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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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부장 시절에 나는 본사 직원들이 담배를 숨어 피우자 남여를 불문하고 피워도 좋다... 고 해서 사무실이 담배연기로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서구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별 일이 아니었지만 그 시절의 사내 질서로 본다면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후일에 그 때를 돌이켜보면 직원들에게 허용된 공개적인 흡연이 흡연량을 늘리게 한 결과를 낳았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고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때론 약간의 강제, 혹은 규제가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더 이로울 수 있다는 그래서 그냥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일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지 않게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담배를 마음 놓고 피우기 어렵다. 이젠 나도 현실을 고려하여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운다.
분자구조가 유사해서 아세칠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로 오인한다는 니코틴 때문일까 나는 점점 늘어나는 뻐끔 담배의 개비 수만큼이나 온 갖 잡생각으로 시간을 잡아 먹고 있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신촌의 하늘은 그냥... 여늬 하늘과 다르지 않지만 3층부터 6 층까지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오르내리는 나의 심정에 따라 달리 보인다.
하늘이야 그저 하늘이지만 그 아래 놓인 구름들과 온갖 눈에 보이지 않는 잡다한 것들이 어우러져 끝없이 달리 보일뿐이다.
신촌 연세대 쪽으로 멀찌 감치 교회의 뾰죽한 첨탑에 저녁 태양이 걸릴 때 쯤이면 나는 그냥 멍하게 태양을 바라보며 서 있곤 한다. 석양이 길다랗게 조각난 구름 조각을 허리에 걸치고 첨탑 뒤에 잠시 머무르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한동안 거기 서 있곤 한다.
맞은편으로는 옥상 주차장이 보이고 사람들이 많지 않아 썰렁한 최근에 지은 민자 역사 건물의 이벤트행사 소리나 지나는 차소리들 ...그리고 에어컨 실외기의 소리... 냄새들의 소리.. 내 귀를 타고 머리 속으로 밀려들어 왔다가 이내 사라져 버리는 그 소리마져도 멈추어 버리면 ...
나는 한참동안 허공 속에 영원한 태양과 마주 서 있게 된다.
아무생각없이...
10여 년 전에 여의도의 본사 사무실을 신촌으로 옮겼을 때, 남자 사원들의 눈은 정신없이 바뻣다. 그도 그럴 것이 신참으로 졸병생활을 하는 보다 정장스러운 차림의 여의도 사무가의 밋밋한 여성들만 보다가 10년은 젊어진 신촌의 이 대 앞을 흐르는 젊고 싱싱한 표정과 몸 놀림... 그야말로 쭉쭉빵빵한 가시나들로 확 변해 버린 것이니...
그 때 남자 사원들은 퇴근 시간이 지나면 골목을 오가며 커피숖과 술집과 노래방을 쫓아 다녔던 것 같다.
그 무렵, 이 대 상권은 한참 잘 나가는 때였고 몇 걸음만 가도 그리고 고개를 좌로 우로 옆으로 위로 돌려도 거기에 있는 것은 미용실과 커피숍 악세사리와 다닥 다닥 붙은 옷가게 였다.
10년 세월이 가는 동안에, 유명하던 신촌 부르스가 사라지고, 이 대 앞 골목 골목은 특별한 이슈 없이 그저 약간의 변화들만 거듭했다. 사라진 전자오락실, 그리고 트랜트를 따르는 악세서리나 주머니에서 손쉽게 꺼내 놓을 수 있는 푼돈으로 살 수 있던 옷가지들의 모양새가 변하고, 더욱 늘어나는 먹거리들이 한 물간 인테리어를 부수고 다시 들어설 뿐이었다.
일제의 냄새가 아직 풍기던 신촌 기차역... 그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던 무허가 건물들은 최근에 민자 역사의 유치로 거의 정리되어졌다.
이대, 연대, 서강대, 홍대가 몰려 있는 이 곳은 젊은 사람들, 젊은 미시들이 한 번 쯤 약속을 하고 휴일을 보내던 곳이었지만 흐르는 시간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늙어갔다.
이제 젊은 이들은 한 두 정거장 더 가서 홍대 앞으로 그 발걸음을 옮기고 간단한 외양과 치장의 문화는 활동하고 표현하는 예술적 성향과 보다 더 생동하는 언더그라운드들이 몰려드는 홍대 앞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70년대를 전후한 세대를 넘나드는 사람들은 한 몫 잡아서 잘 살아보자는 그래서 눌려서 눈치보고 살았던 시절의 한을 풀어보자는 생각들은 그저 갇히고 닫힌 시대의 아픈 상처의 반대 급부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것이 반공과 경제의 논리로 귀결되어 지던 시절의 삶의 논리였다.
그러나 지금을 사는 젊은 세대들은 부모들의 충분한 후원과 과도한 보살핌 속에서 손만 벌리면 주어지는 궁하지 않은 생활을 즐겼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보다는 자신들의 시간을 어떻게 하고 있고 즐기고 있느냐로 생각들이 바뀌어가고 있다.
의식주로부터 자유로운 그들은 문화를 위해 값싼 일자리를 거절한다. 엄청나 고비용의 학력은 실상 현장에서는 무용한 자격증과 속빈 자존심만 높여 놓았다.
IP *.131.127.23
후일에 그 때를 돌이켜보면 직원들에게 허용된 공개적인 흡연이 흡연량을 늘리게 한 결과를 낳았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고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때론 약간의 강제, 혹은 규제가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더 이로울 수 있다는 그래서 그냥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일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지 않게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담배를 마음 놓고 피우기 어렵다. 이젠 나도 현실을 고려하여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운다.
분자구조가 유사해서 아세칠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로 오인한다는 니코틴 때문일까 나는 점점 늘어나는 뻐끔 담배의 개비 수만큼이나 온 갖 잡생각으로 시간을 잡아 먹고 있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신촌의 하늘은 그냥... 여늬 하늘과 다르지 않지만 3층부터 6 층까지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오르내리는 나의 심정에 따라 달리 보인다.
하늘이야 그저 하늘이지만 그 아래 놓인 구름들과 온갖 눈에 보이지 않는 잡다한 것들이 어우러져 끝없이 달리 보일뿐이다.
신촌 연세대 쪽으로 멀찌 감치 교회의 뾰죽한 첨탑에 저녁 태양이 걸릴 때 쯤이면 나는 그냥 멍하게 태양을 바라보며 서 있곤 한다. 석양이 길다랗게 조각난 구름 조각을 허리에 걸치고 첨탑 뒤에 잠시 머무르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한동안 거기 서 있곤 한다.
맞은편으로는 옥상 주차장이 보이고 사람들이 많지 않아 썰렁한 최근에 지은 민자 역사 건물의 이벤트행사 소리나 지나는 차소리들 ...그리고 에어컨 실외기의 소리... 냄새들의 소리.. 내 귀를 타고 머리 속으로 밀려들어 왔다가 이내 사라져 버리는 그 소리마져도 멈추어 버리면 ...
나는 한참동안 허공 속에 영원한 태양과 마주 서 있게 된다.
아무생각없이...
10여 년 전에 여의도의 본사 사무실을 신촌으로 옮겼을 때, 남자 사원들의 눈은 정신없이 바뻣다. 그도 그럴 것이 신참으로 졸병생활을 하는 보다 정장스러운 차림의 여의도 사무가의 밋밋한 여성들만 보다가 10년은 젊어진 신촌의 이 대 앞을 흐르는 젊고 싱싱한 표정과 몸 놀림... 그야말로 쭉쭉빵빵한 가시나들로 확 변해 버린 것이니...
그 때 남자 사원들은 퇴근 시간이 지나면 골목을 오가며 커피숖과 술집과 노래방을 쫓아 다녔던 것 같다.
그 무렵, 이 대 상권은 한참 잘 나가는 때였고 몇 걸음만 가도 그리고 고개를 좌로 우로 옆으로 위로 돌려도 거기에 있는 것은 미용실과 커피숍 악세사리와 다닥 다닥 붙은 옷가게 였다.
10년 세월이 가는 동안에, 유명하던 신촌 부르스가 사라지고, 이 대 앞 골목 골목은 특별한 이슈 없이 그저 약간의 변화들만 거듭했다. 사라진 전자오락실, 그리고 트랜트를 따르는 악세서리나 주머니에서 손쉽게 꺼내 놓을 수 있는 푼돈으로 살 수 있던 옷가지들의 모양새가 변하고, 더욱 늘어나는 먹거리들이 한 물간 인테리어를 부수고 다시 들어설 뿐이었다.
일제의 냄새가 아직 풍기던 신촌 기차역... 그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던 무허가 건물들은 최근에 민자 역사의 유치로 거의 정리되어졌다.
이대, 연대, 서강대, 홍대가 몰려 있는 이 곳은 젊은 사람들, 젊은 미시들이 한 번 쯤 약속을 하고 휴일을 보내던 곳이었지만 흐르는 시간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늙어갔다.
이제 젊은 이들은 한 두 정거장 더 가서 홍대 앞으로 그 발걸음을 옮기고 간단한 외양과 치장의 문화는 활동하고 표현하는 예술적 성향과 보다 더 생동하는 언더그라운드들이 몰려드는 홍대 앞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70년대를 전후한 세대를 넘나드는 사람들은 한 몫 잡아서 잘 살아보자는 그래서 눌려서 눈치보고 살았던 시절의 한을 풀어보자는 생각들은 그저 갇히고 닫힌 시대의 아픈 상처의 반대 급부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것이 반공과 경제의 논리로 귀결되어 지던 시절의 삶의 논리였다.
그러나 지금을 사는 젊은 세대들은 부모들의 충분한 후원과 과도한 보살핌 속에서 손만 벌리면 주어지는 궁하지 않은 생활을 즐겼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보다는 자신들의 시간을 어떻게 하고 있고 즐기고 있느냐로 생각들이 바뀌어가고 있다.
의식주로부터 자유로운 그들은 문화를 위해 값싼 일자리를 거절한다. 엄청나 고비용의 학력은 실상 현장에서는 무용한 자격증과 속빈 자존심만 높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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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일제 강점기와 민족상잔의 비극을 거쳐 보리고개를 체험하며 살아온 세대들은 후대에 만큼은 이러한 고난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일념하에 국가재건에 발마춰 땀흘려 일하며 자손들을 위해 보람을 느끼며 살았다. 노동은 정직했고 땀에 대한 보상을 지불해 주었다.
지금의 50대 이후 세대들은 이전세대들이 마련해 놓은 경제적 기반 위에서 삶을 구가해 왔다. 7080으로 대변되는 이들은 민주화나 소위 운동권 운운 해봤자 실제적으로 고생한 세대들이 아니다. 386이후 세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자고나면 세상이 화려하게 변하는 것 같은 컬러TV 앞에서 이상을 꿈꿨고, 두발자유화로부터 시작된 개성은 이기심과 구별하기 어려운 합리성을 따졌다. 전세대들의 고생은 미련이나 어리석음으로 치부할 만큼 냉정한 이성이 보편화되고, 낀세대라고 하면서도 정작 책임과 갈등보다는 먼저 자신의 몫부터 챙기고 보는 약삭빠름과 이중성(너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지만 나는 경우에 따라 다른)은 어느덧 당연하게까지 자리잡은 듯하다.
이들의 자녀가 지금의 20대다. 하나나 둘 만 낳은 내 새끼에 대한 집착은 선대 그 어느 때 보다도 강하고, 예절과 인내보다는 표현과 웅변을 더 칭찬하며 키웠다.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보다 왜 그래야 하는데?의 반박에 가까운 자기 위주의 사고체계는 화합과 타협보다는 감정과 주장을 먼저 나타내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 불안하기까지 하다.
성년이 되면 반드시 자신의 몫은 해결해야 한다는 성숙된 인식보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같은 결과에 이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결과 주의는 어쩌면 과정을 소홀히 하게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하기까지 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우리의 입시정책과도 맞물리고 생활전반을 이끌어 가는 사회상황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세대차라는 간격일 것임을 의심해 본다.
미처 살피지 못한 어느 면을 발견하게 되면 이들이 나름대로 현명한 고민과 바른 삶을 애타게 찾고 있을 지 모르며, 이들에게는 또 이것이 하나의 당연한 흐름인 것을 이해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또한 다소 힘들지만 기성세대로서의 책임은 이들에게 바르고 그른 것을 가르칠 자존심과 인내가 요구되는 것은 아닌지 어려운 고민에 부딪혀 본다.
"뭘 해도 가족끼리 해야 되요. 이제는..." 하는 쌀집 아저씨의 굵은 땀방울만이 오늘의 현실을 대변한다.(배달하던 이가 쌀가게를 새로 인수 받았단다. 가게세에 인건비 주고 나면 별반 남을 것이 없던 사장은 어디론가 나가떨어지고 새 주인은 오늘도 사장에 배달에 전천후로 뛰어 다니느라 바쁘다.)
지식사회라고 해서 모두가 지식산업으로만 먹고 살수는 없는데 죄다 근사하고 멋들어진 것을 찾고, 트렌드만 크게 부각되다보니 빚어지는 세태의 격차가 아닌가 안타깝다. 또한 아직도 현실과 괴리감만 양산하는 대학교육(전문교육이 아닌 일반적인 보편화 교육이 되어버리고 마는)의 허상이 한심스럽다. 전공을 하고도 더 세분화 되는 자격으로 품격을 높이는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다른 자격증을 따는 일은 교육의 부실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뒷바라지를 해야 하며 언제가 되어야 교육정책에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허리가 휘는 부모의 한숨은 바로 우리들의 생활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의 50대 이후 세대들은 이전세대들이 마련해 놓은 경제적 기반 위에서 삶을 구가해 왔다. 7080으로 대변되는 이들은 민주화나 소위 운동권 운운 해봤자 실제적으로 고생한 세대들이 아니다. 386이후 세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자고나면 세상이 화려하게 변하는 것 같은 컬러TV 앞에서 이상을 꿈꿨고, 두발자유화로부터 시작된 개성은 이기심과 구별하기 어려운 합리성을 따졌다. 전세대들의 고생은 미련이나 어리석음으로 치부할 만큼 냉정한 이성이 보편화되고, 낀세대라고 하면서도 정작 책임과 갈등보다는 먼저 자신의 몫부터 챙기고 보는 약삭빠름과 이중성(너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지만 나는 경우에 따라 다른)은 어느덧 당연하게까지 자리잡은 듯하다.
이들의 자녀가 지금의 20대다. 하나나 둘 만 낳은 내 새끼에 대한 집착은 선대 그 어느 때 보다도 강하고, 예절과 인내보다는 표현과 웅변을 더 칭찬하며 키웠다.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보다 왜 그래야 하는데?의 반박에 가까운 자기 위주의 사고체계는 화합과 타협보다는 감정과 주장을 먼저 나타내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 불안하기까지 하다.
성년이 되면 반드시 자신의 몫은 해결해야 한다는 성숙된 인식보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같은 결과에 이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결과 주의는 어쩌면 과정을 소홀히 하게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하기까지 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우리의 입시정책과도 맞물리고 생활전반을 이끌어 가는 사회상황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세대차라는 간격일 것임을 의심해 본다.
미처 살피지 못한 어느 면을 발견하게 되면 이들이 나름대로 현명한 고민과 바른 삶을 애타게 찾고 있을 지 모르며, 이들에게는 또 이것이 하나의 당연한 흐름인 것을 이해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또한 다소 힘들지만 기성세대로서의 책임은 이들에게 바르고 그른 것을 가르칠 자존심과 인내가 요구되는 것은 아닌지 어려운 고민에 부딪혀 본다.
"뭘 해도 가족끼리 해야 되요. 이제는..." 하는 쌀집 아저씨의 굵은 땀방울만이 오늘의 현실을 대변한다.(배달하던 이가 쌀가게를 새로 인수 받았단다. 가게세에 인건비 주고 나면 별반 남을 것이 없던 사장은 어디론가 나가떨어지고 새 주인은 오늘도 사장에 배달에 전천후로 뛰어 다니느라 바쁘다.)
지식사회라고 해서 모두가 지식산업으로만 먹고 살수는 없는데 죄다 근사하고 멋들어진 것을 찾고, 트렌드만 크게 부각되다보니 빚어지는 세태의 격차가 아닌가 안타깝다. 또한 아직도 현실과 괴리감만 양산하는 대학교육(전문교육이 아닌 일반적인 보편화 교육이 되어버리고 마는)의 허상이 한심스럽다. 전공을 하고도 더 세분화 되는 자격으로 품격을 높이는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다른 자격증을 따는 일은 교육의 부실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뒷바라지를 해야 하며 언제가 되어야 교육정책에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허리가 휘는 부모의 한숨은 바로 우리들의 생활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백산
나는 젊은 세대들을 비난 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실을 알아야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선택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나는 자식을 위해서 헌신하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일관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려고 할 뿐입니다.
별거 아닙니다. 내 자식이 소중하듯이 남의 자식도 소중하고
내 주머니의 돈이 아깝듯이 남의 주머니의 돈도 소중하고
내가 억울했듯이 남도 억울할테니까
그 해결방법은 똑바로 사는 겁니다.
그럼 그들도 ... 알 수 있겠지요...
안그래도 괜찮습니다.
안 그렇다면 어차피 더러운 세상이니까 살만한 가치도 없는 거죠...
단지 사실을 알아야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선택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나는 자식을 위해서 헌신하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일관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려고 할 뿐입니다.
별거 아닙니다. 내 자식이 소중하듯이 남의 자식도 소중하고
내 주머니의 돈이 아깝듯이 남의 주머니의 돈도 소중하고
내가 억울했듯이 남도 억울할테니까
그 해결방법은 똑바로 사는 겁니다.
그럼 그들도 ... 알 수 있겠지요...
안그래도 괜찮습니다.
안 그렇다면 어차피 더러운 세상이니까 살만한 가치도 없는 거죠...

써니
세상은 많이 더럽고 더 더러워 질 것이다. 물을 보면 알 수 있다. 다행이 물이 흐른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어제의 오역과 반역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더러운 세상도 살만한 가치는 있을 것이다. 새로움은 일시적 반짝임이 아닐 것이다. 지속적인 창조는 변혁을 변.경으로 이끌고자 함이지 않겠는가.
똑바로 살기
똑바로에 가슴이 쿵 내려앉아 왜 그럴까 생각해 본다.
나도 제법 바르게는 심경에 두고 있지만 똑바로까지는 어려운 모양이다. 아니 무서운 것 같다. 까탈스러우면서도 자기 한계를 넘지 못하는 변명일 테지..
똑바로에서 똑 부러진 나를 본다.
똑 부러지게 "잘"이아니라 그냥 똑 부러져버린 나.
그러니까 제비다리 부러지듯 똑 부러진... 휴~
똑바른 것이 삼천포로 빠지면 똑 부러지게 된다.
삼천포...
누구나 하나쯤 있다는 멍에, 외로움, 빈 주머니, 무지, 게으름, 허욕, 이무기들의 아우성...
게거픔이 거드름이 될 수 있으면 다소 나아지려나...
똑 부러져버린 상처 똑바로 치유하기(똑바른 접합술의 모색: 써니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책 역사속의 영웅들(윌 듀런트)에서 귀담아 들어보는 구절, 내 삶의 지침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역사는 예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 인류의 역사는 생물학의 한 단편이다. 자연의 모든 사물은 소리 없이 작용하고 모든 사물은 맡은 바 일을 다 하고 절정에 도달하면 아무런 요구도 소유도 하지 않으며 모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원래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휴식, 혹은 사명의 완수를 뜻한다. 이런 귀환은 영원한 법칙이다. 이 법칙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이다.
아트만(자아, 가장 섬세한 정수; 온 세상의 혼; 실체; 바로 너)과 브라마(범천)은 원래 하나이다.
르네상스란 생활과 사유의 방식이다.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다.
돈은 문명의 뿌리이다.
<인간의 진정한 부는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평온한 마음과 여가를 품위 있게 즐기는 것보다 더 소망스러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모든 선량한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위대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일이다.
테레사의 규칙은 명랑하고 단호하게 사랑하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배우는 가운데 나이 들었다.>
우리는 강하고 신념을 가진 생각과 의지 속에 들어 있는 힘에 대해 어떤 한계도 둘 수 없다. >>
똑바로 살기에 대해 모색 중입니다. 좋은 의견이 있는 분들은 이곳에 남겨주세요. 도움을 요청합니다. 위에 백산님의 논리는 이해합니다.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하고 내 돈이 아까우면 남의 돈도 소중하지요. 그런데 실상 우리들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내 자식은 소중하지만 네 자식은 덜 소중하며 내 돈은 아깝지만 네 돈은 별로 안아깝지 않습니까? 이것만 잘 지켜져도 항상 맑은 물이 흐르고 물을 사 마시면서도 의심하지 않을 텐데요, 그 작은 한 병에 500원, STC 물은 훨씬 더 비싸지만 문제는 믿을 수조차 없다는 억울함, 게다가 허위(사기)라는 절망... 진정한 "우아한 세상"(-영화 송강호 주연)이 그리운 아침나절입니다. 그래도 모두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똑바로 살기
똑바로에 가슴이 쿵 내려앉아 왜 그럴까 생각해 본다.
나도 제법 바르게는 심경에 두고 있지만 똑바로까지는 어려운 모양이다. 아니 무서운 것 같다. 까탈스러우면서도 자기 한계를 넘지 못하는 변명일 테지..
똑바로에서 똑 부러진 나를 본다.
똑 부러지게 "잘"이아니라 그냥 똑 부러져버린 나.
그러니까 제비다리 부러지듯 똑 부러진... 휴~
똑바른 것이 삼천포로 빠지면 똑 부러지게 된다.
삼천포...
누구나 하나쯤 있다는 멍에, 외로움, 빈 주머니, 무지, 게으름, 허욕, 이무기들의 아우성...
게거픔이 거드름이 될 수 있으면 다소 나아지려나...
똑 부러져버린 상처 똑바로 치유하기(똑바른 접합술의 모색: 써니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책 역사속의 영웅들(윌 듀런트)에서 귀담아 들어보는 구절, 내 삶의 지침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역사는 예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 인류의 역사는 생물학의 한 단편이다. 자연의 모든 사물은 소리 없이 작용하고 모든 사물은 맡은 바 일을 다 하고 절정에 도달하면 아무런 요구도 소유도 하지 않으며 모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원래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휴식, 혹은 사명의 완수를 뜻한다. 이런 귀환은 영원한 법칙이다. 이 법칙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이다.
아트만(자아, 가장 섬세한 정수; 온 세상의 혼; 실체; 바로 너)과 브라마(범천)은 원래 하나이다.
르네상스란 생활과 사유의 방식이다.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다.
돈은 문명의 뿌리이다.
<인간의 진정한 부는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평온한 마음과 여가를 품위 있게 즐기는 것보다 더 소망스러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모든 선량한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위대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일이다.
테레사의 규칙은 명랑하고 단호하게 사랑하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배우는 가운데 나이 들었다.>
우리는 강하고 신념을 가진 생각과 의지 속에 들어 있는 힘에 대해 어떤 한계도 둘 수 없다. >>
똑바로 살기에 대해 모색 중입니다. 좋은 의견이 있는 분들은 이곳에 남겨주세요. 도움을 요청합니다. 위에 백산님의 논리는 이해합니다.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하고 내 돈이 아까우면 남의 돈도 소중하지요. 그런데 실상 우리들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내 자식은 소중하지만 네 자식은 덜 소중하며 내 돈은 아깝지만 네 돈은 별로 안아깝지 않습니까? 이것만 잘 지켜져도 항상 맑은 물이 흐르고 물을 사 마시면서도 의심하지 않을 텐데요, 그 작은 한 병에 500원, STC 물은 훨씬 더 비싸지만 문제는 믿을 수조차 없다는 억울함, 게다가 허위(사기)라는 절망... 진정한 "우아한 세상"(-영화 송강호 주연)이 그리운 아침나절입니다. 그래도 모두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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