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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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아해 하나 중천의 해에 걸려
아늑한 평화로운 공간의 숲과 밭과 개울과 어울려 지즐대고
덩그마니 하얀 겨울 위에 올라앉은 어린 꿈 고목처럼 처연히 서 있다.
너른 마당은 겨운 아해의 놀이에서 빗겨나 질퍽한 발자국과 함께 널브러지고
처마 밑 시렁엔 못생긴 곶감이 홀라당 알몸으로 매달려 햇살가득 허연 분칠을 뽐낸다.
주방 옆 큰 방은 프레온 가스도 없이 포장된 가공식품만 애꿎게 끼고 앉아 공연히 헛돌고 자빠져서 젖은 낙엽의 상사병으로 나동그라진 채 전기세만 축내는 냉장고를 대신하고, 그리하여 늙은 어미가 내어주는 열두 폭 치맛자락으로 해 벌려 커다란 광으로 둔갑한 방은 깜냥 것 모든 살림을 풀어 헤쳐 뒤엉겨놓았더라.
떠나갈듯 바람난 여편네의 한숨으로 돌아선 부엌 싱크대는 싱숭생숭 신세타령을 털어놓고
어느 깊은 밤 속절없는 넋두리를 하염없이 하소연하고픈 개살구 역시 깡 소주에 깊숙이 몸을 담그고 잠겨서는 한 귀퉁이에 쿡 처박혀 벗들이 찾아들 날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시린 발바닥을 비벼대는가.
한바탕 왁자지껄 수다 떨러 모여드는 이웃이 찾아드는 저녁 푸른 꿈의 아해 홀로 분주하다.
조막손 깡다구 제 손으로 지은 황토방은 절절 끓어 가마솥에 김을 내야 제 맛이라
군불 지피랴 숯 만들어 삼삼하게 고기 구우랴 파절이에 갓김치 그 맛이 끝내준다
술 더 가져 오이라 심부름도 흥에 겨워 신이 난 젊은 아해의 손과 발이 절로 수선스럽다.
무딘 겨울 두껍게 살이 찐 장작을 패려드는 아해 금시 어디가고 도끼든 사내는 누구인가.
벌레들이 힘껏 빨다 뱉어놓은 배추 속을 가려 된장에 찍어 고놈의 속세에 달아빠진 입안에 철컥 쑤셔 넣어 보니, 얄궂다 농사는 몰라도 맛은 한가지라 옛 맛의 풍미에 걸려들고.
하얀 쌀밥에 묵은지 쪽쪽 찢어 남의 살과 함께 말아 올려 아궁이에 군불 때듯 한아가리 가득 처넣으니, 그 맛이 또 별미로세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기 바쁘더라.
총총 별님들도 슬며시 엉덩이를 디밀어 내려앉는 까만 밤
타다닥 불꽃과 함께 시린 손 비벼가며 흥얼흥얼 시와 함께 노랫가락 폴폴 나부끼고
도시의 객과 농촌의 학교장의 입가엔 어느새 맑은 환희가 덩실 춤을 추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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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함장님 덧글에 부끄럽네요...
지난 번(1월 중순?)에 초아선생님과 아름다운놈 백오 김용규님과 행복숲지기 동지들과 모두 여나믓이 어울려 속리산 눈길 산행에 갔다가 근처 괴산의 바탕학교(학교장 김용달님- 김용규님 형님이 운영하시는)에 들러서 그댁의 겨우살이 단숨에 거덜내고 왔습죠. ㅋ
풍경을 한 번 그려보려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커뮤니티란에 영화쟁이 성곡님의 글을 읽다가 생각이 나서요.
고즈넉한 겨울 농촌 풍경대신 너무 써니식 질펀한 육자배기 핵교를 써발긴 건 아닌지... ㅎ
그날은 사실 어른들의 편안한 시골 동창 모임 같은 분위기 였걸랑요.
그 학교는요.
전직 교사이셨던 학교장께서 도시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마치 절간같이 호젖한 산사에 파묻혀 새와 달과 개울과 벗하며 혼자서 귀향하여 밭 갈고 황토로 집 짓고 하는, 마치 어린 시절의 꿈을 일구어 나가시는 듯한 곳이지요.
한 천여 평 되는 부지에 항아리로 말뚝박아 대문대신 문패를 걸고, 몇 동으로 나누어 황토와 흙벽으로 손수 지은 집이 둥그런 야산에 둘러싸여 야심찬 꿍심(?)을 품고 포근하게 들어앉아 있죠.
꿈을 해에 걸고 외로움은 달 속에 감추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과 지지배배 지저귀는 새들을 벗삼아 이웃삼아 시름을 나누며 질박하게 살아가는 괴짜 양반의 무공해식 생태학교 이지요.
그 학교 이후에 근처에 댓 가구가 더 들어 앉아 마을을 형성해 가고 있구요.
저라면 돈 주면서 하라고 해도 도망 갈텐데 그분은 사서 고생을 하시더라구요. 못말리는 팔자죠?
봄에 가면 좀 더 따사롭고 환하게 꽃이랑 풀들이 반겨줄라나요.
그렇잖아요. 시골의 겨울 풍경은 왠지 좀 성어프기도 하고... 게다가 도회적인 세련됨을 별로 즐기지 않으시는 듯.
자유로운 농촌 풍경과 맛이 잘 살아 있는 흥겹고 정겨운 곳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풍경에서 나름대로 두고 온 내 아들아이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그 고생(?)이 약간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냥 편히 살지 왜 제도권에 미움 받쳐가며 세상에 맞서야 하는지... 저도 조금은 그런 편이라서... 주제넘게 측은지심이 발동하기도 하더라구요.
무엇보다 그 날에 모인 사람들이 아주 진국들이었죠.
다들 소개해 드리고 싶죠. 모두 이쁘게 열심히 아름다운 일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가시는 분들이었어요.
운제 어당팔님 댁에서 모이신 초아선생님 새책 출간겸 영남 모임은 잘 다녀 오셨는지요? 운제 선배님은 참 든든해요. 내외분께서 어찌나 정겨우신지요. 아름다운분들 이에요. 영남 가족들도 그렇구요.
참, 순성님께 안부 전해주세요. 그분이 연말에 카드를 보내주셨더라구요. 엊그제 수업에서 사부님께로부터 받았는데 너무 감사했어요. 땡큐~
변.경.연 가족 여러분! 모두 음력 설 잘 쇠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지난 번(1월 중순?)에 초아선생님과 아름다운놈 백오 김용규님과 행복숲지기 동지들과 모두 여나믓이 어울려 속리산 눈길 산행에 갔다가 근처 괴산의 바탕학교(학교장 김용달님- 김용규님 형님이 운영하시는)에 들러서 그댁의 겨우살이 단숨에 거덜내고 왔습죠. ㅋ
풍경을 한 번 그려보려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커뮤니티란에 영화쟁이 성곡님의 글을 읽다가 생각이 나서요.
고즈넉한 겨울 농촌 풍경대신 너무 써니식 질펀한 육자배기 핵교를 써발긴 건 아닌지... ㅎ
그날은 사실 어른들의 편안한 시골 동창 모임 같은 분위기 였걸랑요.
그 학교는요.
전직 교사이셨던 학교장께서 도시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마치 절간같이 호젖한 산사에 파묻혀 새와 달과 개울과 벗하며 혼자서 귀향하여 밭 갈고 황토로 집 짓고 하는, 마치 어린 시절의 꿈을 일구어 나가시는 듯한 곳이지요.
한 천여 평 되는 부지에 항아리로 말뚝박아 대문대신 문패를 걸고, 몇 동으로 나누어 황토와 흙벽으로 손수 지은 집이 둥그런 야산에 둘러싸여 야심찬 꿍심(?)을 품고 포근하게 들어앉아 있죠.
꿈을 해에 걸고 외로움은 달 속에 감추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과 지지배배 지저귀는 새들을 벗삼아 이웃삼아 시름을 나누며 질박하게 살아가는 괴짜 양반의 무공해식 생태학교 이지요.
그 학교 이후에 근처에 댓 가구가 더 들어 앉아 마을을 형성해 가고 있구요.
저라면 돈 주면서 하라고 해도 도망 갈텐데 그분은 사서 고생을 하시더라구요. 못말리는 팔자죠?
봄에 가면 좀 더 따사롭고 환하게 꽃이랑 풀들이 반겨줄라나요.
그렇잖아요. 시골의 겨울 풍경은 왠지 좀 성어프기도 하고... 게다가 도회적인 세련됨을 별로 즐기지 않으시는 듯.
자유로운 농촌 풍경과 맛이 잘 살아 있는 흥겹고 정겨운 곳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풍경에서 나름대로 두고 온 내 아들아이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그 고생(?)이 약간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냥 편히 살지 왜 제도권에 미움 받쳐가며 세상에 맞서야 하는지... 저도 조금은 그런 편이라서... 주제넘게 측은지심이 발동하기도 하더라구요.
무엇보다 그 날에 모인 사람들이 아주 진국들이었죠.
다들 소개해 드리고 싶죠. 모두 이쁘게 열심히 아름다운 일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가시는 분들이었어요.
운제 어당팔님 댁에서 모이신 초아선생님 새책 출간겸 영남 모임은 잘 다녀 오셨는지요? 운제 선배님은 참 든든해요. 내외분께서 어찌나 정겨우신지요. 아름다운분들 이에요. 영남 가족들도 그렇구요.
참, 순성님께 안부 전해주세요. 그분이 연말에 카드를 보내주셨더라구요. 엊그제 수업에서 사부님께로부터 받았는데 너무 감사했어요. 땡큐~
변.경.연 가족 여러분! 모두 음력 설 잘 쇠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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