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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2일 17시 50분 등록
점심을 먹고 나면 대부분 이를 닦는다. 지난번 치과에 다녀온 이후로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이를 닦는 편이다. 이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복리로 비용이 늘어난다는 치과 의사의 위협은 꽤나 효과적이었다.

오늘도 어김 없이 칫솔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이 향긋한 행위를 굳이 화장실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 때론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별다른 대안 같은 건 없다. 주어진 상황이라면 최대한 이용하고 보는 것이 또 마땅히 할 일이 아닌가. 하긴 화장실을 충분히 활용하며 이를 닦는 방법이라고 해 봤자 볼일을 보면서 이를 닦는 것이 고작이긴 하지만 말이다.

두 개의 화장실 칸 중에 오른쪽 칸을 택해서 들어가 앉았다. 왼쪽 문이 닫혀 있었으니 선택이랄 것도 없다. 크게 심각한 볼일은 아닌 터라 반쯤은 넋을 놓은채 이를 닦고 있는데, 옆 칸에서 핸드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라면 당연히 안받고 말았을 텐데, 옆 칸의 그는 나와 달랐다. 제법 당당한 목소리의 낯선 그가 말했다.

"여보세요."

잠시간의 고요 끝에 그가 다시 말했다.

"저희 어머니신데요."

또 잠시 간의 적막함, 그리고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저기요. 저희 어머니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리고는 정신이 없어서 미처 인터넷을 해지 하는 건 생각을 못하고 있었네요."

순간, 울컥하고 무언가가 내 명치에서 솟구쳤다. 그 솟구친 것이 목구멍 언저리에서 턱 걸렸다. 그의 당연한 일상이 주는 서글픔이 코끝을 간질였다. 젠장. 저 사람은 생판 모르는 전화 상담원에게 어찌 저리 차분하게 어머니의 죽음을 주절이고 있을까. 나는 또 왜 이렇게 엉뚱한 모양으로 울컥거림을 삼키며 숨 죽이고 있는 걸까.

이해가 잘 되지도 않았고, 사실 이해가 필요한 그런 일도 아니었다.

그저...

인터넷 회사의 상담원에게 담담히 어머니의 죽음을 설명하는 그와
새어 나오는 흐느낌을, 칫솔을 깨물며 간신히 참고 있는 나 사이엔
무심하리만치 얇은 화장실 칸막이가 간신히 서 있었고,
어울리지 않게 요란한 물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IP *.227.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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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07.10.12 20:08:54 *.70.72.121
난 우리가 편하게 그리고 찐하게 술 한 잔 해야 한다고 생각해.

닭똥 같은 눈물로 때로는 괴성으로 닫힌 가슴을 뽀개야 한다고 생각해.

보이지 않을 부피의 금실과 은실로 겹겹이 짜여진 살갗의 두께 만큼이나, 엉킨 핏줄과 그 사이를 메우는 진액들의 섬세하게 뒤틀려진 갈라짐들을 이성과 합리적 혜안으로 밝혀내거나 풀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그 심장의 굴뚝에서 뿜어나오는 눈 매운 검은 연기들을 걷어내고 원래의 가치와 관계를 인식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산 사람이 무서우면 사랑을 할 수가 없다.
때로는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치사랑을 퍼부어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은 상대로 받은 나의 압박이라기보다 원죄와도 같은 운명일지 모른다.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우연일까? 아닐까?
필연 같은 우연을 통해 우리는 환하게 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여기에 모여 공부하는가 보다.

우리가 공존하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나를 투영하는 까닭은 이미 누구의 몫이 아닌 함께 짊어져야하는 원죄로부터 협동하는 운명이어서가 아닐까. 도움은 바로 그것을 향함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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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0.12 23:32:10 *.72.153.12
요란한 물소리로 가리는 그와 그를 조용히 배려하는 마음. 때로는 모르는 채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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