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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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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6일 23시 00분 등록

겨울 낚시를 가다

◉ 새벽길을 달려, <산달섬>으로!

지난 주말 산달섬으로 겨울낚시를 다녀왔습니다.
초아선생님 내외분과 초아선생님의 아주 귀여운 손녀들 채린·채현이, 그리고 저희 자매(귀선·귀자)까지 총 6명이 차 한대로 움직였습니다. 저는 봉화에서 자란 터라 낚시의 ‘ㄴ’자도 모릅니다만, 초아선생님이 낚시를 아주 즐기시는 덕에 꼽사리를 좀 꼈지요. ㅎㅎ



우리는 토요일 새벽 6시, 아직도 깜깜한 도로를 달렸습니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나온 덕에 통영으로 가는 도로는 차도 없이 아주 고요했습니다. 마음까지 고요해지는 것 같아서 피곤기마저 사라지더군요.

통영을 찾은 이유는 바로 '해장국' 때문이었습니다. 초아선생님께서 통영에서 해장국 잘하는 집이 있다며 작은 식당으로 데려 가셨습니다. 우리가 찾은 60년 맛의 원조 <풍화할매김밥>식당은 탁자 4개뿐인 좁은 집이었는데 씨레기 해장국 맛은 초아선생님 추천대로 아주 끝내줬지요. 초아선생님은 한 그릇을 더 잡수셨습니다.

시간이 예상보다 지체되어 밥 먹고 서둘러 일어섰습니다. 그때가 아침 9시쯤이었을 겁니다. 사실 그때까지 어디로 낚시를 갈지 정하지 않았습니다. 초아선생님과 사모님이 두어군데를 고민하시는 듯 하다 ‘산달섬’ 으로 가자고 하셨지요. 그렇게 우리의 행선지는 <산달섬>이 되었습니다.


◉ 가자! 산달섬으로~



거제에서 산달섬까지 배타고 들어가는 시간은 10여분,..
사실 섬이 코앞에 보이는 거리였습니다. 오늘따라 하늘이 맑고 청청해 배타고 낚시가는 기분이 절로 납니다~ 그렇지만 역시 겨울인지라 일분도 못견딜 정도로 바람이 찼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차에 얌전히 앉아있던 채린& 채현 자매가 배에 타자마자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종일 장난치고 뛰어다니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지렁이를 보기만해도 기겁하더니, 나중엔 낚시찌에 손수 지렁이를 끼워줄 정도가 되었던, 내숭 9단의 아주 귀여운 자매!


<왼쪽이 채현(7), 오른쪽이 채린(10)..표정이 귀엽죠?>


우리가 막 산달섬으로 들어가는데 섬에서 나오던 한 아저씨가 왈,
“물고기 하나도 못잡았어요. 여긴 물고기가 없네요.”
헉. 허탕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런데 이게 왠일인지,
우리가 낚시대만 드리우면 감성돔이며, 망상어가 잡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또 옆 팀은 거의 빈낚시대만 드리우고 있대요. 그래서 우리한테만 물고기가 몰리는 건가? 아님 우리가 너무 잘 잡는 건가? 우쭐해하는데 초아선생님 말씀하시길,
“낚시 하는 법을 몰라 그렇지. 그런데도 자존심은 있어 물어보지도 않는다. 바보같은 놈들.” 라고 혀를 끌끌 차셨습니다.

저는 춥고 물고기가 불쌍해 낚시하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꼬마언니와 초아선생님 내외분의 활약은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릴 정도여서 두어시간 만에 망태기 가득 고기가 찼습니다. 마침 점심때가 다가와 이쯤에서 낚시 1부를 접고, 초아선생님은 회뜰 준비에 사모님은 매운탕 끓일 태세로 돌입하셨습니다.


<초아선생님의 '즉석 회뜨기' 요리강좌ㅎㅎ>

초아선생님은 참 칼질을 잘하십니다. ^^
좀전만해도 팔딱대던 물고기들이 초아 선생님께서 칼 대는 순간 바로, 싱싱한 회로 변신하였습니다. 첨엔 물고기가 그렇게 불쌍해 보이더니 막상 회를 보고나니, "그래, 물고기는 통각이 없어 고통도 못느낀다더라" 하며 열심히 먹기 바빴습니다. 간사해도 어쩌겠습니까? 요놈의 목구멍이 죄인인걸요~~ 그런데 회는 어찌나 담백하고 또 씹는 맛은 어떻게나 부드럽던지...씹기도 전에 목구멍으로 알아서 넘어가더군요. 우린 소주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역시 부산의 C1 소주(일명 '시원소주')는 참 시원합니다. 회로 배를 좀 채우니 사모님께서 얼큰하게 매운탕을 즉석에서 끓여내오셨습니다.

정말 두 분은...어디서나 존경받으실만한 막강커플이십니다.


<회에 매운탕에 갓 잡은 것들로 이뤄진 점심 만찬>


◉ 개발을 아십니까?

초아선생님이 대뜸 “니 개발이란 말을 아나?” 하고 툭 던지셨습니다.
“음...뭘 더 낫게 만드는거요?” 답하자 하하 웃으며 "그게 아니다. 개발이란게 뭐냐면 굴, 조개 따위의 어패류를 채취하는 걸 말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흔히 바닷가에선 “엄마, 어디 가셨노?” 하면 “개발하러 가셨습니다.”로 씁니다.

저도 바다에 간 김에 ‘개발’ 좀 하고 왔습니다.
지렁이도, 물고기도 불쌍해서 그런지 낚시가 영 손에 붙지 않았는데 마침 근처에 ‘굴’이 많았습니다. 초아선생님께 굴따는 법을 전수받고 바로 ‘개발’에 나섰습니다.

고놈 '개발'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2시간은 땄을 겁니다. 굴 하면 비린내는 꼭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 딴 굴을 생으로 먹어보니 전혀 비리지 않고 정말로 신선하더군요. 이게 바로 바다맛이구나 싶었습니다. 오후 내도록 언니와 딴 굴을 가지고 나중에 사모님께서 그 유명한 '어리굴젓'을 만들어 주기도 하셨습니다. 시가로 따지면 5만원 이상은 된다니, ‘개발’ 제대로 한 셈이지요?



<굴따는 꼬마언니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타고난??>


◉“겨울 낚시의 맛은 바람과 추위와 싸워가며 하는데 있다!”

낮엔 햇살 덕에 그나마 덜 추웠는데 해가 기울면서 바람이 매서워졌습니다. 추워서 낚시는 아예 관두고 차에 들락날락 거리며 몸을 녹이자니, 초아선생님께서 점잖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귀자야, 겨울 낚시라는 건 말이다, 바람과 추위와 싸워가며 하는 거지. 그게 겨울 낚시의 맛이야!”

머리로는 '와, 멋진 말이다' 하는데 그래도 추운건 추운거라 차에 들어앉아 나올 엄두가 안났습니다. 때마침 사모님이 마침 보온병과 커피를 꺼내셨습니다. 역시나 센스만점이신 사모님! 우리는 모두 커피 한봉에 따끈한 보리찻물 한가득 탄 '산달표 커피' 한 잔씩 손에 들고 호호 불며 마셨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모음 마시니, 갑자기 세상이 따스해 보입니다. 바닷바람 맞으며 즐기는 커피한잔의 여유! 크~ 커피는 그렇게 추워서 꼬들해진 창자는 물론 제 마음까지 살살 녹여주었지요.


◉ 그러고 보니 세상이 낚시터네..



우리는 오후 5시 무렵, 해지기 전 섬을 나왔습니다. 막 노을이 들려는 참이었는데, 탄성이 절로 나오더군요. 장엄하면서도 뭔가 쓸쓸해서 등을 돌리고 바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정글과 같다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저는 오늘 세상이 낚시터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처럼 글 쓰기가 싫어지는 때 글이 뭔가..란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낚시를 하면서 든 생각이 '글쓰는 것도 낚시구나' 였습니다. 세상 한가운데 '의문점' 하나 드리우고 있노라면, 별별 생각꺼리가 몰려듭니다. 어떤 놈은 내 에너지만 빼앗고 달아나고, 어떤 놈은 살짝 건드리기만 하지요. 아무튼 그렇게 있다보면 어느 순간 제가 던진 '의문점'에 꺼리 하나가 물립니다.

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으면 온 세상이 '글'로 보입니다. 문자가 날아다니고, 헤엄치지요. 뭔가 걸리는 찰나, 그리고 뭔가 제 안에서 전광석화처럼 떠오른 말이 있습니다. 그 '말'들을 잊지 않기 저는 또 눈에 보이는 대로 빠르게 써내려갑니다. 그렇게 스스로 먹잇감이 되고, 먹이를 또한 잡아올리면서 메모를 합니다. 갓 잡아올린 글감 하나가 막 회를 친 싱싱한 회 한조각 같네요. 어떻게 요리할지는 잡은 본인에게 달린 거겠지요...


오늘따라 집에 보일러도 잘 안돌아가고...스타벅스보다 백만배 맛있었던 그 ‘산달표 커피’가 그립군요. 보리차에 탄 구수한 산달표 커피라면 다시 한번 기꺼이 낚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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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12.17 08:37:41 *.209.39.60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한 '작은 진보'가 보기 좋으이.
깔끔한 사진과 글이 아주 돋보이네. 초아선생님이 쳐주시던 '세꼬시'의 맛을 떠올리며, 맛있게 읽었어.

인생의 거의 모든 문제가 이미 해답이 나와 있다고 생각해.
나처럼 젊은 날에 아무 것도 못 접한 사람은 있는대로 시간을 허비한 다음에야 조금 깨닫지만, 귀자는 남보다 일찍 주위에 많은 해답을 접하고 있다고 봐.
응~~~ 무슨 말이냐면,
윗 글처럼 쓰기를 계속하면 어느 순간 귀자가 원하는 곳에 도달해 있을 것 같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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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12.17 16:14:57 *.253.249.10
"귀자가 글에 대해서 나태해지는 건, 발전하고 나아가려는 전 단계의 서막"

왜 글이쓰기 싫어지고 붓을 꺽어버릴 생각이 나는 줄 아느냐?
그건 나의 글에 변화가 오는 모습이다. 내가 알고 생각을 글로 쓰는것이 작가이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이 왠지 어설프다는 감이 왔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발전의 단계이다.

이를 주역에서
절(節)이라한다. 직역하면 마디이지, 대나무가 자라는데 쭉 뻣다가 매듭이 생기고 또 매듭이 이것을 발전하기전의 아픔이라고 하여 다른 말로 절이라한다.

"節 亨 苦節 不可貞"
<삶에 매듭이 나타날 때를 고절(苦節)이라한다. 이를 힘차게 극복해야한다. 그런 스럼프는 힘차게 일어나야지 고절이라는 방황에서 오래끌면 도의 끝자락에 이르지 못한다.>

이제 며칠 지나면 동지(冬至)이다. 동지는 양이 극히 적어지고 음기가 제일 강한 때를 말한다. 그래서 일년 중 밤이 제일 긴 날이지. 동지를 지나면 일양(一陽)이 동(動)하면서 귀자의 디렐머도 없어 질 것이다.

"良馬逐 利艱貞 日閑輿衛 利有攸往"
<양마가 나아간다. 그녀가 가는 길이 설령 험해도 노력하고 인내하는 생활속에서 성공의 길을 얻으리다.>

귀자야!
정말 즐거웠다. 몸이 피곤하고 삶이 권태로와 지거던 언제라도 부산에 오라. 와서 묵언의 여행속에 활력을 찾아라.
너희들의 약동의 모습을 볼때 나도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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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언니(김귀선)
2007.12.18 00:12:46 *.221.52.158
우와~글이며 사진이며 술술 잘도 읽혀 내려가는 구나, 얼~쑤~
밤 늦게 부산에 내려와 초아선생님과 사모님 덕분에 재밌는 추억 만들었네.
다음 번에도 내가 KTX 비용은 우찌든동 마련할 터이니 시간 맞추어 여행 한 번 더 하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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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2.18 13:48:08 *.75.15.205
귀자야, 꼬마언니야 말이 딱 맞네 그려. 그리고 귀선은 완전히 해녀같구려.

초아선생님과 사모님, 손녀들의 재롱 너무 귀엽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나도 따라 가야지~~~ 멋져요! W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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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7.12.19 00:18:23 *.132.188.244
귀자씨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고 난 후 갑자기 통영이 그립군요...
대학다닐때 여름방학이면 통영오광대 탈춤 전수받기 위해 갔던 남망산공원. 그곳에서 바로 본 아름다운 항구...의료봉사 갔었던 통영 주위의 섬들.....

그립군요. 보고 싶을때 가야지... 조만간 실행에 옮겨 ㅂ ㅗ ㅏ....

초아선생님... 고향 부산에 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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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
2007.12.24 10:21:20 *.33.235.86
귀자님 정말 멋진 겨울낚시 여행이셧네요^^

저도 무진장 가고 싶네요~~

글을 읽다보니

“낚시 하는 법을 몰라 그렇지. 그런데도 자존심은 있어 물어보지도 않는다. 바보같은 놈들.”

이런사람은 절대 되지 말아야지하는 맘을 갖어봅니다.

초아선생님 저도 나중에 데려가 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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