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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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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일 15시 04분 등록

어제가 올해의 꼭 절반이었지요. 한 해가 다 지나간 다음에 망년회를 하느니, ‘반년회’를 한다면 나머지 반년을 조금 더 아름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저마다 놓인 자리에서 저마다의 관심사를 껴안고 뒹구는 모습을 보노라니, 사람살이가 참 정겹게 느껴지네요. 좀 더 살펴본다면, 인생에도 주기가 있고, 인생에서 부딪칠 수 있는 문제들을 카테고리화 할수도 있겠다 싶네요. 그러니 혹시 지금 문제가 있다면 거기에 너무 코를 박고 있기보다, 두 어 발 뒤로 물러서 보면 훨씬 여유롭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것도 같네요.

인생을 여유롭게 살기위한 길동무의 하나가 詩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언어의 가장 창의적인 사용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시적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만큼 익숙해진다면, 머릿 속에 휴대용 우주를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시가 폭넓고 근원적이며 포괄적이라는 얘기일거에요.

각설하고, 그토록 긴 모색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모호하다고 힘들어하는 청춘을 보며, 이 글을 쓸 마음이 생겼답니다. 이런 시를 전해주고 싶었지요.



詩創作교실
정현종

내 소리도 가끔은 쓸 만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피는 꽃이든 죽는 사람이든
살아 시퍼런 소리를 듣는 거야
무슨 길들은 소리 듣는 거보다는
냅다 한번 뛰어보는 게 나을걸
뛰다가 넘어져보고
넘어져서 피가 나보는 게 훨씬 낫지
-중략-


젊다는 것 자체가 모호함인 것같아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에 지르는 행복한 비명 같은 거지요. 나이든다는 것은 조금씩 옵션이 축소되는 과정이거든요. 그러니 좁혀진 선택이 소중할밖에요. 청춘... 정작 당사자들은 좋은줄도 모르고, 허비하기도 하고 투정도 부리지만,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추억이지요. 두 번 다시 그 격렬한 열정의 시기가 오지 않으리라는 예감 때문에 소중하기도 하고, 그 시기에 걸맞는 치기를 부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알싸해지기도 하는 회한이지요. 당신은 어떤 청춘을 보냈나요?



수은등 아래 벚꽃
황지우

社稷公園 비탈길,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
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
어떤 죄악도 아름다워
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
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
-중략-




동 백
문인수

섬진강 가 동백 진 거 본다
조금도 시들지 않은 채 동백 져 비린 거
아, 마구 내다버린 거 본다
대가리째 뚝 뚝 떨어져
낭자하구나.
나는 그러나 단 한번 아파한 적 없구나
이제 와 참 붉디붉다 내 청춘,
비명도 없이 흘러갔다




청춘을 보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요. 꿈결같은 신혼기간이 지나면, 조금씩 서걱거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성격 차이일수도 있지만, 본질적인 남과 여의 차이일수도 있지요. 남과 여 사이에 관계에 대한 비중과 접근방법에 차이가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니 너무 내 스타일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심리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이 될수도 있습니다. 아, 이런 시를 쓰는 시인도 있군요. 우리 여자들에게 많이 참고가 되지요? ^^




애마부인 약사略史
권혁웅

1대代
고개를 좌우로 꼬며 말을 달리는 고난도 기술을 선보인 안
소영<1982>에 관해선 이미 말한 바 있다 침대에 누운 그녀가
말 탄 꿈을 꾸는 것인지, 말을 모는 그녀가 침실 꿈을 꾸는 것
인지, 중3이 다 말할 수야 없었지만, 동시상영관은 돌아온 외
팔이와 안소영 때문에 후끈 달아올랐다

2대代
오수비<1983>는 바다로 갔다 그녀는 젖은 몸으로, 몰려오는
파도를 다리 사이로 받으며, 파도보다 큰 소리를 지르곤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靑馬의 시구를 그
때 배웠다 고1때 일이다

3대代
김부선이 말죽거리 떡볶이 집에서 권상우를 유혹할 때<2004>
나는 기절할 뻔 했다 나도 권씨지만 그녀를 피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씨름선수 장승화의 들배지기에 자지러지는
그녀<1985>를 본 고3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그렇다
-중략-



상당히 리얼하고 재미있지요? 시 안에 우리네 삶의 양상은 모두 들어있는걸요. 적성에 맞지않는 직장생활을 영위하느라 힘든 회사원의 한계상황이 저절로 떠오르는 작품을 하나 볼까요. 이 시를 읽으며 어찌나 절박한지 가슴이 아팠답니다.



마음
백주은

비끄러매지 말아라, 나를
나는 개가 아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두 귀 바짝 세우고
소리나는 곳을 향해
으르렁거리기도 하고,
나지막이 짖기도 하고,
때로는 사납게
짖을 때도 있지만
나는 개가 아니다.
-----중략-----
비록 밤이 아닌 낮에도
빛 안 드는 음지에서
개처럼 서성이다
물리기도 하고
돌멩이를 맞거나
밟힐 때도 많지만,
밟혀서 꿈틀거리며
신음할 때도 많지만,
지렁이가 아닌 것처럼
나는 개도 아니다.
개가 아니니까 비끄러매지
말아라, 나를....



그런가하면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며, 가끔은 매섭게 결단하고 결연하게 혼자 걸어가야 함을 역설한 이런 것도 있습니다. 처세술로 읽어도 좋을듯 싶어요.



한 번 등 돌리면
이희중

1
등 돌린 후 다시 돌아보지 마라
등을 보이고 걷다가 다시 뛰어오는 일은
삶의 모독, 삶은 장난이 아니며
영화가 아니니까
등 돌리기 전에 가능한 한 신중하라
그러나 지나치게 시간을 끌지는 마라
적어도 시간을 끄는 인상을 적들에게 주지 마라
어차피 후회의 여지 없는 완전한 선택은 없으니까
잊지 말 것은, 후회 때문에 엎어지지 않겠다는
필생의 각오
자신과 나누는 피 흐르는 약속
가능한 한 냉정하고 신속하게 결정하고
필요하면 즉각 등을 돌려라, 영원히

2
어두워지면 누구나 혼자로 돌아가듯
언젠가 우리의 어깨동무도 풀어야하고
오늘의 다정한 말과 손길은 끝이 있다네
그러므로 참과 거짓을 가리는 일은 쓸모가 없지
우리는 얼마나 얇은 얼음 위에서 봄을 맞고 있는 것이냐

3
지금까지 손가락 숫자도 못 되는 여자들을 사랑했으나
아무도 오늘 내 전화번호부에 남아 있지 않다
또한 내 손가락 숫자 조금 넘는 사람들을 존경했으나
마음을 다해 고개 숙일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그들과 사이에 고운 말과 웃음은 허비되었다
이빨 숫자 정도 되는 사람들과 깊이 사귀었으나
돌아보면 벌레 먹지 않거나 덧씌우지 않은 관계는 남아있지 않다
현재 생존하는 사람 가운데 그리운 사람은 없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살아보니, 인생.... 살아볼만한 것같아요. 더욱이 인생의 후반부에는 전반부와 아주 다르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싶네요. 사회적인 책무 때문에 숨겨져있던 정체성 가운데 가장 나다운 것을 하나 발굴해내는 거지요. 요즈음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오감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에요. 이 느낌을 표현해낼 도구를 개발해놓지 않은 것이 탈이지요. 그럼 하나 또 배웠다 치지요, 뭐. 누군가 잘 정리했듯이, “인생은 열정 만으로는 안된다. 오기가 필요하다.”

70년대의 전설적인 시인 김지하의 전설적인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 것이지만, ‘민주주의’ 자리에 내 절박한 목표를 대입해서 읽으면, 뜨뜻한 것이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느낌이 들어요. 주술적인 마력이 있는 것같아요. 하루에 한번씩 읽으면서, 의지력 키우는 의식으로 만들어볼까요. ^^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루라기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올해의 절반이 새롭게 시작되는 주입니다. 모두가 놓인 자리에서 행복하시고, 최선의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즐겁기 바랍니다. 그래도 힘들 땐, 이런 시도 있지요. 우리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지 생각해보며, 오늘도 좋은 하루~~



사람
이생진

어떤 사람은 인형으로 끝난다
어떤 사람은 목마로 끝나고
어떤 사람은 생식으로 끝난다
어떤 사람은 무정란으로 끝나고
어떤 사람은 참 우습게 끝난다
IP *.209.119.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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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7.02 15:12:33 *.145.231.159
잘 읽었습니다.
반년회 준비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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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7.02 16:09:16 *.48.41.28
저도 시 한수 추가요~

누우면 끝장이다.
앓는 짐승이
필사적으로
서 있는 하루

오늘도 이 세상의 그런 하루였단다, 숙아.

순간의 꽃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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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02 22:25:41 *.72.153.12
이상의 '오감도'가 지난주 후반부에 맴돌았습니다.
13명의 아해가 무섭다고 했는데, 13인의 아이가 느끼는 무서움은 모두 다를 것이고, 그것을 짤막한 한 문장에 무서움을 다 담기엔 역부족인듯하다는 생각이... 그래서 내 청춘도 한마디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글이 짧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버린 주였습니다.
다시 태어나고 싶고, 살아있음을 감사하는 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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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환
2007.07.03 11:39:10 *.143.170.4
....마치 강의실에 앉아,,, 기다리던 강의를 받은 느낌이에요,,,,,,, 상쾌합니다~ 맛깔스럽고 살아있는 수업,,, 뵌적은 없지만, 좋은 글,, 항상,,잘 읽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배움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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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7.07.03 15:00:04 *.57.36.34
구선생님은 경영의 시인이 되신다고 하셨는데
한선생님은 변화의 시인이 되시려나요?

생의 한가운데서 바라본 시이기에
감이 새롭습니다. 그러나 저의 코드는 여전히
젊음입니다. 그러니 시가 난해할 수 밖에..

좋은 시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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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귀
2007.07.04 12:08:11 *.244.221.3
학창시절..詩 라 하면 외우기에만 바빴죠.시안에 들어있는 의미도 참고서에서 우리네 의견과는 상관없이 빼곡히 시험을 위해, 자세히도 적혀 있었죠. 당연히 외웠었구요. 그래서 인지, 시를 떠올리면 누가 풀이를 해주지 않으면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문학이 아닌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친절히 풀어주시니 너무 고마워요. 웃음질 수 있고,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었네요.

명석님은 국어를 가르키셨나요? ^^ 명석님의 시집을 기대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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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7.04 13:07:03 *.99.120.184
누군가 말했죠. 이 세상에서 가장 거리가 먼 곳은 머리와 가슴 사이라고. 명석님의 글은 그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고 가네요.

요즈음 저는 그 거리의 실감이 처절합니다.
특히 지난 세월 저에게 시는 하늘에 뜬 구름이였지요.
이번달 연구원과제가 자신찾기여서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하는데 세월의 아쉬움이 크네요.
깊고 넓어지는 글의 세계를 느끼며 벌어진 간격을 메우려고 노력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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