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써니
  • 조회 수 1585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8년 1월 29일 12시 35분 등록

나, 글 써요.

당신과 함께였다면 더 예쁘고 기쁜 우리들의 이야기를 썼을 테죠.


우리 헤어지던 날
두려움에 떨며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가만히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여 진 노오란 종이를 꺼내들며 파란 빛깔의 잉크가 묻어나는 만년필로
즉각적으로 뇌리에 스치는 11가지를 길게 세로로 적어주었더랬죠.

당장에 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 해봄직한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

기억나세요?
그 중에 작가라는 말도 끼어있었어요.

당신과 함께 짧게 사는 동안 참 많이 싸웠죠.
그러나 단 한 번도 편지 따윌 띄워본 적 없죠.
잡지 한권 펼칠 평화도 별반 갖질 못했어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내가 글을 쓰게 될 것이란 것 말예요.

당신 적어준 그 몹쓸 종이, 제법 오래 간직하고 있었어요.
가끔씩 펴보다가 한숨이 숨통을 짓이기던 어느 날,
당신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던 우리들의 처절한 싸움의 한 장면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집어 들어 힘껏 패대기를 쳐버렸죠.

이룰 수 없는 일이고 부질없다고, 당신 생각을 접으려는 것이었죠.
우리 헤어진 후 8년차쯤의 어느 벼랑에서 일거에요.

내게 그렇게 한가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란 걸 예감하고 무서워서,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리고 말았죠.


그런데...

지금 나, 글 써요.
그저 단순한 사실에 지나지 않죠.
아직 시집 하나, 책 한권 꾸며본 적 없죠.

방금 전,
연구원 아우의 전화를 받았어요.
서문 썼으면 이미 책 쓰기 시작한 것 아니겠느냐며,
자기는 북까페에 들러 밀린 책읽기를 하고 집에 들어가려 한다고.

문득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당신생각이 났어요.
아마도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죽었던 당신이 나에 의해 수없이 처형당한 당신이,
내 앞에 이글거리며 살아나
어떤 날은 칼을 휘두르고, 또 어떤 날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다가오겠죠?

나, 이 일을 어떻해요.
어떻하면 좋을까요?


IP *.70.72.121

프로필 이미지
할리보이
2008.01.30 21:08:44 *.133.238.5
이 글 읽고 갑자기 울컥~~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콧날이 시큰...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8.01.31 23:41:10 *.70.72.121
항상 안경 끼고 있어서 믿을수가... ㅋ

사랑해본 경험이 식지않는 것이겠죠. 아직도 눈물이 남아있나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프로필 이미지
할리보이
2008.02.02 14:55:21 *.133.238.5
하하하~~

저도 아직 눈물 나온다구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39 [83] 웃음 짖는 하루 [4] 써니 2008.03.23 2024
2138 회사에서 듣게 된 나에 대한 뒷 얘기 [2] J dong 2009.02.24 2024
2137 <변화학 칼럼10> 거꾸로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 [5] 문요한 2005.05.31 2025
2136 8차 꿈 프로그램 이야기 [12] 강미영 2006.03.16 2025
2135 먹고살기 맑은 김인건 2010.02.11 2025
2134 구본형 선생님께 file [2] 지금 2010.02.19 2025
2133 다시 그 부부 - 아내 [3] 꾹의 아내 2010.04.14 2025
2132 배신당한 이들에게.. [2] 백산 2010.06.30 2025
2131 운명은 개척할 수 있는가? [2] 도명수 2006.11.09 2026
2130 <3주차 컬럼> 시간의 풍경, 시대의 풍광 [6] 박상현 2010.03.01 2026
2129 딸기밭 사진편지 23 / 2분, 번쩍 사로잡기 file 지금 2010.04.21 2026
2128 1인회사 지하철 홍보 확인 [1] [1] 희망빛인희 2013.01.08 2026
2127 매일79 : 평가받는 것의 가치 [1] 인희 2010.10.01 2027
2126 <9기 레이스 칼럼 3주차> 현대의 영웅에 대하여 - 김준영 [2] 델게르마아 2013.02.17 2027
2125 '고치기'와 '받아들이기' [3] 신재동 2005.06.14 2028
2124 3. 나에게 시간은 무엇인가?(노미선) [9] 별빛 2010.03.01 2028
2123 곳곳에 지뢰 [1] 꾹입니다요. 2010.03.23 2028
2122 팔빠진 금연구역 신진철 2010.04.23 2028
2121 딸기밭 사진편지 70 / 8월 file 지금 2010.08.07 2028
2120 매일쓰기55 : 상호 소통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공헌하기 인희 2010.09.07 2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