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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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랑에 대한 시 몇 편으로 답글에 대신할까 합니다. ^^
연구원 공저 주제가 ‘강점발견’이거든요. 그 원고를 다듬다 보니, 나의 기질과 취향이 아주 어릴 때부터 드러나 있었더라구요. 도대체 한 인간을 확정짓는 요인이 무엇인가 신기하기도 하고, 그처럼 드러나 있는 기질을 발견하는데 돌고돌아 몇 십 년이 걸렸다는 것이 어이없기도 했답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보는 눈도 얼추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다고 봐야 할겁니다. 사람을 볼 때 무엇에 이끌리나요, 외모? 성격? 조건? 나는 ‘언어’에 상당한 비중을 둡니다. 언어를 갖고 놀 줄 아는 사람이 매력적입니다. 언어 외에는 정호승의 시에 동조하는 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연애가 이루어지려면 보통 다음 단계를 거친다고 하네요. ^^
1. 서로 유사점을 발견한다
2. 좋은 관계가 된다
3. 자기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4.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역할 분담이 된다
5. 동심일체가 되어 생활한다
그러니, 서로를 발견하는 눈이 없다거나,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못한다거나, 상대에게 해주거나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연애가 될 수가 없는거지요. 이런 복잡한 단계를 거쳐 제대로 사랑을 해 보았든, 아니면 끝내 사랑 한 번 못 해 보았든, 전설에 의하면 ^^ 사랑의 기쁨은 이렇게 황홀하다지요.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 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다시 쓰는 戀書
정진규
사랑이여, 그렇지 않았던가 일순 허공을 충만으로
채우는, 경계를 지우는 臨界速度를 우리는 만들지 않
았던가 허공의 속살 속으로 우리는 날아오르지 않았
던가 무엇이 그 힘이었던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는
내 사랑은
송수권
저 산마을 산수유꽃도 지라고 해라
저 아래뜸 강마을 매화꽃도 지라고 해라
살구꽃도 복사꽃도 앵두꽃도 지라고 해라
하구 쪽 배밭의 배꽃들도 다 지라고 해라
강물 따라가다 이런 꽃들 만나기로서니
하나도 서러울 리 없는 봄날
정작 이 봄은 뺨 부비고 싶은 것이 따로 있기 때문
저 양지쪽 감나무밭 감잎 움에 햇살 들치는 것
이 봄에는 정작 믿는 것이 있는 때문
연초록 움들처럼 차오르면서, 햇빛에도 부끄러우면서
지금 내 사랑도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며 크는 것 아니랴
감잎 움에 햇살 들치며 숨가쁘게 숨가쁘게
그와 같이 뺨 부비는 것, 소곤거리는 것,
내 사랑 저만큼의 기쁨은 되지 않으랴.
나처럼 판단 기능이 앞서는 사람은 쉽게 사람에게 몰입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고 친밀감을 나누는 대상이라는 것을 압니다만, 참 고질병이지요. ^^ 그래서 가당치않게도 신동엽의 여성성에 공감한 적도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 -부분
신동엽
없으려나봐요. 사람다운 사낸. 어머니, 어쩌면
좋아요. 이 숱 많은 흰 가슴, 텃집 좋은 아랫녘,
꽃잎 문 입술... 보드라운 대지 누워 허송
세월하긴, 어머니 차마 아까워 못 견디겠네요.
황원 말발굽 달리던 황하기 사내 찰코 그립어요.
어데요? 그게 어디 사람이에요? 기술자지.
어데? 그건 뭐 또 사람이에요? 제 2 급 齒車라고
명패까지 붙어 있지 않아요? 어머니두.
저건 꼭두각시구, 저건 주먹이구, 저건 머리구.
별수없어요, 어머니, 저 눈먼 기능자들을
한 십만개 긁어모아 여물솥에 쓸어옇구
푹신 쪼려봐주세요. 혹 하나쯤 온전한
사내 우러날지도 모르니까.
해두 안되거든 어머니, 생각이 있어요.
힘은 좀 들겠지만 지상에 있는 모든 숫들의 씨
죄다 섞어 받아보겠어요, 그 반편들 걸.
욕하지 마세요. 받아 넣고 정성껏 조리해보겠어요.
사랑에 대해 어떤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끝난, 김수현의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가 한창일 때,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불륜에 대해 일간지에 기고를 했는데요, 살짝 놀랐습니다. 국립대학 교수치고는 상당히 현실적이고 솔직한 의견을 토로했던데요. ^^ 대략 다음의 시를 인정하는 글이었지요.
그리운 악마
이수익
숨겨둔 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홀로 찾아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窓門
그리고 우리 둘 사이
숨막히는 暗號 하나 가졌으면좋겠다.
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 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罪의 달디단
祝杯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의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 할 아픔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지라도.
숨겨둔 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머언 기다림이 하루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그
악마 같은 여자.
어쩐지 비현실적인 로망의 냄새가 좀 나지요? 김수현에 의하면 설사 이런 여자가 있다고 해도, 그다지 관계가 오래 가지는 않는다는 거지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남자 위주로 프로그래밍된 조강지처 유형은 인내심있고, 잘 믿고, 살짝 둔하기도해서 속아넘어가기까지 하면서 평생을 가지만, 악마같은 여자는 자기 감정에 너무 충실해서 어떤 허위의식도 봐 넘기지 않으니까요.
잠깐 다른 얘기지만, 그래서 김수현은 그 드라마에서 단순하게나마 두 종류의 여자에 대해 말한 것 같아요. 누구나 생긴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얘기와 함께요. 당신은 어떤 종류의 여자인가요, 또 당신은 어떤 종류의 여자를 선호하나요? ^^
이제 한 시절 살아낸 사람들을 위해 시 두 편을 골라봤습니다.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선연한 욕망이 시인의 감성 안에서 절절합니다. 또한 평생의 知己에 대한 갈망도 감동적입니다.
억수같이 퍼붓던 비가 그쳤군요. 비 때문에 시작한 글이니, 저도 서둘러 글을 마쳐야 할 것같네요. 오늘도 변함없이 살아내느라 수고한, 모든 순수한 영혼에게 이 글을 보냅니다. ^^
뼈까지 부딪쳐본 사랑
김사인
눈감고 내 눈 속 희디흰 바다를 보네
설핏 붉어진 낯이 자랑이었나 그대 알몸은
그리워 이가 갈리더라 하면 믿어는 줄거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손톱만 물어뜯었다 하면 믿어는 줄거나
내 늙음 수줍어
아닌 듯 지나가며 곁눈으로만 그댈 보느니
어쩔거나
그대 철없어 내 입 안엔 신 살구 내음만 가득하고
몸은 파계한 젊은 중 같아 신열이 오르니
그립다고 그립다고 몸서리치랴
오 빌어먹을, 나는 먼 곳에 마음을 벗어두고 온 사내
그대 눈부신 무구함 앞에
상한 짐승처럼 나 속울음 삼켜 병만 깊어지느니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 다오’ 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다하여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눈감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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