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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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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8일 13시 03분 등록
성인식을 준비하자!!

며칠 전 있었던 일이다.
늦은 시간, 길을 걷고 있는데 문득 순대가 먹고 싶어졌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보니 800원이 고작이다.
800원치만 달라고 하면 안 줄게 뻔하니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건만,
뽀얀 빛깔의 탐스러운 순대를 보는 순간 입에 침이 고인다.
심사숙고 하기보다 일단 질러보고 후회하는 내 성격에 그냥 지나칠 리 있겠는가.
어느 새 주인아저씨에게 해맑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하는 나를 발견한다.
“지금 800원 밖에 없는데 순대가 넘넘 먹고 싶어요. 800원치만 파시면…”
상상력도 풍부한 아저씨 대뜸 이렇게 묻는다.
“애 뱄수?”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직감적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해야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거짓말 하기도 뭣하고 해서 아무 말 없이 웃어버렸다.
내 웃음을 그렇다는 뜻으로 받아 들이는 아저씨,
인심 좋게 순대를 한 그릇 가득 담아 내 앞에 내놓는다.
스스로의 재치에 감탄하며 한참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다.
‘아기를 갖고 싶다’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이 무슨 해괴 망측한 생각이란 말인가…
애써 지워 버리려 해도, 또 내 안 어딘가에서 이 말이 삐죽 삐죽 새어 나온다.
‘나도 아기를 갖고 싶다’

가만 보니 요즘 내가 이상하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예뻐 보이고, 갓난 아이를 보면 자꾸 눈길이 간다.
왜일까 의아해 했었는데, 아마 그랬었나 보다.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었나 보다.
항상 철딱서니 없는 아이처럼 가볍게 인생을 살아 왔건만 이제 내 나이 29이다.
29살이면 애 몇은 족히 낳고도 남을 나이이다.
10대 후반 정도에 머물러 있는 정신연령과 다르게 내 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될 준비를 끝냈으니 좀 더 건강하고 어릴 때,
네 안에 또 다른 생명을 품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불안정한 내 삶,
꿈을 좇는답시고 피터팬처럼 동화 속 세계에서 철없이 살아온 나이다.
내 몸은 이미 성인의 그것이지만, 내 마음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갑자기 내 몸에 부끄러워 졌다.



요즘 마마보이, 파파걸, 헬리콥터 부모 등등 성인이 되어도 부모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신종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것이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듯 하니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자녀 수가 줄어들면서 자녀 하나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고,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계속 아이로 머물러 있으려는 성인아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조셉 캠벨은 이러한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성인 입문 의례의 부재를 꼽았다. 한 아이가 자신이 성인이 되었음을 자각하게 만드는 입문의례에 요즘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 받았음을 증명할 길 없는 청년들은 자기 나름의 입문의례를 만드는데 그게 또한 사회 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니 문제가 심각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성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은 주민등록증 발급 정도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손가락 지문을 찍던 날, 이제 진정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 같아 가슴 뿌듯해지던 느낌을 기억한다. 캠벨은 자신의 저서에서 내적 실재의 그릇 노릇을 하던 의례의 중요성이 간과되면서 많은 문제들이 생기고 있다고 말한다. 형식 뿐인 의례가 뭐 그리 중요하냐 하겠지만 그게 그렇지만은 않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단상에 올라 선 그를 보니, 나도 모르게 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를 칭송하는 시라도 한 수 읊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우리 나라 최고의 사기꾼이 아니었던가. BBK, 병역 비리, 탈세 문제로 얼룩져 2007년 우리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의 치부가 벗겨져 난도질 당하고 있는 동안, 뒤에서 은근한 조소를 퍼붓던 나였다. 그런데 이게 왠 변덕이란 말인가. 조셉 캠벨은 이에 대해서도 명확한 해석을 내린다.

그가 선거라는 주요 과제에서 승리하고, 취임식 단상 위에 올라서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개인 이명박이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신성한 직함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짜잔 변신을 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박수를 치고 경의를 표하는 대상은 그가 아니라, 그가 지닌 신화적인 역할에 대한 것인 셈이다. 그 또한 이런 의례를 거쳐 대통령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자기의 개인적인 욕망과 자기 삶의 다른 가능성까지 희생시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이러한 의례들을 허례허식이라 비웃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의 젊은이들이여!!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성인 아이로 머물러 있을 것인가. 우리를 성인으로 대접해 주지 않는 사회만 탓하고 있을 것인가.
자, 우리 함께 모여 성대한 성인식 한번 치뤄 보자. 아는 지인들도 초대하고, 맛있는 음식도 준비하고 특별한 프로그램도 준비해 하루 질펀하게 놀아보자꾸나. 그리고 세상에 얘기하자. 이제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고,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지긋지긋한 잔소리 좀 그만 하라고 외쳐 보자. 그 날 하루만은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지르던 신경쓰지 마시라! 그 날만 지나면 성인으로 살아가겠다는 데 그까짓 하루가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자, 우리 모두 모여 오늘부터 성인식을 준비해 보자!!!
IP *.235.139.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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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2.28 17:27:30 *.70.72.121
네가 너 이럴 줄 알았다. 그날 그대의 신명을 알아보았노라. 안나여!

그대의 성인식에 초청은 언제하실라우? 난 순대 네가 먹고 싶달 때까지 신물이나서 토할 때까지 떡두꺼비 같은 당당한 애를 밸 때까지 사줄 용의가 있노라. 우리 사이에 애가 무언지 알지? 탈리다 쿰! 달리자 꿈!! 달리자 변.경.연의 새로운 인물 박안나!!! 그대의 임신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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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보이
2008.02.28 20:44:33 *.133.238.5
그리 짧지 않은데도 길게 느껴지지 않게 쓰는 글빨...

그대의 최대의 강점...(내가 보기에)

웰컴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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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8.02.29 01:29:07 *.232.147.229
ㅋㅋㅋ 올해의 기대주.
북리뷰는 조금 지겹겠지만 꼼꼼하게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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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2.29 10:26:51 *.180.46.10
어느 만화에서 보았는데, 사람은 한번 태어나는 게 아니라네.
남자는 아이가 태어날때, 아버지로 세상에 다시 태어난데.

여자는 아이를 낳을 때, 어떤 사람으로 다시태어날까?
너는 어떤 모습일 것 같니?

내가 다시 태어날 때는 어떤 모습일지도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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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8.02.29 15:35:29 *.46.177.78

괜찮은 생각이네...

한국의 젊은이들은 부모 의존도가 너무 높고 길어...

젊을 때는 무엇을 해도
열정과 끈기만 있으면 멋있어보이는데 말야...

30 대 성인식을 축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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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안나
2008.03.02 02:45:20 *.234.203.23
북리뷰 쓰느라 이제야 들어와 봤네요. 감사합니다.

써니언니 정말 순대 배 터지게 사주실 건가요? 앗싸~ 감사,감사!!! 역시 언니 밖에 엄서여~

할리보이님, 제 글의 가장 큰 특성이 쉽고 단순하게 쓰는 거 아니겠어요? 제 자신이 워낙 단순해서리 복잡한 글은 엄두도 못 내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옹박님, 방금 전에 비디오 가게 갔다가 옹박3 보고 한참을 웃었어요. 진짜 닮았던데요. 이제야 왜 옹박인지 알았어요. ㅋㅋ

정화언니 글쎄요.... 아마 별반 달라지는게 없으면 어쩌나 걱정되요. 언니도 아시다시피 제가 워낙 철딱서니가 없어서.... 우리 같이, 어떻게... ㅋㅋ

백산님, 성인식 준비 끝나면 꼭 백산님도 초대하겠습니다. 그날 맛난 거 사가지고 와서 축하해 주셔야 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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