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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31일 17시 50분 등록
어머니가 치매를 염려하신다. 팔순의 노모는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신가 보다.
아니, 자신의 갑갑함을 특유의 예리함으로 관찰하며 파악하고 계시는 걸까?
구민 복지관에 다니시는 어머니께서는 관내 보건소와 연결하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협진체제로 치매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을 따라, 보호자를 동반하고 전문의로부터 1차 검진과 진료를 받으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아침 일찍 서둘러 보건소로 향했다. 새로 지은 청사가 멋들어졌고 시설도 깨끗하여 좋았다. 어제 밤부터 긴장을 하신 어머니는 내가 잠들기까지 잠이 안 오셨는지 나중에 안정제를 잡수시고야 주무셨다고 한다. 자못 긴장이 되신 모양이다.

평소 허약하시긴 해도 연세보다 남다른 총기를 지니신 분이라고 생각이 되는바, 우리는 당신께서 답답해하시는 증세가 자연스러운 노화의 상태라고만 주입시키듯 안심시켜드리며 일축해버렸다. 그래도 영리한 어머니께서는 복지관의 고령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안내를 귀 기울여 두시고 기회가 있자 신청을 하신 모양이다.

치매센터의 직원은 첫 번째의 부지런한 내방객을 맞아 차 대접을 하면서, 다음단계의 진행이 준비가 되는 동안 우리를 잠시 기다리게 하였다. 어머니는 차를 한 잔 드시며 추운날씨와 서둘러 내방한 분주함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셨다. 그러는 동안에 간호사로 보임직한 직원이 상냥하게 다가와 몇 가지 간략한 서면상의 질의에 주의를 기울이며 또박또박 체크를 해나갔다. 어머니도 생각보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조근조근 말씀을 잘 나누고 계신다. 가급적 나는 방관자처럼 끼어들지 않았다. 구체적인 날짜와 시기 등을 기억하는 문제와 어머니께서 잊어버리신 기억에 대해서만 몇 가지 거들어 질의에 응했다. 사실 요즘 내 기억력이 더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머니는 이야기를 하실 때면, 한참을 다른 이야기를 하시고 난 후에야 당신 본심을 털어 놓으시는 경향이 있으시다. 그것을 보고자란 나도 역시 그런 성향이 짙다. 요즘말로 치면 초점을 잃어버리고 엉뚱하게 다른 문제에서 시시콜콜하게 늘어지는 경향 말이다. 곁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내가 어머니를 빼닮았다는 생각에 지긋한 연민의 미소가 번진다.

이윽고 담당전문의의 진료차례다. 우리는 의사 앞에 나란히 앉았다. 어머니가 좀 더 가까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 앉으셨고, 나는 의자를 조금 빼서 무심한 듯 약간 빗겨 앉았다. 보호자가 너무 나서면서 적극적으로 대항하듯 대변하여 앉으면 진료를 보는 사람이 다소 옹색해할 것 같은 심정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였다. 어쩌면 평소 내가 환자들을 대하며 저절로 배인 습성에 의한 자연적인 발로일지도 모른다.

젊고 깔끔한 의사는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며 진료 의뢰자와 그 보호자를 예리하고 날카롭게 수시로 쳐다봐가며, 마치 핀셋으로 무언가를 골라낼 때처럼 낱낱이 살핀다. 제법 똑똑해 보이는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어머니는 약간 긴장을 하는 듯해 보였으나, 이내 애써 긴장을 누그러뜨리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내가 옆에서 천천히 말씀하시라고 일러드리니 어머니는 숨을 몰아쉬시며, 여리고 예의바르게 다소곳한 매무새로 의사의 질문에 귀 기울이셨다.

저렇게 앉아 말씀을 하실 때면 언제나 천상 여자다. 아니 어머니는 정말로 천상 여자이셨다. 삶에서 우리들을 세상에 내놓으며 인생의 시름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아마도 발랄하고 꿈 많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셨을 것이다. 채 미처 철도 들기 전에 세상이 요구하는 어지러운 변화인 일제시대와 6.25동란 등에 쫓기며, 당신의 아름답고 맑은 영혼을 저당 잡히어 살기 전까지는.

의사는 핵심을 간파하며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을 골고루 잘 활용하였고, 어머니도 성의를 다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적극적인 의지를 내보이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문제를 말씀하셨으나, 처음에 의사는 잘 감이 잡히지 않는 다는 듯이 조목조목 신중하게 관찰해 나갔다. 의사는 내게 어머니의 말씀에 공감을 하거나 동의를 하느냐는 식으로 확인하였다. 나는 워낙에 총기가 있으신 분이지만 신경이 상당히 예민하신 점을 들어 설명하였고, 요즘에는 기력이 딸리시는지 자주 가불가불 가부러지시는 듯 하며, 특히 이즘에는 자주 방향감각이 잘 없다며 고통을 호소하시고, 전에도 신경을 쓰시면 이런 증상을 말씀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고개를 완고히 절래절래 흔드시며 예전과 다름을 설명하시고자 하였다. 신경을 쓰지 않은 날도 무심결에 어디가 어디인지 한참을 생각을 해야 하고, 자주 어지럼증 같은 현기증이 있음을 설명하셨다. 의사는 특히 방향감각과 공간지각을 답답해하시는 어머니에게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시작하였다.

먼저 집주소와 전화번호 등 간단한 문진을 하며 어머니의 모습을 눈여겨 살피는 의사의 눈이 예리하게 번득인다. 수리는 나보다 나을 정도로 참 잘하셨지만 대답은 늘 자신없어하셨다. 틀릴까봐 미리부터 걱정하시는 눈치다. 모두 정확하게 맞히셨지만 모두 틀린 답변을 하는 사람처럼 자신 없어 하셨고, 당신이 맞는 대답을 하고 있는지 틀리는 지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삶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그러셨다. 타이틀만 전업주부이셨던 어머니는 대외적인 일을 하시는, 즉 직장의 장급으로 사회생활을 하시는 아버지보다 훨씬 뛰어나고 영특하실 정도였지만, 언제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버지께 제가를 받으셨는데, 최종 결제자의 위치에 계셨던 아버지는 늘 어머니에 비해 총명함이 덜 하셨다. 당신께 맡겨진 일 외에는 도무지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잘 모르시고 관심도 없으신 듯했다. 아버지가 당신 인생을 명예로움으로 선택하셨던 반면에, 어머니는 현실적 삶의 안정을 선택하셨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 잘 조화되지 못하였다. 아버지의 삶은 이상적이셨고 언제나 명예을 소중히 생각하셨다. 반면 어머니는 고지식한 아버지의 실속 없는 생활력으로 인해 보다 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현실을 택하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게다가 두 분은 생각이 참 많이 다르시다. 그래서 문제의 접근과 해결도 늘 다르다. 그렇다, 바로 그것 말이다.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에게 상식처럼 보이는 그런 문제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아주 전혀 다른 문제가 될 때가 더러 있지 않던가. 이럴 때 우리는 다방면에 뛰어난 사람들보고 상식이 풍부하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이 경우에는 그것이 그리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고 단순하게 해결 되지 않았다. 또 우리는 쉽게 생활에서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대응하지?’ 라고 하지만 그 당사자는 그것의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르게 접근해 갈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상대의 기대에 못 미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러한 일례들처럼 그래서 어머니는 늘 당신의 일상, 즉 인생이 답답하셨다. 당신이 결정하기에는 두려움이 있어 도움이나 조언을 청하면, 상대는 훨씬 못 미치는 답변을 해대거나 왜 그렇게 사느냐는 식의 전혀 원론적으로 다른 말만 늘어놓으며, 해결의 실말이를 풀어주지 못하니 그저 혼자서 속이 탈 수밖에.

겉으로는 성실한 아버지가 살림을 일구신 것 같지만, 그 내용으로 살피면 아버지는 당신께서 번 이상을 오히려 다 잃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나 순진하고 고지식한 천성으로 인해 남에게 번번이 당하고 마시는 것이다. 적게 힘들여 벌고 관리를 못해 크게 잃으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신의 허욕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답답함을 가진 가운데에서도 항상 아버지의 위치가 언제나 굳건하셨던 것이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노력에 비해 얻어 가지신 것이 별로 없이 수고로움과 육신이 고달픈 일생을 살아오셨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어머니에게는 언제나 꿈이 많으셨던 것 같다. 당신의 호기심과 의문과 궁리들을 아버지와 함께 나누고 상의하고 싶었지만, 이해도 해결도 잘 못해 주셨다. 돕지 않으려는 것과는 달랐다. 관심영역 밖이고 능력 외의 것이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는 절대자의 위치에 놓여있었을 뿐이다. 힘들여 탑을 쌓아놓고 최종 결정에서 조언이나 목마름을 상의하면 사상누각沙上樓閣으로 만드시고 말았다. 때때로 도와주신답시고 일을 망쳐서 사고만 치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큰일에서. 그리고 더욱 답답한 것은 그러한 가슴 아픔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고 또 매번 반복된 결론밖에는 도달하지 못하면서도 근엄하고 절대적인 위치에 군림하였던 것이었으니, 그 한 맺힘이 어머니에게 많으신 모양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원망으로 삼기보다 자신이 똑똑하지 못해 생겨난 일이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어머니 가슴은 더 무겁게 닫혀있기만 하였던 것이리라.

의사가 이것저것 자세하고 꼼꼼하게 전반적으로 잘 살펴 질문을 한다. 젊어 어머니는 이런 저런 대수술을 많이 받으셨다. 그 가운데는 오래 앓은 병질환도 있으신데, 그것은 그때 그 시절 어른들이 많이 가진 질환이기도 하거니와, 그 병의 발병 원인이 아버지에게 있었던 것이라서 더욱 원망스러울 것 같았다. 나는 내심 의사 앞에서 엄마가 실컷 아버지에 대한 넋두리를 해댈 줄 알았다. 그런데 별 말씀이 없이 지나가셨다.

긴장을 해서 일까? 아까 간호사가 질문할 때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문제점을 또렷이 집어 말씀해 보시려고 하던 분이, 금세 잊어버리신 것인지 놓치고 계시기에 상기해 드리며 말씀해 보시게 하였더니 대수롭지 않은 듯 간단하게만 말씀하신다. 넌지시 다시 한 번 편히 말씀하시게 하였으나 사건만을 말씀하시지 토해내지 못하셨다. 나는 답답하기도 하고 의문도 들어서 그런데 왜 이 대목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없이 넘어가시는 것인지 의아해 물었다. 어머니는 한숨만 크게 내쉴 뿐 말해 무엇 하랴는 식으로 가만히 계셨다.

의사는 그러한 어머니의 행동이 바로 문제가 생긴 원인으로 보았다. 어떻게든 그것을 풀어헤쳤으면 저렇게 응어리가 우울하게 깔려 있지 않았을 것이지만, 체념하고 대응하지 않고 참음으로 인해서 생긴 일종의 오래된 ‘화병’ 같은 증세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팔순을 살아온 여인 가운데 화병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또는 그 시대는 다 그랬으니 그만한 것쯤은 스스로 해소하며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일축해 버리듯, 명확하게 선을 그으며 쉽게 말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디 삶이란 것이 그리 만만하기만 하였으랴.

의사는 종이를 내밀며 간단하게 동그라미를 그려보게 하였다. 어머니는 넓은 종이 한 귀퉁이에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고 반듯하게 둥근 원을 그리셨다. 다시 시계를 그려보게 하였고 바늘이 시간을 가리키도록 하였다. 다 잘 하셨지만 균형감에서 치우치게 하였고, 마음이 떨리시는지 당신 마음이 편치 않아하셨다. 어머니는 혼자 중얼거리시며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의사는 다시 지우개를 내밀어 드렸고, 어머니는 별로 고치지는 않았지만 아까보다는 대칭적인 균형감을 잘 찾아 숫자를 써 넣으셨다.

의사가 어머니께 도형을 그리라고 하는 순간 나도 긴장이 되었다. 어머니의 펜이 순간 멈출 듯 말듯 떨려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주사바늘이 무서워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미리부터 겁을 먹고 떼를 쓰는 아이모습 같았다고나 할까. 무언가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어머니가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저건 어머니가 해보지 않은 일일 뿐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하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도 마치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어머니 스스로 ‘나는 시계를 볼 수 있고 잘 할 수 있어’ 라고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름 어머니가 만족하는 그림이 됐고, 시계의 큰 바늘과 작은 바늘도 아주 똑바르고 정확하게 잘 그려졌다.

다음은 마지막으로 도형의 여러 모양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어서 나는 잘 따라 하실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마치 공부가 하기 싫어 지루해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이면서 마지못해 그리면서도 ‘이렇게 그리면 되지 뭐’ 하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그 모양이 같지 않다고 스스로 느끼셨고, 다시 두어 번 더 그렸지만 더 잘 그리시는 것이 아니라 전혀 엉뚱하게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나도 그때서야 어머니에게 문제가 있고, 당신이 갑갑해 하는 것에 대해 일리가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직선의 도형은 나름 잘 따라하셨지만 곡선에서는 완전히 전혀 다른 이상한 모습을 그리지 뭔가. 마치 공부하다가 전혀 다르게 이상한 모양을 그리며 심통을 부리고 마는 아이의 모습처럼 어머니의 팔은 힘없이 그림을 그리다가 “아이, 모르겠다, 잘 안 그려지네.” 하시면서도 왜 뭐 하러 이런 걸 그리게 하는 거야하며 하품을 하는 사람처럼, 지루하고 재미없고 졸리는 사람의 표정 같았다.

나는 검사 중에 의문이 드는 점을 질의 하였다. 어머니에게 발견되는 방향감각이나 공간감각 지각능력의 저하는 평소 그림 따위를 전혀 그려보시지 않음 때문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문제로 삼는 것이 바른 해석일지를 물으니 당신이 젊어서는 손수 집을 지으셨을 정도의 영리함이 있으셨기 때문에, 하나의 기능의 저하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혀 주었다.

의뢰자를 면밀히 요리조리 살펴본 의사는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하나는 서럽게 깔려 있는 약간의 우울증 증세와 또 하나는 경도의 인지장애가 있다는 것. 그래서 이를 병명으로 한 정밀검사를 요하는 3차 의료기관에 가기 위한 진료의뢰서를 발부해 주었다. 그리고 치매증상은 없다고 그건 아니라고 확신에 찬 듯 견해를 밝혔다.

어머니에게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치매 증상이 없다’는 의사의 확실한 증언에 가까운 한마디 판정 이었으리라. 우리는 연세가 있으시니 뇌기능 검사 등을 통해서 현재의 상태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예방차원에서 미리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안심과 해결책을 모색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물론 정신과에서 그동안의 수많은 과학적인 데이터로 얼마나 많은 실험을 거쳐 치료에 임하는 것이겠나. 하지만 그들이 강점혁명 등의 책이나 성격분석 책들에서처럼 인간의 타고난 고유기질이나 성향에 의한 적극적 치료까지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일테면 일상에서도 방향 감각과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다소 떨어지는 대신에 다른 기능이 활발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할 경우에 그것은 병적인 증세라기보다 특화된 기능이 아닐까하는 접근 말이다. 물론 지금의 문제는 저하되는 기능에 대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서도 예민하게 병증을 일으키는 사람이 정해져 있을 수 있다는 예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 데이터도 많이 있긴 하다.

그렇다면 내 어머니의 경우에는 특유의 예민함으로 당신의 병적 증세를 발견하는 예지를 갖으신 거라고도 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질환을 빨리 모색하여 관찰하고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예 그러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만큼의 느긋함으로 병이 발병하지 않거나, 알아도 대수롭지 않게 대처하면서 살게 되는 모양이다. 이것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상담과 의문점을 찾아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진료를 마치고 나왔다.

또한 어머니를 모시고 진료에 임하는 동안 어머니에게 많은 대화와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강력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연세들어서는 말 벗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쨌거나 어머니가 알아듣기에 자신이 염려하는 치매는 아니라고 생각하시고 한결 홀가분해 하시는 모습이시다. 다음 진료에서도 그런 검사결과가 나와 주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대한다.

보건소 진료를 마치고 나서며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이제 걱정 마시고 예약 일 날 함께 병원에 가보자’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나는 다 살았지만, 네가 한이 많아서 걱정이지... . 신경을 너무 쓰지 않아야... . 아프지 말고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당신 삶에 애물단지로 존재하는 나를 돌이키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명확해 지는 순간이다. 어설프게 글쓰기에 돌입하며 빨리 후다닥 써버리고 말아버리려 했던 나의 조급함이 무색해진다.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에는 따사로운 햇살을 등에 지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는 당신 어릴 적 고향 등을 방문하여, 어머니 가슴 한켠 안타까운 사연과 그 마음속에 깊이 남겨진 응어리 등을 바구니에 가득 캐와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오늘 저녁에는 어머니와 도형그리기를 다시 살펴보고, 의사 앞에서 다 털어내어 놓지 못한 당신 삶의 오솔길을 같이 손잡고 거닐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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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08.01.31 18:29:34 *.133.168.3
다행이네.
나이 들어서 자식한테 고생시켜주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누나가 잘 보살펴드려.
누나의 예리함과 예민함이 엄마 닮았구나.ㅎ
그러고 보니 나도 한 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가 생각나네.
오늘 저녁에 전화 한통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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顯山
2008.01.31 20:51:16 *.6.177.135
다행이다. 계속 좋아지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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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8.02.01 00:10:02 *.208.192.83
어미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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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2.01 07:47:01 *.70.72.121
에고... 긴 글 읽으시느라고 수고들 하셨습니다.ㅋ
나, 울 엄니 너무 닮았더라구요. 검사 받는 동안 내가 더 많이 울어서 의사가 어머니가 더 강하시다며 염려했다오. 3차 기관의 검사결과 아무 일 없고 관리에 중점을 둘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함께 걱정해 줘서 고맙네. 아우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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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보이
2008.02.02 14:39:57 *.133.238.5
놀라운 집중력...
젤 첨 드는 느낌입니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 이 정도의 세심한 관찰력을 발휘하기도 어렵거니와,(나를 포함한 대개의 보통 사람들의 경우)

그 관찰 내용을 분석적으로 접근하여 이 정도의 깊이와 길이로 서술해 낸다는 것은,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 그리고 평소의 부단한 노력이 없이는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을 것...

암튼, 대단하십니다.

써뉘님 어머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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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2.03 10:07:29 *.70.72.121
그 요란한 옷 장식이랑 할리데이비슨 그대의 애마가 내는 거의 굉음에 가까운 땅꿀 파는 소리랑

참신한 소년 같은 모습의 노래 하는 자세와
오물오물 단정한 입 벌림의 노래랑 참 이상하게 불일치 하죠.

전자가 기질적 터프가이라면 후자는 원초적 순수성 같은?

하여간 ...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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