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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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歸天), 아름다운 소풍
<절>
내 마음 오늘
절에 가서 절을 한다
잎 한 장 한 장 만들어지는 동안
온기가 없어 차가운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지난 봄이 사라진 숲 속에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덧없음만 항상하고 아름다워라
나 이 길로 다시 돌아오라고
새싹의 아픔으로 돌아가라고
잎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동안에도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오늘
절하며 간다
책을 덮은 후 계속해서 뇌리 속에 남아있는 시(詩)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바로 일연의 ‘평소 꿈꾸어 오던 일’729p였다. 일연에게 <삼국유사>를 만들어나가는 여정은 그의 천복(天福)이었으며, 소명(召命)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기나긴 여정이 지치고 힘들었겠지만, 행복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운기 교수에게도 <삼국유사>를 복원해 가는 순례의 길이 바로 천복이었으며, 모든 것이었다.
"내 학문은 이 책에서 나와 이 책으로 또한 이룰 것이다."(余之學問 出於是書 而成於亦是書)
(고운기 교수가 1980년대 초 산 영인본 <삼국유사> 맨 앞장에 직접 적어 넣은 글귀)
저자 고운기는 ‘마음이 찾아갈 정처(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456p하였다. 그 곳이 일연에게는 바로 <삼국유사>였으며, 고운기 교수에게 쉴 곳은 그리고 가야 할 곳도 <삼국유사>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쉴 곳은 어디이며,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중요한 사실은 일연은 구도자의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 라는 거대한 역작을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이 ‘평소 꿈꾸어 오던 일’말이다. 고운기 교수는 자신의 학문은 이 책에서 나와 이 책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 말하며 자신의 천복을 찾았다.
부럽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얻어야 할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모든 교육의 목적이, 책을 읽는 과정이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하는데, 난 솔직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희미하게만 알고 있다.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워진다는 유인력의 법칙이 사실이라면, 언제가는 찾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작은 위로가 되는 것이 있다면 내 삶을 마칠 때 어떠한 느낌과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날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일연이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뒷날에 돌아오면 다시 여러분과 더불어 거듭 한바탕 흥겹게 놀겠소.”
이 문구를 보면서, 일연과 그리고 그의 언어를 통한 고운기씨의 철학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또한 구본형 선생님께서 고운기 교수의 삼국유사를 추천도서로 왜 선정하셨는지에 대한 이유도 부분적으로 이해된다.
과거의 일연이 현재로 살아 돌아온다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사랑했으리라. 이 세상 떠나는 날, 흥겹게 춤추고 놀다간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IP *.111.35.167
<절>
내 마음 오늘
절에 가서 절을 한다
잎 한 장 한 장 만들어지는 동안
온기가 없어 차가운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지난 봄이 사라진 숲 속에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덧없음만 항상하고 아름다워라
나 이 길로 다시 돌아오라고
새싹의 아픔으로 돌아가라고
잎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동안에도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오늘
절하며 간다
책을 덮은 후 계속해서 뇌리 속에 남아있는 시(詩)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바로 일연의 ‘평소 꿈꾸어 오던 일’729p였다. 일연에게 <삼국유사>를 만들어나가는 여정은 그의 천복(天福)이었으며, 소명(召命)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기나긴 여정이 지치고 힘들었겠지만, 행복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운기 교수에게도 <삼국유사>를 복원해 가는 순례의 길이 바로 천복이었으며, 모든 것이었다.
"내 학문은 이 책에서 나와 이 책으로 또한 이룰 것이다."(余之學問 出於是書 而成於亦是書)
(고운기 교수가 1980년대 초 산 영인본 <삼국유사> 맨 앞장에 직접 적어 넣은 글귀)
저자 고운기는 ‘마음이 찾아갈 정처(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456p하였다. 그 곳이 일연에게는 바로 <삼국유사>였으며, 고운기 교수에게 쉴 곳은 그리고 가야 할 곳도 <삼국유사>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쉴 곳은 어디이며,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중요한 사실은 일연은 구도자의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 라는 거대한 역작을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이 ‘평소 꿈꾸어 오던 일’말이다. 고운기 교수는 자신의 학문은 이 책에서 나와 이 책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 말하며 자신의 천복을 찾았다.
부럽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얻어야 할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모든 교육의 목적이, 책을 읽는 과정이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하는데, 난 솔직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희미하게만 알고 있다.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워진다는 유인력의 법칙이 사실이라면, 언제가는 찾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작은 위로가 되는 것이 있다면 내 삶을 마칠 때 어떠한 느낌과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날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일연이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뒷날에 돌아오면 다시 여러분과 더불어 거듭 한바탕 흥겹게 놀겠소.”
이 문구를 보면서, 일연과 그리고 그의 언어를 통한 고운기씨의 철학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또한 구본형 선생님께서 고운기 교수의 삼국유사를 추천도서로 왜 선정하셨는지에 대한 이유도 부분적으로 이해된다.
과거의 일연이 현재로 살아 돌아온다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사랑했으리라. 이 세상 떠나는 날, 흥겹게 춤추고 놀다간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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