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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여러분이

2008년 1월 8일 07시 21분 등록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신새벽 적막한 방안엔 컴 돌아가는 소리뿐....
그 흔한 음악 한소절 없이 멍한 상태는 계속 되었다.
언젠가 한번은 나도 유서란 걸 써 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더랬다.
요며칠 계속되는 우울한 날들을 날려 보내고자 난 지금 죽음 앞에 맞딱드린다.

어제는 김광석 추모 12주기 기념식들이 여기저기서 열렸었다.
그토록 좋아해서 꼭 한번 가보고 싶던 콘서트가 그의 죽음 앞에선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아쉬움으로만 남겨졌다.

죽음이란것이 바로 그런 것이겠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어 안타까운것.
난 이미 우리 엄마를 가슴에 묻고 산지가 19년이다.
꿈에서나 가끔 만날수 있는 울 엄마.
나이가 들면들수록 그리움은 더 사무친다.

내가 죽는다면....
가장 먼저 울 두딸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엄마라고 곁에 있어주기만 했지, 살갑게 놀아 주지도 못했고
많이 우울한 모습과 맥주 한병에 시름을 달래는 모습만 보여줬었다.
굉장히 자주 화를 냈고 소리를 질러댔다.
아직은 어리다고 집안일도 별로 시키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두고 가려니, 마음이 천갈래만갈래 찢어진다.

먼저, 재은아!
엄마는 재은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어.
아기때부터 난 너를 키우는것이 너무 버거웠었다.
첫아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와 넌 소위 말하는 궁합이
맞질 않았어. 그래서 네게 참 짜증도 많이 내고 항상 차갑게 대했지.
그런데도 넌 엄마라고 지금도 날 독차지 하고 싶어 하지.
나를 너무 많이 닮아 버린게 싫었던거야.
내가 이렇게 죽음 앞에 섰을 때 가장 안타깝고 미안한 사람이
바로 너라는거 아니? 못다 준 사랑이 한스러워 떠나기가 어렵구나.
미안하다. 내 큰딸아...

그리고 재아야!
엄마, 아빠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다른 어른들 앞에서도
사랑 받는 법을 알고는 그렇게 이쁜 짓만 해서 모두들 너를 좋아 했었지.
그래서 엄마는 너에 대해선 안심이란다.
하지만 너의 그 탱글한 엉덩이 살이 그립고, 너의 그 예쁜 볼살이 그리워서
엄마는 어쩌면 좋니?
재아야, 엄마는 재아를 낳고 많이 건강해져서 네게 너무 고마워.
엄마가 떠나면 네겐 언니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될거야.
언니랑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해.
사랑한다. 내 막내야.

여보!
세번째라고 서운한건 아니지?
난 당신의 그 스마트함이 좋았어. 무지 박식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지.
날 참 많이 기다리게 한 사람이었어.
사람 좋아 하고 술 좋아 해서 당신의 늦은 귀가가 나의 스트레스였지만
그래서 당신 주위에 사람이 많은 것이 내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지.
난 당신의 그 멋진 목소리가, 따스한 손길이 너무 그리울것 같아.
당신은 내게 긍정의 힘을 불어 넣어 주었어. 근데 난 그걸 온전히 받아 들이지 못했어..
미안해 항상 불평불만만 늘어 놓았어.
여보, 그래도 우리 좋았던 기억만 안고 살길 바랄게..
좀 더 잘 해줄걸.... 내가 너무 긁어댔어..
난 나만 기억하며 사는건 원치 않아. 좋은 사람 만나서 남은 생도
잘 꾸려 가야지 내가 안심일 것 같아.
우리 아이들도 잘 챙겨 주는 아주 착한 사람 만나야 해. 응.
사랑해! 여보

어린나이에 엄마를 잃고, 엄마사랑이 부족한 내 동생도 생각나고,
울 부모님, 친정식구 , 시댁 식구 모두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난다.

왜 몰랐을까?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일상의 행복을,....

좀 더 재밌게 살 걸 그랬어.
좀 더 베풀며 살 걸 그랬어.
좀 더 이해할 걸 그랬어.
좀 더 사랑할 걸 그랬어.


좀 더 잘 할 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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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8.01.08 07:11:30 *.209.52.20
요즘 우울하셨군요. 나도 2,3일 우울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시간 허비하다가 오늘 새벽, 서서히 컨디션이 돌아오는 중인데요.

정작 정말 우울하면 이만한 움직임도 못하지요. 그러니 님도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오잉~~ 우리의 바이오리듬이 같은가보네. ^^

그래요, 실수투성이의 삶이지만 아직은 살아갈 시간이,
오늘이 있다는 것에 환호합시다.
좀 더 사랑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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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
2008.01.08 12:58:49 *.34.156.43
새벽에 울며 쓴 글이 왜케 웃기는거죠?

글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많이 깔려 있어서 그런가봐요.



애들 방학하고 자꾸 집에만 있다보니 우울한 맘이 많이 들었어요.

전 오전에 동네 한바퀴 쏘다니는 걸로 하루를 시작햇었거든요.

암튼 애들 방학이 엄마에겐 고역이예요. 삼시 세때 챙겨야 하구...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겠습니다.


명석님, 오늘은 바이오리듬 상승 곡선 맞는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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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1.09 11:20:38 *.122.143.151
"삶은 낮은 굴곡 속에 솟아 오르는 상향곡선"

제 중학교 일기장에 써 놓은 문구입니다.
원래 의미는 현재 힘들지만 즐거울 때가 곧 올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만든 문구입니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와선 낮은 굴곡은 낮은데로, 상향곡선은 높아지는데로 모두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시간이 지나 인생을 되돌아 보았을 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요. 그만큼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줌마님, 이제 유서를 통해 스스로를 죽이셨으니 Jesus처럼 부활만 남았네요. 새로얻은 인생 즐겁게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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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
2008.01.10 14:25:36 *.34.156.43
어제는 두번의 부고 소식이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엘 다녀 왔어요. 몇번 안가 본 그 곳의 공기는 여느 곳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의 지인의 상갓집에 잠깐 다녀 온 후 ,퇴근 후 저녁을 먹은 남편에게 박노진님 아버님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번 천안에 내려 갔을 때 노진님의 아버님이 직접 재배하신 콩도 얻어 왔었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재우님, 쓴 유서를 읽다 문득 제 친구들을 몽땅 빠뜨렸다는 생각에 엄청 미안함이 밀려 오더군요. 아줌마 되고, 서로 바쁘고 거리가 멀어 자주 못 만나는 것도 서러운데..... 조금 나이가 들면 다시 예전처럼 지낼 날이 오겠지요? 그래서 계가 필요한가 봅니다.


젤 먼저 재밌게 살지 못한게 후회 돼서,
즐겁게 살 여러가지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다른님들 글 훔쳐 보기도 저의 즐거움중 하나이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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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자
2008.01.11 19:36:49 *.133.48.253
저도 근 한달넘게 우울했었어요.
무언지도 모르게 화가 많이 나기도 했지요.
혼자 울기도 하고...

얼마전엔 '죽음'까지 생각했어요.
그러니되려 마음이 편해지대요.

죽음...
삶의 긍정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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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성은
2008.01.14 23:17:04 *.121.68.108
반갑습니다~ ^^ 그리운 줌마!
님의 글을 읽다가 대책없이 눈물을 주루룩 흘렸지 뭡니까?
아빠 돌아가신 이후로 왠만해선 눈물이 잘 안나는데 말이에요.
아마도 재은이 부분에서 왠지모를 공감같은게 이루어졌다봐요.
돌아가신 아빠와 제가 그랬거든요.
동생을 더 예뻐라하는 아빠를 보며 저는 서운한 감정보다는
'내가 아빠한테 사랑을 더 많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뭐 그런 종류의 생각을 열심히 했던거 같아요.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았던 아빠라 커가면서 더 많이 이해하게되었구요.
아마 재은이도 그럴거에요.
사랑한다고 꼭 안아주면 그걸루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해하지 않을까?
엄마의 미안한 감정은 가슴에 담아두고 있지도 않을거에요. ^^
글구 우울할때는 목욕탕에 가보세요.
냉탕1분-온탕 1분, 그렇게 10번쯤 반복하고 나면 세상이 또 살만해지더라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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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
2008.01.15 00:13:20 *.34.156.43
몇일 전 시아버님 상을 치르고 난 동네 친한 엄마와 또 다른 맘들 이렇게 넷이서 술을 한잔 하고 들어 오는 길입니다.
시아버님이 췌장암을 앓고 6개월 만에 가신건데, 그 가족들이 많이 힘들었던거 옆에서 봐 왔습니다. 모두들 예견한 죽음이라 맘의 부담을 덜어서인지 편하다고 하지만, 시아버님과 사이가 안 좋았던가봐요. 묘한 감정이 그 엄마를 불편하게 하고 있더군요.


그 엄마 오늘에서야 자기 친정 속내를 얘기하며 만취가 돼 버렸습니다.가족이기에 미워 할 수도 증오 할 수도 없는 그 맘을 털어 놓곤 꼬꾸라지더니 마구 토하는걸 뒷치닥거리하며 맘이 많이 아팠습니다.


시댁도 친정도 맘 붙일 곳 없는 그 엄마의 가슴앓이를 되뇌이며 오늘 밤은 쉬 잠이 올 것 같지 않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어쩜 더 큰 상처로 다가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짠한게 가족이기도 할것이구요.





귀자씨! 당신의 그 젊음이 , 그 총명함이 때론 우울의 적을 만날지라도
금새 털고 일어 설수 있는 내면의 힘으로 뒷받침 해 줄거예요.
눈웃음이 매력적인 귀자씨 보면 참신함과 신선함이 묻어 있어 참 이쁘답니다. 이젠 힘이 많이 나신거죠?

성은님! 우리 남편 사진을 정성스레 찍어 주신 그분이 맞으신가요?
감사 인사가 늦었습니다. 성은님이 아빠를 기억하는 것처럼 울 큰딸 재은이도 절 더 많이 그리워 하겠지요? 우린 너무 닮은 꼴이니까.....
저처럼 엄마 많이 그리워하지 않도록 전 아주 오래 살고파요...ㅎㅎ

술을 한잔하고, 삶과 죽음을 얘기 한 오늘 밤도 제겐 축복입니다. 요즘은 우울과의 싸움에도 재미를 붙여 가는 중입니다. 전 가진 것이 많은 행복한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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