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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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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30일 00시 32분 등록
올해도 어머니와 무사히? 김장을 했다. 그나마 예년 같지 않게 날씨가 춥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성격이 급하신 어머니께서는 무슨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만 잡수시면 후다닥 해치워야 마음이 놓이시는 분이다. 매번 올해까지만 하고 내년부터는 그냥 절여놓은 것 사다가 하자 그러시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배추 사다놓았다고 시침 뚝 떼시며 작은 올케에게 전화하시는 어머니이시다.

배추를 보자마자 걱정이 돼서, 나 안 되는데... 엄마아~벌벌 떠는 내 소리는 도통 들은 척도 안 하신다. 이유는 늘 많으시다. 배추가 괜찮아서 샀다느니, 날씨가 풀렸으니 안 추울 때 얼른 해야 한다느니, 얼렁뚱땅 둘러대시고는 화살보다 빠르게 확 밀어붙이신다.

작은올케언니는 수화기에 대고 오는 일요일 날에 하기로 하셨잖아요? 힘드신데 왜 또 그러셨냐고 성화를 받치지만, 그 말 한마디면 벌써 순식간에 시름이 싹 가시는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기력이 달리는 것도 잠시 잊으신 듯, 마구 힘이 솟는 양 하시며 그러길 레 얼마 안 샀다. 조금이라서 할 것도 없겠다고 하시며 또 한 번 시침을 뚝 떼버리신다.

이런 광경에 처할 때 마다 나는 으응~ 신음소리를 내며 다음 대책에 나서야 한다. 잽싸게 준비를 하지 않고 게을렀다가는 뼈도 못 추리게 될 것이 뻔하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치며 언제 과제를 하지? 새벽부터 일어나서 배추를 씻어야 할 텐데... 하며 졸지에 문제가 순식간에 터져버린 것에 대해 방법을 찾아야 되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래도 못 오는 올케가 미안해 할까봐 “그래, 그러면 목요일에 하자. 네가 와서 해라. 나도 힘이 없고 선이도 바쁘다고 팔딱 뛰니 어쩌겠니?”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신다. 심통이 사나운 얼굴로 나는 그때서야 안도의 숨을 휴~하고 내쉰다. 그래서 다행히 과제를 제출하고 다음날 김장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루 전에 절여서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전 중에 마치셔야 일을 한 것 같이 생각하시는 어머니이시다.

어머니는 일거리를 쌓아놓고 지지부진 한 것을 절대 못 보신다. 그래서 우리 집 세탁기는 밤에도 잘 돌아가고, 김장을 할 때면 새벽 4~5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마치 난리가 쳐들어오듯 후다닥 해치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을 말끔하게 처리하신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거들지 않으면 못 하시는 것이다. 마음은 천리 밖을 뛰놀지만 당신의 기력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몸이 마음을 배반하는 것이 늙음이란 것이던가. 먼저 눈이 배반하고 관절이 배반하고 오장육부가 부실해지면서 성격과 습관까지도 옥죄고 마는 것이다. 어머니의 칼칼한 성품이 점점 싱거워지는 것, 이런 모습에 가슴이 찡하게 저려온다.

내년이면 팔순이신 어머니께서는 그야말로 요즘은 깡으로 버티듯 사신다. 그만큼 기력이 쇠진하고 힘이 많이 들어 하신다. 젊어서는 주무시면서도 숨소리 한 번 안내시고 조용히 잠을 주무시기에 늘 흔들어 깨워보곤 했었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 잠버릇이 곱지가 못하다. 옆으로 자거나 엎어서 주로 잠을 청한 후에 이리저리 뒤치락거리며 온방을 헤맨다. 팔이 저리기도 하고 다리가 쑤시기도 하며 허리가 아프기도 하니 어떻게 가만히 누워서 누운 채로 자고 일어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어머니는 늘 그러셨다. 어머니의 그 고운 잠버릇이 나는 배워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잠이 안와서 못잔 적은 없으니 그래도 그나마 비교적 수면은 건강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첫머리에 무사히 김장을 마쳤다고 한 것은 어머니의 엄격하신 성정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이토록 깐깐하고 깔끔하며 남의 손 전혀 빌리지 않고 혼자서도 일을 척척 해내시던 어머니가 자꾸만 일을 못하시겠다고 중얼거리며 까라지신다. 아직도 성품은 까랑까랑하시지만 당신 말씀처럼 나이는 못 속이는 것인지, 연세가 드시면서 일이 마음 같지 않음을 확연히 보여주신다.

그래도 아직도 당신의 성품을 지니신 채 일의 습관들은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감독을 하시고 난 후에 주무실 때 보면 가불가불 까부라지면서, 힘이 들어 입을 크게 벌리고 코를 드르렁 고시면서 쓰러져 주무시는 것이다. 그래서 알았다. 곱게 주무시던 분이 요즘에는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이 기력이 딸리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곁에서 우리들 김장하는 것을 도우시며 올해까지는 이렇게 했다만 내년부터는 니들이 다 알아서 해라. 꼼짝을 못 하겠노라 하시며 몇 번이고 허리를 펴느라 방으로 가 누우시는 것을 보면 정말로 은근히 걱정이 되곤 한다. 워낙에 카랑카랑하신 분이라 성정이 나면은 음성이 사람의 심장을 두방망이질 치게도 하지만, 그래서 어릴 적 그때처럼 아직도 화들짝 심장이 팔딱 뛰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음성을 듣노라면 안심이 되는 것이 요즘의 솔직한 심정이고 보면 어머니 아버지 두 어른의 연로하신 모습이 안쓰럽고 가여운 때문이겠다.

새벽에 씻어 광주리에 받쳐놓은 배추를 한데서 2층으로 올려놓아주시겠다며 거들어 날라주시는 아버지의 다리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후들거리신다. 당신께서는 찬찬히 조심해서 하려고 그러노라 하시지만 힘이 들어 헐떡이시는 것이다. 그릇에 배추 몇 포기가 쌀자루를 인 것만큼이나 버거우신가 보다. 보다 못해 들어가시라고 해도 당신도 한몫 거드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다. 이렇게 늙어가는 것인가. 누가 노년이 좋다고 하던가. 노후가 좋은 것은 단지 건강한 모습의 60~70이 고작이다. 그 이후에는 몸이 먼저 마음을 제압하고 나선다.

우스갯소리처럼 회자되는 말 가운데, 쉰이면 성형을 했거나 안 했거나 똑같고, 예순엔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똑같으며, 일흔엔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고, 여든이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똑같다고 하더니만, 여든에 이르신 두 노인이 내 보기에도 우스갯소리가 예삿말로 들리지 않는다. 이 우스개가 거의 맞는 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뭐, 경우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봐야 5년 이쪽저쪽이지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일반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오뉴월 하루 볕이 어디냐고 짠 밥 수를 거론할 때도 있었듯이 나이 들어 늙어감도 한 순간에 휙휙 가속도가 붙는 게 아닌가 싶다.

여니 때와 같지 않게 다른 느낌이 드는 김장을 하며 새삼 이것저것 이일저일 등이 스쳐간다. 한해를 마감하며 새해를 준비하는 김장을 하며, 가고 오는 것에 대한 일들이 무심결에 스치는가. 이렇게 또 한 해를 살았구나,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새해는 어떻게 맞아야 하는 걸까, 나는 어제보다 나아진 부분이 있나?, 고개를 깊숙이 젖히며 눈을 감아보게 된다.

먹먹하다. 이 느낌을 무어라고 해야 하나. 그저 그렇다? 불만족이다? 만족이다?
입안에서 맴도는 말은 ‘담담하다’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말로 담담한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무난하다는 느낌인 것 같다.

굳이 따진다면 연구원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그리고 평생에 염원하던 스승님 한분을 모시게 되었다. 물론 초아선생님도 만났다. 선후배와 여러 벗들이 생겼다. 무엇보다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이런 온라인을 통해서 나라는 인간을 마음 내키는 대로 까발리며 진흙탕 속을 헤집는 미꾸라지처럼 열어젖혔다. 아마도 나의 오랜 우울과 방황, 그리고 내 속에 숨겨져 있거나 잠재해 있던 나의 모든 실체들이 여과 없이 토해져 나왔던 것이리라.
10년 동안의 몽롱함, 10년 동안의 막히고 갇혀있던 숨통을 마치 포악을 떨듯 정신없이 쏟아내며 한해를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고 두려움도 없었다. 이미 오래전 마음속으로는 수백 번, 수천 번을 대뇌이며 한번은 늘씬하게 죽었던 것이었기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탈진할 만큼 탈진된 상태였기에 그렇게 밖에는 안 되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나라는 사람은 네트웍이란 것의 위력도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상관도 없다고 생각할 만큼 무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으며, 활용할 생각 따위도 전혀 가져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올 한해 그동안 진중하던 변.경.연 홈피에 무대뽀 정신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사람 중에 하나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딴에는 그동안의 삶과 다른 놀이를 접하고 시작하며, 어쩌면 더 나은 무엇이라기보다 그동안의 일상과 다른 경험을 해대며, 더 많이 징징거렸고 더 많이 나의 치부를 들어냈고 더 많이 몸부림치며 철판을 깐 듯, 사실 철도 없거니와, 철도 없는 상태로 적나라하게 버팅이며, 책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한바탕 씨름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고 또 멀다. 6년 혹은 그 이상을 사부님을 흠모하여 변.경.연 싸이트를 눈팅하며 묵묵히 지켜온 많은 분들도 있지만, 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덤벼들기도 했거니와 나름 개인적인 업보로 인해 오랫동안 맺혀온 한을 어쩌지 못하고, 다분히 심장을 타들어가고 배배꼬아가며 썩어들거나, 이미 너무 오래 끌어온 애간장을 녹이는 상처들이 곪을 대로 곪아 온 몸과 마음에 차고 들어, 악취를 풍긴 채 꾸역꾸역 눌어붙어 있는 한낱 요물단지였을 지도 모르겠다.

나도 나를 몰랐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게 얼마 만큼인 것인지, 어떤 것들로 꽉 차여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른 채 방기하고 있다가 이곳에 와서 마치 푸세식 변기에서 똥을 퍼서 들판에 뿌려 날리듯 온통 벌판을 뛰어다녔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그렇게 이곳에서 한해를 보내는 것이 나다. 나란 사람이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싶어 하고 아끼는 나 자신의 자화상이다. 그게 나다.

이런 나의 한해를 마감하는 것이 또 내 임무고 그래서 어쩐지 할 말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든다. 남은 한 달을 좀 더 잘 보내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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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촌
2007.11.30 04:15:26 *.235.8.23
그만큼 자신을 open하고 사셨으면 됐지.... 어디가서 다른 쏘니님을
찾고 싶으신 가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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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2007.11.30 09:52:20 *.50.86.143
나는 나야~.. 어제 본 영화, 어거스트러쉬에서 라일라가 루이스의 '너는 어떤 애니?'에 대한 답이기도 했죠. 나 자신을 뭐라 얘기할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방황을 참 많이 하고있진 않나 생각해봅니다. 결국엔 내가 살아온 날들의 내가.. 바로 그게 나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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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1.30 10:43:24 *.75.15.205
유촌님의 아호가 오늘 아침에는 이웃사촌이라는 글귀로 읽혀지더군요.
쏘다니는 바람기가 천성인가봐요.^^

야옹아, 적벽강 꿈벗 모임에서 그대의 진한 모습을 보았다. 가을 햇살처럼 눈부시고 그곳 아늑한 풍경만큼이나 넉넉한 그대의 품이었다.

하룻밤 같이 잤을 뿐인데 만리장성을 쌓았나 그 마음 그대로 들려오고 전해지고 느껴지네. ㅎㅎ

미리가서 준비한다며 전야제에 우리끼리 밤늦도록 지세운 동지들, 그 날 그 방에서 함께 잔 여자들끼리 찜질방이라도 함께 가야겠다. ㅋㅋ

새벽에 안아주던 너의 부드러움이 아직도 물씬? 느껴진다. ㅋㄷㅋ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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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사촌
2007.11.30 13:02:13 *.235.8.23
왜 모든 여자가 나만 보면 나를 사랑하는 지 몰러. 그래서 내 팔자에
여자가 없어여.... 무수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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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2007.12.01 10:16:14 *.70.72.121
하하하. 고결해서 그렇지요. 하느님이 특별히 내리신 외아드님을 닮아서...

외동딸은 없었는데... 세상을 모두 네 것으로 품으라 이르시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거추장스런 껍데기인 육신은 취할 필요 없이 여러 혼의 정수들로만 가득 나누어 해탈에 이르라 하시는 모양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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