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時田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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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31일, 나. 김도윤은 죽었다.
새파란 새벽. 잔잔한 수면 아래. 아침의 기운이. 술렁이는 순간. 모든 게 또렷해졌다.
한발 한발. 걸어온 내 삶의 문을. 탁 닫고. 뒤돌아선 순간. 나보다 먼저 날아오른. 그들을 따라. 허공에 발을 내딛는 순간. 눈 앞에 뭔가. 뜨거운 것이. 어른거렸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데. 꿈꾸던 것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안다. 최선이라고 속여왔던 이 길이. 결코 최선이 아니었음을. 진짜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진짜가 아니었음을. 안다. 이제 내가 아닌. 모든 것을 벗어버린 지금. 중요한 것은. 누구의 말도. 누구의 시선도 아닌. 그 누구의 그럴듯한 사상도. 종교도 아닌. 바로 온전한 자신임을 안다.
난 안다. 눈 질끈 감고. 떠나 보냈던 것들. 아쉽지만 슬쩍 놓아. 흘려 보냈던 것들. 다른 사람의 일처럼. 별 것 아니라며. 툭툭 털어버렸던 것들. 가슴 아프지 않다며. 애써 잊으려 했던 일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음을. 내가 가고 싶었던 길. 하고 싶었던 것. 내 영혼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원하는 것들. 그것들이야말로 진짜였음을.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음을 안다.
그리고. 난 안다. 내가 내 길을. 가지 못한 책임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님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어떤 누구도 아닌, 온전히 나만의 몫임을. 난 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가졌는데도, 행복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어리석은 염려 때문이었다. 정녕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했는데도. 잘해내지 못하면 어떡할까, 하며 불안해하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작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안하다.
아버지의. 이제는. 조금 힘이 빠진. 구부정한 어깨를. 한 번도 주물러 드리지 못했다. 평생. 삶의 무게를 짊어졌을. 외로운 그 사람을 난 한번도 안아 드리지 못했다. 늘 최선의 삶을 살지 않는다고. 마음 속에서 비난하기만 했을 뿐. 한번도 그의 실패를. 진심으로. 위로해 드리지 못했다. 엄마의 갈라진 손과 발을 못 본 척 했다. 손 한 번 따뜻하게 잡아드리지 못했다. 한 번도 다정한 목소리로 ‘사랑한다’ 말해주지 못하고. 늘. 퉁명하게. 시큰둥하게. 혹은 악을 쓰며. 그를 대했던 날들이 많음이 가슴 아프다. 그리고.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아내를 남겨두고. 먼저. 떠나는 게. 미안하다.
친한 사람들과.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지 못했다.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마음을 보여주지 못했다. 행동하지 못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도.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행동 하나. 보여 주지 못했다. 차갑게 대했다. 그게 너무 속상하다. 이제 말할 기회도. 행동할 기회도. 남아있지 않음이. 너무 안타깝다.
만약. 내게 약간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나는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아침. 마음 속의 숲길을 지나, 여기도 저기도 아닌. 마음과 마음 사이. 모든 것이 멈춘 듯. 조용한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작은 강이. 천년 전의 바다처럼 유유히 흐르고.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오백 년 된 아름드리 참나무처럼 당당하게 서 있는. 숲으로 둘러 쌓인 동그란 공터에. 낡고 작은 집 한 채와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나무 그루터기가 앉아있는.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조용히 작은 집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면. 또박또박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한 아이가 서 있다. 아이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 보다. 영원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오려낸 종이 속. 까만 밤하늘 같은 눈으로 말하겠지. ‘내가 바로 너구나……”
우린. 집 옆 나무. 그루터기에 나란히 앉아. 아무 말도 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볼 것이다. 나무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의 결을 느낄 것이다. 숲 위. 동그란 하늘 위로 지나가는 구름의 향기를 맡을 것이다. 따뜻한 햇살의.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할 것이다.
그럼. 아이가 “이제 괜찮아.”하고 내 등을 톡톡 두드려 줄지도 모른다.
우린 춤출 것이다. 둘이서. 한바탕 야단법석을 피울 것이다. 온 숲이 떠나가도록. 마음껏 뛰어 놀 것이다. 같이 뒹굴 것이다. 아! 하고 고함지를 것이다. 신나게. 신나게. 노래 부르고. 마구마구 땀 흘릴 것이다. 우리가 맨 처음 보았던 영화. 킹콩을 다시 볼 것이다. 집 안 가득 낙서하고. 그림 그릴 것이다. 먹고. 마실 것이다. 아직도 가슴을 벌렁거리는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보며 물을 것이다. 네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리곤 드러누워 별이 돋아나는. 밤 하늘을 볼 테다. 파도소리 같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별의 운행을 가만히 지켜 볼 테다. 그들의 나지막한 이야기를 들으며. 스르르. 잠들 것이다. 한숨 푹 자며. 내 생의 마지막 꿈을 즐길 것이다.
꿈 속에서 난. 그들을 만날 것이다. 돌아가신 외삼촌과 함께. 언젠가 같이 바라보던. 오전 11시의.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볼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손을 잡아드리고.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이 먹을 것이다. 아내와 손을 꼭 잡고. 산책 할 것이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유쾌하게 술 한잔 할 것이다.
새벽 이슬과 함께 눈을 뜨면. 난 내가 누구인지. 조금은 더 잘 알게. 될 것 같다. 아직도 가슴은 아플 테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 강둑에 매여있는 나룻배를 풀어 떠날 것이다. 흘러가는 강과 함께. 생의. 마지막 풍경들을 눈 안 가득. 담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그렇게 흘러가다.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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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새벽. 잔잔한 수면 아래. 아침의 기운이. 술렁이는 순간. 모든 게 또렷해졌다.
한발 한발. 걸어온 내 삶의 문을. 탁 닫고. 뒤돌아선 순간. 나보다 먼저 날아오른. 그들을 따라. 허공에 발을 내딛는 순간. 눈 앞에 뭔가. 뜨거운 것이. 어른거렸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데. 꿈꾸던 것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안다. 최선이라고 속여왔던 이 길이. 결코 최선이 아니었음을. 진짜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진짜가 아니었음을. 안다. 이제 내가 아닌. 모든 것을 벗어버린 지금. 중요한 것은. 누구의 말도. 누구의 시선도 아닌. 그 누구의 그럴듯한 사상도. 종교도 아닌. 바로 온전한 자신임을 안다.
난 안다. 눈 질끈 감고. 떠나 보냈던 것들. 아쉽지만 슬쩍 놓아. 흘려 보냈던 것들. 다른 사람의 일처럼. 별 것 아니라며. 툭툭 털어버렸던 것들. 가슴 아프지 않다며. 애써 잊으려 했던 일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음을. 내가 가고 싶었던 길. 하고 싶었던 것. 내 영혼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원하는 것들. 그것들이야말로 진짜였음을.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음을 안다.
그리고. 난 안다. 내가 내 길을. 가지 못한 책임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님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어떤 누구도 아닌, 온전히 나만의 몫임을. 난 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가졌는데도, 행복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어리석은 염려 때문이었다. 정녕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했는데도. 잘해내지 못하면 어떡할까, 하며 불안해하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작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안하다.
아버지의. 이제는. 조금 힘이 빠진. 구부정한 어깨를. 한 번도 주물러 드리지 못했다. 평생. 삶의 무게를 짊어졌을. 외로운 그 사람을 난 한번도 안아 드리지 못했다. 늘 최선의 삶을 살지 않는다고. 마음 속에서 비난하기만 했을 뿐. 한번도 그의 실패를. 진심으로. 위로해 드리지 못했다. 엄마의 갈라진 손과 발을 못 본 척 했다. 손 한 번 따뜻하게 잡아드리지 못했다. 한 번도 다정한 목소리로 ‘사랑한다’ 말해주지 못하고. 늘. 퉁명하게. 시큰둥하게. 혹은 악을 쓰며. 그를 대했던 날들이 많음이 가슴 아프다. 그리고.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아내를 남겨두고. 먼저. 떠나는 게. 미안하다.
친한 사람들과.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지 못했다.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마음을 보여주지 못했다. 행동하지 못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도.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행동 하나. 보여 주지 못했다. 차갑게 대했다. 그게 너무 속상하다. 이제 말할 기회도. 행동할 기회도. 남아있지 않음이. 너무 안타깝다.
만약. 내게 약간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나는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아침. 마음 속의 숲길을 지나, 여기도 저기도 아닌. 마음과 마음 사이. 모든 것이 멈춘 듯. 조용한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작은 강이. 천년 전의 바다처럼 유유히 흐르고.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오백 년 된 아름드리 참나무처럼 당당하게 서 있는. 숲으로 둘러 쌓인 동그란 공터에. 낡고 작은 집 한 채와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나무 그루터기가 앉아있는.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조용히 작은 집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면. 또박또박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한 아이가 서 있다. 아이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 보다. 영원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오려낸 종이 속. 까만 밤하늘 같은 눈으로 말하겠지. ‘내가 바로 너구나……”
우린. 집 옆 나무. 그루터기에 나란히 앉아. 아무 말도 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볼 것이다. 나무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의 결을 느낄 것이다. 숲 위. 동그란 하늘 위로 지나가는 구름의 향기를 맡을 것이다. 따뜻한 햇살의.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할 것이다.
그럼. 아이가 “이제 괜찮아.”하고 내 등을 톡톡 두드려 줄지도 모른다.
우린 춤출 것이다. 둘이서. 한바탕 야단법석을 피울 것이다. 온 숲이 떠나가도록. 마음껏 뛰어 놀 것이다. 같이 뒹굴 것이다. 아! 하고 고함지를 것이다. 신나게. 신나게. 노래 부르고. 마구마구 땀 흘릴 것이다. 우리가 맨 처음 보았던 영화. 킹콩을 다시 볼 것이다. 집 안 가득 낙서하고. 그림 그릴 것이다. 먹고. 마실 것이다. 아직도 가슴을 벌렁거리는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보며 물을 것이다. 네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리곤 드러누워 별이 돋아나는. 밤 하늘을 볼 테다. 파도소리 같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별의 운행을 가만히 지켜 볼 테다. 그들의 나지막한 이야기를 들으며. 스르르. 잠들 것이다. 한숨 푹 자며. 내 생의 마지막 꿈을 즐길 것이다.
꿈 속에서 난. 그들을 만날 것이다. 돌아가신 외삼촌과 함께. 언젠가 같이 바라보던. 오전 11시의.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볼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손을 잡아드리고.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이 먹을 것이다. 아내와 손을 꼭 잡고. 산책 할 것이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유쾌하게 술 한잔 할 것이다.
새벽 이슬과 함께 눈을 뜨면. 난 내가 누구인지. 조금은 더 잘 알게. 될 것 같다. 아직도 가슴은 아플 테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 강둑에 매여있는 나룻배를 풀어 떠날 것이다. 흘러가는 강과 함께. 생의. 마지막 풍경들을 눈 안 가득. 담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그렇게 흘러가다.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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