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은 이한숙
- 조회 수 2590
- 댓글 수 3
- 추천 수 0
지난 주말, 맘을 먹고 화장실 휴지걸이를 샀다.
맘 먹고 하면 그토록 간단한 걸, 왜 그리도 오래 미련하게 참았을까.
화장실 휴지 걸이가 고장난 건 벌써 6개월 전의 일이다.
그 동안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누구도 그것을 교체하지 않았다.
교체하지 않은 이유는 거창한 게 아니다.
갈아야지, 갈아야지 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어느새 모두 불편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휴지를 변기 뒤에 올려두고 필요할 때 마다
손을 뒤로 뻗어야하는 번거로운 일을
언제부터인가 아무도 불평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일 도와주시던 아주머니를 내보내자
집안 살림에 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지고,
많은 일이 내 책임이 되었다.
물론 휴지걸이도 이전보다 훨씬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갈아야지 하면서 또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그 간단한 걸 왜 냉큼 실행하지 못할까,
생각해보니 또 다른 원인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원래의 휴지걸이는 금속이다.
그런 금속 휴지걸이를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고
산다고 해도, 공구를 써서 달아야 하는데
그 일을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이마트에 장보러 간 김에, 혹시나 하고 욕실 용품 섹션에 가보았다.
반갑게도 압착식 휴지걸이가 거기에 있었다.
3 킬로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제법 잘 만들어진,
세련된 디자인의 플라스틱 휴지걸이였다.
그것을 사다가 벽을 깨끗이 닦고 레버를 위로 한 번 올렸다 내리니
휴지걸이가 멋지게 벽에 '딱' 소리를 내며 압착되는 것이 아닌가.
너무 쉬워서 허탈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쉬운 데 6개월을 참고 지냈단 말인가.
그런데 놀라운 건 그렇게 불편을 감수하며 지내는 것이
휴지걸이 뿐 아니라, 찾아보니 꽤 많다는 사실이다.
금이 간 유리창, 현관 한쪽에 떨어진 블라인드,
아이방 옷장의 흔들거리는 손잡이,
뻑뻑하게 안닫히는 주방과 거실 사이의 미닫이 문,
한쪽으로 기운 주방 서랍,
잘 작동되지 않는 가스 렌지 버너 하나,
책으로 받쳐둔 책장의 받침대,
떨어져나간 붙박이장 안의 벨트 행거,
칠 때마다 불안한 컴퓨터 자판의 키 하나 등등
그 가짓 수에 실로 놀란다.
그것들은 모두 그냥 내버려두어도 당장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허비하는 쓸데없는 에너지를 날짜로 계산하면
정말 무시할 수 없는 량이 나온다.
인생과 관련시켜보니 이 일이 큰 교훈을 준다.
내 습관이나 행동 패턴 중에도 고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휴지걸이처럼 조금만 실행의 힘을 쏟아주면 쉽게 해결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고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런 건 적당히 무시하고 편안해지거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맘 먹으면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을
게으름 때문에 혹은 근거없는 두려움 때문에 내버려 두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어떤 건 작은 일로 알고 달려들었다, 생각보다 큰 일인 것을 알고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
어떤 건 시도하는 것보다 시도하지 않는 것이 당장 더 편안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도는 여전히 보람있고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IP *.51.218.156
맘 먹고 하면 그토록 간단한 걸, 왜 그리도 오래 미련하게 참았을까.
화장실 휴지 걸이가 고장난 건 벌써 6개월 전의 일이다.
그 동안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누구도 그것을 교체하지 않았다.
교체하지 않은 이유는 거창한 게 아니다.
갈아야지, 갈아야지 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어느새 모두 불편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휴지를 변기 뒤에 올려두고 필요할 때 마다
손을 뒤로 뻗어야하는 번거로운 일을
언제부터인가 아무도 불평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일 도와주시던 아주머니를 내보내자
집안 살림에 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지고,
많은 일이 내 책임이 되었다.
물론 휴지걸이도 이전보다 훨씬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갈아야지 하면서 또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그 간단한 걸 왜 냉큼 실행하지 못할까,
생각해보니 또 다른 원인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원래의 휴지걸이는 금속이다.
그런 금속 휴지걸이를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고
산다고 해도, 공구를 써서 달아야 하는데
그 일을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이마트에 장보러 간 김에, 혹시나 하고 욕실 용품 섹션에 가보았다.
반갑게도 압착식 휴지걸이가 거기에 있었다.
3 킬로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제법 잘 만들어진,
세련된 디자인의 플라스틱 휴지걸이였다.
그것을 사다가 벽을 깨끗이 닦고 레버를 위로 한 번 올렸다 내리니
휴지걸이가 멋지게 벽에 '딱' 소리를 내며 압착되는 것이 아닌가.
너무 쉬워서 허탈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쉬운 데 6개월을 참고 지냈단 말인가.
그런데 놀라운 건 그렇게 불편을 감수하며 지내는 것이
휴지걸이 뿐 아니라, 찾아보니 꽤 많다는 사실이다.
금이 간 유리창, 현관 한쪽에 떨어진 블라인드,
아이방 옷장의 흔들거리는 손잡이,
뻑뻑하게 안닫히는 주방과 거실 사이의 미닫이 문,
한쪽으로 기운 주방 서랍,
잘 작동되지 않는 가스 렌지 버너 하나,
책으로 받쳐둔 책장의 받침대,
떨어져나간 붙박이장 안의 벨트 행거,
칠 때마다 불안한 컴퓨터 자판의 키 하나 등등
그 가짓 수에 실로 놀란다.
그것들은 모두 그냥 내버려두어도 당장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허비하는 쓸데없는 에너지를 날짜로 계산하면
정말 무시할 수 없는 량이 나온다.
인생과 관련시켜보니 이 일이 큰 교훈을 준다.
내 습관이나 행동 패턴 중에도 고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휴지걸이처럼 조금만 실행의 힘을 쏟아주면 쉽게 해결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고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런 건 적당히 무시하고 편안해지거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맘 먹으면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을
게으름 때문에 혹은 근거없는 두려움 때문에 내버려 두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어떤 건 작은 일로 알고 달려들었다, 생각보다 큰 일인 것을 알고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
어떤 건 시도하는 것보다 시도하지 않는 것이 당장 더 편안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도는 여전히 보람있고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댓글
3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069 | (05) 책들이 내게 구원이 되어줄까 [2] | 이한숙 | 2008.03.10 | 2313 |
2068 | 대략난감... [14] | 박안나 | 2008.03.10 | 2366 |
2067 | [86] 4기 여러분! 울어라 열풍아 !! [1] | 써니 | 2008.03.10 | 2212 |
2066 | 우리 옛이야기 삼국유사 [3] | 이수 | 2008.03.10 | 2266 |
2065 | 도전-최후의 생존전략(365-63) [2] | 도명수 | 2008.03.10 | 2240 |
» | 왜 그리 미련하게 참았을까 [3] | 소은 이한숙 | 2008.03.11 | 2590 |
2063 | 컬럼과 북리뷰 쓰는 방법: 4기 연구원에게 [11] | 박승오 | 2008.03.11 | 6601 |
2062 | 감기로 할까 배탈로 할까 [2] | 소은 이한숙 | 2008.03.12 | 2734 |
2061 | 4기 연구원 후보 여러분! [4] | 서지희 | 2008.03.12 | 2397 |
2060 | [82] 나는 나를 산다 [2] | 써니 | 2008.03.14 | 2184 |
2059 | 팀원을 1인 기업가로 만들어라 [3] | 홍현웅 | 2008.03.15 | 2019 |
2058 | [칼럼003]실험과 모색 [5] | 양재우 | 2008.03.15 | 2014 |
2057 | 자기계발 "제대로" 하고 계세요? [2] | 손지혜 | 2008.03.15 | 2077 |
2056 | (06)내가 만난 인간 구본형 [2] | 이한숙 | 2008.03.15 | 2109 |
2055 | 쇼 장의 물개 증후군 [1] | 최지환 | 2008.03.15 | 2344 |
2054 | 비빔밥의 맛과 멋 [1] | 이은미 | 2008.03.15 | 2237 |
2053 | 타버린 연탄 한 장처럼 [3] | 백산 | 2008.03.16 | 2450 |
2052 | 섞음과 빨리의 문화 [1] | 이승호 | 2008.03.16 | 2236 |
2051 | 지난 12개월 동안의 성과 - 나 [3] | 김나경 | 2008.03.16 | 1964 |
2050 | 나의 코리아니티는... [3] | 유인창 | 2008.03.16 | 2018 |