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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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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3일 01시 21분 등록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

“할머니, 나 옛날 얘기 하나만”
“지난번에 해줬잖아”
“그래도 해줘, 응”
“아가,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댄다”
“그래도 해줘, 응”
“가난하게 산대도 그러네”
“그래도 할머니, 가난해도 좋아”
“떽끼, 녀석, 가난한게 무에 좋아. 그럼 할미가 딱 하나만 해줄테니께,
옛날에 말이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지“
......
(김상욱 아동문학 평론집 “숲에서 어린이에게 길을 묻다” p 60)

나는 오래전에 읽은 이 책에서 처음 이 소리를 들었다.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가끔 내가 가난하게 사는 건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렇게 말이다.
그런데 2주전 신문에서 내가 읽은 이야기는 정반대의 이야기였다.

“우선 감성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개발(story mining)하세요. 이는 석유나 우라늄 같은 전략적 자원의 채굴만큼 중요합니다. 정체성과 고유 문화는 나와 남을 차별화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한 보고입니다. 남의 이야기에 눈독을 들이기 전에 먼저 고유의 이야기부터 캐내 보세요.
한국은 지난 50여 년간 근대화 산업화 정보화를 단번에 이뤄내는 과정에서 고유의 문화적 유산들을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바로 한국적인 뿌리와 문화입니다. 드림소사이어티로 성공적으로 이행해 가려면,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다시 건져내야 합니다. “
(2008. 2.23일자 조선일보 롤프 옌센 인터뷰 기사중 ”대한민국에 던지는 옌센의 충고)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에 대해 나는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신문의 3면에 걸친 커버스토리를 통해 나는 어렴풋이 나마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그는 “노동력은 대체할 수 있으나 상상력은 대신할 수 없다 감성으로 무장하라”고 했다. 그 이야기의 끝에 그가 우리에게 한 이야기가 바로 위의 인용부분이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내 어머니나 할머니로부터 옛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내가 전해들은 이야기들은 TV만화속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책을 통한 것들이었다. 내가 내 딸아이에게 들려 줄 이야기들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내가 책에서 읽은 것이 전부였다. 아이들은 책으로 읽어주는 이야기보다 엄마나 할머니를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훨씬 좋아한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외워서라도 아이들에게 해줘본 적이 있는가
그 일은 몹시 고통스럽고 힘들다. 그건 내가 그 이야기를 귀로 전해 들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어느세대부터인가 이야기를 상실했다.
어떤 시기를 거치면서 분명히 단절된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 때부터 흘러 나온 말이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일 거라고 짐작한다.
지긋지긋하게 가난한 삶을 떨쳐버리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이야기”같은 것은 버려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속에 담겨 있는 진실”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었던 삶의 본질”같은 것들이 함께 버려진 것이다.
롤프 옌센의 말처럼 5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근대화 산업화를 모두 이루면서 우리속에 뿌리박고 있어야 했던 어떤것- 정신, 영혼 같은 것들을 모조리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든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목숨과 같은 미래사회를 위해, 다시 잘먹고 잘 살기 위해 버려두었던 것들을 되찾아 와야 한다면 그건 너무 서글픈 일이다.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망의 위기, 기쁨의 순간,실패나 성공의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지혜이다. 그것은 오랜세월에 걸쳐 만들어지고 전해진 옛이야기, 신화속에 담겨져 있다.

“옛이야기는 문화 가운데서도 가장 정점에 놓인 예술 작품이기에, 접혀진 종이처럼 우리 의식 깊숙이 닺을 내리고 정박해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는 우리 것으로 내세울만한 이야기를 정려해두지 못하고 있다“
(김상욱 위의 책 P 70)

우리는 이야기가 단절된 세대를 살아왔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시 복원하고 끊어진 실을 찾는 것은 우리 세대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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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3 03:26:49 *.70.72.121
앞으로 동화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야기를 쓰면 좋겠네요. 이야기의 힘! 이 될 수 있도록. 게으름을 극복하는 이야기도 좋구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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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
2008.03.03 18:52:45 *.64.244.88
ㅜ.ㅜ 저는 그만 동화로부터 탈출하고 싶은데 , 왜 이야기만 꺼내면
아이들 이야기인지 다 쓰고 나서 잠깐 좌절했답니다^^
첫번째 책을 읽고, 과제를 내고,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써니님과 모든 연구원들께 고개를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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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안나
2008.03.04 11:44:45 *.117.73.63
오래전부터 나경님의 글을 읽어 왔어요. 그냥 나경님이 자꾸만 자꾸만좋아지는 거 있죠. 저도 이유는 모르겠어요. 꼭 뵐 수 있기를 바랬었는데 같이 연구원이 되어서 만나면 더 기쁘겠지요. 우리 모두 끝까지 화이팅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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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근
2008.03.04 21:31:55 *.168.240.85
샬롬!
옛 이야기 엄청 좋아합니다.
저는 사촌형에게 많이 들었지요.
두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형이었지만 표현력이 탁월해서 몇번을 들어도 재미있었지요.
결국 연극인이 되시더군요.
당신의 글에는 지극히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알게됨이 자랑스럽고 소중합니다.
참부자인 당신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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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
2008.03.05 08:07:49 *.109.114.183
고맙습니다.
영남권모임의 식구로 챙겨주셔서^^
큰 힘이 됩니다.

안나님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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