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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8일 09시 20분 등록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혁명”에는 에너지 지수가 200이하인 감정들을 소개하고 있다. 수치심, 죄의식, 무력감, 슬픔, 욕망, 분노 등의 감정이 그것들인데 나는 지난 해부터 유독 그런 감정을 많이 느꼈다. 특히 무엇인가 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도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 않는 무력과 우울에 휩싸일 때도 제법 있었다. 나이 마흔이라는 인생의 전환의 시기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여러 사건들이 나를 지배하고 가두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아니었다. 완전 바닥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It will pass) 이 말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나는 햇볕을 받으며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산에 자주 올랐다. 산에 오르면서 내 안에 엉켜있는 것들을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씩 비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내 산 정상에 오르면 내 마음에는 단 한가지만 남았다. 그 목소리는 ‘그래도 살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준엄한 명령이었다. 울림이 있는 목소리가 나를 호통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용기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결핍과 부정의 상황에서도 나를 존재하게 하는 힘이다. 도대체 용기는 어떻게 솟아나는가? 내가 무엇을 성취했을 때, 주변의 격려와 칭찬이 큰 힘을 불어 넣어준다. 그러나 이런 것들조차 덧없이 느껴질 때, 나와는 아무 상관없이 느껴질 때 어떻게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삶의 용기는 삶의 존재 자체의 기쁨에서 온다. 이것을 깨달은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둘째딸 재아의 큰 눈망울을 함께 마주보는 순간’이었다. 늘 보는 눈빛이었지만 그 날은 왠지 눈과 마음이 빨려 들어갔다. 주위의 모든 것은 줌아웃되었다. 그저 존재하는 존재로서 우리의 있음 자체가 경이와 기쁨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 그런 순간이 적지 않았다.

‘홍대 앞 와인바에서 대각선으로 앉아 바라보던 그 반짝이던 눈빛, 논산훈련소에 입소하기 위해 버스를 타는데 돌아서며 눈물을 훔치던 아버지의 뒷모습, 소나기 퍼붓는 청평사 주점에서 그녀와 막걸리 러브샷하던 순간, 아내 옆에 나란히 누워있던 큰 아이의 첫 모습, 첫 책이 집으로 배달되었을 때 추천사를 읽고 눈물 흘리며 책에 싸인을 하던 벅찬 순간, 몽골 초원을 말을 타고 가르며 전력질주 하던 순간, 붉게 물든 저녁 노을, 남해 바다의 청록빛깔, 새벽녘 어스름한 길가의 가로등 불빛…’

이루 셀 수 없는 기쁨의 순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모두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순간이었다. 무언가를 충족시켜야만 만족을 느끼고 힘을 얻는 것은 순간에 불과하다. 오래 가지 못하고 더 큰 욕망만을 좇게 된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순간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열린 마음이다. 그저 살아있음으로 행복한 순간을 눈과 마음을 열어 바라보자. 나의 마음이 달라지면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한 것이라는 것을. 삶의 용기는 그 무엇이 아닌 나의 살아있음의 경이로움에서 온다는 것을.
IP *.92.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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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02.18 10:00:57 *.128.229.163

그랬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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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8.02.19 17:13:17 *.10.255.172

뱅곤회장!

잘 있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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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철
2008.02.20 00:29:14 *.50.18.156
병곤님! 잘 지내시는지요?

저도 지금 이 순간을 느끼자! (Carepediem!)을 신조로 살아왔는데

작년부터 삶의 용기를 지속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몸도 마음도 참으로 무겁습니다...

언제 가까운 산에 한번 가서 막걸리 한잔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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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08.02.20 08:17:17 *.92.16.25
넵!

성렬형~ 잘 댕겨왔소? 안 그래도 전화 한번 할라고 했는데, 보고싶소이다.

홍철씨~ 몸은 좀 어떻소? 힘들지만 은둔(?)하지 말고 용안 좀 보여주시오. 그럽시다. 수락산에 함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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