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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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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9일 21시 53분 등록
귀천(歸天), 아름다운 소풍

<절>

내 마음 오늘
절에 가서 절을 한다
잎 한 장 한 장 만들어지는 동안
온기가 없어 차가운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지난 봄이 사라진 숲 속에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덧없음만 항상하고 아름다워라

나 이 길로 다시 돌아오라고
새싹의 아픔으로 돌아가라고
잎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동안에도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오늘
절하며 간다

책을 덮은 후 계속해서 뇌리 속에 남아있는 시(詩)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바로 일연의 ‘평소 꿈꾸어 오던 일’729p였다. 일연에게 <삼국유사>를 만들어나가는 여정은 그의 천복(天福)이었으며, 소명(召命)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기나긴 여정이 지치고 힘들었겠지만, 행복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운기 교수에게도 <삼국유사>를 복원해 가는 순례의 길이 바로 천복이었으며, 모든 것이었다.

"내 학문은 이 책에서 나와 이 책으로 또한 이룰 것이다."(余之學問 出於是書 而成於亦是書)
(고운기 교수가 1980년대 초 산 영인본 <삼국유사> 맨 앞장에 직접 적어 넣은 글귀)

저자 고운기는 ‘마음이 찾아갈 정처(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456p하였다. 그 곳이 일연에게는 바로 <삼국유사>였으며, 고운기 교수에게 쉴 곳은 그리고 가야 할 곳도 <삼국유사>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쉴 곳은 어디이며,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중요한 사실은 일연은 구도자의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 라는 거대한 역작을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이 ‘평소 꿈꾸어 오던 일’말이다. 고운기 교수는 자신의 학문은 이 책에서 나와 이 책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 말하며 자신의 천복을 찾았다.

부럽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얻어야 할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모든 교육의 목적이, 책을 읽는 과정이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하는데, 난 솔직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희미하게만 알고 있다.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워진다는 유인력의 법칙이 사실이라면, 언제가는 찾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작은 위로가 되는 것이 있다면 내 삶을 마칠 때 어떠한 느낌과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날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일연이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뒷날에 돌아오면 다시 여러분과 더불어 거듭 한바탕 흥겹게 놀겠소.”
이 문구를 보면서, 일연과 그리고 그의 언어를 통한 고운기씨의 철학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또한 구본형 선생님께서 고운기 교수의 삼국유사를 추천도서로 왜 선정하셨는지에 대한 이유도 부분적으로 이해된다.

과거의 일연이 현재로 살아 돌아온다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사랑했으리라. 이 세상 떠나는 날, 흥겹게 춤추고 놀다간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IP *.111.35.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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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9 22:23:36 *.70.72.121
그대께서 삶을 마칠 때 어떠한 느낌과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건지 궁금해 지네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 희미하게 알고 있다는 것만 해도 가능성의 시작이요 출발선 상에 계시네요. 힘찬 도전과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내면의 소리와 만나서 한바탕 행복한 일상들을 즐겁게 열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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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3.10 12:23:11 *.38.102.209

이시도 저시도 제가 좋아하는 시네요. 변경연에서 펴준 멍석에서 한바탕 노시는 모습 기대할께요. 박중환님.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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