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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30일 14시 52분 등록
선비의 고향 담양을 찾아서

모처럼 징검다리 휴가를 냈다. 5월 25일이 그날이다. 당연히 용인 집에 있어야 함에도 5월 24일 부처님 오신 날 광주에서 볼 일이 있어 부득이 가족과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5월 26일부터 27일까지 2기 연구원 모임을 광주에서 열기로 하였기에 이번이 전남의 볼거리를 찾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고 징검다리 휴가를 얻어 들린 고장이 담양이었다.

담양은 광주에서 동북쪽 20여㎞ 지점에 위치해 있다. 우선 광주를 떠나 최근 몇 년 전에 설립한 가사문학관을 찾기로 했다. 가사문학관을 찾는 길은 두 갈래이었으나 나는 무등산을 지나는 길을 선택했다. 이 길은 시원한 수풀 속을 달리는 코스였기에 상쾌하기도 했으나 지나면서 몇 군데 의미 있는 장소를 거칠 수 있었다. 그 하나가 충민사(忠愍祠)였다. 이 사당은 정묘호란때 안주성에서 청나라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전상의(全尙毅)장군을 모신 사당이었다. 장군이 광주태생이어서 광주 지역민의 뜻을 모아 영정과 위패를 모신 곳이다. 또 하나는 원효사(元曉寺)이었다. 이는 고찰로서 신라 문무왕때 원효대사가 기거했다는 절이다.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무등산을 뒤로하고 있어 경관이 우수했으며 제법 역사적 가치가 있어 보였다.

무등산을 뒤로하고 도착한 가사문학관은 깨끗하고 정갈하게 신축되어 있었다. 담양은 원래 기름진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존․전승해 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정신을 이어 받은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은 불합리하고 모순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며 낙남(落南)하여, 이곳 담양 일원에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빼어난 자연 경관을 벗 삼아 시문을 지어 노래하였다. 이들은 수신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는 충성하고, 국난이 있을 때에는 분연히 일어나 구국에도 앞장섰다.

조선시대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국문으로 시를 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사문학이 크게 발전하여 꽃을 피웠다.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관동별곡· 사미인곡·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충효가, 유도관의 경술가·사미인곡, 남석하의 백발가·초당춘수곡·사친곡·원유가, 정해정의 석촌별곡·민농가 및 작자미상의 효자가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어 담양을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부른다.

담양군에서는 이 같은 가사문학관련 문화유산의 전승·보전과 현대적 계승·발전을 위해 19 95년부터 가사문학관 건립을 추진하여 200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본관과 부속건물인 자미정·세심정·산방·토산품점·전통찻집 등이 있다. 전시품으로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傘仰集)과 정철의 송강집(松江集)및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있다. 문학관 가까이에 있는 식영정·환벽당·소쇄원·송강정·면앙정 등은 호남시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으며, 이는 한국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되어 면면히 그 전통을 오늘에 잇게 하고 있다.

가사(歌辭)는 시조가 단문형식을 취한 것과는 달리 고려말엽부터 나타나 3·4조 또는 4·4조의 운문(韻文)으로 된 긴 시가형식의 장문을 말한다. 특히 한문이 아닌 한글을 사용함으로써 국문학의 꽃을 피운 대표적 장르이다. 그 중 우리가 옛날 학창시절 공부했던 정철의 사미인곡의 일부를 원용해보자. 그 내용이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이 몸이 생길 때에 임을 좇아 생기니
한평생 연분이며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런가.
나 오로지 젊어 있고 임 오로지 날 사랑하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비교할 데) 전혀 없다.

임을 향한 진지한 사랑이 극에 달한다. 이는 남녀간의 절절한 사랑이라기보다 신하가 임금에 대한 지고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송강 정철이 살았던 조선은 끝없는 당쟁의 시대였다. 나는 조선의 역사를 보면서 오늘의 한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남긴 것은 미래의 창조적 발전이 아니라 오늘에 대한 역겨운 할킴이다. 서로가 뜯고 물고 상처내고 비틀었다. 서로를 위하고 보호하고 아끼고 품었던 시절을 찾을 수 없다. 상생을 위하기보다는 상극을 원했다. 우리는 늘 적대적이었고 더불어 삶을 뒤로했다.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조선의 퇴보로 이어졌고, 국운을 쇠하게 만들었다.

이를 싫어한 선비들이 바로 담양으로 모인 것이다. 그러나 가사문학의 주류 또한 나를 어둡게 한다. 그들은 임에 대한 애절함과 삶의 회의를 가사문학의 주류로 만들었다. 오늘에서 바라본 미래지향적 사고를 찾기가 힘들다. 이제 우리는 단어선택을 바꿔야 된다는 생각이 나의 폐부를 관통했다. 미래를 오게 하지 말고 미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언어의 또 다른 선택이 필요하다. 빛나는 언어를 즐길 줄 알고 찬란한 글자를 선용(選用)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사문학관을 나오면서 느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분명 그것은 가능하다.

이제 나의 무거운 발걸음은 이를 벗어던질 수 있는 시원한 가로수 길로 향하게 했다. 바로 담양의 메타스콰이어 가로수길이다. 우선 이 나무의 외양이 쭉쭉빵빵이다. 길게는 50m 이상 하늘로 뻗는다. 모양새도 타원형의 원뿔모양이다. 이 담양의 메타스콰이어 가로수 길은 2002년 '제3회 아름다운 숲 경진대회'에서 아름다운 거리 숲 부문 대상에 선정되었으며,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최우수상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메타스콰이어 가로수 길은 담양시내 국도 15번 국도와 24번 국도변에 1,600여 그루를 심어 아름다운 가로수길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광고, 달력, 사진의 대상으로 오늘의 우리 시선을 잡기에 족하다. 이곳에 들러 양쪽에 심어진 나무를 보면서 한 10분을 걸었다. 이미 국도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메타스콰이어 가로수길은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 역할을 대신했다. 가족이 모두 나와 아기자기 모여 음식을 드는 모습이며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사진찍기 장면은 여전히 이 거리의 가치를 말해준다. 이렇게 아름다운 거리가 하마터면 국도 24호선 확포장 공사당시에 사라질 뻔했다니 아찔하기만 하다.

아쉬운 점은 가로수길 내에 차량이 무질서하게 주차되어 있었고 긴 가로수 길을 도로개통을 빙자하여 두 동강으로 절단시킨 것이다. 또 하나 우리의 땅위에 이토록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만들 수 있는 나무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불쾌하게 한다. 메타스콰이어가 아니라 미루나무, 잣나무 등으로는 만들 수 없을까? 왜 하필이면 다른 나라의 나무인가? 식목 전문가가 깊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발길은 또 하나의 나무들을 보기 위해 담양 저편으로 향했다. 바로 절개와 올곧음을 상징하는 대나무 숲이 그것이다. 담양군은 이를 ‘죽녹원(竹綠園)’이라 이름 지어 관리하고 있었다. 죽녹원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총총하다. 입장료 천원을 내기 전에 운수대통에 동전을 뿌렸다. 백원이 아닌 십원짜리 동전이어서인지 대나무통에 동전이 들어가지 않았다. 올해 운수가 대통(大通)하지 않으려나.

입구를 지나 조금 오르려니 황소가 우측에 버럭 서있다. 물론 만든 소지만 크기는 실제 소 못지않다. 꼬마들이 부모들에게 태어달라고 재롱을 떨기도 하고 이미 탄 아이들은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조금 지나니 좌측에 죽마고우길이 보였다. 대나무숲에 들어서 이 길을 처음 밟았다. 처음에는 맨발로 대나무위를 걸어보았다. 건강에 좋다나. 혼자거니니 죽마고우가 생각난다. 나의 죽마고우는 두 명이다. 하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러나 더없이 좋은 친구다. 늘 내 말을 들어준다. 포숙아와 같다. 또 하나의 죽마고우는 행정관료다. 뻣뻣하기가 대나무 못지않다. 하지만 늘 나를 부드럽게 생각해주는 친구다. 그들을 생각하면서 걸었다.

이 길의 끝에서 운수대통 길과 만났다. 아마 ‘죽녹원’에서 가장 길고 큰 길이었다. 죽녹원에는 이 같은 길들이 8개가 있었다. 가장 큰 운수대통 길을 걷노라면 곳곳에 쉼터들이 있었고 영화 알포인트(감우성 주연의 전쟁영화) 촬영지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으며 시원하게 솟아오른 대나무숲 향기도 맡을 수 있다. 언뜻언뜻 보이는 죽순은 또 다른 생명을 보는 것 같다. 이틀 후 선생님을 모시고 이 곳을 다시 찾을 때 죽순에 대해 보다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대나무의 크기는 죽순의 크기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나는 작은 죽순보다 큰 죽순을 좋아한다. 하지만 인간은 죽순과 다르다. 그들은 태어나기 전에 자신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 피나는 인고(忍苦)를 다한다. 나는 아직도 내 그릇의 크기를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 그릇이 늘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항상 가능성이 나를 존재케 한다.

이런 저런 상념 속에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추억의 샛길’ 등을 지나 원위치에 돌아오게 되었다. 사랑이 변치 않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수없이 변하는 사랑에 대한 일침(一針)으로 들렸고, 추억의 샛길은 지나간 과거의 흠모(欽慕)로 보였다. 길은 여러 개지만 어느 길이든지 생각을 자아내게 하여 좋았다. 또한 길옆에 솟아있는 대나무는 쭉 뻗은 날씬함으로 인해 현대의 몸짱이지만 그 옛날 충절의 상징이요, 절개의 표상이라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담양은 조선선비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들은 주로 사림(士林)의 후예였고,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또한 나라에 대한 충절과 남아의 기개를 몸에 품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거기에는 정자들이 즐비했고, 대나무가 그곳을 대변했다. 뿐만 아니라 대나무는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의 반영이기도 했다. 벼개, 부채, 젓가락, 참빗, 담뱃대, 키(쌀에서 돌 등을 고르는 데 쓰는 도구), 복조리, 우산 등 수많은 생활도구가 대나무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러니 담양은 양반을 대변하는 선비들과 하층민을 일컫는 서민들이 대나무를 매개하여 어울리고 더불어 함께했던 융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가 담양은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담양이라는 뜻이 ‘양쪽을 담아라.’로 들리는 것이 나만의 생각이라면 좀 지나친 것일까.

‘죽녹원’을 나오면서 담양이 낳은 또 다른 볼거리로 향했다. 병풍처럼 펼쳐진 산으로 둘러싸인 ‘담양호’가 그것이다. 담양호는 영산강 유역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72년 착공하여 만 4년 만에 장성호, 광주호, 나주호 등과 함께 준공하였다. 서쪽에는 전남의 5대 명산의 하나인 추월산이 자리하고 주변에 금성산성과 강천사 등이 있어 호반유원지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이곳은 드라이브의 최적지이기도 하다. 호수 주변을 녹음(綠陰)과 더불어 숨쉬고 달리다 보면 막혔던 숨통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든다. 혹여나 연인사이면 더욱 적격이다. 둘 사이를 더욱 밀착시킬 듯 하다. 뜨거움과 시원함이 교감을 더한다.

담양호를 끼고 오른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송학민속체험박물관’을 만난다. 이곳은 골동품 수집가이자 한국 고미술협회 광주 전남지회장을 지낸 김종욱이 1970년대 말부터 수집한 2만여 점의 민속예술품을 모아 2004년 11월 개관하였다. 1층은 생활관으로 조선시대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각종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2층은 유물관과 현대사관으로 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의 토기까지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현대사관에는 1950~60년대의 교실, 문구류, 책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해주었다.

관람을 마치고 담양호 댐으로 올라와 담양호의 물속에 손을 적셨다. 물은 말이 없었다. 아주 맑지는 않았지만 세태에 버려진 모든 이물질(異物質)을 담고 있는 듯하다. 물은 그렇듯 포용력이 강하다. 그들도 언젠가는 바다로 흐를 것이다. 하지만 육지에 잠시 머물며 삶에 찌든 인간의 허름함을 감싸준다. 나는 물을 보면서 그들이 우리 인생의 허물을 씻어준다는 사실을 잘 안다. 얼굴을 씻어주며 몸을 닦아주며 때를 벗겨준다. 우리는 그들이 없으면 한시도 삶을 이어갈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 ‘물은 인생의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했던가. 나는 그 말이 진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모든 사물을 위에서 쳐다보는데 익숙하다. 그러면서 어리숙한 태도로 군림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물은 늘 아래로 흐르면서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더욱 아래로 흐를수록 힘이 쌓이면서 모두를 아우른다. 진정 인간도 아래로 흐를수록 위대해 진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나는 모여진 물 담양호의 드넓은 풍광을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를 또 한번 느꼈다. 문득 어느 가수의 ‘나는 그대만 보면 왜 이리 작아지는가.’라는 가사가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담양호를 떠나 광주로 향했다. 그때가 오후 5시 정도였다. 막 집에 도착하니 한통의 전화벨이 울렸다. 지리산의 귀자였다. 마침 그 날이 선생님을 비롯한 연구원들이 공동집필을 위해 지리산에 모였던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날 그 중 선생님을 비롯한 2기 연구원들을 광주로 초대했기에 다음날 내가 그곳으로 모시러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귀자로부터 고생을 감수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담양을 둘러본 피로감도 잊은 채 곧바로 지리산으로 향했다. 선생님이 흔쾌히 그리 오라고 말씀하셨고, 나 또한 그리운 사람들이기에 달려가 만나보고 싶었다. 도착할 즈음 거기에서는 명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고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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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30 18:30:01 *.70.72.121
진짜... 아주 기냥 <도선생, 광주에서의 일대기를 >를 한 편 써보시지요. 먼저 사내에서 대박나고 변.경에서 대통할 테니... 이어지는 다음 편도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광주로 발령나면 다 신나게 공부하는 청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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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며익
2007.05.31 08:08:27 *.55.214.10
2년전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3대가 함께 다녀온 여행이 생각나게 하네요. 죽녹원과 그 앞에 흐르는 개울의 천연방림 그리고 소쇄원...
소쇄원은 정말로 좋았습니다.
초입에 그늘지고 &#49854;한 느낌은 있었지만, 조금더 올라가면서 멋진 풍경이 펼쳐지지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길들이 또렷이 생각납니다.
모두들 감탄하면서 감상한 그 풍경.
소쇄원 바로 앞의 실개천은 그 여름 선비에게 에어컨 이상의 역할을
충분히 해 주었을 것이라 생각들더군요.
둘째 녀석이 조금 더 자라면 이번에도 삼대가 한꺼번에 움직여 볼렵니다. 도명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제는 다른 볼거리도 추가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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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7.05.31 09:36:02 *.57.36.18
써니님 잘 지냈어요.
매달 한건 정도는 쓰고 있어요. 현재 네편...
떠나면 정리해서 보관해야죠.

광주에 오면 공부보다는 놀생각이 더 날껄요.
그만큼 놀거리가 많아요. 이를 참느라 얼마나 고생하는데..

진며익님 본명 맞아요. 참 이름이 특이하네요. 그리고 초면인 것같고.
전달에 소쇄원을 들렸어요. 그 참관기를 여기에 올렸지요.
정말 좋은 곳이었고, 의미가 남달랐어요.

다음에 가면 못본 정자와 금성산성 추월산등을 들러볼 계획이예요
진며익님도 3대가 함께간다니 좋은 추억만드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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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31 09:53:57 *.75.15.205
마음만 있고 아직 정리해서 올리지 못했는데 2기 연구원 김미영님께서 책 내신 <두 번째 스무살>에서 물론 공저이기는 했지만 불과 30여 페이지 분량에 개인사와 모든 일상과 앞으로의 계획과 삶의 의미와 변.경에 대한 사랑까지 너무 간결하게 함축적으로 잘 담아내서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박직감과 감동 그리고 눈물... 충격에 가까웠어요. 분량에 비해 저자의 혼신이 그랬고 또 숨겨진 그녀의 노력과 정수에 가까운 간결함과 절제된 표현에서 그야말로 내공을 느꼈답니다.

저는 요즘 선배님의 기량을 보면서 작년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과정을 거친후에 내면에 저력이 용트림을 하며 불끈불끈 솟아나는 정력(?)-(열정으로 바꿔야 하나?)을 느낀 답니다. 선배님의 책 출간 제일 먼저 싸인은 제것으로! ㅋㅋ 뭐 어때여? 사부님 몰래 스리스리 살짝 ... 눈 감아 주실(설마 부지깽이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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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식
2007.06.01 08:09:26 *.55.214.10
진며익이라.. 내 이름에 대한 실수도 하네요.
내친김에 다음 부터는 며익으로 바꾸어 써도 좋겠네요.
저희 가족들이 남도를 좋아합니다. 맛과 멋이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저희가 살고 있는 청주에서 음식점을 가기가 겁나네요. 다음 일정에는 도명수님께서 계획하신 곳도 들러보고 싶네요.
그럼 모두 행복한 유월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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