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김신웅
  • 조회 수 1784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7년 11월 14일 02시 34분 등록
저번 주에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고미숙의 ‘호모 쿵푸스’가 눈에 띄길래 반갑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하나씩 정리하고 나니 이 책 속에 ‘공부’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고민하고 땀 흘리며 쓴 글이 아니라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 올려 둡니다. 아직까지는 글을 쓴다는 게 제겐 쉽지 않네요. 앞으로는 제 고민과 땀 냄새가 배긴 글을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7. 공부란 세상을 향해 질문의 그물망을 던지는 것이다. "크게 의심하는 바가 없으면, 큰 깨달음이 없다."(홍대용)



37. 뒤집고 기고 걷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귀여운 어리광처럼 보이지만 아기에겐 거의 필사적 노력의 산물이다. 아기들의 눈이 그토록 맑은 건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과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46. 박지원의 우정론은 그가 쓴 '예덕선생전'의 다음 구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단한 사귐은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아도 되고, 두터운 벗은 서로 가까이 지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고, 그 사람의 덕을 보고 벗을 삼으면 되는 것이다. ……위로 천 년 전의 옛사람과 벗을 해도 사이가 먼 것이 아니요, 만 리나 떨어져 지내는 사람과 사귀어도 사이가 먼 것이 아니다."



49. 게다가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공부란 궁극적으로 자기를 넘어서는 것일진대, 거기에는 우와 열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자기가 선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갈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따름이다. "남이 한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백 번 할 것이며, 남이 열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천 번 할 것이다."('중용')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꾸준히 밀고 가는 항심(恒心)과 늘 처음으로 돌아가 배움의 태세를 갖추는 하심(下心), 공부에 필요한 건 오직 이 두 가지뿐이다.



50. 연암은 감탄한다. "늙은이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린이는 업신여김이 없구나!" 학교가 쳐놓은 덫, 곧 공부와 나이를 오버랩시키는 속임수에 걸려들지만 않는다면, 우리 시대에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51. 초야에 묻혀 밭을 갈던 제갈량. …… 그는 다만 독서를 했을 뿐이다. / 남산 아래 묵적골에 살던 허생. …… 7년 동안 주구장창, 다만 독서를 했을 뿐이다. 그렇다! 독서야말로 골방에 앉아서도 혹은 초야에서 밭을 갈면서도 천하고금의 이치를 한눈에 꿰뚫을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다.



58. 질문을 하려면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와 마주쳐야 하는 바, 독서를 하지 않고는 그런 마주침 자체가 불가능하다.



59. "그 방면에 아는 게 전혀 없는데도 강의를 들을 수 있나요?"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아는 게 없으니 배우는 거지. 왜 어느 정도 알아야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심지어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조차 좀 생소한 공부를 하는 세미나에 참여하는 걸 몹시 경계하곤 한다. 이런 발상의 이면에는 어김없이 공부란 곧 성적이라는 등식이 작동한다. 남보다 잘해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창피하기 짝이 없다는.



69. "공부하는 사람이 의심할 줄 모르는 것은 크나큰 병통이다. 오직 의심해야만 자주 분석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의심을 깨뜨리면 이것이 바로 개달음인 것"(이탁오, '분서')



80. … 그럼, 왜 그토록 스승을 찾아 헤매었던가? 스승을 만나야만, 그 '코뮌'에 접속해야만, 지리멸렬하던 공부가 단번에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생역전'이 가능한 것. 스승이란 무엇인가? 길을 안내해주는 자이다. 그리고 도반이란 그 길을 함께 가는 벗들이다. …… 학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뭔가를 배운다는 건 어떤 경지에 오른 스승을 만나는 것이자 의기투합하는 벗을 모으는 일이었다.



102. 사실 리더십의 많은 부분은 상황을 '언어화하는' 능력이다. 어떤 상황에서 그걸 하나의 주제로 엮을 수 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때 그는 그 그룹의 지도자가 된다. 한번 주변을 살펴보라. 어떤 그룹이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이는 '썰을 푸는' 인간이다. 상황을 언어화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만약 새로운 말과 이야기로 세상을 보는 눈을 홀라당 뒤집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혁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혁명은 늘 새로운 말, 낯선 이야기들과 함께 등장했다. 21세기 혁명의 거점인 사파티스타의 구호 또한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이지 않은가.



103. 우리 연구실에선 그게 아주 명료하게 확인된다. 연구실은 제도가 아니라 공동체이기 때문에 뚜렷한 조직표 없이 서로 능력에 맞게 자율적으로 활동을 조직한다. 그런데 그 능력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 구술 능력이다. 현장에서 부지런히 뛰면서 사람들의 관계와 활동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는 이들은 그 방면의 이야기가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온다. 말의 길을 제대로 틀어쥐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야기가 겉돌거나 추상적이 되어버린다. 관계와 활동이 부실하면 말 또한 길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게 마련이다.



109. 중국철학사의 이단아 이탁오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은 책을 열면 곧 거기에 있다.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이 보일 것이요. 정신은 또 천만 배나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 이탁오를 하루 종일 면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분서')



110. 양명학의 후예들 중 가장 급진적인 자유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이탁오에게 이런 일화가 있다. 남방 출신인 탁오가 추운 겨울 북방에서 공부하던 중 양식이 떨어져 주인을 찾아가 밥을 청했다. 이를 딱히 여긴 주인은 남방의 주식인 쌀이 아닌 기장으로 밥을 지어와 대접했고, 탁오는 배고픈 나머지 허겁지겁 맛있게 먹은 후 치사했다. "참으로 좋은 쌀입니다. 어찌 이리도 맛있습니까?" 주인의 대답은 쌀 아닌 기장으로 지었다는 것. "너무 굶주린 나머지 맛이 더 좋아졌을 따름이지요." 이 말을 들은 탁오는 크게 깨닫고 "나에게 있어 도(道)라는 것도 오늘 먹은 밥과 같으니, 공자와 노자를 가릴 겨를이 있는가"라고 하며 전력을 다해 '노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내 마음은 책을 열면 곧 거기에 있다.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이 보일 것이다."



111. '선비가 하루만 글을 읽지 아니하면 얼굴이 단아하지 못하고, 말씨가 단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몸을 가누지 못하고 두려워하면서 마음을 붙일 곳이 없게 된다. 장기 두고 바둑 두고 술 마시고 하는 것이 애초에 어찌 즐거워서 했겠는가?' - 연암집, '원사'에서



127. 모든 공부가 귀환하는 최종심급, 그것은 바로 글쓰기다. 독서가 힘들다지만, 글쓰기는 그것과 또 차원이 다르다. 심할 경우, 산고에 비유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다. 물론 그 열매는 달다. 산모가 갓난아기를 품에 안을 때처럼. 그러므로 지식인에게 있어 글이란 자신의 신체 혹은 삶의 특이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표현형식이다.



133. 평생 배움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먼저 간절히 염원하라.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스승(아니면 도반)을 만나게 해달라고. ··· "자신의 덕을 날마다 새롭게 하려면 모름지기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하고, 스승을 만나려면 모름지기 묻기를 좋아해야 한다."(이익, '선인들의 공부법'에서)



131. "기존 연구와 다른 주장이 뭐야?" ··· 그러니까 지도교수를 비롯하여 선배들이 내게 던진 첫 번째 과제는 '너 자신의 눈으로 자료를 보라'. '너 자신의 고유한 문제를 설정하라'는 것이었다.



133. "착상은 흥미롭지만 논리가 거칠다"ㅡ내게 던져진 두 번째 과제는 이것이었다. 나는 간신히 호리의 차이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그것을 꿰는 법은 알지 못했다. 논지가 뒤죽박죽이거나 중언부언이거나 아니면 너무 얄팍하고 앙상해서 도무지 논리적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134 그때 내가 배운 건··· 배움이란 그렇게 스승과 선후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소통 작용이라는 것을 몸으로 터득한 것이다.



134. 새로운 질문을 던질 것, 하나의 논리로 관통할 것ㅡ이 두 가지가 내가 석사과정 내내 갈고닦은 글쓰기의 초식이었다······



* 일이관지란 말은 《논어》 '위령공편'과 '이인편'에서 공자 스스로 언급하고 있다. 먼저 위령공편에, 공자가 말하였다.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줄로 아느냐?"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닌가요?" 공자가 "아니다. 나는 하나로 꿸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일관지도(一貫之道)이다… - 네이버 백과사전



135. 보통 연구실을 찾아오는 신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별로 아는 게 없는데도 배울 수 있을까요?"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다. 자신을 진정 비울 수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배움에 있어 가장 불리한 조건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 혹은 이미 획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성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양이 많건 적건 '비움'은 배움의 필수적 조건이다. 끊임없이 비울 수 있어야 더 큰 앎이 흘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60. <주역>의 패러다임에 따르면, 부모 자식 간에도 적당한 상생상극이 필요하다. "나무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거나 떠버리는 것처럼, 자애롭기만 한 어머니는 결국 자식을 죽이게" 된다. "나무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가지를 쳐주듯이 아이에게도 적당한 극(克)을 줘야" 한다. "극을 받지 않은 사람의 생명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



175. 공부란 바로 이것, 잘 배우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 ··· 그렇다면, 이 위대한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싶었던 건 어떤 구체적 이념이나 원리라기보다 배움의 열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것만 있다면 아라비아 사막이건 시베리아 벌판이건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180. 고전을 배우고 싶다는 열정만 있다면, 전국 어디서나, 아이들에게 고전을 가르칠 수 있다. 학위나 전공 지식 따위는 필요 없다. 힘과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산에 올라갈 수 있듯이, 배울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길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181. 순임금과 공자가 천하를 품에 안을 수 있었던 것도 천하를 다 배움의 장으로 사고했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다만 배움의 열정뿐. 그러므로 스승이란 무엇인가? 가장 열심히 배우는 이다. 배움을 가르치는 이, 배움의 열정을 촉발하고 전염시키는 배움의 헤르메스, 그가 곧 스승이다.



193.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 이미 지나갔다고, 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선 안 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



210. … "책을 벗들에게 나누어주라. 그러면 벗들의 어짊이 증식될 것이고, 그러면 나는 벗들로부터 그 어짊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니." 소유를 포기함으로써 책의 지혜와 더욱 '찐하게' 접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 기막힌 역설!

*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입니다. 예를 들면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 나의 노인과 남의 노인을 함께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것(성인지미)을 인이라 합니다.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론이 확대되면 그것이 곧 사회적인 것이 됩니다. - 신영복 '강의' 42쪽



211. '도인이 어느 날 한가하게 시장을 걷고 있다가 우연히 어느 가게의 한 통 속에 들어 있는 뱀장어를 보았다. 포개지고 뒤얽히고 짓눌려서 마치 숨이 끊어져 죽을 것 같았다. 이때 홀연히 그 중에서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나타나서 상하좌우전후로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움직이니 마치 신룡과 같아 보였다. 뱀장어들은 미꾸라지에 의해서 몸을 움직이고 기가 통하게 되었으며 생명의 기운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제 뱀장어의 몸이 움직일 수 있게 하고 기를 통하게 하여 뱀장어의 목숨을 건진 것은 모두 미꾸라지의 공인 것이 틀림없으나 그 역시 미꾸라지의 즐거움이기도 했던 것이다. 결코 뱀장어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또 뱀장어의 보은을 바라고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그 '본성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왕양명의 수제자인 왕심재의 '추선부'(미꾸라지에 대한 노래)에 나오는 대목이다. 자신의 본성대로 움직일 뿐인데, 다른 이들에게 절로 생명의 기운을 전파해주는 존재! 이것이 근대 이전, 지식인들이 추구한 이상형이다.



214. 그럼 공부는 뭣 때문에 하냐고? 남들에게 퍼주기 위해서다! 얼마나 많이 퍼줄 수 있느냐가 나의 내공을 결정한다.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 '공부의 달인'들처럼 퍼준다는 생각조차도 없이 퍼주게 된다. "다만 힘차고 유유히 장강과 대해를 헤엄쳤을 뿐인데, 그 기운으로 다 죽어가는 뱀장어들을 살려낸 미꾸라지"처럼 말이다. 고로, 공부해서 남 주자!
IP *.47.83.77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11.14 10:19:10 *.75.15.205
좋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자주 올려주셔요.
프로필 이미지
김지현
2007.11.15 19:35:49 *.180.48.238
저도 감명깊게 읽은 책 인네 이렇게 올려주시니 다시 공부가 되네요.
읽는 것과 review를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면 그게 산 공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김신웅
2007.11.16 00:08:03 *.47.83.77
넵!! 써니님의 댓글이 있어 제 글이 외롭지 않다고 하네요. ㅠ.ㅠ 항상 따뜻하게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현님도 감명깊게 읽으셨다니 더욱 반갑네요! 지현님의 공부가 다시 순환되어 제게 와닿을 것이고 이것이 다시 변경연을 넘어 우리 사회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 또한 기쁘네요. ㅎㅎ 지현님의 리뷰나 글도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 오늘 동네 뒷동산에 올랐더니 빨강 노랑 단풍이 여전히 사람들을 반기더군요. 변경연 모든 분들.. 알록달록 이쁘고 고운 11월 되시길 바랍니다.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