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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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공부하는 내 방의 불이 너무 어둡다. 밝지도 않은 불빛 아래서 책을 읽으려니 여간 답답한게 아니다. 안보이는 글씨를 잘 보려면 미간을 좁히고 집중해야 한다. 요즘 몸이 보내는 신호들이 심상치가 않다. 눈이 부쩍 침침해졌다. 이게 노안 증세라는 건가. 안경을 벗고 눈 마사지를 자주 한다. 운이 좋아 올 한 해 연구원 생활을 하게 되면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편안한 스탠드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갑자기 스탠드를 직접 제작하는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전화를 건다. 내 얘기를 들은 친구, 흔쾌히 스탠드 하나를 선물하겠다고 한다.
지난 금요일의 일이다. 그리고 오늘 스탠드가 배달되어 왔다. 제이엔스테크 스탠드(JNs-Tech Stand) FD 10이다. 이태리 아르테미데(Artemide) 社가 디자인한, 심플하고 모던한 롱 스탠드다. 혼자서 조립해 책상 옆에 세우니 제법 폼도 나고 근사하다. 전구를 끼우고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하얀 백열 전구와 함께 내 가슴에도 불이 들어온다.
친구에게 문자를 넣는다.
‘너무 좋다. 학위라도 하나 따서 바치고 싶은 심정이야. 잘 쓸게. 정말 고맙다.’
그래, 이 불빛 아래서 다시 학구열을 불태워 보는 거다. 젊은 날의 잃어버린 시간까지 다 찾아서 정녕, 뭔가를 해보리라. 아니 뭔가를 해내지 않아도 좋다. 책들을 수북이 쌓아놓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너무 행복하다.
스탠드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질 줄이야.
장면 2
나는 지금 내 방에 앉아있다. 앉아 있는 곳은 방의 반을 차지하는 책상 앞이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책을 바라본다. 책들이 내게 구원이 되어줄까, 캠벨을 생각한다. 책의 숲으로 달려가 혼자서 우주의 진리를 캐낸 사람.
내 40 인생의 가장 치명적인 불행은 나에게 길이 되어줄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괜찮은 사람은 많았지만, 나에게 길이 되어줄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내겐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하늘이 정한 때가 있다. 나는 지금이 그 때인 걸 안다. 사부님은 내 간절한 열망이 부른 우주의 응답이다. 2002년에 책으로 먼저 그를 알았고, 2003년 한 번 인연이 닿았으나, 그 때는 아직 내 때가 아니었다.
모닝페이지와 함께 내 인생의 창조적 유턴(U-turn)을 감행한 후, 지난 두 달 자신을 위해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해 보았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 멀미가 날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내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이미 예비된 자리에 앉은 것처럼 편안했다. 심지어 가슴이 떨리기까지 했다. 1년이면 2-3개월 정도를 해외 출장 길에 오르던 나였다. 정착과 떠남 사이의 긴장을 사랑하던 나였다.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던 나였다. 그러나 불안은 잠시, 명현현상처럼 왔다가 사라졌다.
사무실의 근사한 방 보다, 나는 이 방이 좋다. 나는 스스로를 이 감옥에 가두었다. 이 방은 좁다. 그러나 세상의 시계(視界)에 묶이지 않으니 결코 좁다고 할 수 없다. 이 방은 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세상을 다 탐험할 수 있는 곳이다. 탐험해야 할 가장 큰 세상은 무엇보다 ‘나’라는 세상이다. 한 마리 물고기가 푸른 비늘을 반짝이며 심원한 대양을 헤엄쳐 가듯 나는 오늘도 책 한 권을 붙들고 탐험길에 오른다. 독서가 정녕 내 구원이 되어줄 것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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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내 방의 불이 너무 어둡다. 밝지도 않은 불빛 아래서 책을 읽으려니 여간 답답한게 아니다. 안보이는 글씨를 잘 보려면 미간을 좁히고 집중해야 한다. 요즘 몸이 보내는 신호들이 심상치가 않다. 눈이 부쩍 침침해졌다. 이게 노안 증세라는 건가. 안경을 벗고 눈 마사지를 자주 한다. 운이 좋아 올 한 해 연구원 생활을 하게 되면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편안한 스탠드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갑자기 스탠드를 직접 제작하는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전화를 건다. 내 얘기를 들은 친구, 흔쾌히 스탠드 하나를 선물하겠다고 한다.
지난 금요일의 일이다. 그리고 오늘 스탠드가 배달되어 왔다. 제이엔스테크 스탠드(JNs-Tech Stand) FD 10이다. 이태리 아르테미데(Artemide) 社가 디자인한, 심플하고 모던한 롱 스탠드다. 혼자서 조립해 책상 옆에 세우니 제법 폼도 나고 근사하다. 전구를 끼우고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하얀 백열 전구와 함께 내 가슴에도 불이 들어온다.
친구에게 문자를 넣는다.
‘너무 좋다. 학위라도 하나 따서 바치고 싶은 심정이야. 잘 쓸게. 정말 고맙다.’
그래, 이 불빛 아래서 다시 학구열을 불태워 보는 거다. 젊은 날의 잃어버린 시간까지 다 찾아서 정녕, 뭔가를 해보리라. 아니 뭔가를 해내지 않아도 좋다. 책들을 수북이 쌓아놓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너무 행복하다.
스탠드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질 줄이야.
장면 2
나는 지금 내 방에 앉아있다. 앉아 있는 곳은 방의 반을 차지하는 책상 앞이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책을 바라본다. 책들이 내게 구원이 되어줄까, 캠벨을 생각한다. 책의 숲으로 달려가 혼자서 우주의 진리를 캐낸 사람.
내 40 인생의 가장 치명적인 불행은 나에게 길이 되어줄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괜찮은 사람은 많았지만, 나에게 길이 되어줄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내겐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하늘이 정한 때가 있다. 나는 지금이 그 때인 걸 안다. 사부님은 내 간절한 열망이 부른 우주의 응답이다. 2002년에 책으로 먼저 그를 알았고, 2003년 한 번 인연이 닿았으나, 그 때는 아직 내 때가 아니었다.
모닝페이지와 함께 내 인생의 창조적 유턴(U-turn)을 감행한 후, 지난 두 달 자신을 위해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해 보았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 멀미가 날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내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이미 예비된 자리에 앉은 것처럼 편안했다. 심지어 가슴이 떨리기까지 했다. 1년이면 2-3개월 정도를 해외 출장 길에 오르던 나였다. 정착과 떠남 사이의 긴장을 사랑하던 나였다.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던 나였다. 그러나 불안은 잠시, 명현현상처럼 왔다가 사라졌다.
사무실의 근사한 방 보다, 나는 이 방이 좋다. 나는 스스로를 이 감옥에 가두었다. 이 방은 좁다. 그러나 세상의 시계(視界)에 묶이지 않으니 결코 좁다고 할 수 없다. 이 방은 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세상을 다 탐험할 수 있는 곳이다. 탐험해야 할 가장 큰 세상은 무엇보다 ‘나’라는 세상이다. 한 마리 물고기가 푸른 비늘을 반짝이며 심원한 대양을 헤엄쳐 가듯 나는 오늘도 책 한 권을 붙들고 탐험길에 오른다. 독서가 정녕 내 구원이 되어줄 것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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