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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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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30일 10시 35분 등록
초아선생님께서 '마음을 나누는 편지'에 쓰신 덧글에서 보고, 갑자기 흥이 일어 주절거려 보았습니다.
워낙 감나무를 좋아해서, 이미지가 연결이 된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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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낭개 홍씨


가을이 깊어
서리도 한 두 번은 내린 그런 계절이야
감꽃 주워 목걸이 만들던 아이가 떠나고
반짝이며 빛나던 감잎도 떨어지고
흐드러지게 달렸던 감도 다 수확했어

검은 색으로 드러난 감나무 둥치에
이제 남은 것이라곤
달랑 서 너 개뿐,
저 높이 달린 감은 까치밥 하자,
까치도 먹고 살아야지.

옆집으로 뻗친 가지에
저기 저 유독 빨갛고 수줍게 익어가는 것은
홍씨 만들어볼까
익을대로 익어
말간 속 다 보여줄 때,
잠자리망으로 살살 달래어 따는거야

아무리 별미라한들,
지낭구홍씨를 지가 먹는 놈처럼
가난한 인간은 없을꺼야

죽은듯 숨죽인 나뭇껍질 사이로
비죽비죽 비집고 나온
꽃등같던 어린 잎,
안팎으로 뒤집으며 반짝이던 잎사귀들,
천 개의 손을 받들어 햇빛을 연모하던 시절,
비린내나던 땡감을 넘어,
이제 겨우 도달한 투명함,
안팎없이 하나가 된 소통,
그 보드라운 속살을
어떻게 내 입에 털어넣겠어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줄 때
그 때
지낭개 홍씨는 완성되는거야

너에게로 내미는 팔에
오소소 돋는 소름,
조용히 달려가는 서늘한 전류,
그 때에야 비로소
지낭개 홍씨는 죽어서 살고,

나또한
나무낭개 홍씨를
받아먹을만한거야.


IP *.209.1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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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7.06.30 13:38:00 *.233.199.93
감꽃 주워 목걸이 만들던 아이가 떠나고....

어언 오십여년 너머 저쪽 유년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가을이 깊어 서리도 한 두 번은 내린 그런 계절에,
고향집 감나무 끝에 매달린 까치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지요.

시, 참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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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6.30 17:19:00 *.209.121.29
안녕하세요? 희주님.
따뜻한 공감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자꾸 뭐가 나올려고 꿈틀거리기는 하는데 ^^
막상 끄적거리면 마음에 안 들고,
진전없이 똑같은 상태가 계속되어 속이 상하네요.

그래도 진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이 싹싹 닦고
다시 컴 앞에 앉았습니다. 힘찬 오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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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6.30 17:52:18 *.48.41.28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몽골에 관한 책을 읽으려고 앉았다가 멋진 시 발견.
명석님의 감성은 시에서 물씬..
꿈틀거리는 놈, 빨리 세상으로 내보내주세요. 그 녀석도 고생할 듯 합니다. 힘찬 오후 보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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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6.30 20:04:04 *.209.121.29
은남씨의 열 여섯 번째 컬럼, 아주 멋있네요.
비즈니스 우먼으로서의 경력이 잘 드러난, 당당하고 씩씩한 글이
보기 좋아요.
글감의 영역이 무한대로 뻗어가는 느낌이군요.
그 영역을 집중탐구해보면, 도움받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우리의 영원한 탐구쟁이 다인을 비롯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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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귀
2007.07.01 08:50:48 *.201.26.201
마음을 나누는 편지를 통해 명석님의 글을 많이 접하고 있죠.
다른 연구원분들도 그렇지만, 우리 이웃과 자연의 모든 모습을 가깝게 만들어 주시는 것 같아요.

선입견인지 모르겠는데요~ 왠지 명석님하면, 진한 커피보다는 전통차 드시며,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을 연상했는데 ^^

참, 저도 韓씨인데요, 이곳에는 한씨 성을 가지신 분들이 꽤 많으신듯
(헉..이건 왠지 친근해지려는 수작 ? ㅋㅋ)
좋은 글 항상 따뜻하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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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7.01 10:43:12 *.209.121.29
그러네요. 韓씨가 그리 흔한 성은 아닌데,
귀귀님이 가세해 주시면, 우리도 패밀리 한 번 만들어 볼까요? ^^

'귀한 귀기울임'이라는 뜻이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조용히 귀기울이며 귀한 공감 보여주시는 움직임이
보기좋습니다.

오래도록 연구소의 귀한 식구로 남아주시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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