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김나경
  • 조회 수 2193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07년 10월 10일 11시 28분 등록
내가 빠져 있었던 사람들... 책들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가 그 이듬해인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권이 세상에 나타났다.
나는 대학의 사학과를 다녔는데 전라도 어느 절집 문창살에 대한 글을 읽고 쓴 웃음을 지어야 했다. 우리는 그 아름답고 멋들어진 문창살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 문은 모두 가리고 그 앞 앉아 웃으며 사진을 찍었으니까.
물론 답사를 다니면서 아름다운 경주의 가을하늘 아래 서 있는 용장사지 3층 석탑을 가슴속에 깊이 사진처럼 간직해 두긴 했다.
대학 1학년 가을 경주 답사때 내가 했던 유명한 대사가 있지 않은가
“저 하늘이 없었다면 저 답이 저만치 아름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맹렬하게 싸워서 입학한 대학 사학과에서 나는 아무런 감동적인 만남을 가지지 못한채 졸업을 했다. 그리고는 사회에 끼여들지도 못한 채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있었던 때
바로 그 때 만난 책이 바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였다.
1,2권을 읽고 또 읽으면서 감동 또 감동했다.
그 무렵 감은사지에는 그 책을 손에 들고 감은사지 절터에서의 석양을 바라보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한동안 그에게 빠져 있었다. 어디선가 저자 초청 강연을 한다고 해서 달려 갔던 기억이 난다. 유홍준교수는 큰 키에 아주 멋진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슬라이드로 문화유산에 대한 강연을 했다. 아~ 글도 잘쓰더니 말은 더 잘 하는구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게 남은 한 줄은 유홍준교수 - 글을 참 잘 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빠져 있던 그 무렵 내가 심취해 있던 다른 하나는 “서태지”였다.
대학 졸업할 무렵이니 십대 여자아이들도 아니었는데 그의 새 앨범을 기다려 레코드점 앞에서 1등으로 샀다. 내게 그런 면이 있긴 하다.
1,2,3집까지 그렇게 빠져 있었고 그 이후에 노쇠한 나는 그의 실험 정신과 그 음악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의 음악보다 서태지의 미소년 이미지를 더 좋아했던게 아닌가 했다.

그리고 김훈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이라는 제목의 그의 책은 내가 대학신입생 시절에 처음나와 졸업한 이듬해에 2쇄가 나왔다. (지금 책을 꺼내보니) 언제 읽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학 4학년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친구들과 선배들이 언론고시에 빠져 있었던 즈음인것 같다. 나는 또 아름다운 그의 글보다 아름다운 그의 사진에 마음을 빼앗겨 거의 절판된 “선택과 옹호”라는 그의 책을 사느라 발품을 팔았다. 그 책 앞에는 그의 흑백 사진이 몇장 실려있었다. 그 사진 가운데 한 장 아래에 쓰여진 글귀 -이 사진은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어느 여행길에서 찍은 사진이다. 밥벌이의 흔적이 하나도 묻어있지 않은 모습을 나는 지니고 싶었지만, 아마 그럴 수는 없었던 것 같다 -
그는 둥둥 걷어올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한쪽 어깨에 양복 윗옷을 걸쳐두고 한손은 턱을 괴고 생각하는 사람의 폼으로 앉아있다.
그때 나는 그의 화려하고 멋진 문장들을 아주 사랑했다.
세월이 많이 지나 나는 김훈을 잊고 살았다.
그렇게 나는 고단한 살림살이와 밥벌이의 흔적을 내 살속에 묻혀 가고 있던 어느 때 “김훈”은 소설가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나는 그 김훈이 내가 오래전에 알던 김훈이 아닌줄 알았다. 워낙 유명해져 있어서.
하지만 나는 소설가 김훈의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부터 소설을 읽지 않는, 내 삶이 소설 같다고 느껴진 이후로 그랬다.
최근에 읽은 한 책에서 (인디라이터) 첫 번째 과제로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으라고 했다. 읽으려고 했는데 잘 안 읽힌다. 예전에 읽었던 그의 기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와 별 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나는 변했나보다.
“풍경과 상처”의 서문에 김훈이 쓴 글 마지막 부분
-벗들아, 나는 여전히 삼인칭을 주어로 삼는 문장을 만들 수가 없다. 나는 세계의 풍경을 상처로부터 격절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삼인칭의 산맥 속으로, 객관화된 세계속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일인칭의 가장자리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아마도 오래오래 그러하리라
1993년 가을에 김훈은 씀-
아, 그는 삼인칭을 주어로 삼는 “소설”을 쓰고 싶어했구나.
그렇게 소설가가 되었구나.

스물 다섯 여섯 즈음이었나
나는 또 새로운 것에 빠져들었다.
사주명리학.
그 무렵은 아직 인터넷이 보급되지 직전이라 전화선을 연결한 모뎀으로 하이텔이나 천리안같은 통신을 이용할 때였다. 나는 하이텔이라는 새로운 세계와 접속하고 재미를 붙였다.
그런데 그 신세계를 통해 만난 것이 오래되고 낡은 것이라 믿어졌던 “사주명리학”이었다니 그것도 참 묘하다.
하이텔 게시판 가운데 한의학과 학생들이 열어 놓은 것이었는데 한 젊은 스님에 그곳에 역학강의를 시작한 것이다. 게시판은 젊은이들로 뜨거웠다.
계룡산에 살고 있던 그 스님은 그 강의를 책으로 묶어 세권이나 나왔다.(내가 구입해서 읽은것이 3권이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 나왔다)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음양오행에 대한 설명과 10간 12지에 대한 강의가 펼쳐졌다.
나는 그때 꽤 깊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계룡산에 직접 가 보기도 하고 계속 공부를 해서 상담일을 하고 싶다는 꿈도 꾸었다.
짧은 실력으로 몇 년 후 내가 하던 모임에서 첫째 아이와 갈등을 겪는 엄마들 몇 명에게 큰 도움이 되는 상담을 해 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도 생각해 보면 내 사고의 틀을 만드는데 그 때 그 공부가 아주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갑목 그 중에서도 육십갑자가운데 가장 첫머리에 있는 갑자일 생이다.
그 스님의 책속에 갑목은 천년묵은 소나무라고 설명해 놓았다. 가끔 내가 금정산 정상 바위옆에 혼자 외롭게 바람맞고 서 있는 소나무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함께 흔들리기도 하고 사랑스러운 꽃도 피우는 을목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리고 구본형
그 해 1998년은 내가 결혼한 해다. 그래서 기억한다.
그 해에 구본형의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모르겠다. 나는 그렇다. 결혼전과 후는 인생을 전반부와 후반부를 가르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책을 읽고 세 사람에게 같은 책을 사서 선물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지금의 남편이다. 하지만 그는 그 책을 다 읽었는지 모르겠다.
“하고 싶지만 잘 못하는 일은 그대와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이다.
옷소매조차 스치지 못한 인연이니 잊어라“
나는 그 대목에서 늘 목이 메였다.
나는 글을 쓰고 그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구본형이 자꾸 나에게
“너는 글을 쓰고 싶어하지만 잘 못하니
잘 못하는 일은 그대와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이다
옷소매조차 스치지 못한 인연이니 잊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더 이상 소설도 시도 읽지 않고 여러해를 살았다.
처음 책과 두 번째 책이 연이어 나왔고 둘다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그리고 여섯권의 그의 책을 사고 읽었다.
빠져있었던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이 훨씬 길었다.
한번도 실제로 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볼 수 있는 날이 있을거란 기대도 갖고 있다.
김훈처럼 잘 생기지도 않았는데 책을 낼때 자신의 사진을 잘 싣는다.
목소리는 아주 좋을 것이다.

나는 한때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 빠져 관객이 너무나 들지 않았던 그의 몇 작품을 영화관에 두 번씩 돈 내고 들어가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그의 최근작 “형사”는 보지않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내놓은 “M”도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때 윌리엄 스타이그라는 그림책 작가를 아주 사랑하기도 했다.
빠진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것은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빠져들기 같은 것이리라.
스물한 둘 즈음 학교앞 사회과학 서점에서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소설책만 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공지영이 처음 소설을 세상에 내 놓았다. 장정일을 그곳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었다. 그책을 번역한 이가 신영복교수였음을 한참뒤에 알게 되었다. 잊을 수 없는 책 가운데 한 권이 되었다.


이런 모든 일들은 내 20대 무렵의 일이었구나.
서른.
마흔.
나는 고미숙의 연암 박지원 사랑같은 걸 해보고 싶다.
이진경의 들뢰즈나 고병권의 니체 그런 사랑이 나에게도 가당키나 한 일일까?
내 삼십대가 곧 저물어 간다.
구본형의 말대로 삼십대에 나도 누군가 사랑할 만한 철학자 한 사람을 만나고 그와 연애를 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 일이다.
IP *.150.50.58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10.10 12:22:31 *.75.15.205
아무렴 김훈의 이마가 구사부의 이마에 비할까. ㅋㅋㅋ
사부님은 스스로 코가 잘생겼다고 하시지만 나는 그분의 이마가 좋다.
코에서는 그런 광체를 느껴보지 못했걸랑요. 가을 꿈 벗 모임에 참석함이 어떠하십니까?
프로필 이미지
김나경
2007.10.10 13:30:53 *.255.150.204
다 써 놓고 다 읽어보니 나는 아직 미숙아같단 생각이 드네요. 나는 여전히 사춘기의 소녀처럼 꿈을 꾸고있는... 왜 나는 목숨을 걸만한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을까...그래서 여전히 아름다운 "이산" 같은 것에나 빠지고^^ 써니님, 부럽습니다~ 여전히 저는 꿈벗도 아니고 연구원도 아닌, 속에 빠져 있습니다. 가을 꿈벗모임 ,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자로
2007.10.12 09:02:03 *.152.82.31
이미 잘 쓰는 능력을 보였습니다.
충분히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에요.
다만,
이제는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정리된 완결을 해야 할 시기임을
알고 있음에도 실천하지 않는 나약함을 탓해야 하겠지요.
마흔을 넘어서면 좀 더 많은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마흔을 넘기면서 새 세상을 찾아 나섰거든요.
프로필 이미지
나경
2007.10.12 09:37:34 *.109.114.166
아! 자로님, 책 내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주 멋지네요.
그리고 "이제는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정리된 완결을 해야 할 시기임을 알고 있음에도 실천하지 않는 나약함을 탓해야 하겠지요"
따가운 말씀 아주 고맙게 읽습니다

다시 한번 책 출간 축하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10.12 09:43:24 *.75.15.205
무슨 그리 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이 공간을 드나드는 사람 모두가 꿈 벗이지요. 다만 프로그램을 참가하는 사람과는 조금 더 친밀한 유대감을 갖는 것이고, 조금 더 스승님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지요. 변.경.연은 그렇게 하나의 가족이 아니던가요? 난, 부산에 가게되면 나경님께 꼭 기별할 거에요. 괜찮죠?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