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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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질과 체험 - 관찰자적인 시선과 혼잣말
읽기는 나의 오래된 취미이다. 저 혼자 한글을 떼어 언니 교과서를 읽었단다. 어려서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변호사 시켜라~~ 뭐 그런 말도 들은 것같다. 상대적이나마 언어지능이 발달될 기미가 보인 셈이다. 뭐 60년대 마포골목 이야기이니 그 수준은 믿을 것이 못된다.
중학교 때부터 특별활동부는 무조건 문예부에 들었다.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은 한번도 못해보고, 가작은 몇 번 해 보았다. 그 때부터 몇 십년을 내 맘대로 쓰는 일기나마 끄적거리며 살았다. 내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지금처럼 읽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다. 옆집에서 빨간 색 장정의 오십 권짜리 동화책을 빌려보느라 전전긍긍한 기억이 난다. 만화도 엄청 많이 보았다. 주인 아저씨의 눈치를 봐가며 많이 보느라 속독 훈련이 되었다.
어린 날에 읽었던 동화책은 지금도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있다. 알프스 소녀의 낭만, 소공녀의 자존심, 빨간머리 앤과 길버트의 사랑, 비밀의 화원을 따라가며 두근거리던 심정... 맙소사. 아직도 그 수준인 것 같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기꺼이 몰입하고 오랜 시간을 계속해 온 일은 책읽기밖에 없다. 읽기와 끄적거림은 무인도에 떨어진대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인 셈이다. 승부근성이라곤 도통 없는 내게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좋은 글을 읽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빈약한 씨앗은 인생의 중반에서 넘어진 나를 다시 일으켜 주는 소중한 자산이 되어주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책읽기가 글쓰기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책읽기는 유서깊고 독립적인 여흥이요 저력이요 레퍼런스이지만, 그 자체가 능동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글쓰기라는 적극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변환되었을 때 비로소 책읽기도 제 역할을 완수한다. 책읽기는 수동적이라는 성격상 자기만족까지는 가능해도, 자기표현과 자기실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읽기와 쓰기에 기름을 부어준 것은, 인생 중반을 살아낸 체험이다. 체험을 통해 나의 언어를 갖게 되었고, 절실하게 토해내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그러나 말로 하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작년에 밤에 야산에 오른 적이 있다. 그 곳에서 뜻하지 않게 반딧불이를 보았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라, 흥분한 내가 마구 소리치며 좋아했더니, 동행한 친구가 문학소녀 나왔다고 비웃는 것이다. 그녀는 농촌 출신인데다가, 나처럼 반딧불이에 열광하는 정서가 아니었으므로.
이럴 때, 자연히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중단되고, 소통에 대한 나의 욕구는 억압된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고, 일 이 년이 아니고 몇 십년 동안 계속되었다면, 이제 나는 혼자 하는 말 - 글쓰기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 글쓰기는 완벽한 대화상대를 가정하고 하는 혼잣말이다.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누군가 나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해주리라는 턱없는 기대 속에 온갖 속내를 다 풀어낸다. 말하고 싶다, 소통하고 싶다, 이해받고 싶다는 욕구는 쓰는 것만으로도 반쯤은 해소된다. 그래서 글쓰기는 세상에 대한 연애편지이고, 배설행위이고, 카타르시스이고, 오르가즘이다.
내가 관찰자적인 시선을 가진 것도 인정해야겠다. 나는 다른 사람은 물론 나 자신조차 관찰하는 데 능하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내가 있다. 남들의 언어와 몸짓, 마음짓을 짚어보는 일이 재미있다. 가령 3기 연구원들의 글을 읽다가, 글쓴이의 성정이나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를 찾을 때가 있다. 정화씨도 얘기했듯 나만 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아주 친해지기 전에는 확인할 길은 없고, 이 증세가 악화되면, 과대망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 이 버릇 때문에 내가 글을 쓸 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차단하기도 하고, 장난끼가 발동하면 슬쩍 끼워넣기도 하지만, 역시 누가 알아차렸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물며 자기검열을 놓치고 빠져나간 것까지 누가 읽어줄는지,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2. 터닝 포인트 - 지면과 긍정적 반사대상
2006년 2기 연구원 활동은 내 인생 최대의 터닝포인트이다. 1년 간의 연구원 활동기간은 몇 십년의 느슨한 독서습관을, 확장하고 확정함으로써 확실하게 업그레이드시켜 주었다. 나는 좀 더 포괄적이고 분석하는 책읽기를 하게 되었으며, 지식에 대한 탐구열에 빠져들었다.지식은 지식과 연결되어 있어, 지하에서 서로 손잡고 있는 가느다란 수맥이라도 발견할라치면 내 가슴은 사정없이 뛰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지만, 꾸준히 몰입하다보면, 언젠가 지혜의 바다에 도달할 수도 있겠구나, 잔잔한 희열이 왔다. 그런데 이것은 불과 오년 전이라도 상상할 수 없던 즐거움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역할에 따라 살다가, 돌연 문화적 각본이 사라지는 중년에 도달하면,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했다. 나의 전인격으로 만나는 그 일을 찾은 사람은 행복하다.
글쓰기의 훈련단계에서, 무언가 쓸 것이 떠올랐을 때, 조르르 달려가 펼쳐놓을 지면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미흡한 나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해 주는, ‘긍정적 반사대상’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나의 언어를 이해하고,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반사대상으로 해서 우리 내부의 꼬마아티스트를 키울 수 있게 된다. 구소장님은 내게 완벽한 반사대상이 되어주셨다. 나는 그 분에게서 내 생애 최고의 인정을 받았다. 짧은 댓글이라도 진정성이 들어있다면 충분히 우리를 감동시킨다. 내 글에 과분한 추임새를 넣어준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연구소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거울이 되어야 한다. 구소장님이 우리에게 해 주셨듯,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가능성을 믿어주는 최고의 독자요, 써포터가 되어야 한다. 진실된 박수갈채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제 글쓰기는 내게 최고의 즐거움이요, 소일거리요, 꿈이 되었다. 읽고 쓰는 일을 가지고 먹고 사는 일이 최대의 목표가 되었다. 아주 오래된 취미 하나에 나를 새롭게 출발하게 하는 단서가 들어있던 셈이다. 좌충우돌, 지리멸렬한 경험이 글을 쓰는 자산으로 변모하는 경험은 짜릿한 것이다. 살아있는 한 지적 컨텐츠를 생산하는 현역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매혹적이다. 더욱 잘 살고 싶게 하고, 더욱 나다워지고 싶게 만든다. 이렇게 글쓰기는 나의 구원이 되었다.
3. 현안 - 좀 더 넓은 시장을 향하여
연구원 출신 저자의 책이 속속 출판됨으로써, 나머지 연구원들의 꿈이 구체성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어떤 책을 어떻게 썼고, 어떻게 시장에 진입하였으며, 어떻게 후속작이 나와줄 지 흥미진진한 가운데, 나 자신의 책에 대해서도 시야가 아주 넓어졌다. 우선 서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책 한 권을 갖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좋은 출발을 하고 싶다는 생각. 퀄리티가 있으면 언제고 인정받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 많이 팔리지는 않더라도, 진정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는 책을 쓰고싶다는 생각. - 물론 많이 팔리면 더 좋다 ^^-
직장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자유인의 상태인데도, 생각만큼 사고와 글쓰기가 쑥쑥 자라주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읽느냐, 얼마나 내 것으로 소화해내느냐, 소화한 것을 어떻게 나의 언어로 표현해내느냐의 싸움을 평생 가지고 가려고 한다.
글을 통해 나와 他者와 사회를 성찰하고 개입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삶을 구성하고 돌보는 셈이다. 읽기 - 생각하기 - 쓰기 - 살기의 순환경로를 통해 나의 삶이 좀 더 온전해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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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오병곤
책을 내고 난 후 기분좋은 순간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몇 가지 장면 중의 하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기 친구들에게 제 책을 자랑할 때, 그리고 독자에게 감사의 편지를 받았을 때였습니다. 특히 한 독자는 책을 통해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장문의 편지를 보내와 가슴이 찡할 정도로 기뻤습니다. 글쓰기의 매력이 이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 자신을 구원할 목적으로 썼지만 나 아닌 다른 누구에게 연탄 한장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제 기질상 이것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글쓰기가 무척 어렵게 느껴지는 건, 쓰는 행위 자체보다는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 주제에 관한 것입니다. 마음을 나누는 편지 쓸 때도 쓰는 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무엇을 쓸 것인가를 위해 일주일을 고민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님, 화두를 잘 잡으십시오. 늘 질문을 하십시오. how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what입니다. 이것이 글쓰기가 살풀이를 넘어 소통으로 가는 길이지요. 이것만 잘 건지시면 누님의 책은 이미 나온 것과 진배없지요.
글쓰기가 무척 어렵게 느껴지는 건, 쓰는 행위 자체보다는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 주제에 관한 것입니다. 마음을 나누는 편지 쓸 때도 쓰는 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무엇을 쓸 것인가를 위해 일주일을 고민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님, 화두를 잘 잡으십시오. 늘 질문을 하십시오. how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what입니다. 이것이 글쓰기가 살풀이를 넘어 소통으로 가는 길이지요. 이것만 잘 건지시면 누님의 책은 이미 나온 것과 진배없지요.

향인
제가 읽었던 어릴 때 책과 일치하네요. 꼬마때는 책벌레라는 별명도 들었는데 회사 다니면서는 도통 멀리하게 되었죠. 요즘 저는 글쓰기 연습의 걸음마단계로 들어왔습니다만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글을 보면 마음이 정갈해집니다. 아직 저는 책 읽기가 훨씬 편합니다.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아 자기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 참 어렵더군요.
명석님 글을 읽으면 늘 그래, 맞아, 어쩜..이런 느낌이에요. 사람들에게 그런 기분을 갖게한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라고 봅니다.
먼저 가는 사람이 이렇게 써주시면 따라가는 사람은 용기를 갖게 되지요. 늘 그렇게 그 자리에 우뚝 계셔주시길 바랍니다.
명석님 글을 읽으면 늘 그래, 맞아, 어쩜..이런 느낌이에요. 사람들에게 그런 기분을 갖게한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라고 봅니다.
먼저 가는 사람이 이렇게 써주시면 따라가는 사람은 용기를 갖게 되지요. 늘 그렇게 그 자리에 우뚝 계셔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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