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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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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0일 03시 15분 등록
역사는 흐른다

지지난주 나를 제외한 아내와 아이들이 중국의 상해, 소주, 항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장모님의 팔순잔치 대신 처가식구들끼리 가는 해외여행을 계획하여 실행에 옮긴 것이다. 다만 남자들은 경제적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모두 제외되고 여자와 아이들만 여행을 떠났다. 3박 4일의 길지않은 기간이었지만 아내나 아이들이나 6년만의 해외 나들이라 즐거웠던 모양이다.

금요일에 출발하여 월요일에 돌아왔는데 널널했던 가방들이 제법 가득차 있다. 짐을 푸는데 이것저것 잡다한 물건들이 꽤 많이 나온다. 예전엔 아이들이 어려 스스로 물건을 사지 못했는데 지금은 초등학교 4,5학년이 되니 이것저것 신기한 것을 많이도 사왔다. 내 선물이라 내미는데 아내는 넥타이였고, 아이들은 귀여운 열쇠고리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관심 있었던 것은 가서 찍었을 ‘사진’이었다.

디카전원을 켜고 사진을 보았다. 눈에 익은 장소들이 꽤 쏟아져 나왔다. 왜냐하면 상해, 소주, 항주는 모두 내가 갔던 곳이기 때문이다. 1999년에 회사일로 중국출장을 갔었고 시간이 다소 여유가 있어 소주, 항주까지 구경했었다. 바로 그 장소에 아이들이 서 있었다. 내가 9년전 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위치에 아이들이 서서 'V'자를 그리며 활짝 웃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간을 초월할 수 있다면, 9년의 시간을 넘어설 수만 있다면 나와 아이들은 만날 수 있으리라. 아이들은 9년전 훨씬 젊은 아빠를 중국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쉽게 못알아 볼 수도 있으리라.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기에.

얼마전 개봉한 영화 중에 「말할 수 없는 비밀(不能說的秘密)」이란 중국영화가 있었다. 동일한 공간인 학교에서 약 20년 시간의 터울을 가진 과거의 여학생과 현재의 남학생이 사랑을 나눈다는 주제의 영화였다. 이 시간을 초월하는 타임머신은 바로 피아노였고, 타임머신의 작동법은 한 피아노곡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사랑은 시간의 초월이라는 장벽이 있었기에 더욱 애절하게 느껴졌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의 저자이자 시인인 고운기는 삼국유사를 쓰기 위해 20년 동안 삼국유사의 무대를 직접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현장답사식의 글쓰기 방식은 바로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 스님의 방식이기도 했다. 일연 스님의 탄생과 출가 그리고 입적까지의 행적을 일일이 찾아 가 과거와 현재를 가로질러 시간 초월을 하기위한 저자의 노력은 삼국유사를 가장 일연에 가깝게 풀어 놓았다는 평을 듣도록 만들었다.

저자의 지칠줄 모르는 탐색과 연구에 의해 우리는 비로서 그 당시의 사상과 가치관을 제대로 이어 받게 되었다. 소위 시간을 초월한 만남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 고운기의 노력이 삼국유사 속 일연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타임머신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800년전 인생선배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살아 있는 목소리로 귀담아 듣고 배우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가슴을 열고 마음을 펼치면 그들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존재하고 그들의 힘든 삶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런 경제적 여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리라.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처럼 역사는 흐른다. 쉴 새 없이, 끊임없이 흐른다. 800년전 일연의 마음에도 저자 고운기의 마음에도 나의 마음에도 당신의 마음에도 우리 민족의 역사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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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0 09:23:16 *.70.72.121
오늘 아침 재우님의 역사가 흐른다. 그의 멋진 꿈이 담긴 개인사와 더불어. 찬란한 금빛 물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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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3.10 11:28:23 *.122.143.151
써니누나, 당신의 무한한 에너지, 열정에 다시한번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조만간 펼쳐질 누나의 역사에도, 살아서 펄펄 뛸 열정의 역사에도 찬사를 보냅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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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3.10 12:28:11 *.38.102.209
글이 씩씩해 보입니다. 에너지 얻어 가요. 양재우님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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