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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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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9일 21시 48분 등록
나에게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주 기특한 12살, 11살의 고슴도치같은 아들과 딸이 있다. 두 아이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해서 틈틈이 책을 읽거나 또는 책을 이용한 놀이(책쌓기 같은)를 즐겨하곤 했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아내는 생활비는 아낄지언정 책, 특히 몇십만원씩 하는 수십권짜리 전집을 구매하는데 만큼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과감히 투자하곤 했다. 그 결과 지금 아이들의 방에는 천권이 넘는 책들로 가득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웬만한 책은 한번씩은 다 읽었기에 투자한 돈이 아깝거나 하진 않다. ^^ 아주 다행스럽게도...

2년전부터는 아이들에게 책 외에 2종류의 잡지를 구독시키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논술관련 잡지이다. 독서, 논술과 같은 읽기, 글쓰기 관련 교육의 붐에 편승하여 제작된 잡지이긴 하지만 그 내용이나 다루는 범위가 다양하고 시사를 충분히 반영하여 어른인 내가 보아도 도움이 될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부모 특히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 사이에는 꽤나 괜찮은 잡지 중의 하나로 소문이 나 있는 잡지이다.

지난 토요일 우연히 그 잡지를 보게 되었다. 혼자 식사를 하던 도중 책 표지에 '영웅'에 대한 특집기사가 내 눈길을 잡아 끌었기 때문이다. 영웅? 갑자기 어른들이 생각하는 영웅의 이미지와 초등학생들이 생각하는 영웅, 그리고 신화학자 조셉캠벨이 신화를 통해 우리에게 주장하는 영웅의 모습이 어떻게 다를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다. 잡지를 펼치자마자 질문이 하나 튀어 나왔다. '영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초등학생들은 이 질문에 대해 역시 멀티미디어 세대다운 답변을 했다. 1위와 2위가 영화에서나 존재하는 슈퍼맨, 스파이더맨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조금 의아했던 것은 스파이더맨이 왜 2위를 차지할 만한 영웅일까 하는 점이었는데 이런 류의 영화 중 스파이더맨3가 가장 최근인 작년에 개봉했음을 떠올리자 이해가 쉽게 되었다. 3위는 민족의 성웅이라 불리는 충무공 이순신이 차지하였다. 이 역시 교과서의 위력과 함께 TV의 힘 '불멸의 이순신'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된다.

갑자기 우리 아이들의 영웅은 누구일까 하는 점이 궁금해졌다. 열심히 사시는 아빠를 위해 '우리들의 영웅은 바로 아빠예요!(^__^)'라는 아부가 살짝 섞인, 가당치 않은 답변을 살짝 기대하며 질문을 던지자, 두 아이 모두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며 '헤라클레스'라는 같은 대답을 한다. 그 이유를 묻자, 그의 경우 첫째, 보통사람들에겐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고 둘째, 이 힘을 이용해 괴물들을 무찌르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작년에 아이들이 열심히 끼고 읽던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가 많은 영향을 끼쳤나 보다.

어른들의 영웅은 인터넷과 회사 직원을 통해 알아보았는데, 의외로 영웅의 이미지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 영화를 많이 떠올렸다. 제목에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영웅'이란 단어와 그 영화가 주었던 감상이 머릿 속에 계속 남아있기 때문이란다. 나의 경우는 분신자살로 최후의 생을 마친 노동운동가 '전태일'과 만취한 일본인을 구하려다 지하철에서 사망한 유학생 '이수현'씨가 떠올랐는데, 두 사람 모두 자신보다 큰 것을 위해, 또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위대한 신화학자 조셉캠벨은 영웅을 어떻게 볼까? 그는 영웅을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이라 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영웅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사회적 행적을 보여주는데 하나가 육체적 행동으로 싸움에서나 남을 구하는 데서 용기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행동은 정신적 행적으로 영웅은 여느 인간의 영적인 삶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존재하는 희한한 체험을 한 후 우리 삶에 유용한 메시지를 가지고 돌아온다고 한다. 대개 우리들이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 영웅의 이미지는 육체적 행동으로써의 영웅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일반인과 다른 특이한 힘,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그것을 괴물과의 싸움이나 타인을 위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만약 크든 작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사용하여 스스로를 변모, 변화시키는데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일반적 정의에만 기대어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전혀 영웅스럽지 않은 개인주의적 발전, 수련, 성공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조차도 영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영웅의 탄생 신화』의 저자 오토 랑크는 책에서 양수(羊水)에서 수생동물(水生動物) 상태를 지나고, 공기를 호흡하는 포유동물 상태를 지나 홀로 서기까지 엄청난 심리적·육체적 변모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영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신화학자인 조셉캠벨 조차도 만일 이러한 엄청난 변모과정을 의식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을 영웅의 행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의식적 경험’이란 단서가 붙었지만 개인도 변모, 변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그 결실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진정한 영웅은 바로 자신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천복을 쫓는 길이 곧 영웅이 되는 길이며, 변화라는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여행을 통해 우리는 성숙해지고, 결국 영웅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한차원 높은 삶으로 올라서는 것, 그것이 바로 영웅이 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며, 그 증거가 바로 개인의 신화가 될 것이다. 신화란 영웅의 이야기이지만 내가 영웅이 될 수 있다면 내가 곧 신화, 그 이야기의 주체가 될 것이다. 나의 역사, 처절한 매일매일의 변화의 역사는 먼훗날 나의 신화로써 기록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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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2.29 23:08:10 *.70.72.121
그럼, 그렇고 말고. ㅋ

깔끔한 칼럼이네요. 오래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물씬 느껴지는 걸요.
그대여, 궁둥살 장학금으로 신화를 이루는 영웅이 되시라.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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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3.01 07:15:44 *.72.153.12
영웅이야기 하니까, 며칠 전 본 [쾌도 홍길동]에서 길동의 스승 마곡사 스님께서 하신 말이 떠오르네요.
대충 이런 말이었던 것 같은데요,
'너는 처음에는 너를 위해 울었다. 그리고 너를 구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을 위해 운다. 울어보니 어떠냐?'

영웅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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