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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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거침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
화엄경에 나오는 글귀를 삼국유사 책속에서 보았다. 모든 것에 거침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 이러한 상황과 잘 들어맞는 글귀를 주역에서 보았다.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배고품을 겪고 나서야 밥의 소중함을 안다. 소중함을 알고 행할 때 진정함은 더하리라.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그러해 내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린다. 오래도록 입고 다닌다. 한 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는 것이 이러한 과정의 결실이 아닐까 생각 해본다. 거칠 것이 무에 있겠는가?
1992년 군 입대 전 지리산을 홀로 종주한 적이 있었다. 산행 도중 피곤함을 못 이겨 배낭도 벗지 못한 채 길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잠에서 깨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잠간의 눈 부침에 내 그림자 길이는 서너 배 더 길게 누워있었기 대문이다. 나는 그날 난생 처음 야간산행 이란 걸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게 되었다. 그것도 혼자. 아무도 없었고 달도 그날따라 자취를 감췄다. 습관처럼 가지고 다녔던 헤드 랜턴이 없었다면 어찌되었을지.......
참 묘한 일이다. 귀신이랄지 산짐승의 울음소리에 놀라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귀신을 보지는 못했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엄습 앞에 귀신과 산짐승의 울음소리는 사치였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더 정신 차려야 했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바닥에 온 신경을 모아야 했다. 몰입도 그런 몰입이 없다. 발이라도 삐끗하는 날엔 볼 장 다본 것이다. 이미 기운 가을날씨에 비박은 생각지도 못했다.
궁즉변(窮卽變)은 이런 것이 아닐까. 간절해야 변할 수 있다. 그 간절함은 생각으로 되기 어렵다. 생각은 생각을 낳기 때문이다. 생각을 넘어 행함에 이르려면 내 몸이 그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배수진은 이럴 때 딱 어울린다. 생각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상태가 진정 궁(窮)한게 아닐까.......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 불빛이 보였다. 등대의 불빛처럼 산장에 세워놓은 안테나, 그 꼭대기에 불빛은 반짝이며 나를 반겨주었다. 이제 살았구나. 산장에 짐을 풀고는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통(通) 했다. 통(通)함은 순간적으로 다가온다. 변화의 과정에서 맛보는 통쾌함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지속하지 않으면 몸은 그것을 금방 잃어버린다. 생각의 한계다. 몸이 함께하지 못하면 처음의 그 자리보다 더 뒤로 내려간다. 내 몸이 그것을 지속하면 통함이 자연스러워 오래간다. 이것은 습관이다. 한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하는 경지를 말하는게 아닐까?
나는 지금 배고프고 목마르다.
IP *.255.78.36
화엄경에 나오는 글귀를 삼국유사 책속에서 보았다. 모든 것에 거침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 이러한 상황과 잘 들어맞는 글귀를 주역에서 보았다.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배고품을 겪고 나서야 밥의 소중함을 안다. 소중함을 알고 행할 때 진정함은 더하리라.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그러해 내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린다. 오래도록 입고 다닌다. 한 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는 것이 이러한 과정의 결실이 아닐까 생각 해본다. 거칠 것이 무에 있겠는가?
1992년 군 입대 전 지리산을 홀로 종주한 적이 있었다. 산행 도중 피곤함을 못 이겨 배낭도 벗지 못한 채 길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잠에서 깨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잠간의 눈 부침에 내 그림자 길이는 서너 배 더 길게 누워있었기 대문이다. 나는 그날 난생 처음 야간산행 이란 걸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게 되었다. 그것도 혼자. 아무도 없었고 달도 그날따라 자취를 감췄다. 습관처럼 가지고 다녔던 헤드 랜턴이 없었다면 어찌되었을지.......
참 묘한 일이다. 귀신이랄지 산짐승의 울음소리에 놀라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귀신을 보지는 못했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엄습 앞에 귀신과 산짐승의 울음소리는 사치였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더 정신 차려야 했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바닥에 온 신경을 모아야 했다. 몰입도 그런 몰입이 없다. 발이라도 삐끗하는 날엔 볼 장 다본 것이다. 이미 기운 가을날씨에 비박은 생각지도 못했다.
궁즉변(窮卽變)은 이런 것이 아닐까. 간절해야 변할 수 있다. 그 간절함은 생각으로 되기 어렵다. 생각은 생각을 낳기 때문이다. 생각을 넘어 행함에 이르려면 내 몸이 그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배수진은 이럴 때 딱 어울린다. 생각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상태가 진정 궁(窮)한게 아닐까.......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 불빛이 보였다. 등대의 불빛처럼 산장에 세워놓은 안테나, 그 꼭대기에 불빛은 반짝이며 나를 반겨주었다. 이제 살았구나. 산장에 짐을 풀고는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통(通) 했다. 통(通)함은 순간적으로 다가온다. 변화의 과정에서 맛보는 통쾌함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지속하지 않으면 몸은 그것을 금방 잃어버린다. 생각의 한계다. 몸이 함께하지 못하면 처음의 그 자리보다 더 뒤로 내려간다. 내 몸이 그것을 지속하면 통함이 자연스러워 오래간다. 이것은 습관이다. 한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하는 경지를 말하는게 아닐까?
나는 지금 배고프고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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