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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일 16시 47분 등록
산티아고를 아시나요? 칠레의 산티아고를 먼저 떠올리셨군요. 물론 칠레에도 산티아고는 있지요. 다시 말하지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그럼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아시나요? 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고요. 아마 한번쯤은 들어보셨을지 모릅니다. 최근 유행처럼 카미노라는 단어가 퍼져 나가고 있으니까요.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고 부르니 길고 번잡하군요. 카미노라고 부르기로 하지요. 흔히들 그렇게 부른답니다. 카미노는 프랑스의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의 길을 말한답니다. 베드로의 친구이면서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한사람인 야곱이 전도의 순례길을 걸었던 바로 그 길이지요. 산티아고에는 야곱의 무덤이 있다고 하네요. 야곱이 이 길을 걸은 이후로 중세시대부터 이곳으로 향한 성지순례가 이어진다고 하지요. 거리는 800킬로미터. 보통 걸어서 한달 남짓 걸린답니다. 요즘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성지순례보다는 다양한 이유로 걷습니다. 레저나 운동, 명상, 성지순례, 나를 찾는 묵상, 관광 등이 그 이유이지요.
카미노는 걸어서 가는 길입니다. 왜 그 먼 길을 걸어서 가느냐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야곱이 순례를 떠났던 시대처럼 탈것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어찌 보면 미련하고 바보 같은 짓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도 그 길을 걸으려 했답니다. 지금도 호시탐탐 걸으려 하고 있지요. 왜냐고요......? 3년 정도 되었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둘러싼 것들을 깨뜨려 버리고 싶었답니다. 그게 단지 그때 불현 듯 떠오른 생각은 아니겠지요. 습자지처럼 얇게 또는 합판처럼 두껍게 한 켜 한 켜 쌓였던 의식의 단층이 어느 날 마그마가 솟구치면서 단층활동을 시작한 때문이지요. 균열과 폭발을 일으킨 단층활동은 꽤 격렬하더군요. 땅이 갈라지고 지표면이 흔들린다고 하나요?
‘삶의 겨냥이 지나치게 경제화 실용화에 맞춰져 있고, 그래서 나이를 먹어 갈수록 순간순간의 요구가 어찌나 집요한지, 도대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는’ 지경에 이른 것이지요. 무엇보다 직장이란 곳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직장에서의 역학관계는 하루 하루 따라다니기가 벅찼고 따라다니자니 마음이 마뜩치 않았습니다. 영악하지 못해 세상의 일에 적응이 힘들었고, 그러다보니 월급을 받는다는 것 외에는 직장생활의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것뿐인가요. 삶 자체도 의미 없이 시간 위에서 춤추고 있었지요. 이렇게 흐르는 물위에 떠서 계속 흘러간다면, 삶 자체도 그저 망연히 흘러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일었지요.
나이테가 쑥쑥 두터워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겁이 더럭 나더군요. 나이만 살찌고 영혼은 시들어가는 모습이었지요. 어느 순간 초조해지면서 흘러가는 시간이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찾아야 했지요. ‘육신과 영혼이 가고자 원하는 방향을, 말하지 못하고 있지만 숨어있는 꿈을, 마음이 그윽한 행복의 상태를’ 찾아야 했지요. 그리고 ‘두려움을 버릴 수 있어야 했고, 느낌이 생기면 느낌에 머물 줄 아는’ 용기를 불러일으켜야 했지요.
그때 카미노를 알게 되었지요. 카미노를 걸은 사람들이 하나 둘 그 길에 대하여 짧게, 길게 쓰는 글을 보면서 그 길을 걷고 싶었답니다. 글 속에서 그들은 말하더군요. ‘한 달에서 몇 달이라는 기간을 걸으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현실을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다녀오니 어찌되었건 먹고 살 길은 또 생기더라.’ 참 매혹적인 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습니다. 카미노를 걸으러. 꿈에도 가본 적 없는 스페인을 걸으며 진정한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그곳에서 한달여를 걸으면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나의 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어느 날 퇴근 후 집사람에게 말했습니다. “회사 그만둘래.” 집사람은 잠시 말이 없더니 한마디 하더군요. “한달은 채우고 그만두지.” 어차피 마음의 정리는 필요했으니까 한달을 채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소리 않고 월말까지 다녔지요.

제가 카미노를 걸었을까요? 못 걸었습니다. 제가 회사를 그만 두었을까요? 그만두지 못했습니다. 그럼 지금은? 옛날처럼 그대로 살고 있지요. 새벽같이 일어나서 열심히 출근하고, 출근해서는 인상쓰고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고 있지요.
월말까지 채우고 그만 두어야지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계가 걱정되더군요. 아주 간단했습니다. 모아 놓은 것 없고, 집사람이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 어떻게 되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쉽게 무너지더군요. 꿈보다 현실적 두려움이 앞섰지요. 카미노를 걸으며 나의 진정한 꿈을 찾아보겠다는 결심은 또 하나의 꿈만 남겨놓았지요. 언젠가는 그 길을 걸으리라는 꿈 말입니다.

카미노를 걷지도 못했고, 진정한 꿈을 찾지도 못한 저는 가끔 인터넷 카페에 올라 온 사진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저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이것저것 다 털어버리고 저 흙 길 위에 땀을 뿌릴 수 있을까. 당나라로 공부를 하러 가다 돌아온 원효대사처럼, 꿈이라는게 꼭 카미노 길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도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카미노를 걸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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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3 01:44:27 *.70.72.121
그럼요. 변화경영연구소가 카미노가 될거에요.

정보를 주셨네요. 제가 만약 가게되면 유인창님의 카미노도 함께 걷고 싶군요. 그렇게 한 켜 한 켜 모두어 놓으신 설렘들을 이곳에 모두 쏟아붓는 한 해가 되시길 빌어요. 언제 어떻게든 결과에 상관없이 함께 산티아고를 동반하고 계시다는 걸 절대 잊지 마셨으면 해요. 그러면 우리는 카미노 그곳에 가 있게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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