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꾸는 간디 오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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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몽골의 시골분의 초청을 받아 그곳에서 감상을 적은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글입니다.
나는 지금 진짜 초원속에 있다. 지금 내 머리 위에는 흡사 행글라이더의 움직임과 같은 매 한 마리가
바람을 벗삼아 활강을 자유자재로 하고 있다. 바람의 흐름을 교묘하게 타는 녀석의 솜씨가 가히 부럽
기까지 하다. 지금 나는 초원의 산 중턱에 앉아 좀 전에 있었던 게르(몽골의 텐트식 가옥) 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 자연속에서 보이는 게르는 일품이다. 지금 나는 한마디로 평화에 잠겨 있다.
메모를 하고 있는 지금 내게 달라 붙는 파리조차도 시원한 바람의 촉감앞에서는 그저 즐겁고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물론 파리 보다 큰 소도 말도 이 드넓은 초원의 작은 하나의 구성원일 뿐이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만끽하고 있다.
갑자기 내 앞에 언덕을 자유자재로 말 타고 넘나드는 몽골 청소년의 순박한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에겐 추가된 또 하나의 삶의 모습이 생겼다. 바로 이 넓고 푸른 초원을 말과 함께 마음껏 가로 지르는
그림이다. 시원한 바람이 내 살을 비껴가면서 내 땀을 씻기고 말과 하나가 되어 달리는 드넓은 초원의
느낌은 생각만 해도 가슴을 터지게 할 것 같다.
염소떼와 양떼가 멀리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감동의 눈물이다.
이 깨끗하고 맑고 평화로움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내가 그것을 즐길 줄 앎에 감사하는 감동의 눈물이었다.
게다가 주위에는 내가 의식해야 할 것은 눈꼽만큼도 없다. 오직 자연속의 나일 뿐이다.
아득히 염소와 양떼 그리고 그 속에 소의 울음소리가 섞여 나의 그런 감동을 더욱 더욱
추가하고 있다.
저녁 6시임에도 따가운 햇살이 내 얼굴을 때리지만 바람의 시원함 앞에서는 베겨나지 못한다.
그들의 움직임은 길다란 점선이 이동하는 것 같이 보인다. 내 머리 윗산에서는 아까 그 말탄
청년이 염소떼를 몰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모든 소리가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평화의 소리다.
박해조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자연속에서 '라'음이 가장 듣기 좋은 음이라고 하는데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모든 소리는 "라"음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냥 초원의 풀밭에 눕는다. 구름이 바로 내 앞에 안개처럼 피어있다.
이 얼마나 황홀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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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나의 그날 짧막한 메모였습니다.
저는 바로 초원의 그 앞쪽에 있는 보다 높은 산을 올랐습니다. 산 멀리에는 전나무가 서있지만
그 아래에는 그냥 산에 풀이 죽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과는 전혀 개념이 다릅니다.
오르고 올라 아래에서 정상으로 보이는 곳에 도달하니 고곳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넓적한 바위가 준비되어 있어 그곳에 앉아 저 멀리 동료들의 얼굴도 구분 안되는
게르를 바라다 봅니다. 말과 양과 염소 그리고 소를 쳐다 봅니다.
그들은 마치 움직임이 없는 한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평화로움이 가슴에 퍼집니다. 마치 내가 신선이 된 듯이 허세를 부려보기도 합니다.
역시나 시원한 바람이 저의 벗입니다. 햇살은 아직도 따갑습니다.
돌연히 혹시 저 숲에서 늑대가 나오지 않을까 염려가 약간 됩니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그제서야 떠오릅니다. 이런 곳에서 양치기 소녀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눈을 감고 바람과 나의 위치를 내 세포에 가득 가득 담습니다. 이 감격을 담습니다.
이런 생생함을 표현한 그림을 사야겠다는 생각도 또한 강렬하게 저를 유혹합니다.
뛰어 내려갑니다. 구르면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위험이 있어 그러진 못함이
아쉽습니다만, 그러나 숨을 헉떡이면서 뛰는 것도 이곳에서는 너무나 즐거움입니다.
금새 게르에 도착합니다. 동료들과 게르의 시골 몽골인들이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정겨운 인간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염소와 양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우리를 붙잡습니다.
보뜨라고 하는 염소요리는 허륵헉이라고 불리는 양요리와 요리 방법이 같습니다.
고기의 특징은 양보다는 질겨 씹는 재미가 있고 양고기와 다르게 냄새가 역하지 않아
대부분의 한국사람에게 맛있는 묘미를 제공하는 요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르 안에서 커다란 세수대야에 듬뿍 담긴 양고기를 그냥 손으로 잡고 물어 뜯습니다.
그 맛이 너무나 일품입니다. 거기에 선물로 드린 보드카를 돌립니다.
술잔을 돌리는 것은 몽골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역시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드넓은 자연속에서의 감격과 훈훈한 인정속에서 그날의 하루는 마감됩니다.
이곳에 오기까지는 울란바타르에서 6시간 돌아갈때는 4시간에 걸린 긴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은 고될지라도 마음은 충만함으로 가득찼기에 몸도 그다지 지쳐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졸음만이 밀려올 뿐입니다.
그분들의 손님 대하는 모습은 떠올리기만 해도 감격입니다.
특히 수줍어 하던 바야갈마(자연이라는 뜻의 몽골 이름)라는 몽골 어린 아낙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녀는 정말 자연 그 자체입니다. 말을 몰고 양을 모는 그녀의 솜씨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제게는 신비 그 자체 입니다.
그녀는 우리와 헤어질 때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 옛날 도전과 지구탐험대라는 일요일에 하는 오지 탐험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된 듯 합니다.
헤어짐의 진한 슬픔이 가슴을 박찹니다.
몽골의 자연은 그 자체로 제게 큰 영감을 줍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신과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음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살아있음이 이처럼 축복인지를 깨닫습니다.
2007. 7. 9
몽골 울란바타르 IT 대학 3층에서
출처 : 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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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이웃
부럽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몽골 초원에서 님과 같은 멋진 경험을 할 것입니다. "꿈꾸는 간디" 이름에 끌려 클릭했습니다. 간디는 제가 만델라. 마더 데레사 등과 더불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분입니다. 벤 킹슬리가 주연한 간디는 상상속의 간디의 일생을 너무도 생생하게 화면으로 보여준 명화였습니다. 어쩌면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분이 간디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몽골사람들을 가끔 접할 기회가 있어서 그들의 말인 "셈베노" "오뜨르뜨고롱호따" "허즈니다라" 등 몇 마디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몽골에서는 "무지개나라"라고 한다지요? 꿈의 나라...저에게는 몽골이 무지개나라. 꿈의 나라인데말입니다.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 귀국후 힘들 때 에너지원으로 꺼내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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