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현웅
- 조회 수 2221
- 댓글 수 4
- 추천 수 0
“모든 것에 거침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
화엄경에 나오는 글귀를 삼국유사 책속에서 보았다. 모든 것에 거침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 이러한 상황과 잘 들어맞는 글귀를 주역에서 보았다.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배고품을 겪고 나서야 밥의 소중함을 안다. 소중함을 알고 행할 때 진정함은 더하리라.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그러해 내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린다. 오래도록 입고 다닌다. 한 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는 것이 이러한 과정의 결실이 아닐까 생각 해본다. 거칠 것이 무에 있겠는가?
1992년 군 입대 전 지리산을 홀로 종주한 적이 있었다. 산행 도중 피곤함을 못 이겨 배낭도 벗지 못한 채 길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잠에서 깨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잠간의 눈 부침에 내 그림자 길이는 서너 배 더 길게 누워있었기 대문이다. 나는 그날 난생 처음 야간산행 이란 걸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게 되었다. 그것도 혼자. 아무도 없었고 달도 그날따라 자취를 감췄다. 습관처럼 가지고 다녔던 헤드 랜턴이 없었다면 어찌되었을지.......
참 묘한 일이다. 귀신이랄지 산짐승의 울음소리에 놀라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귀신을 보지는 못했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엄습 앞에 귀신과 산짐승의 울음소리는 사치였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더 정신 차려야 했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바닥에 온 신경을 모아야 했다. 몰입도 그런 몰입이 없다. 발이라도 삐끗하는 날엔 볼 장 다본 것이다. 이미 기운 가을날씨에 비박은 생각지도 못했다.
궁즉변(窮卽變)은 이런 것이 아닐까. 간절해야 변할 수 있다. 그 간절함은 생각으로 되기 어렵다. 생각은 생각을 낳기 때문이다. 생각을 넘어 행함에 이르려면 내 몸이 그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배수진은 이럴 때 딱 어울린다. 생각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상태가 진정 궁(窮)한게 아닐까.......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 불빛이 보였다. 등대의 불빛처럼 산장에 세워놓은 안테나, 그 꼭대기에 불빛은 반짝이며 나를 반겨주었다. 이제 살았구나. 산장에 짐을 풀고는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통(通) 했다. 통(通)함은 순간적으로 다가온다. 변화의 과정에서 맛보는 통쾌함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지속하지 않으면 몸은 그것을 금방 잃어버린다. 생각의 한계다. 몸이 함께하지 못하면 처음의 그 자리보다 더 뒤로 내려간다. 내 몸이 그것을 지속하면 통함이 자연스러워 오래간다. 이것은 습관이다. 한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하는 경지를 말하는게 아닐까?
나는 지금 배고프고 목마르다.
IP *.255.78.36
화엄경에 나오는 글귀를 삼국유사 책속에서 보았다. 모든 것에 거침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 이러한 상황과 잘 들어맞는 글귀를 주역에서 보았다.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배고품을 겪고 나서야 밥의 소중함을 안다. 소중함을 알고 행할 때 진정함은 더하리라.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그러해 내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린다. 오래도록 입고 다닌다. 한 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는 것이 이러한 과정의 결실이 아닐까 생각 해본다. 거칠 것이 무에 있겠는가?
1992년 군 입대 전 지리산을 홀로 종주한 적이 있었다. 산행 도중 피곤함을 못 이겨 배낭도 벗지 못한 채 길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잠에서 깨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잠간의 눈 부침에 내 그림자 길이는 서너 배 더 길게 누워있었기 대문이다. 나는 그날 난생 처음 야간산행 이란 걸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게 되었다. 그것도 혼자. 아무도 없었고 달도 그날따라 자취를 감췄다. 습관처럼 가지고 다녔던 헤드 랜턴이 없었다면 어찌되었을지.......
참 묘한 일이다. 귀신이랄지 산짐승의 울음소리에 놀라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귀신을 보지는 못했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엄습 앞에 귀신과 산짐승의 울음소리는 사치였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더 정신 차려야 했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바닥에 온 신경을 모아야 했다. 몰입도 그런 몰입이 없다. 발이라도 삐끗하는 날엔 볼 장 다본 것이다. 이미 기운 가을날씨에 비박은 생각지도 못했다.
궁즉변(窮卽變)은 이런 것이 아닐까. 간절해야 변할 수 있다. 그 간절함은 생각으로 되기 어렵다. 생각은 생각을 낳기 때문이다. 생각을 넘어 행함에 이르려면 내 몸이 그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배수진은 이럴 때 딱 어울린다. 생각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상태가 진정 궁(窮)한게 아닐까.......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 불빛이 보였다. 등대의 불빛처럼 산장에 세워놓은 안테나, 그 꼭대기에 불빛은 반짝이며 나를 반겨주었다. 이제 살았구나. 산장에 짐을 풀고는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통(通) 했다. 통(通)함은 순간적으로 다가온다. 변화의 과정에서 맛보는 통쾌함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지속하지 않으면 몸은 그것을 금방 잃어버린다. 생각의 한계다. 몸이 함께하지 못하면 처음의 그 자리보다 더 뒤로 내려간다. 내 몸이 그것을 지속하면 통함이 자연스러워 오래간다. 이것은 습관이다. 한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하는 경지를 말하는게 아닐까?
나는 지금 배고프고 목마르다.
댓글
4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089 | 10년만에 만난 고등하교 동창 | 유일 | 2008.03.06 | 2135 |
2088 | 이 커뮤니티의 본질은? [2] | 김주영 | 2008.03.06 | 2446 |
2087 | 사고위험지역 | ssima | 2008.03.07 | 2133 |
2086 | -->[re]이 간이역 주막은 이런 곳이다 | 간이역 주인장 | 2008.03.07 | 2099 |
2085 | 어머니가 차려 주신 점심상 [4] | 현운 이희석 | 2008.03.07 | 2490 |
» | 모든 것에 거침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 [4] | 홍현웅 | 2008.03.08 | 2221 |
2083 | 서동에게 농락당한 나훈아 [2] | 최지환 | 2008.03.08 | 2672 |
2082 | 눈팅만 스쳐도 인연 [4] | 손지혜 | 2008.03.08 | 2651 |
2081 | 문무왕을 만나다 [2] | 이은미 | 2008.03.09 | 2413 |
2080 | 우포늪 그리고 삶 [3] | 이승호 | 2008.03.09 | 2178 |
2079 | 귀천(歸天), 아름다운 소풍 [2] | 박중환 | 2008.03.09 | 2287 |
2078 | 로마인 이야기, 한국인 이야기 [2] | 유인창 | 2008.03.09 | 2008 |
2077 | 유사를 읽다 문득 [2] | 구본형 | 2008.03.09 | 2144 |
2076 | [칼럼002]역사는 흐른다 [3] | 양재우 | 2008.03.10 | 2318 |
2075 | 소탐대실 vs. 대탐소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2] | 김용빈 | 2008.03.10 | 3576 |
2074 | (04)고운기와 줄리아 카메론 [3] | 이한숙 | 2008.03.10 | 2265 |
2073 | 3월 어느 날 [3] | 강종출 | 2008.03.10 | 2010 |
2072 | [칼럼2] 탐험가들 [4] | 오현정 | 2008.03.10 | 2140 |
2071 | 테니스 배우기와 역사 공부 [3] | 최현 | 2008.03.10 | 2545 |
2070 | 효, 자식과 부모, 한국적인. [3] | 김나경 | 2008.03.10 | 24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