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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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기질과 강점을 발견하는 일에 골몰해 있습니다. 연구원 공저의 주제가, ‘나의 강점찾기’이기 때문입니다. 워낙 게으르고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이라, 강점을 찾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연구원 활동을 기점으로, 오래된 독서취미가 글쓰기로 전환되지 않았다면, 정말 썰렁할뻔 했습니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살아온 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유독 의례적인 반복을 싫어하여, 황당할 정도로 마음가는대로 살아온 모습이 보입니다. 삶이 안전한 조건이기 보다 충만한 정점이기를 원했던 것같습니다. 창조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책을 통해 진취적인 사람들을 많이 접한 탓이겠지요. 유독 허위의식과 상투성을 경계하여, 사교적인 인사말 하나에도 인색했으며, 폼만 잡는 모임을 잘라냈습니다.
언어에 민감하여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등의 미련같은 것 두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마음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하는 단순의 극치, 결국 나는 원하는 것 한 가지를 얻기 위해 나머지 아홉 가지를 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은, 몰입경험에서 나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같습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흠뻑 빠져들었던 일에서 나의 강점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몰입했던 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일, 외부에서의 보상때문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만족감이 샘솟던 일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숨어있다는 전제를 해보는 것입니다.
이 방법에 적합한 인간형은 단적으로 말해서 열정적이고, 아티스트의 기질이 있는 분으로 보여집니다. 나역시 재능에 상관없이, 기질만은 아티스트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인정해야 할 것같습니다.
지난날 기꺼이 몰입하여 희열을 느꼈던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자연과의 합일, 농민에 대한 일체감, 6개월간 흠뻑 빠졌던 유화, 책읽기, 詩, 李씨 성을 가진 두 사람, 주제있는 토론하기, 그리고 지금의 글쓰기... 에 내가 들어있습니다. 그 장면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가치가 나의 중점적인 기질과 강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장면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니, 과연 내가 보입니다. 나를 단순화시켜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나의 강점이 감수성과 언어영역인 것은 고마운 노릇이나, 나의 기질이 조급증으로 정리된 것은 다분히 가슴아픈 일입니다. 좋고 싫은 것이 워낙 분명하여, 싫은 것들에게 닫아두고 있던 마음이, 좋은 것에 봇물 열리듯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지 않는 일에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천성 탓입니다. 이런 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므로, 내 결정에 후회한 적은 없고, 또 내가 벌린 일을 책임지며 살아왔습니다만, 조급증에 대해서는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듭니다.
사람이든 사업이든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일을 빠르게 진행시키는 단계에서는 오류가 드러나지 않지만, 완만한 시간의 흐름이 필요한 순간에는 정말 미숙한 면모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지요. 특히 사람과의 만남이란 어떤 경우에도 완급조절이 필요합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비즈니스든, 상대와 보조를 맞추어야 하고, 눈이 맞아야 하고, 마음이 번져야 합니다. 이럴 때 자신의 열정을 제어할 줄 모르고, 매번 직설적인 표현을 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데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마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나의 마음으로 너의 마음을 당기는 일이니까요. 당연히 조급증으로 들이대는 것보다는, 정성과 호흡조절과 시간과 기술이 유효하겠지요.
이제 갈수록 자유롭게 살고 싶어져, 전적으로 기질을 고치는 것은 어렵겠지만, 조급증 하나만은 냉정하게 보완해볼 생각입니다. 그래야 되고싶어하는 글쟁이 분야에서나, 인간관계에서 수확이 있을 것같습니다. 조심조심 살얼음판을 걷듯 정성을 기울여, 나의 분신같은 저서 몇 권, 귀한 인연 몇 사람을 길어올리고 싶습니다.
문태준의 시집 ‘가재미’ 뒷날개에 빛나는 성찰이 담겨있어 옮겨봅니다.
“허겁지겁 허천난 듯해서 사랑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결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가서 ‘얻어오는’ 마음이 필요하다. 다른 마음을 ‘얻어오는’ 것이 필요하다. 멀어지는 사랑의 뒷등을 볼 때서야 나는 그와 사귀는 동안 이것이 모자랐음을 알게 된다. 사랑을 잃은 오늘 내 마음을 보아도 다시 얼뜨고 여전히 거칠다. 머잖아 또 망실亡失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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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저는 사실 한명석님의 팬입니다^^ 진솔하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글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오늘도 점심시간 후에 잠시 들렸는데, 글도 재미있게 읽고 많이 느끼고 갑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거...그거 정말 시간이 필요한 일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종종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얻게 되기도 하고, 정성을 기울여도 못얻게 되기도 하는거 같아요. 요즘 한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사람들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저이지만 때때로 지치네요..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생각합니다. 마음을 나누는 편지도 잘 읽고 있어요. 혹시 책을 내시게 되면 알려주세요. 꼭 사볼께요^^

명석
앨리스님, 사람의 행동양식과 관계맺기 습관을 관찰하는 일이 재미있어요. 나는 내향적이고, 앨리스님은 외향적으로 보이는데, 일을 잘 저지르는 면은 같다는거죠. ^^
시간을 들이지않고 얻은 사람의 마음에 반응하는 양식에서도 기질이 드러날 것같군요. 함박눈이 쌓인 겨울에, 내가 근무하던 시골 중학교로 찾아왔던 써클 남학생 생각이 다 나네요. ^^ 아~~ 옛날이여
오리쌤님,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외롭지 않으려고, 킬링타임용으로, 구색맞추어서, 혹은 다다익선 수집용이 아니고, 명예용도 아니고, 습관도 아니고, 그저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기쁘고 의미있고, 고마운 것을 서로 알아주는 것~~
햐, 내가 썼어도 그럴듯하네요. ^^
시간을 들이지않고 얻은 사람의 마음에 반응하는 양식에서도 기질이 드러날 것같군요. 함박눈이 쌓인 겨울에, 내가 근무하던 시골 중학교로 찾아왔던 써클 남학생 생각이 다 나네요. ^^ 아~~ 옛날이여
오리쌤님,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외롭지 않으려고, 킬링타임용으로, 구색맞추어서, 혹은 다다익선 수집용이 아니고, 명예용도 아니고, 습관도 아니고, 그저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기쁘고 의미있고, 고마운 것을 서로 알아주는 것~~
햐, 내가 썼어도 그럴듯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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