 글 90%는 이해가 안가지만,
무플방지라는 서포터즈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일단 댓글 남깁니다. ㅋㅋ

스포츠선수나 경기에 이리도 열광하는 남자들의 심리가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네요.
전 참 재미도 없더구만..
월드컵 때 축구 조금 보는 것 외에
스포츠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관심가져본 적이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솔직히 얘기하면...남자들과의 대화에 장벽이 너무 커져
관심갖고 들어주기라도 하는데
전 그래도 잘 이해가 안갑니다.
개인적인 편차가 물론 크기도 하겠지만,
단장님만큼 스포츠에 열광하는 남자는 많지만
그런 여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현실을 볼 때
남자/여자의 차이가 더 큰 것 같긴 한데..
도대체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어 낼까요?
남자는 어렸을 때부터 승부와 경쟁을 하도록 길들여져 왔고
여자는 관계형성과 수평적 문화에 길들여져 와서?
스포츠 선수가 대부분 남자여서, 남자들만 끌어들이기 때문에?
아..더이상 생각이 안난다.
단장님 의견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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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7.05.01 22:05:22 *.254.66.72
기찬.. 나이도 같이만 우째 이렇듯 취미도 비슷한게 많은가?(기찬에겐 욕으로 들릴 수도 있을까?)

오늘 박찬호의 경기 소식을 들으면서(경기중계를 보지는 못했음) 나 또한 안타까움에 빠졌지.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네.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해야만 한다고. 물론 박찬호가 전성기처럼 10승, 15승을 하며 메이저리그의 기라성 같은 타자들을 척척 삼진에 범타로 잡아낸다면 좋겠지. 하지만 이제 박찬호는 전성기가 지났음을 우리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모습에 만족하겠네. 기대치를 낮추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만족을 찾겠다는 것이지. 그는 이미 재벌이라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이미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닐까?

기찬이가 야구도 좋아한다니 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네. 난 솔직히 '야구광'이거든. 참고로 야구가 너무 하고싶어 회사에 야구부를 만들었고 어쩌다보니 지금 '선수 겸 감독'이지. ㅎㅎ. 2주에 한번 정도 동호회팀끼리 시합을 하는데 지금은 선수에서 은퇴를 고려중이야. 몸이 말을 안들 때가 점점 많아지네. ㅎㅎ.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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