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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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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9일 16시 25분 등록




문무왕. 이름은 법민.
김춘추와 문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신라가 당나라를 끌여 들여 벌인 통일 전쟁이 한 민족의 영토를 축소된 결과만 초래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한반도 전체를 집어 삼키고자 했던 당나라의 속셈을 감안할 때, 그런 당나라에 맞서 최대한의 땅을 지켜낸 사람.
당나라와 끝까지 살얼음을 밟는 듯한 관계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으며, 56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며 “ 풍상을 무릅쓰다 보니 마침내 고질병이 생겼으며, 정무에 애쓰다 보니 더욱 깊은 병에 걸리고 말았다”고 적고 있는 것이 문무왕이다.

대부분의 왕들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야 다 컸겠지만, 문무왕은 유난히 더 강했던 것 같다.
왕은 죽은 뒤에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 하고 아들 신문왕은, 부왕을 위해 동해가에 감은사를 짖는다. <기이>편은 ‘만파실적’의 첫머리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문무왕이 왜병을 무찌르고자 이 절을 짖기 시작하였는데,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바다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개요2년 (682)에 일을 마치고, 금당의 아래를 밀어 동쪽으로 구멍 하나를 뚫었거니와, 이는 용이 절로 들어와 돌아다니게 마련한 것이다. 유언대로 뼈를 묻는 곳은 대왕암이라 이름하고 절은 감은사라 하였다. 뒤에 용이 나타난 모습을 본 곳을 이견대라 하였다.

삼국유사를 읽으며 이 대목에서 오랫동안 발목을 잡혀 있었다.
몇 년전에 경주일대를 가족과 함께 여행한적이 있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어 바람이 더 휑하게 느껴지는 감은사의 탑을 오랫동안 쓰다듬었던 것 같다. 무릇 모든 역사는 황혼처럼 지게 되고 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문무왕의 충정이 신문왕의 효심으로 이어지는 이 과정이 참으로 절묘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감은사와 문무대왕릉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었더니 아이는 신기해 한다.
그리곤 어디선가 용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듯도 하다고 말한 것 같다.

우리는 이 폐사를 지나 대왕암 바닷가에서 하루밤 머물렀다. 호젓하게 달이 고개를 내밀고 달빛에 대왕암의 윤곽이 드러날 즈음, 들리는 파도 소리는 더 이상 파도소리가 아닌듯 하였다.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밤.낮을 근심으로 보냈을 문무왕의 한숨소리이며, 끝내 고질병으로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문무왕의 신음소리이다.
파도가 부서져 흰 포말로 사라지고 또 다른 바다가 되어 더 넓은 세상에 나가듯이 그의 근심도, 고통도, 한숨도, 신음도 이제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을까?

우리는 새벽에 일출을 본다. 한 여름이었지만 새벽의 공기는 차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문무대왕릉 사이로 해가 찬란하게 떠오르길 기다린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기다림 속에서도 해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속절없이 갈매기만 비상을 멈추지 못하고 대왕릉 주변을 쉼없이 돌며 끼룩 끼룩 울 뿐이다.
끝내 짙은 운무에 가려 태양은 눈부시게 떠오르지 못하고 어느새 시퍼렇게 칼날 서 있던 새벽은 사라지고 온기가 가득한 빛으로 세상을 끌어 안는다.
이 또한 문무와의 일생과 닮은듯 하다.
김춘추에게 이미 자식이 있었고 가야 출신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정치적 견제를 피하기 위해 줄곧 당나라에서 머물러야 했었고, 왕위에 오른 뒤 끝까지 당나라와의 싸움에서 잠시도 편안할 수 없었으나, 결국은 삼국 통일을 완성해 내고 마는 그의 삶과 닮았다.
그의 나라 사랑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용이 되어 끝까지 나라를 지키고자 한 그의 순수한 호국혼을 만나는 듯 하다.

<사진: 네이버 검색에서 퍼옴>
IP *.128.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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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9 18:03:08 *.70.72.121
그러게. 언제가 들러봤지요. 오늘의 크고 번듯한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길들여져 그런가 황량하고 그다지 볼품 있어 보이지도 않는 벌판에 감은사지 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 미처 감동보다는 너른 바다를 장엄하게 지키며 죽어서도 강인한 호국을 염원하고 있을 애타는 용의 눈물을 연상하고 지나쳤지. 대왕의 거룩한 뜻이 아들 신문왕으로 이어짐에서 더 크게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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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3.10 12:20:14 *.38.102.209
제가 좋아 하는 장소 중 하나 입니다. 거기 서 있으면 왠지 그와 말을 나누는 것 같고 제 마음을 다 아는 듯 하고 그런데 혼자하는 여행일때만. 누군가와 함께 일때는 말을 건네지 않더라구요.
당장 경주 가고 싶어져요. 은미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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