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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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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0일 03시 59분 등록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충신과 승려들의 아름다운 행적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박제상(朴堤上)이라는 충신의 용맹한 행적과 진정(眞定)이라는 스님의 순수한 불심을 나타내는 일화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라의 제상이었던 박제상은 그 당시 인질로 가 있던 눌지왕이 동생들을 구하려 홀연히 고구려와 일본을 넘나든다. 이 행적이 특별히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그의 충성스러운 행동도 행동이지만, 충성과 대의(大義)를 위해 자기 개인의 안일을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초인적인 정신력에 있을 것이다. 특히, 고구려에서 눌지왕의 한 동생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쉬지도 않고 집안에 안부도 전함이 없이, 바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남은 눌지왕의 동생을 탈출시키고, 본인은 항복을 거부하고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죽는다. 한 나라의 충신이 대의를 위해 – 엄밀하게는 보스[눌지왕]를 위해 – 가족[부인]을 위해서는 조금의 근심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은 범인으로서는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행동이었기에 읽는 이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가 보다.
한편 진정 스님의 경우는, 출가를 원하면서도 홀로 모시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위해 출가를 내심 보류하다가 어머니에게 그 마음을 들키게 되나, 결국 대범한 어머님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출가하게 되는 애절한 이야기이다. 즉, 효도와 불심의 갈등이 대국적으로 해소되는 한 편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스토리이다. 이를 통해 읽는 이는 참된 효도가 정녕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간단히 결론이 날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진정, 인간에게 있어 대의와 개인의 행복은 대치되는 것인가? 일신의 안위에서부터 가족의 행복에 이르는 장삼이사의 악하지 않은 욕망이라도 대의만은 못하고, 결국은 부질없는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일본에서 붙잡혀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발바닥이 벗겨지는 모진 고문을 당하여 결국은 죽은 박제상이라는 한 인간의 삶은 어떤 삶이라 할 수 있는가. 말 한마디 없이 신라에 남겨둔 그의 부인을 포함한 가족의 삶은?
어려운 살림살이를 할 어머니를 남겨두고 출가하여 의상의 10대 제자의 한 사람이 된 진정의 삶은 또 어떤가. 그의 어머니의 삶은 또…?
박제상과 진정스님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그 당시 강력한 이데올로기였을 충효관념에 또는, 종교적인 신념에서 그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것이 바로 고난을 극복한 영웅들의 삶이었을까?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의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뭐랄까, 귀감으로서의 인생으로는 바람직하기 이를 데 없지만, 실제 자기 인생으로서의 모습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한 마디로,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현실로 돌아와 보면, 오늘 저녁까지 써야 할 원고지는 아직 채우지도 못하고서 낮 네 시간을 호기 있게 아들 놈과 놀아주고, 이렇게 밤 늦도록 평범하기 짝이 없는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대의(大義)를 따른 것인가 아니면, 부질없는 욕망(慾望)을 따른 것인가?

소탐대실(小貪大失)인지 대탐소실(大貪小失)인지… 늦은 시간 비몽사몽(非夢似夢)하니 평가하기가 더 더욱 어렵구나! Ω
IP *.152.1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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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0 09:30:37 *.70.72.121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애쓰시는 군요. 마음 한 편 편하지 않음을 안고서. 저와 같은 막판 몰아치기 임박형일까요? 사부님께서는 늘 말씀하시지요. "중요한 것부터 하라" 라고 이르시지만 저는 지금 4기 연구원 지망생들이 너무도 궁금하고 또 응원이 하고 싶어서 책읽기를 미루고 덧글을 달고 있으니 저 또한 어렵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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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3.10 12:30:00 *.38.102.209
그 덕분에 제가 가장 만나고 싶은 분. 써니님.

글 읽으며 배우고 갑니다. 용빈님.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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