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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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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7일 02시 21분 등록
심리학에 대한 책을 즐겨 읽던 때가 있었다.
마음은 답답한데 어디 하소연 할 곳이 없었고, 불평하고 싶어도 불평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꾹 눌러야 했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암묵적인 계시였고 나도 별 의심 없이 순순히 그 계시에 따랐다. 하지만 나중에 자연스레 알게 된 일이지만 그것은 누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 맞닥들일 때 나는 전전긍긍하고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세상 정말 편하게 사는구나 싶을 정도로 그 사안을 가볍게 받아 들였다. 그것이 쿨한 것인지 아니면 뻔뻔한 것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세상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는 별로 받지 않겠다 싶었다.

어릴 적,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부터 알게 모르게 스스로 꿈의 범위를 좁혀 갔다.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실용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학업 혹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어려운 집안의 장남으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나는 점점 하찮은 존재가 되어 갔다. 도저히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집안이 어려우니 가급적 등록금이 싼 대학을 가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취업에 유리한 학교에 들어가야 했는데 내가 들어간 학교는 그 중 아무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학교였다. 직장에 꾸준히 다니면서 장남에 가장 역할까지 충실히 해야 했건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차라리 방탕한 생활이라도 했다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지 말라면 하지 않았고 참으라고 하면 참았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사람들, 처음에는 나보다 한참 하위 부류라고 여겼던 그 사람들이 훨씬 마음 편하게들 살고 있었다.

그 즈음, 이제 자신을 위해 살아 보라는 메시지가 밖으로부터 그리고 안으로부터 들려 왔다. 어쩌면 그전부터 그런 메시지를 받았음에도 그것을 듣지 못했거나 아니면 의식적으로 외면한 것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런 절박한 상황에 기인한 점도 있고,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알고 싶은 '심리'에도 기인했던 것 같다. 세상에 혼자 고립된 듯한 위기감을 느낄 때 탈출구가 필요했고, 무엇 때문에 똑같은 상황에 맞닥 들임에도 저 사람과 내가 180도 다른 태도를 보이는지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심리학은 내가 지고 있던 많은 짐들을 덜어 주었다. 그동안 지고 있던 짐들을 꼭 내가 지고 있어도 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다고 바로 짐을 내치지는 않았지만 짐을 점점 가볍게 만들 수는 있었다.

유난히도 많아 보였던 단점들이 사실은 장점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 설령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일지언정 - 말을 조리 있게 못한다는 점이 예전에는 상당한 컴플렉스였다 - 그 모습은 스스로에게서 지워야 할는 대상이 아니라 품고가야 할 대상이라는 것 등을 인지하게 되고 그것들은 자연스레 내게 스며 들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심리학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심리적 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심리하게 대한 관심이 서서히 줄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딱딱한 학술서 같은 관련 서적을 파고 든다는 것이 무의미 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서점 안에서 심리학 서적 코너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한 동안 그 분야의 책은 건들지 않게 되었다.

외적 동기로 인해 김형경의 '사람풍경'을 읽고 있다. 읽다 보니 자꾸 나의 모습을 반추하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그 분의 유년기, 청년기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 분도 비슷한 경험으로 인해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그 분께서는 그런 경험을 토대로 괜찮은 책을 써내셨다. 그 부분에 주의가 가는 것, 질투심인지 시기심인지, 부러움인지..

책을 읽으면서 또 한편으로 직장인으로서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대인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많이 털어 버렸음에도 아직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들어가면 예전의 그 심리적인 압박을 별로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사회인으로서 아직 그럴듯한 성과가 없다는 의식 혹은 무의식 때문인 것 같기는 하다. 또 한번 심리학을 이용해 그 짐을 덜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빨리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인가.

책의 거의 다 읽을 즈음, 별로 도움 안되는 궁금증이 살짝 일어난다.
IP *.142.1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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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2.27 19:01:21 *.180.46.11
저도 이 책 읽고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 선생님의 남자 VS 남자 1,2 도 읽어 보면 좋습니다.
저는 1권만 읽었습니다. 읽다보면 자신의 모습과 대입해 보면서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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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맨
2008.02.27 19:47:23 *.94.41.89
저도 몇년전에 비슷한 이유로 여러 심리학책과함께 '사람풍경'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읽는 동안은 내용에 공감이 가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책을 덮은후 여전히 나의현실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더군요.
공자는 입신양명을 이루지 못했지만 공자가 남긴 '입신양명' 은 수백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하며 우리 몸속에 낙인을 남겨 놓았죠. 한국인이면 누구나 태어나서 세상에 이름을 떨쳐야 한다는 강박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지요. 특히 언론이 더욱 부추기기도 하구요, 하긴 기자도 한국인이니까요. 서양인은 적어도 이런 강박은 없는것 같습니다. 유럽인들과 같이 프로젝트하면 저희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이름을 떨쳐야 한다는 강박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악마로 변신하여 그네들은 압박합니다. 그들은 조용히 우리를 봅니다. 쟤들이 왜 저렇게 호들갑인가 나의일을 마무리 하는데 문제가 없으면 내 의무는 다하는것인데, 그리고 6개월전부터 구상한 휴가를 홀연히 떠납니다. 남은 한국엔지니어가 그들의일까지 주말,휴일에 나와서 마무리 합니다.
한국인 세상에 태어나서 '대박(입신양명)'을 터트려야 한다는 강박으로 부터 같혀있고, 그 괴로움을 끝내기 위해 대박을 터트리거나 , 대박을 포기해야만 끝나는 게임속에 있습니다. 오늘도 대박을 포기할 수 없는 많은 중생들은 '대박'을 터트린 스타에게 끊임없이 비법을 배울려고 하는가 봅니다. 저 역시도 나는 대박을 낼 수 있다는 믿을을 가지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임을 하고 있는 그 중생중에 한명 이지요.
인생에서 대박 없이도 삶을 조용히 마감하는 것도 아주 가치있는일 이라는것을 이 사회에서 이해 된다면 덜 각박힌 삶이 될 수 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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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동
2008.02.27 22:45:12 *.142.152.25
김지현님.
정혜신 선생님의 책, 서점에서 들었나 놨다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레인맨님.
대박이 있고 없고를 떠나 후회없이 한 일생 산다면 좋겠는데,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걸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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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2008.02.28 19:09:01 *.244.218.9
ㅋㅋ 나도 최근에 다시 한 번 뒤적였던 책인데.
이거 말고 김형경님 책 비슷한 거 한권 더 있죠..근데 이 책이
더 나은 것 같아요.

근데 전 이거 읽고 너무 자기합리화한다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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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8.02.29 15:10:38 *.46.177.78
재동!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세상과 조우하고 있는 자신을 이해하고 싶은것은
당연하겠지...

나도 그래...
무엇이든 잘 이해할려고 하고 그 근원을 찾아들어가면
결국은 '심리' 라는게 자리잡고 있는 거 같거든...

내가 알아 낸 한 가지 사실은
심리학이란 하나의 도구지... 그것은 통해서 문제를 풀고
이해는 될지 몰라도 궁극적인 것들은 그 밖에 있지.

삶에 대한 태도, 목표에 대한 집중이나 성실함...
그런 것들은 심리학을 통해서 이해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변화를 가져 오지는 못한다는 거지...

해답은
하루를 사는 거지...
너무 평범한 하루,, 그래서 멋진 은유와 인문학적인 표현
치밀하고 고상한 과학적 논리로 포장하는지도 몰라...

그래도 하루는 하루거든...

요즈음 맑은 님의 글을 읽다가..
육체를 통해 정신을 다지인 한다 는 말을 보고
나도 새로 만들었네,

'일상'을 통해 운명을 디자인한다.

그럴듯 하쟎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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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동
2008.03.01 10:08:14 *.142.152.25
백산형님.
그렇죠. 심리학도, 강점찾기도, MBTI검사도 모두 도구라는 한계가 있죠. 그래서 한때 그 분야에 푹 빠졌다가 어느 단계에 이르러 미련 없이 털고 나왔죠.
하루를 산다는 해답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실제로 어떻게 적용해 가야 하는지는 아직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소정.
자기합리화.. 무섭지..
구체적인 사례가 궁금해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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