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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8일 22시 03분 등록
3기 사우(師友) 여러분, 축하합니다. 즐겁고 험난한 수련 기간의 끝이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알 겁니다. 어떤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알기 위해서는 마지막 장면이나 스코어만으로 충분합니다. 연구원 생활의 결과도 아웃풋만 보면 알 수 있겠지요. 하지만 ‘몇 권의 책을 읽고 정리했고, 몇 편의 칼럼을 썼다’는 것은 연구원 생활의 10%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결과나 성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욱 의미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지난 1년 간을 곰곰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하이라이트를 모아보세요. 시간을 내서 깊고 넓게 되짚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회를 글로 남겨두세요. 수료하기 전에 정리하면 좋아요. 나중에 정리하려면 만만치 않고 생생하지도 않을테니까요.

첫 책을 먼저 쓴 선배 연구원으로써 3기 사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들이 있습니다. 긴 글이 될 것 같군요. 하지만 짧게 나눠서 올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 호흡으로 내달리고 싶습니다.

먼저, 첫 책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거기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군요. 저의 첫 책은 사부님과 1기 연구원인 세나와 함께 쓴 ‘아름다운 혁명, 공익 비즈니스’입니다. 첫 책이 나왔을 때, 저는 크게 기쁘지 않았습니다. 아쉬움이 있었고 부끄러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저를 감동시킨 몇 권의 책들, 그 책이 저의 비교 기준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허나 능력도 정성도 20% 부족했습니다. 20%가 제게는 마음의 짐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5주 전쯤이 되겠네요. 우연히, 정말 우연히 첫 책을 다시 잡게 되었습니다. 한장 한장 넘겨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시간을 보게 되었습니다. 책의 내용과 함께 책을 썼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슴이 따뜻했습니다. 책의 모양이나 내용이 바뀐 것도 아닌데 제 마음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이유는 제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책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관점과 뭔가 달라진 것이지요. 저는 스스로에게 따뜻하게 말해주었답니다.

‘승완아, 잘 썼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너 역시 이 책이 많이 도와주지 않았느냐. 첫 걸음 치고는 튼실하지 않으냐. 사부님과 세나와 함께 썼기에 이 정도로 풍성한 책이 된 것이다. 지금 돌아보니 책을 쓰면서 즐거운 시간이 참 많았구나.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얼마 후, 우연히 제 책에 대한 영훈 형과 정희 누나의 리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진심으로 꼭꼭 씹듯이 읽어주어서요. 그리고 뿌듯했습니다. 그전부터 문득문득 했던 생각입니다만, 3기 연구원들의 책이 나오는 데 어떤 도움이라도 된다면 어떤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물결처럼 일렁거렸습니다.

제가 이렇습니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마음만 앞섭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부족하기보다는 넘치는 사람’, 이것도 저의 고유한 기질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약점이 될 수도 있고, ‘비옥한 자만이 넘칠 수 있다’는 말처럼 좋은 강점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기질임을 이제는 압니다. 이런 깨달음 역시 사부님과 연구원들과 ‘강점 발견’에 대한 책을 함께 쓰면서 얻었습니다. 이 책은 여러 명이 함께 썼지만, 저는 자랑스럽게 저의 두 번째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책을 쓰면서 즐겁고 고단하고 답답하고 즐거웠으니까요.

여러분, 그대들도 이제 책을 쓰게 되지요. 연구원 1년은 끝이 아니에요. 말하자면 끝의 시작입니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위한 첫 걸음이듯이, 연구원 1년은 새로운 출발점에 서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 출발점은 여러분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일 겁니다. 혹시 프란츠 카프카의 시처럼 짧은 ‘인디언이 되려는 소망’을 읽어보셨나요?

“인디언이 되었으면! 질주하는 말 잔등에 잽싸게 올라타 비스듬히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대지 위에서 전율을 느껴보았으면, 마침내 박차를 내던질 때까지, 실은 박차가 없었으니까. 마침내는 고삐를 집어던질 때까지, 실은 고삐가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눈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풀이 깎인 광야뿐일 때까지. 이미 말 모가지도 말대가리도 없이.”

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겁니다. 평생의 스승을 만나, 어느 시기에는 불타오르고 때때로 주저 않았지만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갈고 닦았습니다. 그게 지금의 나입니다. 대단한 거 없어 보이지만 그 8년의 기간이 없었다면 지금만큼 못 되었을 거란 것을 압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자질과 성실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난 1년 간 여러분은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고삐를 늦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요한 질주’를 시작하세요.

여러분은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달리세요. 말과 박차와 고삐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말과 하나되어 달리는 인디언처럼 말입니다. 어떤 느낌인지 알죠? 여러분은 몽골에서 말에 몸을 실고 내달려보지 않았습니까. 그때의 경험을 가져 오세요. 여러분 앞에 드넓은 광야가 펼쳐져 있지 않습니까. 남해 첫 모임에서 사부님이 말씀하신 푸른 바다가 여러분을 유혹하고 있지 않습니까. 글은 말타기입니다. 글은 푸른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것입니다. 두려움보다 설레임이 크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물에 가라앉지도 않습니다. 아니, 떨어져도 다시 탈 수 있고 몇 번을 가라앉아도 올라올 수 있습니다. 왜냐면 여러분은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간의 준비, 그것이 위기의 순간마다 여러분을 구해줄 겁니다. 갈림길에서 통찰을 줄 것이고 어려운 순간마다 디딤돌이 되어줄 것입니다. 더욱이, 여러분 곁에는 사우(師友)들이 있습니다. 스승이자 벗인 이들이 수십 명 있습니다. 여러분의 성공을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는 많은 꿈벗도 있습니다. 눈을 감고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사부님이 보이시지요? 곳곳에 여러분을 향해 두 팔 벌린 사우들이 보이고, 여러분을 향해 진심으로 박수를 쳐줄 따뜻한 손을 가진 꿈벗들도 보일 겁니다. 이렇게 비옥하고 튼실한 환경을 어디서 만나겠습니까.

프랑스의 영화감동인 프랑수와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3가지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영화에 대해 비평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3기 연구원 여러분 모두 사부님을 사랑하지요? 그렇다면 사부님에게 배운 것을 여러 번 되새기세요. 그것을 자신에게 활용하세요. 그리고 그것으로 빛나는 자신으로 재생(再生)하세요. 그것이 제가 알고 있는 사부님을 빛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에요.

5년 쯤 전일 겁니다. 사부님에게 “사부님을 닮고 싶습니다”라고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부님은 제게 “가장 나쁜 제자는 스승을 영원히 빛나게 하는 자”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그 깊은 가르침에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마음으로 날카롭지만 따뜻하게 들어온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때는 가슴으로만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그 가르침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머리로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사부님의 품에 안겨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 싶어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사부님을 극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부님을 넘어서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제 말은 사부님의 가르침의 핵심을 삶으로 실천하라는 겁니다. 제가 알기로 사부님은 단 한 번도 ‘나를 닮아라. 내 방식이 최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는 ‘그대의 재능과 신념으로, 그대 고유의 색깔을 살려 활짝 피어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가르침을 깊이 따르는 것이 사부님을 빛나게 하고, 사부님의 품을 떠나되 사부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 첫 번째 전환점이 여러분의 첫 책을 쓰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지요? 그렇다면 자신의 내면과 꿈과 상황을 크게 보고 자세히 살피세요. 그렇습니다. 대관(大觀)과 세찰(細察)입니다. 스스로를 솔직히 바라보세요. 그리고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발견하세요. 그대의 고유한 색깔, 그것이 위대한 자신을 그릴 수 있는 유일한 물감입니다. 자신의 색깔로 그린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을 세상에 소개하는 훌륭한 수단이 책을 쓰는 것입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자신만의 컨텐츠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 컨텐츠가 책으로 나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컨텐츠, 그것이 자신의 미래를 위한 무엇보다 단단한 주축돌이 되어줄 거란 점입니다.

책을 쓰는 것은 ‘모험’입니다. 모험을 통해 뭔가 획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모험 그 자체입니다. 훌륭한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의 말처럼 “모험 자체가 모험에 대한 보답”인 것입니다. 모험의 결과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모험의 여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백배는 더 많습니다. 그리고 모험의 여정에서 열심히 잘 배운다면, 그만큼 좋은 책이 나오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쓰는 것은 또한 ‘거듭나기’입니다. 책을 쓰는 것은 뭔가를 얻는 것인 동시에 비워내는 것입니다. 즉, 창조와 파괴가 함께 춤추는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시켜야 한다.” 여기서 ‘파괴’라는 과격한 용어는 긍정적입니다. 새는 알을 깨고 그것을 버려야 본래의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더 깊고 높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준을 떠나야 합니다. 책을 쓰는 것은 지금의 수준을 우아하게 벗어 던지고 확실하게 날아오를 수 있는 멋진 방법입니다.


푸른 바다 앞에선 3기 여러분을 온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 1기 연구원이자 그대의 사우(師友) 顯山 홍승완, ‘아름다운 혁명 공익 비즈니스’의 공저자


* 제가 첫 책을 쓰면서 느낀 점과 배운 점에 대한 생각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다른 글에서 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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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1.28 22:54:29 *.70.72.121
師友의 이름자와 함께 달려나오는 '아름다운 혁명 공익 비즈니스'가 눈부시게 미치도록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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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08.01.29 08:51:55 *.92.16.25
역시, 우리 승완이.
이러니 너를 아니 좋아할 수가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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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8.01.29 10:11:32 *.18.196.124
처음은 작았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승완이에게 어울리는 말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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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1.29 10:15:43 *.180.46.11
모험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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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2008.01.30 08:57:43 *.244.218.9
오랫만에 글 읽으니 반갑군요 ^^
오랫만에 봐도 역시 오빠 글은 오빠같지 않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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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2008.01.30 09:25:14 *.131.139.21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니가 참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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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8.02.03 10:43:26 *.145.231.77
이 시점에서 나도 한마디 던지지 않을 수 없겠군.
역시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조언이란 생각이 들어.
그래서 이곳에는 네가 꼭 필요한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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