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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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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8일 09시 55분 등록
어렸을 적이다.
초등학생이었을래나 그러면 아주 한참 어렸을때의 일인데 나는
조숙했나보다.
아버지도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고
외삼촌과 외숙모도 그랬다.
지금은 형편없지만 초등학생이었을때 나는 제법 글을 잘 쓰는 아이로 알려졌다.
가끔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나는 글을 잘 “지어내는”아이였다.
큰외삼촌은 화가가 꿈이었는데 형편상 선생님이 될 수 밖에 없었는데
꿈을 접지 못하고 계속 그림을 그리셨다.
내게 그림과 관련된 재능이 있다면 엄마와 외삼촌으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자일거라고
생각한다.
따 로 미술교육을 받진 못하셨지만 엄마는 타고는 색채감각을 가지셨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우리는 아주 세련되고 화려한 이불을 통해
미적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엄마는 늘 내게 “너도 학교선생님이 되면 얼마나 좋겠니... 그래서 동시도 쓰고 책도 내고 그렇게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니” 하고 말씀하셨다.
근데 나는 그게 마땅치 않았다.
왜 그랬을까?
어린 마음에 학교선생님이면서 그림그리는 삼촌이 예술가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안정된 밥벌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그 작품속에 진실성이 담겨있지 않다는 편견을 아주 어릴 적부터 갖고 있었다.
예술가는 가난해야하고
그래서 진정성이 담겨있다는
그런 편견이 왜 생겼을까

또 한편으로는 엄마가 "네가 선생님이 되면 얼마나 좋겠니 ...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훌륭한 선생님이 되면 얼마나 보람있겠니?"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결국 나는 엄마가 원하는 학교선생님이 되지 못했다.
내 대신 아버지는 정년퇴임을 하시기 전에 작은 동시집을 두권 내셨다.

밥벌이에 늘 허덕거리면서 살다보니
취미라는 것에 마음을 쏟을 겨를도 없었지만
그 취미라는 것도 그랬다.
내가 아는 한 초등학교여선생님은 취미가 로맨스소설읽기였다.
나는 그가 왜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읽지 않는지가 늘 궁금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문화센타를 순례하면서 수채화도 배우고 도자기도 배우고
비즈공예도 배운다.
내가 아는 한 중학교 국어선생님은 비즈공예에 아주 빠져서 스승의날 즈음에 늘
공들여 만든 시계나 악세사리를 아이학교선생님께 선물한다.
한의대 다니면서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하고 독립영화워크샵에 참가하고 졸업하고 나서는 음악치료대학원에 다니는 동생도 있다.
물론 이들이 다 같은 경우는 아니니 한 마디로 말할 순 없다.
지금은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래도 양보가 안 되는 건
한의대를 다니면 최고의 한의사가 되기위해 공부하고 애쓰고 해야는 거 아닌가
국어선생님이면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 고르고 읽기에도 벅찬거 아닌가
그런 생각들이다.

돌아보니까 나는 한 길만을 죽어라고 가서 다른 어떤 것도 쳐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다른 것들을 쳐다보기에는 자신이 빠져있는 무언가가 너무나 재미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그러니 늘 나는 이모양으로 변변한 취미하나 없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의 기질이면서 성격이기도 한 것인가?
사랑이라는 것도 운명적인 빠져듬만이 진실한 것이라고 믿고
직업이라는 것도 그것에 올인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예술가는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삶을 멋있다고 말하고....

그래서 건강하게 상식적으로 적당한 밥벌이와
적당한 취미생활을 균형적으로 조화시킬 줄 모르는 ...

글을 쓰다보니 이상한 길로 빠졌다.
다시 고치지는 못하겠다.
IP *.175.13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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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
2007.09.08 09:58:35 *.175.135.174
글쓰기의 힘이라는 것이 그런가보다, 글은 정리가 되지 못했지만 쓰고보니 생각은 정리가 많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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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7.09.09 10:50:24 *.131.127.35
그렇죠,,, 선생님!
가장 올바른 생각이 가장 평범하고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또 다시 생각하게됩니다.

남과 다름을 추구하면서도 안전을 위해 평범함이라는 보편성뒤에
숨어있는 사람들,,, 그래서 평범함은 그 안에 숨겨진 참된 힘을
잃고 비범함을 추구하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도피처로 전락하는
그런 곳이 되어 버린듯 하다는 생각을 가끔씩 했었습니다.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 않아도
선생님의 글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이 항상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고집도 있으시고...^^
마음이 닿는 글. 나를 돌이켜 반성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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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9.09 10:50:27 *.209.110.33
동생 멋있네요.
한의대를 선택한 것이 체험과 성찰을 거친 최종적인 선택이라면,
나경씨의 의견이 맞지만,
우리는 언제까지나
많은 것을 회의하고 탐구하는 길 위에 서 있잖아요.

영화에 대한 심취와 음악치료로 연결되는 부분에서
동생의 모습이 보일듯도 하네요.

계속해서 오지랖만 넓히고,
뭐 한 가지 오래 하는 것이 없다면 문제겠지만,

나다운 것을 찾아가는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 속에서 나경씨의 기질과 욕구를 읽을 것도 같네요.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는 완고함과,
한 분야에 집중해서 괄목할만한 성취를 하기 원하는 바램...

엄격한 기준과 범생이기질이
천상 '선생님'인 것 같네요. ^^

그래도 나는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는 선생님들이
훨씬 여유있고 이해심있는 교사가 될 수 있다고
한 표 던지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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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9.09 10:51:52 *.209.110.33
후후~~
성렬님과 동시에 같은 곳에 머물고 있었네요.
편안하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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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7.09.09 11:19:11 *.131.127.35
네!, 한 선생님!

그렇군요... 깊이있는 교사, 혹은 폭넒은 교사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T 형 인간이라는 개념이 생각나는군요...
'전문가의식을 갖되 인간성을 잃지 않는' 으로 은유되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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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
2007.09.10 06:51:05 *.175.135.174
글을 다시 읽다보니
생각만 늘 그렇게 했지, 살아가는 모습은 또 그렇지가 않았네 싶어서
부끄러워졌습니다.

명석님과 백산님 댓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
내가 나를 여전히 잘 모르는구나...
아이들과 지내다보니 부모들이 잘 하는 말이
“우리 애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인걸 알았습니다.
근데 제가 경험한 바로는 부모가 자기 자식을 가장 잘 아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
하는겁니다.
저도 그렇네요.
여전히 내가 나를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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