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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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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6일 10시 30분 등록


2001년 10월 26일 저녁, 본사 사옥 근처에서 19명의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야구가 좋고 야구가 하고 싶어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 발기모임을 통해 야구부가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야쿠르트 제브라즈’라는 이름으로 동호회에 등록되었고, 경기도 고양의 농협대학 야구장을 기반으로 한 ‘우수직장인리그’라는 사회인 야구리그에도 가입하였다. 초등학교때 야구부로 2년 정도 활동하고, 중학교 때 동네야구를 한 이후로 처음으로 정식 야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장에서 야구를 하고 싶었던 꿈이 이뤄진 것이다.

내가 맡은 역할은 총무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총무의 역할을 담당했다. 감독을 보좌하고 예산을 관리하고 야구부를 홍보하면서 경기에도 출전하는 팔방미인으로써의 자태를 뽐냈다. ^^;; 하지만 사회인야구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일까?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때 야구부를 했었기에 사회인야구에서는 최소 3할은 문제없이 칠 줄 알았다. 한번 제대로 닦여진 기본기는 어디를 가더라도 빛을 발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기본기도 평소에 기름치고 닦아놓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해 성적은 처절했다. 3할은커녕 1할에도 못미치는 ‘8푼 9리’였다. 오죽 했으면 감독님이 항상 말하기를 ‘저거.. 저거.. 총무만 아니었음 짤라도 벌써 짤르는 건데.. 쩝..’ 이런 식이었다. 2003년, 2004년은 그나마 좀 나아졌지만 역시 2할대였다. 의외로 사회인야구의 벽은 높았다.

처음 감독직을 맡은건 2005년이었다. 초대 감독님은 개인적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셨고, 2대 감독님은 해외발령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감독직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3대 감독직은 나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야구부원 중에서 내가 제일 ‘연로’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우리는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우수직장인리그가 좋긴 했지만 연간 경기수가 너무 작아 실력이 제대로 늘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고자 우리가 택한 것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2005년의 시흥리그였다. 시흥리그에서 우리는 꽤 잘했다. 그동안 농협에서 찌질한 실력(한해 2,3승)을 보였던 것은 많은 경기를 하지 못했던 경험부족이 가장 큰 이유였다. 경기수가 많아지자 우리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하였고, 더 큰 의욕을 가지고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치열한 순위다툼 끝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첫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인원수를 맞추지 못하여(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음) 아쉬운 몰수패를 당하고 말았는데, 상대팀은 결승에 진출하고픈 욕심에 몇분을 더 기다리는 상식을 베풀지 않았다. 사회인 야구에서 경기를 즐기는 재미보다 승부에만 열을 올리는 팀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쁜 자식들... 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시흥리그에서 쫓겨났다. 전용구장을 가지고 있는 사무국이 자신들의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우리를 '팽'한 것이다.

부랴부랴 찾은 것이 인천의 석암리그였다. 전용구장도 아닌 중학교경기장, 게다가 많은 경기가 예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리그경기를 통하여 만개한 실력을 뽐내었다. 정규리그 시즌 3위. 그것도 총 24개팀중에 3위를 차지했으니 어느 팀도 이제 우리를 우습게 볼 수 없는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역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우리는 다시 리그에서 방출되는 신세가 되었다. 저니맨이 아닌 '저니팀'의 신세. 많이 아쉬웠고 서글펐다. 이제 정착을 해야만 하는데 자꾸 돌아다녀야만 하는 신세가 처량하기만 했다.

새로운 리그를 찾고 또 찾은 가운데 '하타케야마리그'라는 이상한 이름의 신생리그를 찾아내었다. 가입을 하고 처음 감독자 회의를 하던 날, 사무국의 젊은 사람들은 상당한 의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좋았다. 그리고 그들의 열정이 좋았다. 구장은 역시 중학교구장이었지만, 석암리그처럼 말도 안되는 초등학교 구장을 쓰는 일은 없었다. 단 아쉬운 점이었다면 레프트펜스가 너무 짧아 홈런이 많이 나왔다는 것. 하지만 이것도 우리에겐 유리하게 작용했는데 그만큼 우리팀에 홈런타자가 많았던 것... 홈런에 대한 부상으로 주는 손목아대를 꽤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상하게 여기서는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조금씩 엇박자가 났고 그 결과는 많은 1점차 패배를 양산하였다. 정규리그 반타작의 성적.

하지만 우리는 토너먼트 게임에서 바라고 바라던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것도 정규시즌 각 2패씩을 안겼던 상대팀들을 대상으로 정말로 멋드러진 '복수혈전'을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마지막 팰컨을 상대로 한 최종 경기는 우리의 정신력이 상대팀의 실력을 압도한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블헤더란 악조건 속에도 모든 어려움을 떨치고 이뤄낸 승리. 지금까지 야구부 생긴이래 한경기 한경기 소중하지 않은 경기가 없지만 올해 마지막 경기만큼 강한 정신력의 승리로 이뤄낸 경기는 거의 없었다고 자부한다. 그만큼 어제의 승리를 일궈낸 야구부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제 3년간의 한 것도 제대로 없는 감독직을 놓았다. 허울만 그리고 이름과 무늬만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란 나를 따라준 야구부원에게 다시한번 감사를 드린다.

야구는 인생이다. 우리는 즐기기 위해 야구를 하는 것이며, 야구를 통해 인생을 즐기는 것이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난 지금의 야구부원이 열정하나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생각한다. 맘껏 발산하고 맘껏 풀자. 항상 그랬지만 우리는 승리를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IP *.122.1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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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7.12.26 10:31:11 *.122.143.72
잠실구장에서 경기 후 찍은 사진이 있어 올리려 했는데 여의치가 않네요.. -_-;; 담에 기회가 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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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2.26 11:34:11 *.75.15.205
경기의 룰은 공정해야 하지만 상은 누구나에게 골고루 승부욕이 아니라 나눔과 도움의 격려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고스톱 치다가 싸우는 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지만, 함께한 시간들에 공을 드린 사람에게 상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마추어 동호회나 즐기는 게임에서는 좋을 것 같아요. 흐뭇한 광경과 온몸의 열정을 자아내는 사람들이야 말로 놀이에 없어서는 안 될 공헌자들이니까 말예요.

전국노래자랑처럼 노래도 잘하고 장끼도 선보이면서 스트래스 확~날리는 배설과 소통의 미학적 축제를 만들어 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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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7.12.26 15:57:40 *.109.50.48

정말 정말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스포츠라는 것이 이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쟎아요

진짜로 스포츠를 사랑하시는 분들은
동호인이 아닐까 항상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일반대중을 위한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참 유감입니다.

다른 나라의 여가생활로서의 체육이 참 부러웠거든요...

멋진 감독님이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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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2007.12.27 00:54:18 *.226.110.51
재우님, 감독님 치고는 너무나 귀여우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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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2007.12.27 16:00:27 *.76.121.46
맞습니다. 맞고요. 재우형은 귀여운 감독님입니다~^^

꼭 만화 캐릭터 같아요.

저도 야구 정말 좋아하는데, 아직 동호회에 가입을 못했습니다.

주말마다 집사람이 학원에 가야되서 아이들 보느라고요ㅠ.ㅠ;

야구는 1년 더 참고, 주말마다 아이들과 책보고 열심히 놀려고요.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꿈벗이 될 수 있도록...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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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7.12.27 17:15:01 *.122.143.72
써니님.. 지난 일요일 학실하고 씨원한 배설을 했습니다.. 언제 또 쌀지(?) 모르겠지만 넘 넘 시원했습니다^^

백산님.. 저희 팀이 잘 이기지 못하다 보니 승패를 떠나 즐기라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말씀 드리는거지만 정말로 이기고 싶었던 적이 꽤 많았습니다..ㅋ 자꾸 지다보니 분위기 영 아니더라구요.^^

사무엘님, 주영씨.. 두 사람이 더 귀엽거등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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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7.12.27 21:32:51 *.131.127.91
재우님은 정말 멋지시군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니..
훌륭한 감독이셨겠군요...

승리 또는 즐거움 이라는 것을 놓고 게임을 하는 목적을 두 가지로 구분하시면 도움이 되실거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승리를 목적으로 한다면 즐기는 것을 수단으로 하면 되는 거구요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승리를 수단으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기술이나 전술 전략적인 것들에 대해 훈련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즐거움의 종류가 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야만 시합에서 이길 수 있고 성취감에서 오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견디어내면 그것또한 즐거움이 됩니다.)

그러나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기는 것을 도구로 즐거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훈련된 상태나 능력이 비슷비슷한 상대를 골라서 게임을 하는 것이 게임자체에 몰입하게 해줄 수 있고 그로 인해서 즐거움이라는목적을 달성하게 해 줄 것입니다.

감독님의 입장이라면 둘을 상대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해서 이기고 짐에 관계없이 성취감을 얻을 수 있게 해 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동호인들은 상당한 열정과 기본적인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단지 고급의 기술이나 능력을 익힐만한 시간이 없을 뿐입니다.

이기는 것과 즐기는 것의 적절한 목표설정으로 균형을 찾으시면
훨씬 더 많은 성취감을 얻으실거고 그래서 재우님을 그것들을 찾았었기에 더 많은 성취감을 팀원에게 주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펜싱 동호인 회장님이 계시는데 15년 가까이 꾸준히 펜싱을 하고 계십니다. 아주 건강하시고요, 또 몸매도 좋으시고 튼튼하 하체와 무엇보다도 인격수양이 깊어서 정말 정말 존경합니다.
사는데 펜싱 기술이나 전술 몇 개 더 알아서 게임이기는게 얼마나 보탬이 되겠습니까? 성실하고 일관된 그 태도가 몸을 건강하게 하고 삶을 건전하게 하는데 비교가 될 수 있습니까?

그 분이 멋진 여자분하고 늦은 나이에 결혼했는데 그러더군요,
자신이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를 한결같이 꾸준히 한 것'을 높이 사서라고...

시합 한 게임이 이기는 것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제가 그랬습니다.
'회장님이 진짜로 펜싱을 사랑하시는 사람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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