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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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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일 17시 29분 등록
동시성과 천복

우리가 마음을 열고 새로운 계획에 자신을 던져 넣으면 우주가 우리를 돕는다는 동시성(syncronisity)은 모닝페이지를 시작하고 나서 3주째에 내가 만난 아주 매력적인 단어였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아프리카', 그러니까 마음 깊은 곳의 진정한 나를 부르는 비밀스럽고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카메론(‘아티스트 웨이’)은 주장한다. 그런 비밀스런 아프리카의 부름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 동시성이 작용한다는 것, 원래 칼 융의 용어인 동시성은 이런 것이다.

* 어떤 작가가 자신의 꿈은 영화학교에 들어가는 것임을 인정한다. 우연한 전화 한 통으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한 교수와 연결된다. 그 교수는 영화학교에 남은 마지막 한 자리를 주겠다고 말한다.
* 어떤 남자가 희귀한 비디오 테이프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틀 후 그는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그 테이프를 발견한다.
* 오래 전부터 해오던 일에 회의가 생기고, 자신의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체성 위기에 심각하게 빠진 한 남자, 변경연 연구원 제도에 대해 친구의 소개를 받는다. 그러나 몇 년의 시간이 무심히 흐르고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제 40의 문턱을 넘어서며 다시 도진 정체성의 병은 나이 만큼이나 깊다. 그 때 친구가 소개했던 연구원이 불현듯 떠오르고 변경연 사이트를 클릭한다. 마침 변경연 4기 모집 공고가 나 있고 마감일을 일주일 남기고 있다. 몇 날 밤을 새워 그는 지원서를 쓴다.
* 오랫동안 몰래 글을 써온 한 사업가는 전문작가를 찾아가 자기의 글을 봐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다음날 밤, 당구장에서 그는 처음엔 그의 스승이 되고 나중에는 공동저자로 그와 함께 몇 권의 책을 집필하게 될 작가를 우연히 만난다.
* 어떤 여자, 2인용 소파를 꼭 사야지 생각하고 있다. 친척집에 놀러갈 기회가 있어 그곳에 갔는데 동네 어떤 집에서 가라지 세일을 한다. 거기에 그녀가 생각하던 멋진 2인용 소파가 있다. 남편의 알러지 때문에 새 소파를 값싸게 처분하게 되었다고 주인여자는 말한다.

우리는 신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보다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많은 두려움을 느낀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불가능보다 가능이 더 두려운 일이며 감옥보다 자유가 더 무섭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 보이지 않는 어떤 뛰어난 힘의 도움을 받으려면 가능을 향해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꿈을 좇는 게 힘든 일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아티스트 웨이’에서 카메론은 ‘우리 옆에 쉽게 열리는 기회의 문들을 그냥 스쳐지나가는 게 실은 더 어렵다’고 말한다. 거리낌없이 그 문을 통과하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우린 그런 용기를 낼 수 없는 현실에서 막연하게 기회를 다 흘려 보내며 고통스런 시간을 감내한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로(어떤 순간에도 우린 자신을 합리화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던지겠다는 결단을 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나약함이 동시성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마음, 그것은 일종의 방이다. 그 방에는 신에 대한 개념,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생각들, 신념, 희망, 절망.. 이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방에는 문이 하나 있다. 그 문은 살짝 열려 있고 문틈으로 눈부신 햇살이 들어온다. 그 눈부신 빛 속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새로운 생각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그 생각들을 바깥에 그대로 둔다. 편안하게 느끼는 낡은 생각들만 방 안에 머물게 한다. 낯설거나 놀라운 얘기를 접할 때마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재빨리 닫아버린다. '내면의 작업이 외부의 변화를 가져다 준다고? 웃기는 소리야'(문을 쾅 닫는다).
'신이 무엇 때문에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겠어.’(문 쾅!) '뜻밖의 우연이 나의 결심을 돕는다고, 내 역사에 그런 일이 있을 턱이 없지.'(또 다시 문 쾅!).

우리가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생각이나 우연한 기회가 스치고 지나갈 때 그것을 방 안에 들여놓기 위해 마음을 조금 더 여는 일인지 모른다. 우주는 아낌없이 주지만 우리는 선물을 받고 이것저것 트집을 잡다가 다시 돌려보낸다. 흔히 실패가 두렵다고 하지만, 우리를 더욱 두렵게 하는 것은 정작 성공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 방을 여는 힘, 그것은 캠벨 식으로 말하면 바로 자신의 천복을 받아들이는 일이다(신화의 힘 p227). 그 때 동시성의 문이 활짝 열리고 도와주는 수천 개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우리를 도울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한다는 것의 중요한 진실은 자신을 던지겠다는 결단의 순간에 신도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기회를 놓친다. 생각지 못했던 온갖 종류의 사건과 만남, 물질적 지원 등은 ‘시작한다’는 결단에서 비롯되었다. 당신의 마음을 뜷고 들어오는 강렬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작하라. 행동은 그 자체에 마술과 은총, 힘을 가지고 있다.”
---괴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내가 나중에 원하는 일에 진보를 이루어, 어떤 위치에 자연스럽게 다다르게 되면 어떻게 그곳까지 이르렀는지 물어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때 나는 ‘어떻게 어려움을 뚫고 여기까지 왔는지’ 보다는 ‘어떤 행운들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했는지’를 더 신나게 얘기하고 싶다.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나 자신을 믿었을 때 우주가, 신이 어떻게 반응하고 나를 도왔는지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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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숙
2008.03.02 17:32:04 *.51.218.168
캠벨은 천복이란 단어는 우리가 억압하고 외면해온 감성, 직관, 자연, 신비주의의 영역에 속하는 덕목이다. 우리가 이번 생에서 타고나는 소명, 그것을 완수할 역량과 자질, 운명에 내재된 비밀, 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 등의 의미를 포괄하여 사용한다. 융 학파의 정신분석학의 세례를 받은 것 같은 캠벨의 이 용어를 번역가 이윤기가 천복이라는 멋진 단어로 번역하였다. 어쨌든, 우리가 생애 초기부터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억압하고, 이성과 합리에 따라 재단하고, 문명의 날개 속에 방치해둔 정신의 원시적 힘의 영역을 되살려서 삶의 억압해둔 반쪽을 되살려 진정한 자기의 삶에 닿는 일, 그것이 천복을 따르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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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3 02:07:46 *.70.72.121
역자 이윤기는 동양철학의 주역에서 그 흔한 천복이라는 단어를 가져왔을 거라라고 생각해 보지요. 우리가 타고난 복중에 가장 좋은 탱자 탱자 할 수 있는 복. 간단히 자기를 아는 것이 천복이 아니겠나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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