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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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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8일 09시 59분 등록
얼마 전 우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접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뉴스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나는 그 이야기가 인터넷을 한바탕 휩쓸고 난 후에야 우연히 들을 수가 있었다. 아내를 통해 전해들은 그 이야기는 언뜻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되감아 한 장면씩 떠올려보니, 얼핏 사실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통 그런 류의 이야기에는 관심을 안 갖던 나조차도 인터넷을 서핑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그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궁금했다. 진실은 무엇인지.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가수 나훈아에 대한 괴소문이었다. 자신에 대해 그 정도의 내용이 떠돌고 있는 상황이면 해명을 했어도 여러 번 했어야 할 터인데, 한 마디 말도 없는 그를 뒤로하고 소문은 더욱더 증폭되어 갔다. 소문에 엮인 사람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유명 여자 영화배우들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었다. 사실일지 모른다는 사람들의 의문은 점점 확신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입을 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판단했는지, 바지 지퍼까지 열었다. 700여 명의 기자들이 집결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는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낸 언론을 강하게 질타하고는 질문하나 받지 않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 광경을 본 수많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진짜라고 확신했건만, 아니었다는 사실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지는 않았을런지. 나조차도 말로는 "그럼 그렇지"라고 했지만, 마음 속엔 알 수 없는 아쉬움 같은 것이 남았다. 심지어 내 주위의 몇몇 사람은 바지를 완전히 벗은게 아니기 때문에 아직 확실히 판명난 건 아니라는 웃지 못할 말을 남기기도 했다.

선화공주님은
남 모르게 짝지어 놓고
서동 서방을
밤에 알을 품고 잔다.

'삼국유사'에 실린 서동요. 후에 사실이 되긴 했지만, 역사상 최대의 루머 중 하나일 것이다. 서동은 그야말로 루머를 제대로 이용해 팔자를 고친 사람이다. 서동의 그런 영악함이 비범하고 탁월한 재주로 읽혀지긴 하지만, 엄연히 자신의 욕망을 위해 헛소문을 퍼트린 것은 사실이다. 요즘 세상이었으면 선화공주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받아 처벌 받았을 것이 명백하다. 선화공주는 공주의 신분으로 유배까지 보내지는 수모를 당했건만, 노래의 내용대로 자신의 운명이 이루어졌음에 신기해하며 서동의 아내가 된다. 두 사람 다 루머로 인해 인생이 달라졌다. 소문의 힘은 이리도 강하다.

설마 서동의 헛소문 내는 솜씨가 우리의 국민성은 아니겠지? 우리 사회엔 서동의 끼를 물려받은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소문의 나라"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온갖 소문이 난무한다. 누가 어디를 고쳤다는 것은 소문의 축에도 못 낀다. 시집도 안간 여자 연예인이 모 유명인사의 애를 낳았다는 소문부터 시작해, 뜬금없는 사망설에, 결혼 안한 노처녀 연예인은 레즈비언이 되어야 하며, 노총각 연예인은 어렵잖게 게이가 되는 판국이다. 연예계, 정치계, 경제계 할 것 없이 온갖 소문이 넘쳐난다.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는 소문은 이제 그 수위와 여파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기자까지 소문을 내는 사람도 다양하다. 사실여부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그냥 입에 담고 뱉기 쉬운 소문만이 있을 뿐이다. 신문을 보면 도대체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들다. 순수했던 어릴 시절, 언론만은 진실하다고 믿었던 나는 이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언론조차도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이 이번 나훈아씨 사건을 통해서 명백히 드러났다.

나는 진실이 난무하는 사회를 원한다. 멍청하고 순진하게 사람들이 하는 말 다 믿고 살아도 별 탈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신문을 보면서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우리나라 국민에겐 서동의 헛소문을 퍼트리는 영악함이 아닌, 신선한 아이디어와 치밀한 기획력,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고 마는 실행력만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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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9 01:32:11 *.70.72.121
때로 루머가 너무 잘 맞아서 걱정일 때도 있지요. 신선한 아이디어와 치밀한 기획력,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고 마는 실행력만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과정을 열심히 마치시면 반드시 그렇게 되실 거에요. 이루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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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3.10 12:15:59 *.38.102.209
혹시, 결혼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면, 서동처럼 해 보고 싶어요. ㅎㅎㅎ 너무 위험 부담인가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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